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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22화 (122/250)

122화

거너의 말에 따르면 하우든 백작은 도리아 영애에게 한 가지 시험을 던졌다.

시험에 성공하면 작위와 영지를 물려주고, 반대로 시험을 포기하면 가문에서 정한 상대와 정략결혼 하란 내용이었다.

다음 달 10일까지 원정대를 꾸려서 던전에 들어가야 한다.

만약 당일 원정에 나서지 못하면 포기로 간주된다.

도리아 영애 입장에선 자신의 인생이 걸린 일이었기에 백방으로 사람들을 모으려 했으나 다들 시험 내용을 듣자마자 거절했다고 한다.

하우든 백작이 도리아에게 낸 시험은 6띠 던전 원정이다.

이 일이 왕도 내에서 화제가 된 건 그 일에 엄청난 판돈이 걸렸기 때문이다.

도리아 영애가 시험을 포기한다와 그렇지 않다는 쪽에 일차 판돈이 걸렸고, 원정에 나설 경우 성공한다와 실패한다는 내용에 다시 판돈이 걸렸다.

그렇게 걸린 판돈의 액수가 상당했다.

이를 백분율로 표시한다면 일차의 경우 포기 쪽에 99, 포기하지 않는 다에 1이 비율이다.

1차가 성립되어야 가능한 2차의 경우에도 99 대 1의 비율이었다.

거너의 이야기는 내내 어스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6띠라……. 저번엔 슈리에 후작 때문에 보스를 먹지 못했는데.’

시스템 보상도 탐나고, 이번 일을 자신이 주도하여 성공한다면 보다 명성을 높일 수 있게 되니 자신을 이단으로 내몰려는 교단 내부의 비주류(?)의 입을 막는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더해 장차 백작이 될 사람에게 은혜도 베푸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까진 딱 좋은데.’

여전한 골칫거리는 성기사단을 처리한 걸 본 의문의 여자였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현장은 깨끗했다.

싸움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시체도 없고, 더해 흔적도 많이 훼손된 상태라 현장에 있는 흔적만으로 범인을 단정하기 힘들었다.

현장을 수습한 인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밖에 없었다.

그러니 따지고 들어가면 그 여자와 자신은 공범이라 할 수 있다.

‘이건 나만 죽는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일단 이 문제는 덮어두기로 했다.

아니,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얼굴을 제외하면 그 여자에 대해 아는 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어스는 도리아 영애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치르고 있는 유명세 덕분이었다.

“어스 경이 무슨 일인가요?”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도리아의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럼?”

“원정대에 합류하겠습니다.”

“저, 정말인가요?”

“인연은 소중하잖아요.”

그렇게 어스는 도리아 영애의 원정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 사실은 공표하지 않았다.

어스의 부탁으로.

그날 도리아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한 어스는 거너를 통해 현재 왕도에서 도리아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도박판에 거너 명의로 거금을 걸었다.

눈앞에 공돈이 보이는데 어찌 마다하랴.

* * *

“오빠, 나 부탁이 있는데.”

주말을 맞아 집에 온 루시가 어스를 찾아와서 곤란한 표정으로 부탁이란 말을 꺼내고 있었다.

“싫어.”

“들어보고 나서 말하면 되잖아?”

“들어도 안 해줌.”

“야!”

“쓰읍.”

“아, 아니 오라버니.”

도리아 영애를 만나고 난 이후 어스는 칩거 상태였다.

물론 이는 겉으로 보인 모습일 뿐 실상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은 오지의 던전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도 힘을 갖췄을 때야 더 빛난다.

때문에 열심히 구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세상과 단절하며 구르는 건 아니다.

틈틈이 연애도 하고 있다.

방금까지도 루리아와 문자를 주고받은 상태다.

“이 몸께 하고자 하는 부탁이 무엇이뇨?”

“미, 미천한 소녀의 부, 부탁은…… 하아. 파티에 함께 가달라는 거…… 겁니다.”

“파티?”

“응.”

“학생이 파티는 무슨 파티야. 너 그런 정신으로 언제 유저가 되고 익스퍼트가 되겠어? 어리다고 놀 생각만 말고 열심히 수련하고, 그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 사람이 머리에 든 게 있어야 손발이 편안한 법이야.”

쏟아지는 어스의 잔소리에 끝내 루시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지, 진짜. 궁금하면 뒤뜰로 따라오던가.”

“나 마법사거든.”

“창도 수련하잖아.”

“그건 운동 삼아 하는 거고.”

“질까 봐 그러지?”

“파티.”

“아! 죄송. 제발.”

“쯧. 어떤 파틴데?”

“아카데미에서 여는 공식적인 파티야. 가 줄 거지? 제발!”

“아카데미서?”

“응, 제발.”

어스의 명성은 에스터 추기경을 구한 뒤로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그 명성 덕분에 귀족들이 앞다투어 그를 만나길 원하였지만, 어스는 매번 이를 거절했다.

정중하게.

그랬던 그가 파티에 가기로 한 것이다.

가족이 뭔지.

“언제?”

“삼 일 뒤. 고마워. 헤헤.”

“사람 귀찮게 만들면서 뭐 잘했다고 웃어. 그리고 이번 한 번뿐이니까. 앞으로 이딴 부탁 하지 마. 알았지?”

“아, 알았어. 맹세할게.”

여동생을 내보낸 어스는 옷장을 열었다.

이왕 가는 거 여동생의 얼굴은 살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마땅한 옷이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옷이 있나?’

어스는 연방 투덜거리며 힘껏 루시의 방으로 갔다.

방은 비어 있었다.

“루시 찾아?”

“응.”

“뒤뜰에 있을 거야? 주말엔 쉬면 될 텐데 검이 뭐가 그리 좋은지 그것만 끼고 산다니까.”

“열심히 하나 보네.”

“그런데 루시는 왜 찾는 거야?”

“아카데미에서 파티를 여나 봐. 거기에 함께 가달라고 해서 가려는데 나도 그리고 루시도 옷이 없는 것 같아서 이참에 사려고. 엄마도 필요하면 같이 갈래?”

“엄만 필요 없어. 차라리 네 아빠 옷이나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엄만 몰라도 아빤 가끔 외출하거든.”

“당장은 그럴지 모르지만 갑자기 입고 나가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몇 벌 사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모였으니까 거하게 외식도 하고 말이야. 어때?”

“가족 외식?”

쇼핑엔 크게 반응하지 않던 엘이나도 가족 외식이란 말엔 즉각 반응했다.

1년 전만 해도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일이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드물었다.

그리고 앞으론 더 드물 것이다.

자신이 그러했듯 자신의 아들과 딸 역시 그럴 것이다.

‘내 아이들이 언제 이리 컸을까?’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 각자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건 기뻤지만, 한편으론 아이들과의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건 슬픈 일이었다.

모든 어머니들이, 아버지들이 느끼는 감상이리라.

“응. 싫어?”

“싫긴, 얼른 준비할게. 루시랑 아빠에겐 네가 말하고 알았지?”

들뜬 어머니의 밝은 얼굴을 본 어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어스는 아버지와 루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와 중에 투덜거리는 여동생의 머리를 참지 못하고 쥐어박았다.

그렇게 어스의 가족은 오랜만에 완전체가 되어 왕도 쇼핑 거리를 누볐다.

* * *

남색 고급 원단으로 제작된 맞춤형 정장으로 쫙 빼입은 어스는 여동생 루시가 다니는 푸른 강철 아카데미로 향했다.

레이몬드 사제가 선물한 고급 마차를 타고 가면 더 폼이 났을 텐데 아쉽게도 그 마차는 루리아를 그녀의 집에 데려다주고 북상 중이라 이번엔 기존에 타던 마차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아카데미까진 마차로 1시간 남짓 거리였다.

넓은 대로를 따라 내달리는 승용 마차와 짐마차들이 수시로 창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 너머 보도엔 색색의 옷을 입은 행인들이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었다.

‘뭐야? 이 시간에 니코 형이 왜?’

행인들 사이에서 꽃을 들고서 걸음을 재촉하는 니코가 보였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금방 눈에서 사라졌다.

좋을 때다.

‘루리아 누난 뭘 하고 있으려나.’

루리아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조만간 하우든 백작 영지로 가야하기 때문에 그 일을 끝내고 글리시아 남작 영지에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느새 마차가 아카데미 정문에 도착했다.

아카데미에서 여는 파티였기에 여느 날과 달리 정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정문 좌우 보도엔 노점상들이 각종 음식과 꽃을 팔았다.

“노른 씨, 갈 땐 알아서 갈 테니까 가세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작은 나리.”

옷매무새를 점검한 어스는 보무도 당당하게 아카데미로 들어갔다.

파티는 아카데미 본관에서 좌측에 위치한 대강당에서 열렸다.

대강당 앞에는 잘 차려 입은 청춘들이 짝을 지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근심걱정 따윈 전혀 없어 보였다.

“오빠!”

어스를 발견한 루시가 저만치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주변엔 여동생과 또래로 보이는 남녀 몇 명이 보였다.

어스가 다가가자 루시를 제외한 모두가 부동자세를 취하며 경례했다.

그 모습에 루시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얼떨결에 그들을 따라 했다.

어색하게.

놀라긴 어스도 매한가지였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경의를 표했으니까.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어스의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처럼 변했다.

“바, 반가워요. 루시 오빠예요.”

“영광입니다. 백작님.”

“루시와는 완전 다르시네요. 엄청 예쁘…… 아니, 멋지세요.”

“백작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영광입니다.”

고국에 와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

단승이긴 하지만 자신이 고위 귀족인 백작이란 사실을, 여동생의 동기를 통해 이를 자각한 어스는 왠지 고위 귀족답게 행동해야 할 것 같았다.

“어스 테리우스라고 한다.”

아이들의 돌발 행동에 무슨 일인가 싶어 지켜보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 미친 저 사람…… 아니, 저분이 어스 테리우스 백작이라니!”

“어떻게 저런 분이 왕립 아카데미도 아닌 이런 곳에 오신 거지?”

“우와, 꽃미남이란 소문은 들었지만 진짜 꽃미남이시네.”

쏟아지는 주변의 호의와 찬사는 어스의 어깨에 힘을 불어넣었다.

어스 주변으로 인파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통제해야 할 상황까지 이르렀다.

아카데미 교수와 조교들이 소식을 듣고 몰려왔고 덕분에 어스는…… 아쉬움을 느꼈다.

좀 더 느끼고 싶었는데, 좀 더 만끽하고 싶었는데.

이러한 그의 속내도 모른 채 교수들은 상급자를 맞이한 하급자처럼 어스를 조용한 곳으로 안내했다.

총장실이었다.

연락을 받은 총장이 건물 앞까지 나와서 어스를 맞이했다.

‘대체 왜 날 여기 끌고 온 건데?’

그간 어스는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에 불과했음을 오늘 깨달았다.

자신이 또래들과는 완전히 다른 레벨의 위치란 걸, 그리고 그 덕분에 어스는 파티 중반쯤 되어서야 간신히 정식 파티에 참석하여 여동생과 춤을 출 수 있었다.

남매가 추는 춤은 헥터 왕국의 전통 춤이다.

좋은 말로 전통 춤이지 실상은 구닥다리로 밀려나 저와 같은 춤을 추는 젊은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데 그걸 어스가 해내고 있었다.

여동생과 함께.

하지만 누구도 그 춤을 구닥다리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 춤을 젊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이 시대의 기린아가 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전통 춤이 광풍과 같은 기세로 퍼져 나갔다.

“고마워.”

“내 인기가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 나도 몰랐네. 흐흐. 흠. 다음 파티는 언제야?”

“됐어, 다음은 없어.”

“왜?”

“오빠 때문에 파티 진행이 엉망이 됐다고 진행 요원들이 엄청 투덜거렸다고. 흥.”

말은 저리해도 루시의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고 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날 어스에 관한 이야기가 동기들 사이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무심코 그가 자신의 오빠라는 말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동기 중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로 인해 루시는 허언증 환자로 손가락질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때문에 그녀의 아카데미 생활은 무척 힘들어졌다.

그랬던 그녀의 아카데미 생활도 오늘부로 끝이었다.

여동생과 춤을 끝낸 어스는 음료 코너로 가던 중 돌연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문신이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놀란 어스는 사방을 살폈고 그런 그의 눈에 낯익은 여자가 들어왔다.

그 여자는 푸리엘이었다.

푸리엘은 어스를 직시하며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 손엔 위그드라실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어스와 시선이 마주친 푸리엘은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고, 어스는 그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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