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10분을 달리다시피 이동한 어스는 흙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일행을 향해 달려오는 몬스터 무리를 볼 수 있었다.
근방에 큰 숲이나 산이 있는 곳도 아닌데 대체 어디서 저 많은 수의 몬스터 떼가 나타날 수 있는지 의아했다.
더구나 이곳은 관도다.
관도는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빈번한 왕국의 젖줄이라 주기적인 순찰과 관리가 이뤄지고 있기에 더더욱 이 상황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몰려오는 몬스터의 정체는.
“프로그라니 말도 안 돼.”
프로그는 개구리와 인간을 섞어 놓은 놈들이다.
큰 강도 늪지도 없는 들판에서 프로그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마부를 비롯한 하인들은 말과 분리된 마차 두 대에 붙어 서 있었다.
말 전체를 방진 안에 들여놓아야 하지만 디콘의 숫자가 기껏 해야 50명 이었기에 60필에 가까운 말을 그 안에 들일 수 없었다.
당연히 말을 풀어주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말 한 마리의 가격이 비싸서? 그건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다.
전략의 최대 목표는 생존!
바로 이를 조금이라도 높이려 함이다.
“마부와 하인들로 하여금 말들을 진정시키세요.”
그런 행동에 어스가 제동을 걸었다.
프로그가 무시할 수 없는 몬스터이긴 하나 어스의 눈엔 그저 발 달린 경험치에 불과했다.
“어스 경의 말을 듣지 못했느냐! 빨리 말들을 진정시켜!”
어스의 실력을 아는 레이몬드 사제가 망설이는 자들을 닦달했다.
마부와 하인들은 원형 방진에서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도리 없이 그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원형 방진을 나서는 자들은 하나같이 두려움과 원망이 가득했다.
그 감정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다.
몰려오는 프로그 떼를 향해 홀로 걸어 나간 마법사의 정수리 위로 큼직한 불의 구체가 일제히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불의 구체, 아니 파이어 볼의 숫자는 정확하게 여덟.
마나 : 10/410.
‘저것들 다 잡으면 레벨을 올릴 수 있을까?’
어스에게선 조금의 긴장감도 찾을 수 없었다.
마나 총량 하나만 따지면 홀로 선봉에 나선 건 명백한 자살행위겠으나, 마나 회복 포션이 있는 그에게 있어 마나는 무한대라고 봐야 하기에 거리만 내주지 않는다면 원거리 공격을 적을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더해 그의 스킬은 일반적인 마법과 달리 완성에 걸리는 시간은 없다시피 했다.
‘가라!’
파이어 볼은 허공에 붉은 궤적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전방을 향해 부챗살처럼 날아갔다.
그 속도 역시 일반적인 파이어 볼에 비교할 수 없이 빨랐다.
실패가 존재하지 않는 안전강화와 최근 분배한 지력의 영향 때문이었다.
현재 그의 지력은 32.
전방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파이어 볼이 가진 내력이다.
스킬을 날려 보낸 어스는 고수가 벌검하듯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마나 회복 포션을 꺼내 곧장 입안에 털어 넣었다.
정확히 이를 두 번 반복했다.
그러자 그의 마나는 다시 가득 찼다.
‘조만간 집에 가야겠어.’
마법 통신구를 통해 조쉬에게 중급 마나 회복 포션의 다운 버전을 부탁했다.
중급 마나 회복 포션의 제조였다.
참고로 중급 마나 회복 포션의 마나 회복량은 일 천, 언제나 그렇듯 이를 물에 희석하는 건 어스의 몫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포션을 물에 희석하면 포션으로서의 기능이 상실했다.
때문에 희석 작업은 어스가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쾅쾅쾅-!
총 여덟 번의 굉음과 함께 프로그 무리의 선두가 삽시간에 와해됐다.
-붉은 반점 프로그 5코인을 습득합니다.
……
……
……
“선두가 모조리 괴멸 당했어!”
“맙소사!”
“마법사, 마법사 말로만 들었지 천하무적이네.”
모두의 입에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감탄은 이제 시작이었다.
‘파이어 볼!’
또 다시 동일한 숫자의 파이어 볼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다시 힘차게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슈아아아아아-앙! 쾅쾅쾅쾅!
2에서 3초 마다 쏘아지는 여덟 발의 파이어 볼 앞에 전진이 막혔다.
-붉은 반점 프로그 전사 10코인을 습득합니다.
간간이 전사급도 잡혔다.
‘개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파이어 볼로 인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임전무퇴의 마인드를 가진 몬스터들조차 동요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동요하건 말건 어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동요하는 붉은 반점 프로그 무리의 후미에서 천둥을 연상케 하는 괴성이 터졌다.
그러자 무리의 혼란이 사라졌다.
더불어 프로그들이 무식하게 모여 있던 것에서 산개 형태의 돌진으로 바뀌었다.
어스 입장에선 가장 짜증나는 일이다.
파이어 볼을 통해 처리할 수 있는 적의 숫자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말은 포션을 더 많이 마셔야 함을 의미한다.
‘개구리 대가리 새끼들이!’
방금 그 목소리는 우두머리가 분명하다.
인간의 군대든 몬스터든 일단 대가리만 자르면 오합지졸이 된다.
블링크라는 사기적인 이동 스킬을 가진 어스에게 있어 적진 깊숙한 곳에서 명령을 내리는 적장을 제거하는 건 일도 아니다.
상공으로 이동하여 마법만 퍼부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켜보는 눈들이 많은 상황에선 블링크를 내보일 수 없었다.
비장의 한 수였기에.
뭉치면 파이어 볼, 흩어지면 체인 라이트닝이 효과적이란 건 질릴 만큼 경험한 그에게 있어 밀집 형태로의 돌진이든 산개든 관계없었다.
마나 회복 포션을 좀 더 마시면 된다.
꺼억.
번쩍!
시퍼런 섬광과 함께 뻗어 나간 체인 라이트닝은 그 힘이 다할 때까지 마른 생선 엮듯 놈들을 엮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놈들의 돌진을 막아 낼 수 없었다.
체인 라이트닝은 산개에도 먹히는 스킬이지만, 수면을 헤엄치는 물뱀처럼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것이기에 도약을 통해 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이를 알아차린 놈들이 펄쩍펄쩍 뛰었다.
더해 간격을 더 벌리고 달려왔다.
‘개구리가 원래 똑똑한 놈들이었나?’
의외였다.
디콘들이 참전했다.
중앙군 못지않은 무장을 갖춘 집단이 바로 교단에서 운영하는 디콘이다.
그러한 무장이 무색하지 않게 개개인의 무력 역시 준수한 편이었다.
자부심 역시 높다.
“출전!”
총원 50명중 30명의 디콘이 3명 한 조가 되어 기민하게 움직였다.
둥글고 큰 원형 방패로 적을 막고 그 사이로 창이 뻗어 나와 몬스터의 몸뚱이를 유린했다.
루리아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아다. 그녀도 검을 뽑아들고서 붉은 반점 프로그에 맞서 싸웠다.
어스 입장에선 똥줄이 타고 있었다.
큰소리 뻥뻥 치고 나섰는데 면이 서지 않았다.
‘이게 아닌데.’
아군과 적군이 맞붙은 상황이라 단일 대상을 한 스킬 이외엔 다른 스킬은 쓰기 힘들어졌다.
그래도 그가 초반 놈들의 숫자를 대폭 줄였기에 루리아를 비롯한 디콘이 용이하게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저들이 싸우는 놈들이 전부가 아니다.
뒤에서 더 몰려오고 있다.
앞서 죽인 놈들보다 더 많다.
진짜, 어디서 저 많은 놈들이 쏟아진 건지? 볼수록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선 일단 대가리부터 조지는 게 정석이지.’
더 이상 비장의 한 수를 아낄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어스는 어금니를 깨물곤 이를 시전했다.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지상에서 사라졌다.
50미터 상공에 그 모습을 드러낸 어스는 유난히 커다란 덩치의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의 주변엔 그보다 작은 덩치의 붉은 반점 프로그가 포진하고 있었다.
블링크를 시전한 어스는 단숨에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상공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기에 놈들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콜 라이트닝!’
단숨에 적진 깊숙이 침투한 어스는 우두머리를 겨냥하고 번개를 떨어뜨렸다.
묵직한 굉음과 함께 굵직한 번개가 우두머리의 정수리로곧장 떨어졌다.
“끼에에에에에-!”
놈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고통에 찬 비명.
큰 피해를 주었으나 놈은 죽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콜 라이트닝에 맞아 휘청거리자 그제야 상공에 적이 나타났음을 알아차린 전사들이 어스를 향해 창을 날렸다.
이에 화들짝 놀란 어스는 블링크를 통해 멀찍이 피한다음 곧 이동하여 놈들의 머리 위로 파이어 볼과 파이어 버스터를 섞어 선사했다.
쾅쾅쾅-!
충격파와 화염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놈들은 더 이상 어스를 신경쓸 수 없었다.
아니, 놈들이 그를 신경 쓰더라도 놈들에겐 그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블링크를 통해 수시로 이동하는 그를 대체 무슨 수로 잡을 수 있겠는가.
날개가 있더라도 쫓기 힘든 이가 바로 어스였다.
블링크로 무장한.
전사들이 속속 쓰러졌다.
놈들만 공격한 건 아니다.
자리를 옮기며 괴성을 토하는 우두머리도 공격했다.
빗나가기 일쑤였다.
우두머리라고 달아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른 놈들보다 신체조건이 월등한 놈은 도약력도 상당했다.
‘블링크!’
그래봐야 블링크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리고 놈에겐 날개가 없었기에 허공에서 이동도 못한다.
스스로 과녁판이 되기를 자청하는데 어찌 외면하랴.
‘아이스 스피어!’
콜 라이트닝만 고집하던 어스는 처음으로 수속성 계열의 스킬을 사용했다.
놈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그의 선택은 적중했다.
냉기 피해로 놈의 움직임이 눈에 띠게 굼떠졌다.
앞서와 달리 냉기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놈은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엉덩이가 지표면과 충돌했다.
우두머리의 입에서 지금껏 듣지 못한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퍼졌다.
충격이 컸는지 놈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였다.
딱 좋은 상태였다.
‘콜 라이트닝!’
콰자자자, 번쩍.
‘파이어 볼, 파이어 버스터.’
그런 놈에게 아낌없이 스킬을 베풀었다.
어떤 맛(?)을 좋아하려나?
-붉은 반점 프로그 보스를 처치했습니다.
-보너스 포인트 1을 습득합니다.
-5,000코인을 습득합니다.
“더, 던전 보스?!”
어스는 지금껏 상대한 몬스터를 일반적인 웨이브로만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우두머리를 죽이면서 이것이 단순한 웨이브가 아님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던전에 있어야 할 보스가 어째서 현세에 출현한 것일까?
놀라웠지만 당장은 잔당을 소탕해야 한다.
보스의 죽음.
던전이었다면 탈출로 귀결되겠지만 현세에선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
지상에선 여전히 루리아와 디콘이 붉은 반점 프로그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상대해야 할 상대는 인근의 놈들이 전부였다.
다행하게도.
보스가 전사하자 나머지 놈들은 그간 보여준 투지가 무색하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에 잽싸게 말에 올라탄 루리아와 디콘들이 뒤따라가 놈들을 처치했다.
어스도 놀지 않았다.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블링크를 십분 활용하여 잔당 제거에 앞장섰다.
‘파이어 볼!’
쾅쾅쾅쾅-!
전쟁에서 마법사들이 파이어 볼을 선호하는 이유는 역시 가성비에서 파이어 볼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 *
몬스터 웨이브는 보스 사망 후 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면서 일단락됐다.
도주에 성공한 놈들은 전체의 5분의 1에 달하였다.
5분의 1이라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였다.
레이몬드 사제는 이 사실을 인근 신전에 마법 통신구를 통해 급히 통보했다.
“정말, 던전 보스란 말인가?”
“분명합니다.”
“그, 그렇다면 큰일이잖은가?”
글리시아 남작 영지의 경우에는 민가 주변의 던전은 모조리 정리 된 상태다.
반면 다른 지역의 경우에는 여전히 다수의 던전이 남은 상태다.
그러니 그곳에서 몬스터들이 떼로 몰려나온다면 기존의 몬스터 웨이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량의 인명피해는 피할 수 없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앞마당에서 일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듯 레이몬드 사제는 마법 통신구를 꺼내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10분에 한 번 10자 이내로 보낼 수 있다 보니 단어에 신중을 기했다.
“가까운 마을로 가세. 만약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으니까.”
이번 전투로 십 수 명이 다쳤지만 다들 가벼운 부상이었기에 레이몬드에 의해 말끔하게 완치된 상태였다.
일행은 곧 가까운 마을을 향해 이동했다.
1시간가량 이동한 그들은 폐허가 된 마을을 목격할 수 있었다.
땅에 코를 박고 있는 지붕, 부서진 창과 대문, 붉게 물든 외벽과 거리 곳곳엔 눈뜨고 볼 수 없는 시체로 즐비했다.
이에 사람들은 점심에 먹은 걸 게워냈다.
“새, 생존자를 찾아. 어서!”
모두가 정신이 없던 그때, 레이몬드는 디콘을 잡아두지 않고 오히려 생존자 수색을 재촉했다.
의외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안전보다 생존자 구조를 우선으로 생각하다니.
‘사제는 사제네.’
몬스터 웨이브가 휩쓸고 지나갔지만 모두가 죽은 건 아니다.
옷장, 지하실, 수납장, 창고, 다락방 이런 곳에 숨어 있던 자들이 디콘들이 돌아다니며 목소리를 높이자 하나 둘 기어 나왔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저기 저쪽에 던전이 있었습니다. 원정대가 들어갔는데 얼마 후 던전이 급격하게 커지더니 터지고 말았습니다.”
원정대의 잘못인가? 던전의 문제인가? 새로운 의문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