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농장 주인의 방문이 외부의 힘에 의해 안쪽으로 쓰러졌다.
쾅-!
그에 놀란 어스는 반사적으로 매직 애로우를 시전했다.
방금까지 매직 애로우와 씨름하고 있다 보니 겨를 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41발의 매직 애로우는 왕을 지키는 충성스러운 신하처럼 어스를 감싸며 입구에 있는 자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면 곧장 날아갈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한 번의 발차기로 문을 부순 장본인은 루리아였다.
온 힘을 다해 한 번에 달려온 루리아의 이마는 땀으로 송골송골했다.
루리아는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매직 애로우에 주춤했다.
매직 애로우를 바라보는 루리아는 의문에 휩싸였다.
“괘, 괜찮아?”
루리아의 과격한 등장에 깜짝 놀랐던 어스는 상대를 확인하자 그제야 안도했다.
‘휴우. 암살자인 줄 알았네.’
루리아를 시작으로 시에라도 방으로 뛰어들었다.
단검을 움켜쥐고서.
“난 괜찮은데 무슨 일 생겼어요?”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그보다 언제까지 겨냥할 거야?”
루리아의 말에 어스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충직한(?) 매직 애로우를 돌려보냈다. 사라지는 매직 애로우를 바라보는 어스의 두 눈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목표했던 6강은 실패하고 말았다.
앉은 자리에서 69,500코인을 먼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모은 자금인데.
하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매직 애로우(+5/12).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겨우 4강을 만들고 나서 이후 내리 실패만 거듭하다 마지막 139번째에서 간신히 성공했다.
한동안 강화의 강자만 나와도 몸서리가 쳐질 것 같았다.
“별, 별거 아니에요.”
루리아와 시에라는 어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말과 달리 표정은 큰일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으니까.
걱정이 된 두 사람이 우뚝 서 있어야 할 문을 밟고 들어왔다.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듯 연방 삐걱대는 문의 모습이 흡사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동병상련의 마음이 절로 들었다.
발자국만 잘 씻어내면 다시 제자리에 세워줘야지.
그리 생각하는 순간 거구의 디콘들이 무더기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의 발아래 문은 영영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어스 경,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순간적으로 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치솟았으나 다들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기에 어스는 이를 내리눌려야만 했다.
디콘들을 돌려보낸 어스는 어수선한 자신의 방을 둘러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리아와 시에라를 대동한 어스는 응접실로 향했다.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괴성에 대한 원인을 알고자 하는 두 여자를 향해 어스는 그럴듯한 말로 의문을 풀어주었다.
“명상을 하던 중에 깨달음이 왔는데 힘이 부족해서 놓치고 말았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소리친 것 같아요.”
그 말에 루리아와 시에라는 크게 안타까워했다.
“어스, 넌 아직 어려.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마. 깨달음은 조바심칠수록 멀어진다는 말도 있잖아?”
“넘어져 봐야 일어나는 법을 안다고 합니다. 다음엔 반드시 더 큰 깨달음을 얻으실 겁니다.”
진심을 담은 두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자 어스는 마음이 좋지 않다.
“그 때문이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참, 시에라.”
“예, 백작님.”
“아, 아니다. 내일, 내일 이야기할게. 가서 일 봐.”
어스의 말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시에라는 중요한 말을 까먹었다는 게 그제야 생각난 듯 조심스러운 눈길로 어스의 표정을 살폈다.
상실감에 빠져 있는 백작에게 침입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될지 고민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차후로 미룰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시에라는 침입자에 대해 알리기로 했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백작님이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내가 알아야 할 일? 난 괜찮으니까. 눈치 보지 말고 해봐.”
“실은, 침입자가 있었습니다.”
“침입자라고? 자세히 설명해 봐.”
시에라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어스는 예의 그 침입자를 발견한 자를 데려오도록 지시했다.
잠시 밖으로 나간 시에라는 호인족 혼혈 사내 조나단을 데려왔다.
조나단을 본 어스는 깜짝 놀랐다.
장대한 체구와 거친 인상은 농장의 일꾼이 아닌 전장을 호령하는 장군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웅장한 느낌의 사내였다.
조나단의 외모와 풍기는 분위기에 깜짝 놀란 어스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그를 살폈다.
어디 가서 창술가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방면에서 경지에 이른 다수의 인사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 가르침이 무색하게 몸 쓰는 건 여전히 형편없었지만, 적어도 보는 눈은 나름 경지에 이른 어스였다.
그런 그의 눈에 잡힌 조나단의 몸은 농장의 일꾼이라고 하기엔 전사의 몸에 가까웠다.
‘호인족은 다 저럴까?’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몸이다.
하물며 상대는 순혈도 아닌 혼혈이다.
부럽다, 몹시.
물론 혼혈이 부러운 건 아니다.
혼혈이 어떤 처지인지, 그들의 삶이 어떤지 잘 아니까.
“미천한 자가 존귀한 백작님을 뵙습니다. 조나단이라고 합니다.”
묵직한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격조가 느껴지는 태도에 어스는 또 한 번 놀랐다.
‘조나단은 변성기를 잘 보냈나 보네. 그런데 난 왜 아직 변성기가 안 오는 거지?’
작은 키와 마른 몸뚱이만큼이나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미성 역시 어스의 대표적인 콤플렉스였다.
“흠흠, 거기 앉아.”
“바닥에 앉아도 됩니다. 흙투성이라.”
조나단의 덩치를 보면 바닥에 앉는 것이 오히려 대화하기 편할 듯 보였다.
눈높이가 딱 맞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이유로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그리 대할 수는 없었다.
“괜찮으니까 앉도록 해.”
그제야 조나단은 어스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 앉았다.
어스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침입자를 봤다고? 그자는 어떻게 생겼지?”
“본 게 아니고 느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백작님.”
“시에라의 말을 들어보니 침입자와 싸웠다던데? 그런데도 얼굴을 모른…… 아! 상대가 복면을 했구나? 그렇지?”
“그건 아닙니다.”
“그게 아닌데 얼굴을 모른다고? 그게 말이 돼?”
“저 역시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생각엔 마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모를 감추는.”
‘인지에 영향을 주는 마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감춘 건가?’
그런 마법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있다.
본 적은 없지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침입자는 익스퍼트인 동시에 정령사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데 하물며 마법까지?
“그럼 성별은?”
“여성이었습니다.”
“얼굴을 볼 수 없었다며?”
“목소리와 흐릿하지만 몸의 윤곽은 확실히 여자였습니다.”
“확신해?”
“예, 백작님.”
확신에 찬 조나단의 말에 어스는 좌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침입자가 암살단에서 보낸 자 같았기 때문이었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더니.’
또 한 번 울분이 차오르는 어스였다.
“시에라.”
“예, 백작님.”
“다들 일찍 퇴근시켜. 그리고 술과 음식을 내줘. 넉넉하게.”
“모든 일꾼에게요?”
“응.”
“갑자기 왜?”
“농장주로서 고용인들의 노고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알고 다들 나가 봐.”
시에라와 조나단을 내보낸 어스는 참았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그 못지않게 생각이 많아진 루리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어스.”
“예.”
“암살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놈들 이외엔 제게 원한을 가진 놈들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놈들이 도망치면서 내게 던진 싸늘한 눈빛은 아직도 생생해요.”
“교단에 연락해서 지원을 요청하는 건 어때? 아님, 방금 나간 조나단이나…… 시에라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조나단은 알겠는데, 시에라는 왜요?”
“내가 볼 땐 그녀의 실력도 만만치 않을 거야. 물론,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그러고 보니 몬스터로 득실거리는 산을 가까이 두고도 이 농장은 몬스터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 말인 즉 농장 자경대의 수준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됐어요. 굳이 그들을 개입시킬 생각은 없어요. 교단 역시.”
“어째서?”
농장 자경대는 모르겠지만 교단은 절대 안 된다.
로엘도 마음에 걸리고, 몰래 던전을 처리할 생각인데 교단의 보호를 받는다면 단독 행동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실력도 거절에 한 이유였다.
암살단의 저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은 분명하지만 그들로부터 제 한 몸 지킬 자신은 있었다.
그랬기에 어스는 농장 일꾼들을 일찍 퇴근시키고 그들이 이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술과 음식을 내렸다.
“내 힘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누나.”
“응?”
“내일, 아니 지금 즉시 헥터로 출발하세요.”
“무, 무슨 소리야?”
“암살단을 달고 집에 갈 수 없잖아요.”
“혼자서 놈들과 싸울 생각이야?”
“누나도 알다시피 내가 어디 보통 마법사예요? 싸움이든 도주든 작정하고 나서면 누구도 날 막을 수 없어요. 잘 알면서.”
“농담할 기분 아니야.”
“농담 아니에요. 이건 누날 위해서라기보단 날 위한 선택이에요.”
루리아는 어스의 두 눈을 직시하며 한참 고민에 빠졌다.
그 결과 루리아는 어스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의 말이 모두 맞으니까.
“조심해.”
“수시로 연락할게요. 그리고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요.”
루리아는 그 길로 농장을 나섰다.
어스를 남겨두고.
떠나는 그녀의 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그게 어스를 위한 길임을 알기에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루리아를 떠나보낸 어스는 시에라에게 일러 저택을 비웠다.
시에라는 우려했지만 어스는 그 말을 묵살했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어스는 혼자 저택에 남았다.
당당하게.
막상 혼자 남다보니 어제만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이 갑작스레 위험해 보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야조의 울음소리, 서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개인용 벽시계의 초침 움직이는 소리는 물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그림자마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즉 그는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저녁을 든든히 먹지 않아서 그런가?’
한 손은 여전히 철옹성을 굳게 움켜쥔 어스는 남은 손으로 인벤토리에서 음식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초식동물이 사방을 경계하며 물을 마시듯 그렇게.
냠냠.
* * *
농장의 일꾼들은 여느 날보다 일찍 퇴근했다.
거기다 농장주가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렸으니 그들 입장에선 잔칫날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숙소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다들 고기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일꾼들은 저택 주변에 매복했다.
어질고 선량한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어스는 암살자를 기다렸다.
철옹성을 굳게 움켜쥐고서.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암살자는 오지 않았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그리고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푸리엘은 이 모든 전개가 황당한지 내내 고개만 갸웃거렸다.
‘무슨 일 터졌나?’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자신임을 모른 채.
* * *
상부의 지침이 바뀌었지만 루비오는 어스의 능력에 의구심을 갖고서 독자적으로 그에 대한 조사를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얻어 걸린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게 대체 뭐기에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고 확보하려는 거지?’
루비오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 잡힌 호두알 크기의 물체였다.
이를 입수한 루비오는 어스에 대한 비밀을 풀 수 있을까 싶어 연금술사, 마법사, 식목에 조예가 깊은 학자 등에게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그중 그 누구도 이 열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특이점 역시 없었다.
‘혹시 껍질 안에 뭐가 있는 건가?’
잠시 고민하던 루비오는 위그드라실 조각을 탁자 위에 올린 뒤 망치를 집어 들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루비오는 망치를 내리쳤다.
망치가 조각에 닿자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조각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이지?”
이 시대의 기술과 지식으로 알 수 없다는 건 고대의 유물로 봐야 한다.
그것도 수준 높은 유물일 것이다.
고위 마법사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혹시 이게 그자가 지닌 힘의 비밀인가?’
이것은 이단이다, 명백한!
자리에서 단숨에 일어선 루비오는 성전단의 단장, 헤롯 추기경의 집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