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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03화 (103/250)

103화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 1층 관객석과 달리 VIP를 위해 마련된 관객석은 2층에 자리도 널찍하게 배치되어 있고, 공연의 사소한 부분도 살펴볼 수 있는 위치였다.

‘단장이네.’

공연의 시작은 로엘 단장이 연미복을 입고 나와서 알렸다.

자신에게 평생 관람권을 선물한 자였기에 공연이 끝나고 얼굴이나 보고 가기로 했다.

광대들이 나와서 재주를 부렸다.

공중제비를 하고 익살맞은 동작으로 관객들의 배꼽을 위협(?)했다.

깔깔깔.

하하하.

호호호.

웃음은 강한 전파력을 갖고 있다.

어스 역시 이에 전파되어 숨이 가쁠 정도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광대로 인해 열기가 지펴지자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조련사가 나와서 황소만 한 크기의 맹수를 애완견 다루듯 다루었다.

맹수의 등장에 위축되었던 관객들은 맹수의 재주에 언제 그랬냐는 듯 긴장을 풀고 맹수가 보이는 잔재주에 함성과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미쳤다, 너무 재미있잖아!’

서커스 공연이 재미있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실상 이야기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처음이어서 이렇게 매 순간순간이 놀랍고 재미있는 걸까? 어스는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서커스 공연을 몇 번 보았다고 말한 루리아도 즐기고 있었다.

‘잘 웃네.’

절제를 생활화하는 루리아의 또 다른 일면을 보게 된 어스는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을 느꼈다.

조련사가 맹수와 함께 퇴장하자 조명이 켜지고 지상 15미터 위치의 외줄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말로만 듣던 외줄타기인 듯했다.

곡예사들이 나와 멋진 동작으로 관객을 향해 인사한 뒤 봉을 잡고 위로 빠르게 올라갔다.

루리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대체 그녀는 뭘 보고 놀란 걸까? 어스는 눈에 힘을 주고서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응시했지만 딱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루리아 누나.”

“응.”

“급 진지한 이유가 뭐예요?”

“곡예사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서 그래.”

“그야 곡예사니까 그렇죠.”

“그렇겠지.”

말은 그리했지만 루리아는 전에 볼 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곡예사들의 몸놀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학생처럼 보였다.

열정적이고 진지한 모범생 같았다.

줄 반대편에선 남녀 곡예사들이 성큼성큼 줄을 밟기 시작했다.

흔들흔들.

줄은 위아래로 요동쳤다.

당연히 줄을 밟고 있는 곡예사 역시 자세가 불안정해야 하지만 그들에게선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흡사 줄과 곡예사가 한 몸인 듯했다.

줄 중간쯤 도착한 남녀 곡예사가 하늘로 솟구쳤다.

범인이라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높이까지 솟구친 둘은 허공에서 서로의 팔목을 잡아서는 위치를 바꾸었다.

다리를 쫙 벌린 모습으로 줄에 착지하는 순간 어스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남자 곡예사의 소중한 곳이 박살나는 모습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장내 모든 남자 관객들이 어스처럼 억눌린 비명을 토한 건 본능이리라.

다행히 남자 곡예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훌쩍 뛰어올라 허공에서 발을 놀리는 잔재주를 부린 뒤 한발로 줄에 내려섰다.

이후 중심을 잃은 건지 쓰러졌다.

“헉!”

“꺄악!”

“흡!”

숨넘어가는 소리와 비명이 관객석에서 터졌다.

그건 의도된 연출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곡예사는 360도를 돌아 제자리에 섰다.

손을 위로 쭉 편 남자 곡예사의 손을 여자 곡예사가 잡곤 발끝을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평지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 흔들리는 외줄에서 이루어졌다.

뜨악!

심장을 쪼는 쫄깃쫄깃한 긴장감은 신기에 가까운 묘기가 더해지며 절로 입이 벌어졌다.

한번 벌어진 입을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후 남녀 곡예사의 고난이도 기술이 폭풍우 몰아치듯 계속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외줄 공연이 끝나고 아름다운 무희들이 나와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과열된 분위기를 식혔다.

물론 모두가 식은 건 아니다.

일부 남성 관객들은 무희들의 적나라한 옷차림에 뜨거운 열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앞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면, 이젠 눈을 감지 못하였다.

어스 역시.

툭, 툭툭. 퍽.

“억! 왜, 왜요?”

“좋아?”

공연이니 당연히 좋지.

그런데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

바로 아래층에 앉은 커플들이 다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무희들 때문이리라.

공연을 공연으로 즐길 것이지 미련하게 질투는.

‘서, 설마?’

에이, 그럴 리가.

하지만 루리아가 자신의 팔을 갑자기 그리 건드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질투 같았다.

“생각해 보니 안 좋은 것 같아요.”

정답.

“이거 먹을래?”

큼직한 튀긴 닭다리를 직접 어스의 손에 쥐어준 루리아는 그 위에 소금을 살짝 뿌렸다.

그녀답지 않게.

그래서 더 가슴을 세게 두드린다.

그 마음을 배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을 꾹 누르며 오직 닭다리만 바라보고 이를 먹는데 온 힘을 다했다.

괴롭군.

그런 그의 태도에 만족했는지 루리아의 눈길이 부드러워졌다.

하나 그건 잠시에 불과했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루리아의 입에서 긴장감이 진하게 스민 음색이 흘러나왔다.

“어스.”

“나 무희들 안 봤어요!”

아주 살짝 봤을 뿐인데.

설마, 그 모습을 들킨 것일까?

화끈.

“그게 아냐. 분위기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래층에서 인영들이 솟아올랐다.

일반 관객석과 특별 관객석의 높이는 평범한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뛰어오를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러한 높이를 가뿐하게 뛰어오른 자들, 그들의 손에서 검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마, 마나 소드!’

그들은 암살자들이었다.

익스퍼트로 구성된 무리였다.

미친.

“아, 암살자다!”

“꺄아!”

“막아!”

평화롭던 2층 관객석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놀란 마음에 내지른 비명과 당혹성은 곧 굉음에 묻히었고, 굉음은 이내 단말마의 고통이 실린 비명으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삽시간에 벌어진 참사였다.

2층에서 발생한 비명은 1층으로 전파되었다.

소란 속에서 1층 관객들은 입구로 내달렸다.

나가려는 사람에 비해 좁은 입구로 인해 그들끼리 부딪치며 부상자가 속출했다.

부모를 찾는 아이의 울음, 자식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인파에 떠밀리는 부모들로 인해 2층 못지않게 1층도 혼란에 휩싸였다.

챙챙.

날붙이와 날붙이가 격돌하며 터져 나오는 소리에 간혹 폭음이 덧씌워졌다.

VVIP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 칸막이는 그 충격에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어스와 루리아의 좌석 역시 무사할 수 없었다.

어스와 루리아는 반사적으로 등을 맞대었다.

관객들을 향해 마나 소드를 휘두르는 암살자가 보였다.

그런 그들에 맞서 몇몇 관객들 역시 호신용 무기를 꺼내어 맞서고 있었다.

암살자와 관객의 숫자는 엇비슷했으나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이미 다수의 관객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부상자의 등짝으로 마나 소드가 스윽 훑고 지나갔다.

인간의 육체는 흡사 면도날에 닿은 종이가 갈라지듯 갈라지더니 뒤늦게 피분수를 뿜었다.

“더러운 룬의 사냥개들아!”

호통소리가 혼란한 장내를 날카롭게 찔렀다.

두 명의 암살자를 상대하고 있는 평범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내지른 소리였다.

그에 어스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룬을 믿지 않지만, 교단은 더더욱 믿지 않고 좋아하진 않지만 명색이 성기사였기에 중년 남자의 울분에 찬 호통이 꼭 자신을 지칭한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설마, 암살자 부대를 보낸 배후가 교단이라도 되는 것일까?

암살자들을 피해 도망치던 일부 관객들이 돌연 뒷걸음질 쳤다.

의문을 품을 사이도 없이 그들은 쓰러졌다.

또 다른 암살자 부대의 출현이었다.

어스는 재빨리 파이어 애로우를 시전함과 동시에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철옹성을 빼들었다.

여차하면 무형 방벽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순식간에 위용을 드러낸 20발의 파이어 애로우는 어두침침한 2층 관객석을 대번에 밝혔다.

자연 암살자와 관객들의 시선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어스와 루리아 쪽으로 모였다.

모두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은 어스는 내심 아차 했다.

후회는 한발 늦었다.

암살자 중 둘이 달려들었다.

마나 소드를 앞세우고서.

순식간에 접근한 두 암살자의 앞을 또 다른 암살자가 막아서더니 어스를 쳐다보곤 한마디 던지고 곧 싸움에 끼어들었다.

“참견 말라.”

그 경고에 순간 머릿속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암살자들의 무자비한 살수는 2층 관객 전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반면 어스와 루리아를 향한 공격은 없었다.

놈들이 처음부터 자신과 루리아를 노렸다면 이렇게 서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드, 들었어요?”

“들었어.”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따라가자니 마법사인 자신에게 있어 극단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며 상황이다.

가장 가까운 암살자와의 거리는 불과 6, 7미터로 이쯤은 익스퍼트에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그러니 그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싸움에 개입한다면 온몸으로 마나 소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쩌죠?”

암살자들에 저항하는 관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어떤 이는 마법을 시전하였고, 마법이 반쯤 완성될 무렵 몸뚱이에서 머리가 분리되어 날아갔다.

정령도 등장했지만 활약하기도 전에 소환사가 단검을 맞고 쓰러지면서 정령은 곧 사라졌다.

관객들의 실력도 대단했지만 갑작스러운 선제공격에 크게 당한 상황이라 몰살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3의 조력자가 도움을 주지 않는 이상.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 그 순간…… 놈들의 검에 난도질당하고 말거야.”

루리아가 또래 중엔 상위권에 드는 실력자라곤 하지만 아직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어스 역시 놈들의 공격권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블링크와 무형 방벽이다.

전자는 루리아의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

기각.

후자는 1분 안에 반드시 암살자를 모조리 주살해야 한다.

‘작정하면 모두 죽일 수 있긴 한데.’

그 모두에 살아남은 관객들까지 포함되는 게 문제였다.

비단 2층뿐만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아우성치는 1층 관객들에게도 그 불똥이 튈 수 있다.

검사는 자신의 무기를 필요에 따라 움직일 수 있지만, 스킬은 손을 떠나는 순간 남이 된다.

‘아! 일루젼, 일루젼이 있었구나!’

이를 사용하면 소강상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만에 하나 놈들이 버틴다면?

그땐 살기 위해서라도 공격 스킬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지 싶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하커나 호커에게 일루젼을 시험해 보는 건데.

“커헉!”

암살자들을 상대로 잘 싸우던 관객의 등짝이 쩍 갈라지며 쓰러졌다.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관객은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작은 아이를 달래려는 듯 팔을 뻗었다.

그 손은 이내 힘없이 떨어졌다.

남자를 죽인 암살자는 아이에게도 살수를 펼치려 하였다.

깨드득.

옆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하던 루리아의 두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 분노를 담고 이글거리고 있었다.

꿀꺽.

검자루를 쥔 그녀의 손은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를 지키고 싶듯, 그녀 역시 그러한 마음에서 참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생면부지의 소년을 위해 달려오는 마차를 도외시하고 몸을 던졌고, 귀족 마법사와 척을 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나섰던 그녀의 정의감을 생각하면 이 순간은 그녀에겐 고통이리라.

“야이, 개새끼야! 애는 건드리지 마라!”

얄팍한 계산 따윈 집어 던졌다.

‘일루젼!’

어스의 고함에 고개를 돌렸던 암살자가 휘청거렸다.

환상에 빠져 헤맸다.

그 사이 루리아는 스프링처럼 앞으로 튀어나가서는 아이를 안았고, 어스도 그에 질세라 뛰며 일루젼을 뿌렸다.

“경고를 무시했군.”

스산한 음성이 어스의 귀에 박혔다.

흠칫 놀란 어스는 일루젼을 시전하려 했으나 그땐 이미 마나가 동이 난 상태였다.

마나 회복 포션을 잊다니.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곧장 날아왔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마나 소드!

가차 없이 날아오는 마나 소드는 무형 방벽에 의해 가로 막혔다.

복면 밖으로 드러난 암살자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놈이 멈칫한 사이 어스는 냉큼 마나 회복 포션을 들이켰다.

“내게 칼을 들이민 순간 너희는 내 적이다!”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이를 선포했으나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었기에 일루젼만 사용했다.

살포 방식이 아닌 대상을 지정한 방식이다.

비효율적이지만 이는 어쩔 수 없었다.

일루젼에 당해 헤매는 암살자들의 수가 증가하자 놈들에 맞서 싸우던 관객들의 기세가 되살아났다.

그 기세에 기름을 붓는 일도 일어났다.

아군이 출현한 것이다.

암살자의 적이면 일단 아군.

그런데 아군으로 등장한 자들이 어째 눈에 많이 익었다.

어스의 일루젼에 당한 암살자들은 속속 쓰러지기 시작했다.

익스퍼트까지 성장하기 위해선 개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암살자들이 어디에 소속된 자들인지는 몰라도 그 조직의 수장이 이를 본다면 피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싶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마법사부터 처리해!”

아군이 등장하여 손을 보탰지만 여전히 암살자들의 전력이 우위에 있었다.

놈들은 자신들의 우위를 무산시키려는 어스를 처단하기 위해 움직였다.

단검을 날리고 마나 소드를 휘둘렀으나 무형 방벽은 그 모든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어스와 루리아, 그리고 그녀가 안고 있는 아이를 완벽하게 보호했다.

이에 질세라 어스 역시 죽기 살기로 일루젼으로 맞대응했다.

일루젼을 깨기 위해선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놈들의 정신력은 강했지만 단시간에 일루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놈들의 공격에도 지금까지 버틴 관객들, 그만큼 강한 그들이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자 암살자들의 우위는 크게 흔들렸다.

여기에 아군까지 등판한 상황이라 놈들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처했다.

이처럼 상황이 불리해지자 놈들은 도주했고, 위험천만한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무형 방벽이 해제되기까지 딱 1초가 남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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