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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16화 (116/250)

116화

로엘과의 대화 이후 어스는 저택에 칩거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진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짜낸 수많은 생각은 결국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열쇠는 하나고 그 열쇠를 쥔 쪽은 로엘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손에 쥐고 있으면 모를까 놈에 대해 아는 건 고작해야 엘프, 서커스단 단장이 전부였다.

그러나 서커스단을 떠났으니 이젠 그나마 가진 소소한 정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놈의 거주지, 목적, 접근 의도 등등.

알고 싶은 건 산더미인데 아는 게 없다 보니 불안은 커지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생각은 더 많아져 머리를 개운하게 하긴커녕 오히려 무거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정보 길드에 의뢰라도 해볼까?’

상인 길드나 용병 길드도 생각해 봤지만 정보 길드에 비해 그들의 입은 가벼웠다.

물론 정보 길드 역시 믿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태생이 정보를 수집해서 팔아먹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의뢰 자체가 놈들에겐 팔아먹을 수 있는 고급 정보가 될 지도 모른다.

‘차라리 카멜 왕자나, 레이몬드 사제에게 부탁할까?’

이 생각 역시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기각한 선택지다.

그럼에도 다시 그 선택지를 만지작거리는 건 로엘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라 점점 불안해진 탓이다.

위그드라실의 조각을 흡수하는 걸 알아낸 것처럼, 조각을 흡수하고 난 뒤 생긴 문신 역시 알고 있다면 차후 일이 잘못될 경우 문신은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로 작용할지 모른다.

어스의 생각이 매번 제자리로 돌아가게 만든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다.

감출 수 없는 문신.

‘대범하게 질렀다가, 대차게 당할 수도 있으니까.’

어스는 도돌이표가 될 수밖에 생각을 내려놓기로 했다.

생각은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은 깊이 숙고하지 않아도 이미 정해져 있다.

‘레벨을 올려야겠어. 미뤄 뒀던…… 강화도.’

스킬 강화는 실패가 없는 강화까지 모두 마친 상태로 앞으로 할 강화는 실패가 존재하는 강화였다.

한마디로 도박이다.

그것도 첫발이나 마찬가지인 4강부터 극악의 확률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날 강화 실패로 날린 코인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욱신거릴 지경이다.

그래서 그간 강화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선 마(?)의 길을 걸어야 할 듯싶었다.

위그드라실의 계승자를 활성화될 때를 기약하며 모으던 코인인데.

바로 강화에 들어가려던 어스는 손을 내렸다.

생각에 매몰되었다가 이제야 깨어났다.

근거는 없지만 그래도 말짱한 정신에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바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로엘 그 빌어먹을 엘프는 아니겠지.

어스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서 입을 열었다.

“누구?”

“시에라입니다, 백작님.”

놈이어도 좋을 같단 생각을 순간 했던 어스는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들어와.”

“찾으셨습니까?”

시에라의 말에 어스는 그제야 자신이 그녀를 불렀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래, 그랬지. 음, 거기 앉아.”

어스의 반응이 이상했지만 시에라는 이를 내색하지 않고 맞은편에 앉았다.

단정하고 반듯한 자세로.

어스는 시에라를 빤히 응시했다.

신비한 느낌의 백금 발, 인간은 가질 수 없는 뾰족하고 긴 귀.

귀…… 귀! 저 귀를 보자 로엘이 생각났다.

순간 욱했지만 귀에서 시선을 돌리자 뜨거웠던 감정이 차게 식었다.

“헤럴드 주교는 조만간 해결될 거야.”

“정말인가요?”

“응. 그러니 농장의 안위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가, 감사합니다. 백작님.”

“감사는 무슨. 여긴 시에라의 직장이기 이전에 내 농장이잖아. 농장의 주인으로서 농장을 지키는 건 당연한 거야.”

“제 말이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정색하고 사과할 필요는 없어. 참, 루리아 영애는?”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른 아침 루리아는 필요한 물건이 있다며 농장에 온 이후 처음으로 외출했다.

평소였다면 함께 움직였을 테지만 요즘 머릿속이 복잡한 관계로 혼자 보냈다.

애정이 식었다는 소린 안 했으면, 아니 해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늦어도 점심시간 전에 온다고 했으니까.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혹시, 엘프를 만난 적 있어? 혼혈 말고.”

“아뇨.”

“솔론엔 엘프 노예가 없어?”

“이종족 노예는 대부분 갇혀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엘프면 특히 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이종족 노예는 합법이지만, 아름다운 이종족 노예를 자랑하는 경우는 없다.

아름다운 노예의 사용처는…… 특이한 취향과 신념을 가진 레이몬드 사제면 모를까, 대부분은 자신의 어두운 욕구를 분출하는 데 사용할 테니까.

열에 아홉은 자신처럼 이러한 생각을 할 테니 그들 입장에선 아름다운 이종족 노예는 당연히 내보일 수 없는 존재이리라.

“그렇군. 참, 숲이 생각보다 크던데 그 숲에 맹수나 몬스터는 없어?”

“있긴 하지만 자경대 힘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자경대? 농장에 그런 조직도 있었어?”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탓하려는 건 아냐. 농장주 입장에선 오히려 환영할 노릇이니까. 그런데 자경대는 어떻게 운영해? 임금을 따로 지불하는 방식인가?”

“고용인들끼리 순번을 정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농장일도 하고 자경대도 한다고?”

“예.”

“무리하는 거 아냐? 농장일이 쉬운 것도 아닌데.”

“불만을 가진 고용인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 말이 믿기진 않지만 시에라가 헛소리할 사람도 아니니까.”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그렇게 절절 맬 필요 없어. 그보다 자경대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내 농장을 지켜는 일인데 주인인 내가 나 몰라라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니까.”

“농장 수익의 8할을 허락해 주신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 아는 대장간이 있으면 거기에 의뢰해서 병장기를 구입하도록 해. 참, 치료 포션은 내게 있으니까 이걸 쓰면 되겠다.”

어스는 20병의 치료 포션을 내놓았다.

던전 발생 이후 치료 포션의 가격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그가 내놓은 포션 모두 하급이긴 하지만 그래도 20병이면 무시할 수 없는 액수였다.

시에라는 혼혈에 불과한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아낌없이 베푸는 어스의 태도에 크게 감동했다.

“감사합니다.”

“절절맬 필요 없다니깐.”

“…….”

“나무라는 건 아냐. 루리아 영애 도착하면 내게 알려줘.”

시에라를 내보낸 어스는 테라스로 걸음 했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난간을 향해 발을 쭉 뻗었다.

발끝에 힘을 주었으나 난간에 닫지 않았다.

닿을 것 같았는데.

벌떡 일어선 어스는 의자를 앞으로 좀 더 밀어 거리를 조종했다.

그제야 난간에 다리를 걸칠 수 있었다.

발끝과 발끝 사이에 전날 로엘이 서 있던 나무가 그 중심에 딱 들어왔다.

‘거슬려.’

짜증이 솟구친 어스는 매직 애로우를 생성하여 나무를 강타했다.

나뭇가지가 그에 맞아 부러졌다.

그 소리에 고용인과 디콘이 뛰어왔다.

“마법 연습이야. 걱정 말고 볼일들 봐.”

농장의 주인이, 상관이 그리 말하는데 따질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사이에 둔 것처럼 혼혈과 디콘은 서로가 서로의 곁을 내주지 않고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어스는 예의 그 자세로 앉아서는 4월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느릿느릿하게 떠가는 구름만 하염없이 바라보았고, 그런 그를 지켜보는 한 쌍의 묵묵한 시선이 있었다.

* * *

마을에서 볼일을 마친 루리아는 제 시간에 농장에 도착했다.

지인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 사이엔 이전과 같은 어색한 벽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느 연인들처럼 한 쌍의 바퀴벌레까진 무리였다.

“주교 건은 해결됐어?”

“예.”

“그럼 출발하는 거야?”

헤럴드 주교 건은 이미 해결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오늘 시에라에게 이를 통보한 건 농장에 머물러야 할 명분으로 삼기 위함이다.

이제 명분도 없으니 고국으로 출발해야 한다.

로엘과 담판을 짓고 깔끔한 마음으로 출발했으면 싶었는데.

쳇.

“삼 일 후에 출발해요. 괜찮죠?”

“삼 일? 음. 난 상관없어.”

“생각보다 일정이 길어졌네요. 참, 영지엔 연락해 봤어요?”

“새로 세 곳을 발견했다고 해.”

“등급은 어떻게 돼요?”

“저 등급이야. 아버님 말씀으론 영지의 힘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데.”

“다행이네요.”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선 관청과 신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관청은 몰라도 어째서 신전의 허락까지 받아야 하는진 몰라도 여하튼 그래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어스는 관청과 신전의 허락을 받고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단독으로 원정이 가능한 그에겐 세상은 넓고 미등록 던전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식사를 마친 어스는 제 방으로 올라갔고, 루리아는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한 뒤 뒤뜰로 걸음 했다.

개인 연무장처럼 사용하는 그곳으로.

방으로 올라온 어스는 블링크를 사용하여 장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블링크를 이용하여 사라지자 묵묵한 한 쌍의 눈이 크게 당황했다.

* * *

저택 뒤로 펼쳐진 숲을 가로질러 단숨에 숲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산 정상부에 도착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는 꼬박 이틀은 걸릴 거리다.

그러나 사기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블링크를 가진 그에겐 물 한 모금 마실 시간이면 충분했다.

어스가 발을 디딘 산에서 동쪽으로 산들이 쭉 이어져 있었다.

그중 이 산이 제일 컸다.

저지대와 달리 고지대인 이곳은 겨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공기 역시 차가웠다.

이곳까지 봄기운이 닿으려면 다음 달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가 여기까지 온 건 풍경을 보려는 목적이 아니다.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첫째는 자신의 농장에 위협이 될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하고 처리하는 것.

둘째는 던전 유무였다.

잠시 숨을 돌린 어스는 블링크를 이용하여 수색에 나섰다.

농장에서 이틀거리에 위치한 산이니 딱히 위험한 몬스터는 없을 것이란 게 어스의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몸소 행차한 건 자신의 농장이 몬스터로부터 조금의 피해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간 칩거하느라 답답한 속을 달랠 의도였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온 어스의 두 눈은 이내 동그랗게 커지고 말았다.

‘저것들이 왜 여기 있어?’

놀랍게도 이 산엔 트롤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것도 두 마리나.

두 마리의 트롤은 너른 바위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중이었다.

트롤의 발견에 놀랐지만 두려움은 그에게선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익스퍼트 기사 둘이 합공해야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트롤이라곤 하나, 그건 근접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의 경우다.

어스처럼 완벽하게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진 마법사에겐 트롤은 과녁판에 불과했다.

더구나 놈들은 일광욕에 취해 잠에 떨어진 상태다.

‘콜 라이트닝! 콜 라이트닝!’

5서클 스킬이 직하했다.

굵직한 그 번개에 담긴 힘은 제아무리 트롤이라도 버티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던전 보스는 특이한 개체가 아닐 수 없었다.

대형 몬스터인 트롤도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5서클 스킬을 적게는 십수 회에서 많게는 수십 발을 맞고도 견뎠다.

결국 승자는 자신이었지만 그 때문에 매번 외줄타기 곡예사처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고도를 높이기 위해 어스는 포션을 냉큼 마셨다.

눈보다 빠른 손으로.

블링크로 안전 고도를 확보하자 알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트롤을 처치했습니다. 300코인을 습득합니다.

-트롤을 처치했습니다. 300코인을 습득합니다.

바싹 타버린 놈들의 몸에서 증기처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같은 살덩인데 냄새 한번 고약하네.’

트롤을 향한 어스의 반응은 그게 전부였다.

이 자리에 용병이나 사냥꾼이 있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부산물을 채취하려 들었을 테지만, 거부로 거듭난 어스에겐 트롤의 부산물마저 이젠 푼돈에 불과했다.

어스는 대신 이상함을 느끼며 보다 면밀한 정찰에 나섰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행보마다 몬스터 사체가 발자국처럼 남았다.

고블린, 놀, 코볼드와 같은 소형 몬스터에서 중형 몬스터까지 적지 않은 숫자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뜻밖의 결과에 어스는 상당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도보로 이틀 거리라곤 하지만 이처럼 몬스터가 대량으로 서식하는 산을 끼고 있는 농장이 지금까지 무사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농장에 정예 군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새가 있어 산속의 몬스터를 막아 주는 것도 아닌 이상 웨이브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수준의 공격은 받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혹시 농장에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내친걸음에 다른 산도 모조리 살핀 어스는 그중 한 곳에서 던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던전이 들어선 산은 무슨 영문인지 몬스터를 찾을 수 없었다.

특이하게.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기에 어스는 곧장 던전으로 들어갔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수준의 던전이었기에 당연히 망설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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