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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11화 (111/250)

111화

솔론으로 향할 때와 달리 되돌아가는 길의 인원수는 단출했다.

레이몬드는 어스와 루리아를 태웠던 마차를 어스에게 선물로 내줬다.

집에서 쓰기 위해 구입한 마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가였다.

이 마차를 보면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었다.

가족들이 놀랄 모습을 떠올리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루리아와 함께 가족들을 보러 가는 것 역시.

“급할 건 없으니 쉬엄쉬엄 놀면서 가요. 어때요?”

“난 상관없어.”

“오, 저기 저 강변 어때요?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인데 우리 저기서 밥 먹을래요?”

꽃들이 만발한 강변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강변 맞은편엔 한 무리의 양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었고, 용맹하게 생긴 양치기 개들이 그런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좋아.”

솔론 왕도에선 내키지 않아도 참석해야 하는 공식 일정이 많았다.

그 일정을 소화하는 건 고역이었다.

처음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 한마디 섞기 위해 다가오는 것이 신선한 경험이어서 좋았지만, 매번 같은 말의 반복인데다 몸에 익지 않은 격식을 차려야 했기에 곧 답답해지고 말았다.

한껏 치장한 젊고 아름다운 귀족 여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접근할 땐 설레고 좋았지만, 그때마다 루리아의 눈치가 보여서 그 역시 잠시였다.

그렇다고 루리아가 어스에게 눈치를 준 건 없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표정, 행동, 말투 모든 것이.

하지만 단 하나 평소엔 볼 수 없었던, 아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은 하나 있었다.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 어스는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여성스럽게 치장한 루리아의 모습은 왕도에서 본 그 어떤 귀족여자보다 우아하고 예뻤다.

처음으로 본 공주보다 루리아가 백배, 아니 천만 배 더 예뻤다.

그렇게 생각한 건 어스뿐만이 아니었기에 귀족 남자들이 루리아에게 접근했다.

역시 사람 눈은 다 거기서 거기인 듯.

마냥 흐뭇해할 수 없었다.

루리아는 믿지만 다른 놈들은 믿을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매의 눈으로 항상 루리아에게 수작을 거는 놈이 있나 살폈고, 주제도 모르고 접근하는 자들이 있으면 대화상대가 누가 되었건 냉큼 달려가서 루리아가 자신의 연인이라는 걸 눈빛으로 어필했다.

그 한 방에 다들 두 손을 들고 나가떨어졌다.

예전 일개 마법사였던 시절과 달리 어스의 사회적인 지위는 대귀족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로 올라서 있었다.

하물며 대귀족 본인도 아니고 그 아들이나, 손자 놈들이 솔론에서 가장 핫한 영웅이자, 성기사이며 동시에 7서클 대마법사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천재 마법사의 미움을 감당할 깜냥이 안 되다 보니 알아서들 물러섰다.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자 솔론 왕국 사교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이후 루리아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은 없었다.

참고로 카멜의 아버지이자 솔론의 현 국왕은 어스에게 백작의 지위와 더불어 성까지 하사했다.

국적은 헥터 왕국 사람인데, 작위는 솔론의 것이었으니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다행히 그런 건 문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냉큼 받았다.

어스 테리우스 백작!

솔론 왕국 귀족 명부에 그 이름으로 이름을 올렸다.

‘영지도 주면 좋을 텐데.’

그 점은 조금 아쉽다.

세습이 아닌 단승인 것도 아쉽다.

솔론 역사를 통틀어 외국인 그것도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백작의 작위를 받은 이는 몇 없었다.

그 몇 없는 인물이 바로 어스였다.

재물, 명성, 명예, 사회적인 신분까지 이젠 어느 하나 꿀릴 것 없는 완벽한 조건을 두루두루 겸비했다.

남들은 평생의 숙원이자, 죽기 전까지 이루지 못할 업적을 불과 열여섯에 모두 거머쥐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마냥 행복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못했다.

망할 놈의 악몽 때문이다.

왕도를 떠난 이후 다행히 그와 같은 악몽은 꾸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어스는 이를 털어내지 않고 오히려 꽉 움켜쥐고 있었다.

자신의 심상으로.

‘지금의 내 능력으론 진짜 슈리에 후작을 이길 수 없는 건가?’

슈리에 후작을 이기기 위해 별의별 수를 다 써봤지만 결과는 패배의 연속이었다.

이기고 싶은데, 꼭 이기고 싶은데 매번 지다보니 이젠 슈리에 후작이 일생의 원수처럼 느껴질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에 반해 플린트 대마법사는 애매했다.

그가 전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봤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다 보니 슈리에 후작처럼 플린트의 이미지는 구축할 수 없어 그의 심상에선 플린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플린트에게 발린 악몽을 꿨음에도.

* * *

꽃향기 물씬한 강변에 차양막이 세워졌다.

그 안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간이 식탁과 의자가 놓였다.

식탁은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음식으로 세팅 됐다.

여느 고급 음식점 못지않다.

물론 제대로 된 주방이나 재료가 없는 야외이다 보니 갓 장만한 음식은 아니다.

레이몬드 사제가 선물한 마차에 딸린 공간 창고에 보관 중이던 음식을 꺼내 세팅만 한 것이다.

루리아와 함께 강변을 산책하던 어스는 식사 준비를 마쳤다는 하인의 보고에 자신들만의 식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행자에겐 사치품이나 다름없는 깨지기 쉬운 잔에 와인이 채워졌다.

콜콜콜콜.

잔을 채우는 소리도 좋고, 향기도 좋았다.

‘술 한 병에 1,200테스라니 미쳤지.’

완전 미친 가격이다.

4인 가족이 4개월 치 생활비가 이 한 병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으니까.

“좋네요.”

“응.”

귀족은 음식을 먹는데도 예를 중요시했다.

귀찮고 성가신 일이었지만 초대받은 손님이 주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없어 루리아를 통해 식사 예절을 급하게 배웠다.

급하게 배웠지만 출신성분이 평민인 것을 알기 때문인지 실수가 있어도 이에 눈치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이프와 포크 사용법이 익숙해졌네.”

“스승이 좋잖아요.”

“무술도 열심히 가르쳤는데.”

“수년 안에 루리아 누나를 놀라게 해 줄 테니까 두고 봐요.”

그가 믿고 있는 건 역시 칭호였다.

위그드라실의 계승자.

“기대할게.”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두고 보세요. 참, 프라이스 형이 선물한 내 농장 알죠?”

“응.”

“거기 한번 들렀다 가는 건 어때요?”

“바로 안 가도 돼?”

“솔론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섭섭하잖아요. 프라이스 형이 말한 것처럼 풍경이 좋으면 며칠 그곳에서 지내다가 가는 것도 난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물론, 누나가 싫다면 바로 가고요.”

루리아는 말없이 어스를 보았다.

왕도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표정이 한결 나아 보였다.

대체 왕도에선 왜 그랬을까?

귀족들의 파티 초대와 사람들의 칭송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님, 진짜 향수병이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

진작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신의 질문이 어스를 곤란하게 할까 봐 루리아는 내내 속만 끓였었다.

기분이 좋아진 지금 살짝 물어볼까?

루리아는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런 루리아의 마음은 알 리 없는 어스는 술에 취한 건지, 분위기에 취한 건지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떠들기만 했다.

‘안 묻는 게 낫겠어.’

루리아는 그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잠시 강변을 따라 산책했다.

사람들에게 뒷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조금 의외였어. 추기경님이 네 뜻을 받아들인 거.”

“저도 솔직히 그랬어요. 아마 제가 목숨을 구해 드린 보답이 아닐까 싶어요.”

어스의 가치는 이번 일로 인해 교단은 물론 솔론 왕국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던전은 현재 새로운 자원지로 주목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검이라 그 검에 자신들이 베일지도 모른다는 걸 이번 에스터 추기경의 사건, 그리고 던전 브레이크 현상이 보고되면서 위기감이 크게 고조된 상태였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건 사람과 물자가 모인 핵심 도시와 인접한 고위 던전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번 6띠 원정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어스를 청하는 나라들이 많았다.

교단 입장에선 환영할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론 순응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교단을 견제하고 있는 왕들이 먼저 머리를 숙였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교단에 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에스터 추기경은 어스의 뜻을 받아들이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랬으면 좋겠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루리아 누나가 보기에 에스터 추기경이 다른 꿍꿍이가 있어 제 뜻을 받아들였다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널 걱정시키려고 한 말은 아니야.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혜안을 가졌으면 해서 하는 말이야.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부족하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은 알 것 같아요. 뒤통수 조심하란 거죠?”

“실용적인 표현이네.”

“누나.”

“응?”

“누난 언제까지나 내 편인 거 맞죠?”

“네가 내 손을 놓지 않는 이상.”

루리아의 말에 어스는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내저었다.

바라만 봐도 좋은데 그런 사람의 손을 먼저 놓는다? 자신이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어스는 자신의 마음을 목소리에 담았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 * *

농장으로 이동하는 중에 갑작스러운 하늘의 변덕으로 소낙비를 몇 번 만나야했다.

당연히 고생은 호위로 따라온 디콘과 일꾼들의 몫이었다.

여름비도 아닌 봄비인지라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급격한 체온저하로 병이 걸릴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지금은 이동 중이라 아파도 제대로 쉴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아랫사람의 처지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몰인정한 상관이면 그들이 아프건 고생하건 신경조차 쓰지 않을 테지만, 어스나 루리아 모두 그렇게 몰인정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매번 비를 피해 쉴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렇다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시간 10기의 무장한 기수의 호위를 받으며 고급 마차 한 대가 농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하루를 마감하며 바삐 손을 놀리던 농장의 일꾼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선두에서 말을 몰던 디콘이 가장 가까이 있는 일꾼을 불렀다.

일꾼의 얼굴을 확인한 디콘의 표정이 순간 못 볼꼴 본 사람처럼 변하였다.

일꾼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루, 룬께 영광을.”

디콘은 일꾼의 인사를 받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었다.

교단의 성세가 전 대륙을 아우른다지만 그게 오만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디콘의 태도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러웠고, 일꾼은 죄인인 양 쩔쩔맸다.

생전 처음 본 사이가 분명한데도.

그러나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농장 관리인이 있는 곳이 어디냐?”

“이 길을 쭉 따라가시면 커다란 저택이 하나 있습니다. 관리인은 그 저택에 있습니다.”

“얼마나 걸리지?”

“20분은 더 가셔야 합니다.”

예상보다 큰 농장의 규모에 살짝 놀란 디콘은 말머리를 돌려 마차로 향했다.

농장에 들어선 이후 창문을 살짝 내리고 있던 어스는 디콘이 일꾼을 대하는 태도에 마음이 상한 듯 내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레이몬드 사제의 체면을 생각해서 참았다.

‘여기서 일하면 내 사람인데, 남의 사람이 왜 내 사람에게 건방을 떠는 거야? 내가 이러니 교단을 좋아할 수 있겠어.’

그 자신도 이미 교단 사람인데 이를 망각하고 투덜거리는 어스였다.

“어스 경, 앞으로 20분을 더 가야 한답니다. 미리 사람을 보내 관리인에게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됐어. 그냥 가. 그런데…… 아냐, 가 봐.”

“예.”

어스의 냉랭한 태도에 디콘은 살짝 당황했다.

친절했던 사람이 갑자기 그 태도를 바꾸었으니 당하는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게 일행은 주눅이 든 일꾼들을 스쳐 지나갔다.

“디콘의 고압적인 태도가 불편했나 보네. 하지만 디콘 입장에선 당연한 태도야. 저들은 이종족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거든.”

루리아의 말에 어스는 일꾼들을 자세히 보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혼혈?’

혼혈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어차피 농장에서 일하는 이상 다시 보게 될 것이기에 궁금증은 차후로 미루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농장에서 일하면 내 사람인데, 그렇게 막 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늘 처음 본 사람이잖아?”

“처음이건 두 번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내 농장에서 일하면 내 사람이죠. 그런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건 날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생각하니 또 열 받네.”

창문이 닫히기 전 두 사람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된 두 명의 디콘은 몸을 살짝 떨며 격언 하나를 떠올린다.

개도 주인을 봐가며 대하라는 내용의 격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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