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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06화 (106/250)

106화

던전은 여전히 이 시대 최대의 미스터리였다.

그중 가장 큰 미스터리는 역시 던전이 발생하는 이유였다.

이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각 왕국과 교단은 학자들을 동원하여 과거의 사료를 뒤지며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찾았다.

그도 부족해서 민간에서 내려오는 설화까지 조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던전의 발생 원인에 대한 작은 단초도 발견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인류 최초가 아니냐는 말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던전이 출몰한 건 사실 특이한 일이라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앞서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희생자중 한 명이 고위 사제인 추기경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평소 여유 만만하던 레이몬드 사제마저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일행은 쉬지 안하고 왕도를 향해 말을 달렸다.

여기서 말을 달렸다는 말은 진짜 말을 타고 왕도까지 쉬지 않고 내달린 걸 의미한다.

‘엉덩이가 깨질 것 같아.’

승마를 배우긴 했지만 기간도 짧고 꾸준히 연습한 것도 아니기에 장거리 이동은 몹시 힘들었다.

더구나 블링크를 가진 그가 뭐가 아쉬워 승마를 하랴.

그래서 어스는 루리아가 모는 말에 올라타서 그녀의 허리를 죽어라 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좋았으나 그것도 한 두 시간이지 3일 내내 하다 보니 자신의 엉덩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 고생을 하며 왕도에 도착한 어스는 크게 주춤했다.

에스터 추기경을 삼켜버린 던전이 무려 6띠였기 때문이었다.

대단히 높은 등급이다.

6띠 던전 원정에 성공했다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에 성공한다면 어쩜 최초의 사례가 아닐까?

추기경이란 고위 사제가 던전에 휘말렸기에 솔론 왕국과 교단이 힘을 모아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을 던전 안으로 급파한 상태다.

놀랍게도 원정대 결성과 파견에 걸린 시간은 사건 발생 2시간 만에 이뤄졌다.

‘이래서 다들 권력에 환장하는 거구나.’

아무튼 원정대는 에스터 추기경을 구하기 위해 이미 던전에 들어간 상황이다.

서로 연락할 수 없으니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자그마치 추기경을 구출하기 위해 파견된 원정대다보니 제 아무리 6띠 등급의 던전이라도 추기경만 무사하다면 구출엔 문제없지 않을까 싶었다.

“오오, 룬이시여! 부디, 추기경님을. 우리 추기경님을 굽어살펴주옵소서.”

제 몸 하나는 금쪽같이 생각하는 레이몬드 사제는 고된 행군도 잊고 던전 앞에서 절절한 목소리로 추기경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다.

아니, 그건 절규였다.

제 부모가 죽어도 저럴까?

‘추기경이 레이몬드 사제에겐 그만큼 절실한 존재라는 거겠지.’

얼얼한 엉덩이를 주무르며 레이몬드 사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낯익은 음성의 그의 귓전에 울렸다.

그 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린 어스는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야, 여기!”

프라이스와 페어몬트였다.

“프라이스 형! 페어몬트!”

레이몬드 사제를 일별한 어스는 루리아와 함께 그들을 향해 걸음했다.

5개월여 만에 만난 네 사람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옮겼다.

주변이 소란스럽진 않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화를 나누기엔 불편한 자리였다.

10여 분을 이동한 네 사람은 그제야 마음 놓고 말할 수 있었다.

“카멜 왕자님이랑 다른 사람들은?”

“원정대에 자원해서 지금은 저 안에 있어.”

프라이스의 말에 어스의 고개가 자동으로 던전으로 향했다.

하커와 호커면 모를까 굳이 왕자씩이나 되는 양반이 저 위험한 곳에 갈 필요가 있나 싶다.

하지만 그도 잠시, 오히려 왕자이기에 꼭 참가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형은 안 갔어?”

“가고 싶었는데 왕자님이 남아 있으라고 해서 남았어.”

땅의 중급 정령사인 프라이스의 능력은 다방면으로 쓰임이 많다.

그럼에도 그를 남겨둔 것이 의외였다.

“형이 갔으면 도움이 됐을 텐데 왜 남긴 거야?”

“세상에 정령사가 나 하나뿐인 건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인석아 난 왜 빼? 늙었다고 무시하는 게냐?”

“그럴 리가 있겠어요. 페어몬트의 강함은 제가 잘 아는데. 하하. 참, 카멜 왕자님이 내게 남긴 전언 같은 건 없었어?”

“없긴 왜 없겠어. 던전 하면 넌데 당연히 남겼지.”

이 세상에서 어스만큼 던전 내에서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찰이면 정찰, 전투면 전투.

한마디로 던전에 특화된 비장의 카드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었다.

어스 본인도 이미 이를 인정하고 있었다.

각설하고, 이번 원정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은 참으로 화려했다.

전략무기로 취급받는 그래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소드 마스터와 익스퍼트 기사들을 비롯하여 거대 마탑의 부탑주를 비롯한 4, 5서클의 마법사들이 이번 원정에 참여했다.

솔론과 거대 마탑이 참여하는데 어찌 교단이라고 방관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교단에서도 성기사들을 파견했다.

원정대의 전력은 국가를 상대로 싸워도 될 만한 전력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6띠 던전이라도 원정에 실패할 확률은 극히 낮다.

문제는 원정대의 주된 목적이 추기경의 안전이다 보니 그래서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뭐야?”

“다녀와서 한잔하자고 하더라.”

“엥? 그 말이 전부였어?”

원정대가 보유한 전투력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러니 전투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물론 어스가 합류하면 전투는 더 빠르고 쉬워질 수 있겠지만 굳이 그를 불러 들여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전투 이외의 부분, 즉 정찰에선 어스를 따를 자가 없다.

사기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만의 블링크 때문이다.

카멜 왕자가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고작 다녀와서 한잔하자는 전언만 남겼다고 하니 조금 의외였다.

“블링크 들키는 거 싫어하잖아?”

“그, 그야 그렇지만. 참, 하들리 형은 안 보이네. 혹시, 안에 들어간 거야?”

“3서클은 거기선 명함도 못 내밀어. 본가에 일이 있어 내려갔어. 조만간 도착한다고 했으니까 볼 수 있을 거야. 교단이 어수선해서 거긴 불편할 텐데 우리 집에서 묵는 건 어때?”

“됐어, 나도 들어가 봐야 해.”

“뭐?”

“잊은 거야? 나 에스터 추기경님이 서품한 성기사잖아.”

“괜찮겠어?”

“괜찮겠냐?”

프라이스와 페어몬트가 동시에 우려했다.

“나도 6띠는 처음이지만 내 한 몸 건사하는 건 일도 아냐.”

어스의 말에 두 사람은 동의했다.

‘하긴 마나 회복 포션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녀석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

‘다시 생각해도 사기야, 사기.’

두 사람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확실히 어스라면 어디서든 위험할 일은 없었다.

스스로 자충수를 두지 않는 이상.

“그런데 네 능력 드러내도 괜찮겠어? 안에 고위 마법사들이 많잖아?”

“솔직히 그 점이 가장 꺼려지긴 하는데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까 싶어. 그래서 이참에 날 드러낼까 해.”

“각 마탑에서 난리 나겠네. 안 그래도 너에 대한 관심이 많던데.”

“마탑이?”

“당연한 걸 왜 그렇게 정색해? 세상에 너 같은 마법사가 또 있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그들 입장에선 연구할 가치가 차고 넘치잖아. 하지만 더는 그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너의 뒤엔 교단이 있잖아. 다른 건 몰라도 교단이 제 식구는 칼 같이 보호하지. 문제는 에스터 추기경인데, 그분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과연 교단 내에서 네 입지가 이전 같을까 그게 걱정이다.”

에스터 추기경의 생사는 사실 레이몬드 사제에게만 국한 된 문제가 아니다.

어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였다.

그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블링크를 쓰지 않은 건, 추기경을 구출하기 위해 파견된 원정대의 면면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원정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더는 관망할 수 없었다.

생색만 내고 자신의 패는 감추려했는데.

“내 입지는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까 걱정 하지 마.”

“오! 사내대장부. 아주 좋은 자세야. 그리고 너의 뒤엔 나도 있고 카멜 왕자님도 있어. 알지? 한번 동료는 영원한 동료다.”

“알아, 잘 알지. 그래서 늘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어. 레이몬드 사제가 나 찾겠다.”

“바로 들어갈 거야?”

“쉬고 싶긴 하지만 만에 하나 내가 쉬는 동안 원정이 끝나버리면 추기경 볼 낯이 없잖아. 그러니 생색이라도 내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 들어가야지.”

“조심해.”

“지금 누굴 걱정하는 거야? 나 어스라고, 어스.”

프라이스와 페어몬트와는 농담을 섞어 인사를 끝낸 어스는 돌아서서 루리아를 보았다.

“다녀올게요.”

“몸조심해.”

“물론이죠. 참, 프라이스 형.”

“어? 왜?”

어스와 루리아의 사이가 예전과 달리 묘한 감정이 흐르고 있음을 포착한 프라이스는 공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깜짝 놀라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루리아 누나 좀 부탁할게.”

“당연하지 루리아도 동료야.”

두 사람만 아니면 루리아와 포옹이라도 하고 돌아설 텐데.

어스는 내심 이를 아쉬워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 * *

“어스 경, 대체 어디 있다 오는 건가?”

두 눈이 퉁퉁 부은 레이몬드 사제가 발까지 동동거리며 말하였다.

“볼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개인적인 볼일은 지양하게. 우리에게 중요한 건 첫째도 추기경님, 둘째도 셋째도 추기경님일세. 그, 그렇다고 내말 섭섭하게 생각하진 말고. 경도 내겐 중요한 사람이네. 알지? 내 마음?”

자신의 말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말을 바꾸는 레이몬드였다.

‘우리 돈나무가 똥줄이 타긴 많이 타나보네.’

“물론이죠. 저에게도 추기경님은 매우 중요하신 분입니다. 그럼 바로 안으로 들어갈까요?”

“그, 그래 줄 수 있겠나?”

“당연히 그리해야죠.”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내 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할 걸세. 추기경님도 그러실 거야. 아무렴 그렇고말고.”

레이몬드는 어스의 등을 떠밀었다.

안 그래도 가려고 했는데 등까지 떠밀리니 순간 기분이 상했다.

한데 쥐어박을까?

당연히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레이몬드가 이미 말을 해두었는지 던전을 통제하는 병사들이 길을 터주었다.

못미더운 표정을 하고서.

‘6띠라……. 이왕이면 보스는 내가 잡고 싶은데.’

유일하게 자신만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생각하면 다른 몬스터는 몰라도 보스만큼은 꼭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고 싶은 어스였다.

던전에 닿자마자 어스는 곧 수많은 기도소리로 가득한 장내에서 사라졌다.

* * *

6띠 던전의 내부 환경은 사막이었다.

거대한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건조하고 뜨거운 공기는 입안을 바싹하게 만들었다.

‘사막에 대해서 듣긴 했지만 막상 보니 무시무시한 곳이네.’

서둘러 로브로 환복하자 사막의 열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새 마른 입안은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물로 바싹함을 날려 버렸다.

강렬한 햇살을 막기 위해 거의 사용하지 않던 후드까지 쓴 어스는 한 손에 창을 들었다.

사막은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때문에 미리 아이템을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무형 방벽을 사용해야 하기에.

어스가 발을 디딘 곳은 모래 언던 중간 부분이었다.

발만 살짝 움직여도 다리는 정강이까지 쑥 들어간다.

‘원정대가 엄청 고생하겠네.’

일단은 원정대부터 찾는 게 급선무다.

원정대의 규모가 100명이 넘으니 사막이 제 아무리 넓다지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어스에겐 그쯤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블링크!’

열사에서 종적을 감춘 어스의 신형은 지상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상공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곧 그의 몸은 하강했다.

빠른 속도로.

처음엔 심장이 멎을 만큼 충격적인 경험이었지만 지금의 그에겐 일상으로 정착한지 오래였기에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았다.

짧은 시간 주변을 살폈으나 보이는 건 없었다.

한결같은 모습의 모래 언덕이 전부다.

이에 어스는 재차 블링크를 사용했다.

그런 식으로 상공을 종횡무진 누비며 지상을 살피던 그의 눈에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인간과 몬스터가 치열하게 맞붙어 싸우는 전장이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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