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치안대에게 자해공갈단을 넘겼다.
자해공갈단은 운이 나빴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뒤늦게 어스의 정체를 듣곤 자신의 상처도 잊고 애걸복걸했다.
“나리, 살려 주십시오! 자비를!”
“살려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흑흑.”
어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이 짓을 하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벌해주세요. 나중에 확인할 겁니다.”
“무, 물론입니다. 감히, 왕국의 영웅을 건드린 죄인들인데 어찌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저놈들의 목을 베어 거리에 효수하겠습니다.”
거기까지 바란 건 아닌데.
여하튼 이것이 바로 권력이 가진 힘이다.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해 주려고 다들 필사적이다.
자해공갈단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부들부들.
너무 놀란 나머지 오줌까지 지렸다.
곧 정신을 차린 듯 놈들은 앞서보다 더 간절히 매달렸다.
그러한 놈들에게 떨어지는 건 치안대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퍽퍽퍽-!
“크악!”
“악!”
그럼에도 주변에 모인 행인들은 누구 하나 이에 눈살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치안대의 편에 서서 놈들을 향해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부었다.
군중이란 변덕이 심하다더니.
놈들은 치안대의 손에 짐승 끌려가듯 끌려갔다.
끝까지 자비를 부르짖으며.
“그리고 저 아이는 데려가서 치료해주세요.”
“놈들과 한팬데 용서하시는 겁니까?”
“어린애잖아요? 치료 후에 가족이 있으면 찾아주시고, 없으면 고아원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리하겠습니다.”
자신의 부하도 아닌데 마치 오래된 수족처럼 구는 남자의 모습에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이 모든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프랭크는 벌린 입을 내내 다물지 못했다.
‘소, 소문의 당사자가 저 녀석이었다니!’
최근 솔론 왕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영웅에 대해 들었지만 설마 자신이 알던 그 애송이 마법사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프랭크의 충격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프랭크 씨.”
“예, 예. 배…… 백작님.”
“신세를 졌으니 갚아야겠죠. 일 마치면 술 한잔 살 테니까. 기다리세요. 묵고 있는 숙소는 제 마부에게 말하시고.”
얼이 빠진 프랭크를 지나 마차에 오르자 마차는 이내 출발했다.
프린트 시 치안대의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신전으로 향했다.
* * *
“에스터 추기경님을 구한 어스 경의 명성은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소. 장하오이다. 장해요. 필시 룬께서도 몹시 기뻐하실 겁니다. 하하.”
헤럴드 주교는 어스가 무슨 목적으로 방문했는지 꿈에도 모른 채 명성이 자자한 어린 영웅의 방문에 기분이 좋은지 두툼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성기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주교님.”
“오! 출중한 능력에 겸손까지. 추기경님의 복이자, 교단의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 날 찾아온 용무는 무엇이오? 내 어스 경을 위해서라면 온 힘을 다해 돕겠소.”
헤럴드 주교의 표정은 내내 온화했으나 그 눈은 주판을 두드리는 상인의 그것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저와 같은 사람들을 여럿 알기에 그 속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프랭크도 이건 알아보지 못하겠지?’
굳이 여기서 프랭크를 예로 든 건 자해공갈단 앞에서 너무 모자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어스는 그 일이 자존심의 상처로 남았다.
“주교님의 결단이 필요한 일인데 이처럼 먼저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본인의 결단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최근 주교님께서 관심을 갖고 있는 농장이 있지요?”
“혹시 경이 그 농장을 구입할 생각이오? 내 알기로 경은 헥터 왕국 사람인 것으로 아는데.”
“성기사에게 국적 따윈 의미 없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그런데 그 농장은 어떻게 아시오?”
모든 걸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듯 굴던 주교의 표정은 어스가 농장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안색이 싹 변하였다.
만약 어스가 일반적인 성기사였다면 표정 변화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실은 그 농장이 제 겁니다.”
어스의 말을 주교는 믿지 않았다.
농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조사를 끝마친 상태였으니까.
그러니 어스의 말은 억지를 부리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듯 보이자 어스는 농장 문서까지 내보였다.
“지, 진짜였소? 내 알기로 부유한 상인이 소유한 농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프라이스 형이 부유한 상인이었어?’
이건 몰랐다.
아니, 상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지도.
“주교님이 알고 있는 그 사람으로부터 제가 구입했습니다. 몇 달 전이지요.”
“음…… 어스 경은 헥터 왕국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아는데 굳이 솔론에 농장을 가질 이유가 있으시오? 내 그 농장을 얼마에 구입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스 경이 추기경님을 구해준 공로를 생각해서 그 가격에 10배를 지불하겠소.”
10배면 8천만 테스다.
당시 프라이스가 농장 가격이 크게 뛸 거라는 말은 해줬지만 설마 10배로 껑충 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10억 테스에 가까운 재산을 보유한 어스였지만 8천만 테스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였다.
농장에서 쭉 눌러살 것도 아니기에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 농장에 딸린 식구들을 생각하면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거주이전에 제한을 받는 혼혈들에게 있어 그 농장은 생명의 젖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주교님.”
“팔겠소?”
“아니, 그보다 궁금해서요. 8천만 테스면 제 농장보다 더 크고 좋은 농장도 구입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제 농장입니까?”
어스가 보기엔 주교가 농장을 욕심낼 이유가 없었다.
미스릴 광산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땅을 파 봐야…….’
아니지, 만약 농장에 미스릴 광산이나 혹은 그보다 못해도 금광이나 은광이 있었다면 프라이스가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명색이 땅의 중급 정령산데.
“한눈에 반했기 때문이오. 경도 알다시피 그곳의 풍경이 좀 좋소? 나이가 들다 보니 풍경 좋은 곳에 농장 하나 갖고 싶었는데 마침 그 농장이 눈에 띄더군요. 하하.”
‘진짜 그 이유?’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찔러봐야 상대의 경계심만 살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저도 그 농장을 팔 수 없습니다. 훗날 부모님을 모시고 그곳에 정착할 생각이라.”
어스가 넘어올 듯하다 돌연 언제 그랬냐는 듯 발뺌하자 주교는 그가 자신을 농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레짐작에 자존심이 크게 상해버린 주교였다.
하지만 상대의 뒤엔 에스터 추기경이 버티고 있었기에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저 어린놈이 감히 날 갖고 무시해?’
순간 열이 받은 주교는 에스터 추기경과 알력이 있는 다른 추기경의 편에 서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느낀 유혹은 금방 식어버렸다.
에스터 추기경이 겉보기와 달리 자신을 적대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무섭고 가혹한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배신자에겐 단 한 점의 인정도 베풀지 않는 이였다.
그런 이의 미움을 산다?
그건 언제 터질지 모를 화산에 집을 짓고 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흠흠. 그런 의미의 농장이라니 그렇다면 포기해야겠군.”
겉으론 이리 말했지만 그 속까지 그와 발맞춘 건 아니다.
헤럴드 주교는 업무를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스는 그런 그가 못 미더웠다.
왠지 뒤통수를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길로 곧장 일어선 어스는 신전을 나섰다.
탁.
마차에 탑승하자마자 어스는 레이몬드 사제에게 문자를 보냈다.
-헤럴드 주교 알아요?
-오! 어스 경.
-대답 먼저요.
-알지. 왜?
-내 재산 욕심내서요.
-그 새…… 주교님이?
-황당하죠?
-조치가 필요한 일이네.
-부탁하죠.
-나만 믿게.
이놈의 재사용시간만 없으면, 답답하긴 해도 10자 제한도 나쁘지 않을 텐데.
마법 통신구가 개발된 지도 100년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아직 발전이 없는 건지.
통신구에 대한 불평을 잠시 쏟아낸 어스를 태운 마차는 어느새 프랭크와 그의 부하들이 묵고 있는 여관에 도착했다.
사소하지만 도움을 받았으니 그에 보답하는 것이 진정한 사내의 도리.
* * *
프랭크와 딱히 친분이 깊은 것이 아니기에 잠깐 어울려 준 뒤 술값만 계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저들이 던전 원정에 참여하기 위해 고용되었다는 말에 그 생각을 달리 먹고 좀더 어울렸다.
의뢰를 말한 자는 프랭크의 부하 중 하나였다.
술만 들어가면 입이 가벼워지는 인물이었다.
프랭크의 눈빛이 그 순간 몹시 사나워졌지만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어스는 이를 못 본 척했다.
프랭크에게 깨지는 건 자신이 아니니까.
그리고 의뢰를 함부로 발설한 건 분명 저 자의 잘 못이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어쨌건 이 사실은 그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저들에게 의뢰한 이가 다른 이도 아닌 헤럴드 주교였으니까.
‘알려진 던전은 아닐 테고 대체 어떤 던전이지?’
차마 그것까진 묻지 못했다.
자신이 가진 권위를 동원한다면 어찌어찌 입을 열게 할 수는 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어스는 전혀 관심이 없는 척 화제를 돌렸다.
프랭크 용병대와 함께 오크 부락을 습격하던 시절을 주제로 삼았다.
그들과 좀 더 어울린 어스는 그들이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주인에게 술값을 넉넉히 지불하고 나서 마차에 몸을 실었다.
프랭크의 배웅을 받으며.
“이럇.”
풀어진 눈으로 멀어지는 마차 꽁무니를 바라보던 프랭크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런 그의 두 눈은 언제 풀렸냐는 듯 멀쩡한 상태였다.
‘주교와 사이가 안 좋은가?’
왠지 이번 의뢰가 시작도 하기 전에 꼬일 것 같은 예감을 받은 프랭크였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에게 할 일이 있었다.
외인 앞에서 의뢰 내용을 발설한 부하의 정신개조였다.
‘주둥이를 꿰매버리고 말겠다!’
으드득.
* * *
어린 나이에 가지기엔 너무나 큰 업적을 이룬 어스였지만 자신만의 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직이 없었다.
딱히 조직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자신을 대신해서 움직여줄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헤럴드 주교가 욕심내고 있는 던전을 알아내기 위해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든 것이다.
‘내가 도둑놈도 아니고 밤이슬 맞아가며 이러고 살아야 하나?’
백작이자, 성기사이며, 마법사이자, 재산간데.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틀 동안 밤이슬 맞으며 노력한 결과.
‘관청에 확 찔러 버릴까?’
던전의 발견과 원정은 필히 던전이 위치한 해당 지역 관청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엔 느슨하던 조치였으나 지금은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간헐적으로 발생하면서 그 고삐를 단단히 조였다.
던전 브레이크의 원인은 아직까진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원정대가 들어간 곳의 던전만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교단에서도 이 법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사제도 아닌 무려 주교씩이나 되는 사람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불법을 자행하려고 하였으니, 만약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헤럴드 주교는 큰 망신을 당할 게 자명했다.
어쩜 교단 내에서도 자체 징계가 내려질 수도 있다.
‘그래, 내가 먹는 것보단 이편의 그림이 더 잘 나오겠어.’
어스는 밀고를 선택했다.
물론 관청에 밀고할 생각은 없었다.
주교가 가진 권력과 영향력이면 이런 일이야 어렵지 않게 무마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주교의 힘으로도 무마가 어려운 상대를 전면에 내세우면 된다.
마침 그런 인물을 알고 있으니 꽤나 흥미로운 전개가 펼쳐지게 되리라.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어스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농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블링크.’
그의 신형은 주교의 저택에서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여러 번의 공간 이동을 통해 농장 저택에 도착한 어스는 느긋한 자세로 테라스에 비치한 의자에 앉았다.
인벤토리에서 마법 통신구를 꺼낸 어스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문자를 작성했다.
문자를 발송하기 전 그의 손끝이 멈칫했다.
그가 앉아 있는 테라스 맞은편 팔을 길게 늘어뜨린 나뭇가지에 웬 인영 하나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심장이 멎을 뻔했다.
서커스단을 습격했던 암살조직에서 그때의 빚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