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이 세상에도 마법 무구가 존재하나 단언컨대 어스가 손에 넣게 된 저와 같은 성능을 갖춘 무기는 전무하다고 할 것이다.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면 당연히 갖고 놀고싶어 한다.
그처럼 어스 역시 몸이 바싹 달아올랐다.
하지만 주변 그 어디에도 이 아이템을 실험할 상대가 없었다.
‘루리아 누나는 어떨까?’
익스퍼트는 아니지만 근 미래 그녀가 익스퍼트가 될 것이라 호언장담한 현존 익스퍼트만 무려 셋이다.
카멜, 하커, 호커가 바로 그들이다.
만약 그녀가 그들의 장담처럼 스물 이전에 익스퍼트가 된다면 그 이름이 왕국 곳곳에 퍼질 것이다.
물론 한창 물이 오른 자신의 유명세에 비하면 보름달 앞 반딧불이겠지만.
실실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어스의 시선을 느낀 루리아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누나.”
“응?”
“나랑 내기 한번 해보지 않을래요?”
루리아는 이에 조금의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지금은 저래도 준비한 멘트를 날리면 반드시 넘어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말.
“일 분! 딱 일 분 동안 날 공격해서 움직이게 만들면 돼요? 어때요?”
루리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분명 제대로 들었지만 하도 어이가 없다보니 잘 못 들었을 것이라 본인 스스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와 무예 수련을 하며 자주 대련을 하였고, 그때마다 어스는 그녀에게 번번이 무릎 꿇었다.
사실 대련이란 말은 남자친구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지칭한 것이지 실제는 지도 대련이다.
그런 지도 대련에서도 어스는 세 합을 버티지 못했다.
이실직고 하면 그 세 합도 루리아가 봐줘서이지 실제 어스의 무예 실력은 일 합이면 충분한 상대였다.
마법이란 분야에선 천재를 넘어 괴물이라고 인정하지만 무예나 운동신경에 있어서는 또래 남자애들보다 형편없는 수준이다.
루리아는 물론 그에게 무예를 가르치거나 그가 하는 대련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이렇게들 말했다.
그냥 마법사나 해.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힘과 운동 신경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나마 이에 영향을 주는 힘과 민첩 스탯이 과거보다 2배 이상 증가하여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에게 잠시 놀라움을 선사했지만, 그래 봐야 또래에 비하면 평균 이하였다.
딱히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릴 때 큰 병을 앓아 후유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그의 지인들이 내린 결론.
타고난 허약체질이 바로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다만 이런 결론을 내린 그들에게도 미스터리로 여겨지는 게 있었다.
어스의 맷집이 그들의 최대 미스터리였다.
허약한데 맷집만 좋다?
이는 일 더하기 일이 이가 아닌 엉뚱한 수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때문에 다들 맷집이 아닌 마법으로 인한 게 아닐까 추측했다.
어스가 입에 거품을 물고 마법이 아니라고 우겼기에 다들 맷집이라고 해줬지 실제 이를 제대로 인정해준 사람은 없었다.
당장 눈앞에 앉아 있는 루리아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밥 먹고 해.”
루리아는 어스가 새로운 마법을 습득한 것이라 간주하며 내기를 받아들였다.
과연 어떤 마법일까?
속으로 궁금해하며.
“내기에 상품이 빠지면 재미없는데 우리 각자 원하는 거 한 가지씩 걸고 하는 건 어때요?”
“자신 있나 보네.”
“쫄려요? 쫄리면 그냥 하고요.”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루리아의 눈꼬리가 움직인다.
어스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저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자신의 말에 넘어왔다고 백 퍼센트 확신했다.
“콜.”
“콜?”
“한다고.”
“아! 그런 뜻이구나. 좋아요. 그럼 나도 콜!”
“그런데 네가 원하는 건 뭐지?”
“먼저 말하면 재미없죠. 각자 종이에 써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보여주는 건 어때요?”
“흥미롭네. 좋아.”
* * *
승객에게 편안한 승차감을 선사하여 창밖을 응시하지 않으면 달리는 건지 멈춘 건지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최고급 마차가 정차했다.
작은 냇가가 있는 들판이었다.
일꾼들이 적당한 장소에 천막을 치고 테이블 가득 음식을 세팅했다.
마차에서 내려 가볍게 몸을 풀고 있던 어스와 루리아는 곧 천막으로 이동하여 앉았다.
레이몬드 사제도 곧 뒤뚱거리며 다가와 착석했다.
룬을 향한 짧은 기도를 끝으로 세 사람은 식사를 끝마쳤다.
심심했던지 레이몬드는 이번엔 휴식시간을 두 사람과 함께 보내고 싶어 했다.
“어스 경과 루리아 영애가 내기를 한다고?”
“예.”
“재밌겠네. 혹시, 나도 참여 가능한가?”
심심하긴 되게 심심했나 보다.
하긴 그 좋아하는 수인족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마차를 타고 있었으니 말하길 좋아하는 레이몬드 사제 입장에선 고역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관전이 아니라 참여요?”
“누가 승리할지 물품을 걸고 참여하는 걸 말하는 거네. 그래도 될까? 기분 나쁘면 안 하겠네. 우리 어스 경 기분 상하면 안 되지. 암, 안되고말고.”
말은 그리하지만 두 눈은 간청하고 있었다.
제발 하게 해달라고.
‘와아. 어이가 없네. 저 양반 진짜 사제 맞아?’
속으로 혀를 찼지만 한편으론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런데 내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건 내가 해결하지.”
흥미로운 사건을 접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레이몬드는 디콘을 소집했다.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다.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돈을 걸고 각자 승자를 예측하여 건 돈을 따가는 도박판이 만들어졌다.
‘레이몬드 사제만 특이한 게 아니었어. 교단 전체가 이상한 놈들 투성이었어.’
명색이 신앙인들이 어찌 저리 세속적인지.
물론 판돈의 액수는 많지 않았다.
디콘들 모두 교단에서 월급을 따로 받는다지만 그 액수가 많은 건 아니다.
이를 감안하였기에 레이몬드 사제가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판돈의 규모는 작았다.
판돈이 크면 끼어볼 생각이 있었던 어스는 이에 실망했다.
수억대 자산가가 되기 전의 그였다면 분명 혹해서 참여했을 규모였지만 지금의 그에겐 잔돈푼에 불과했다.
뿌듯하게도.
무료한 일정에 찾아온 이벤트.
디콘도 일꾼도 모두 동참하여 어스와 루리아의 대결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이이이, 작!”
레이몬드 사제의 시작을 알렸다.
루리아가 검을 뽑아 들었다.
처음엔 목검으로 하려던 그녀였지만 어스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진검을 들었다.
검을 쥔 루리아는 언제나 그렇지만 진지해진다.
안 그래도 진지한 사람이 더 진지해진다고 생각해보라.
마주 보고 있으면 위축감이 알아서 찾아온다.
‘여자 친구에게서 카리스마를 느끼는 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야. 헤헤.’
그리고 이를 좋아하는 놈 역시 아마 그밖에 없지 싶다.
인벤토리에서 직접 창을 꺼내지 않았지만 어스의 손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지금 창이 쥐어져 있었다.
이에 도박꾼들의 입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조심해!”
나직한 경고와 함께 루리아의 검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어스를 중심으로 반경 1미터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둘러싸고 있었기에 그녀의 검은 번번이 여기에 가로 막혔다.
박진감 넘치는 대련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이에 크게 실망했다.
물론 모두가 그러진 않았다.
레이몬드 사제를 비롯한 몇몇 디콘들의 표정만 보면 알 수 있다.
루리아의 검력이 더 높아졌다.
머지않아 익스퍼트가 될 거란 소릴 듣고 있는 그녀답게 검에 마나를 담을 수 있다.
마나 소드에 미치지 못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날카로움을 담고 있다.
그러한 검이 쉴 새 없이, 사방에서 폭풍 치듯 몰아치고 있었다.
‘이게 바로 그 내로남불인가?’
케이브맨 보스가 무형 장벽을 사용할 땐 미치고 팔짝 뛸 만큼 답답했는데 막상 자신이 사용해 보니 천상의 맛이 따로 없었다.
고생하는 여자 친구가 잠시 안쓰럽긴 했지만.
“30초!”
“…….”
“10초 남음.”
깨드득.
어스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이 가는 소리 같은데.’
진지한 사람이 삐지면 어찌 될까?
잠시 상상만 했을 뿐인데 진땀이 절로 흐른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
1분이 지나 버리면 저 검에 몸뚱이가 다진 고기 신세가 될 테니까.
“1분 땡!”
1분이 되자마자 사라진 무형 장벽, 그리고 멈춘 루리아의 검.
그 검은 어스의 미간과 손가락 한 마디 거리만 남겨두고 멈춰 있었다.
주르륵.
이건 지린 소리가 아니다.
더워서…… 더워서 땀이 난 것뿐이다.
3월 중순도 이리 더운데 여름엔 쪄 죽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내, 내가 이겼죠?”
그래도 역시 할 말은 해야 하는 법.
검을 거둔 루리아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남자친구를 제 손으로 죽일 뻔한 일 때문에 그런 것일까? 분명 그 때문이리라.
“조금 놀라긴 했지만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내일 다시.”
그 말을 툭 던지며 돌아서 걷는 루리아의 어깨가 유난히 들썩이고 있었다.
왠지말…… 느낌적으로 그녀가 엄청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어스 경, 만세!”
“어스 경, 만세!”
닥쳐, 도박에 미친 인간들아.
자신에게 돈을 건 소수의 사람들의 환호성을 뒤로한 어스는 헐레벌떡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 * *
결론적으로 말하면 루리아는 화가 난 상태가 맞았다.
다만 그 대상이 어스가 아닌 자기 자신이란 점이다.
어스는 그녀가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라 단단히 오해했다.
그녀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어스는 열정적으로 입을 털었다.
“천재 마법사가 달리 천재겠어요? 마법이 아니라 무예로 겨뤘다면 누나도 알다시피 삼 합도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알죠? 내 실력?”
“일 합.”
“에?”
“객관적으로 말한 거야.”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다. 고작 일 합이라니.”
“내기할까? 이번엔 마법 빼고?”
엄밀히 말하면 아이템의 힘인데, 마법 아닌데.
하지만 사실을 말해 봐야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루리아는 확실한 전제조건을 붙였다.
이를 승낙한다면 소원권은 백 퍼센트 승천하고 말 것이다.
그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
“맞아요. 난 일 합짜리에요.”
어차피 지는 건 뻔한데 일 합에 지든, 삼합에 지든 그게 뭐가 중할까.
중요한 건 소원권이다.
어스는 자존심을 버리고 실리를 택했다.
그래서 웃을 수 있었다.
그의 해맑은 웃음에 루리아는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스스로에 대한 화가 많이 가라앉았다.
“줘.”
“뭘, 줘요?”
“쪽지.”
“그, 그렇지. 여기 있어요.”
엉겁결에 쪽지를 건넨 어스는 순간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들어주긴 할 테지만 마지못해 들어주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루리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이걸 하자고?”
“마, 많이 그런가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루리아는 다시 한 번 쪽지를 읽었다.
그런다고 쪽지에 적힌 내용이 변할 리 없음에도.
나직한 한숨과 함께 루리아는 쪽지를 접었다.
그 순간 언뜻 드러난 쪽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도시에서 1시간 동안 팔짱끼고 데이트!〕
어스가 쪽지에 기입한 내용이었다.
말없이 쪽지를 접는 루리아의 행동에 어스는 좌절했다.
그녀가 내켜하지 않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연인인데, 연인이면 다 그렇게 하던데 혹시 그녀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걸까? 키 작은 남자라서? 빼빼마른 남자라서? 순간 오만생각이 머리에 둥둥 떠다녔다.
지금이라도 소원은 없던 것으로 하자고 말할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손도 잡고, 뽀뽀도 한 사인데 그러면 그건 연인인데.
자존감이 급 떨어지던 그때였다.
수줍음으로 물든 가느다란 목소리가 어스의 심장을 파고들어왔다.
“해.”
어스의 자존감은 언제 떨어졌냐는 듯 다시 씩씩해졌다.
“정말이죠?”
루리아는 어스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그에 어스는 환호성을 터트리려다 말았다.
방해꾼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어스 경, 몬스터 떼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속히 합류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죠? 갑자기 몬스터 떼가 몰려오다뇨?”
“곧 들이닥칠 것 같습니다. 속히.”
디콘의 재촉에 어스는 루리아와 함께 급히 걸음을 옮겼다.
‘젠장, 하필 지금 올 건 뭐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