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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21화 (121/250)

121화

부상당한 성기사들을 중심으로 성기사들이 급히 뭉쳤다.

마법 공격을 대비한 진영이 구축됐다.

그 중심엔 푸리엘을 몰아붙이던 루비오가 서 있었다.

짧은 순간 루비오와 시선이 마주친 어스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블링크!’

단검이 그 자리를 뚫고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력이 꽤 닳았을 것이다.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포션으로 마나를 단숨에 회복한 어스는 차게 식은 눈으로 복면의 성기사들을 향해 파이어 볼을 연속하여 날렸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홀리 실드!”

“홀리 실드!”

부상당한 동료를 지키기 위해 성기사들은 신성 방패를 만들었다.

쾅쾅-!

홀리 실드와 충돌한 파이어 볼이 폭발하며 화염의 파도를 일으켰다.

“버텨!”

두터운 화염의 파도로 인해 그 너머의 상황은 볼 수 없었지만 다급한 저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사정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버텨서 해결될 일이 있고, 없는 일이 있어.’

그들의 상대가 일반적인 마법사였다면 버티는 것으로 역습의 기회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는 어스였다.

버티려는 행위 자체가 그들이 둔 최악의 자충수였다.

파이어 볼이 쉴 새 없이 날아갔다.

“미, 미친!”

“괴물!”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서야!”

여러 겹으로 중첩된 홀리 실드도 더는 버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론 안 됩니다. 대장.”

“퇴각해야…….”

저들의 입에서 퇴각이 거론되는 순간 콜 라이트닝이 그들 머리 위로 힘차게 떨어졌다.

단일 대상을 공격하는 스킬이나 현재 저들은 단단히 뭉친 상황이라 하나의 몸뚱이나 다름없었다.

겨우 유지되던 홀리 실드는 일제히 터져 나가고 말았다.

그 여파에, 콜 라이트닝에 의해 발생한 충격파에 그들은 추풍낙엽처럼 허공을 날았다.

벽에 부딪치고.

“큭!”

“컥!”

“윽!”

수 미터의 허공을 날다 떨어져선 그보다 더 긴 거리를 데굴데굴 굴렀다.

성기사들이 착용한 마법 방어구는 잇단 강력한 공격에 의해 제 기능을 상실했다.

그 증거로 그들의 방어구가 산산조각이 나서 해체됐다.

마법 저항능력을 상실한 저들은 더 이상 어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

사람 수에 비해 적은 신음, 그 신음도 이내 끊겼다.

오직.

“이-놈!”

단 한 명의 성기사만 남았다.

그는 루비오였다.

루비오는 어스를 겨냥하고 신성한 주먹을 날렸다.

어스의 몸이 제 자리에 멈춘 상태이면 모를까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이었기에 루비오의 복수심을 담은 신성한 주먹은 헛되이 허공만 가르고 사라졌다.

블링크를 통해 지면에 내려선 어스가 천천히 몸을 폈다.

루비오는 쓰러지려는 몸뚱이를 지탱하기 위해 바닥에 검을 박은 채 힘겹게 서 있었다.

육신의 상태와 달리 루비오의 두 눈은 활화산처럼 뜨거웠다.

불에 녹아 떨어져 나간 복면, 어스는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당신이었군.”

“지, 진작 벴어야 했는데.”

“이단 심판관도 모자라 암살단이라니 교단이 갈 때까지 갔구나.”

“닥쳐라! 그 더러운 입으로 교단을 들먹이지 마…… 라. 헉헉.”

“그보다 어째서 날 이단이라 한 거지? 같은 성기산데?”

“허, 헛소리 마라. 내 네놈의 정체를 모를 줄 아느냐!”

“내 정체? 궁금해서 그러는 데 내 정체가 뭐지?”

“악신의 열매로 힘을 얻은 것 아니냐? 그 대가로 악신에게 무엇을 주기로 했느냐! 영혼이냐? 아님, 세상의 파멸이냐?”

어스는 기가 막혔다.

“영혼? 세상의 파멸? 미쳤네, 미쳤어. 이 좋은 세상을 왜 망가뜨려 잘 가꿔도 모자랄 판에. 그런데 악신의 열매는 뭐야? 세상에 그…… 서, 설마? 너! 네가 내 스테이크에 포크를 꽂은 거야? 아니, 교단이야? 그 열매 어디 있지?”

“날 현혹하지 마라. 내 몸과 영혼은 오직 룬께 바친 지 오래다!”

상대는 자신을 이단으로 불렀다.

다시 말해 타협이 불가능한 적대적인 관계다.

그런 자에게 예의 따윈 없다.

하물며 비아냥거림쯤이야.

“하, 바보냐, 그걸 왜 줘?”

“가, 감히! 신성모독을 할 셈이냐!”

“신성모독? 하, 하하. 세상에 룬은 없다. 그리고 신성력? 그거 마나야, 마나. 알아? 내 말이 헛소리로 들리겠지. 그건 저승 가서 직접 알아봐. 귀중한 정보를 알려줬으니 나도 대가를 받아야겠지. 내 열매 어디 있지?”

“역시, 그 열매가 네 힘의 근원이었군. 이단자여, 넌 그 열매를 절대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 내, 내가 부숴버렸으니까.”

어스에겐 끔찍한 비보가 아닐 수 없었다.

루비오는 자신의 말에 흔들린 어스를 향해 온몸의 힘을 쥐어짜냈다.

그 힘을 이용한 루비오는 사경을 헤매던 중상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은 최후의 발악이었다.

“조심!”

푸리엘이 경고하였으나 그보단 루비오의 검이 더 빨랐다.

어스의 심장이 꿰뚫릴 위급한 상황이었다.

하나 루비오의 마나 소드는 철옹성의 무형 방벽에 막혔다.

반탄력에 의해 루비오의 몸뚱이는 뒤로 날아가 벽과 충돌했다.

퍽!

이내 바닥으로 떨어진 루비오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자식.

하아.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칭호 활성화도, 탄탄대로뿐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인생도 물 건너 가버렸다.

가슴에 가득 찬 분노는 단숨에 절망에 짓눌리고, 그 절망조차 이겨버리는 수많은 걱정들로 어스의 머릿속은 몹시 어지러웠다.

바로 그때 뒤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기척이 들렸다.

그제야 성기사들에게 쫓기던 여자가 떠오른 어스는 몸을 돌렸다.

어두워서 몰랐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한 여자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방치하면 얼마 못 가 죽을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린 어스는 루비오를 비롯한 성기사들의 시체를 눈에 담았다.

한 명만 죽여도 난리 날 텐데 하나도 아니고 무려 십수 명이나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이 일이 교단에 알려진다면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찰나에 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단으로 찍힌 이상 자신은 사형수나 다름없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죽느냐만 남았을 뿐이다.

이단 심판관의 손에 떨어져 갖은 고문을 받으며 죄를 시인하고 화형대에 세워질 것인지, 아니면 교단에 맞서 저항하다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평생 숨어 살 것인지만 선택할 수 있다.

‘젠장.’

화가 치밀었다.

어스의 화는 오기가 되어 루비오와 그 일행이 쫓던 여자에게로 향했다.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입장에서 타인을 걱정할 수 있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어스 역시 그러한 부류의 인간이다.

그런 그가 여자를 위해 치료 포션을 사용했다.

교단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기 위해서.

치졸한 감정의 발로였지만 덕분에 푸리엘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푸리엘을 살린 어스는 엉망이 된 장내를 슥 둘러본 뒤 블링크를 시전하여 현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떠나자 곧 푸리엘이 깨어났다.

성전단의 시체를 확인하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푸리엘은 어스가 자신을 구하고 말없이 떠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목숨의 빚을 졌군.’

푸리엘은 자신의 상태를 관조했다.

마나를 억제하던 독이 현저히 줄어든 상태였다.

이를 확인한 푸리엘은 공간 주머니에서 황소도 한 줌 액체로 만들어 버리는 강한 독약을 꺼냈다.

독약은 푸리엘이 소환한 안개의 정령 뮬의 안개에 스며들었고, 안개가 뒤덮은 장내엔 단 한구의 시체도 남지 않았다.

전투의 흔적만 남았다.

뒤처리를 완벽하게 끝낸 푸리엘은 이내 장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가 사라지고 얼마 안 있어 치안대가 장내에 들이닥쳤다.

* * *

교단에 대한 반감이 크게 일었던 어스는 푸리엘을 살려준 뒤 곧장 집으로 이동했다.

막상 집에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숨어서 집안을 살폈다.

잠시지만 지켜본 집안 풍경은 이단을 자식으로 둔 집안답지 않게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뭐지?’

이단에 대한 교단의 조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은밀하게 이루어진 사례가 없었다.

왕족이나 고위 귀족도 마찬가지다.

‘내가 현직 성기사여서 은밀히 처리하려는 건가?’

어스는 자신의 생각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일단 가족들은 지금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단의 가족이란 평생의 꼬리표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고마워 자수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어스는 가족들을 감시하는 자들이 있는지 집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1시간 이상을 조심하며 살펴보았지만 의심되는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것이 앞서 그의 생각에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마음이 한결 놓인 어스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 내가 이단으로 찍힌 게 맞을까?’

그러자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어스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솔론 왕국 왕도에 머물고 있는 레이몬드 사제에게 문자를 보냈다.

짜증 나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마법 통신구의 성능에.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레이몬드 사제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어스는 보다 안심할 수 있었다.

자신이 임명한 성기사가 이단 판정을 받았다면 분명 에스터 추기경이 모를 리 없다.

교단 내에 추기경의 숫자가 72명이나 된다지만 한 나라의 수도인 왕도에 자리 잡은 추기경은 그들 중에서도 꽤 힘이 있는 자들이다.

그런 이들 중 하난인 에스터 추기경이 모른다면 교단 내 일부 인사들만 자신을 이단으로 생각하고 있을 공산이 컸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생각.

그렇다면 당장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에 마음이 놓인 어스는 버려둔 현장이 떠올랐다.

한 명도 아니고 십수 명의 성기사들이 떼죽음을 당했으니 이 일이 교단에 알려진다면 비주류에게 명분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해당 현장에 남은 흔적은 자신을 지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어스는 곧장 현장을 향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그렇게 현장 상공에 도착한 어스는 현장을 조사하는 치안대를 목격했다.

‘이런!’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하나 현장을 조사하는 치안대의 대화가 들리자 막막함은 곧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대체 누가 시체들을 치웠을까?

‘그 여잔가?’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은 생각나지 않았다.

여자에게 도움을 준 건 교단에 대한 반발심의 발로였지만 결과는 어스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을 본 그 여자가 추후 이 일을 빌미로 협박하려 들지 않을까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당장은 여자를 찾아낼 방법이 없다.

그러니 고민은 시간 낭비다.

어스는 어수선한 현장을 일별한 뒤 곧 사라졌다.

다시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자신의 집 대문 앞이었다.

막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랜만이군요. 어스 씨. 아니, 이제 어스 경이라고 해야겠군요. 절 기억 하시나요?”

“도리아 영애?”

“아! 기억하는군요.”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집 대문 앞에서 하우든 백작가의 영애를 만나게 될 줄이야.

“당연히 기억하죠.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염치없지만 어스 경의 도움이 필요해서 경을 기다렸습니다. 오늘도 헛수고면 내려가려고 했는데 제가 운이 좋았군요.”

자신의 운이 좋다고 밝힌 도리아 하우든과 달리 어스의 오늘 일진은 최악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자신의 기분을 도리아를 상대로 쏟아낼 생각은 없었다.

악연이었다면 치졸해질 수 있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파격적인 제안을 했던 장본인이다.

더해 경제적인 도움까지 받았다.

정확하게는 보상이라고 해야겠지만 아무튼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인 건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시간을 내 밥 한 끼 사줄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도움까진 생각해 볼 문제였다.

“도움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당장은 마음의 여유도 없거니와 하우든 백작가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는 것 역시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선을 그었다.

도리아는 이를 알아차렸다.

안도와 반가움을 드러내던 도리아는 그래서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어스 경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도리아는 곧장 돌아서서 가버렸다.

신경 쓰였지만 어스는 곧장 문을 두드렸다.

* * *

부모님을 만나 짧게 대화를 나눈 어스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한동안 들어간 적 없지만 그런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에 세수를 한 어스는 거너의 가게로 향했다.

‘블링크.’

늦은 저녁임에도 가게 앞은 행인들로 붐볐다.

확실히 왕도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영업시간이 끝난 가게 안엔 거너 혼자 앉아 있었다.

“다들 어디가고 형 혼자만 있어요?”

“언제 온 거냐?”

“방금.”

“집엔?”

“인사드리고 왔죠.”

“잘했다. 안 그래도 두 분이 걱정 많이 하셨어.”

“그런데 다들 어디 갔어요? 집에도 없던데.”

“아그네스와 린다는 쇼핑. 니코는 데이트.”

“헐, 니코 형에게 여자 생겼어요?”

“이제 첫 데이트야.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 앉아.”

거너는 바로 앉지 않고 창고로 간 뒤 크고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큰 건 포션 상자고, 작은 건 알지?”

어스는 작은 상자를 열었다.

딸깍.

문신이 찌릿했다.

상자엔 4개의 위그드라실 조각이 들어 있었다.

모두 진품이었다.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지금은 온전히 기뻐할 수 없었다.

죽은 루비오가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조각을 부쉈다는 말이 생각났다.

빌어먹을.

조각의 현상수배는 거둬야 할지를 놓고 잠시 생각하던 어스는 일단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루비오의 말이 거짓일지도 모르니까.

거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거너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우든 가문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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