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98화 (98/250)

098화

파이어 볼의 폭발에 의해 발생한 충격파에 의해 다리의 일부가 부서져 내렸다.

다리의 부실함에 입이 떡 벌어졌고, 심장은 크게 출렁거렸다.

‘루리아 누나의 뜻을 꺾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어. 역시, 내가 나서길 잘했어.’

안도만 하고 있기엔 그의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다.

파이어 볼을 날리며 시야를 확보하긴 했지만 그 이동 거리가 무척이나 짧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블링크를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를 시야에서 놓치는 순간 미아가 될 공산이 농후했으니까.

이러한 이유로 마나 회복 포션의 사용량은 이동 거리에 비해 비약적으로 많이 소모되고 있었다.

거기다 심리적인 압박감까지 더해져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흥건한 상태였다.

경황이 없어 본인도 이를 알지 못했다.

아무튼 그렇게 아찔한 추락과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며 블링크를 시전하던 그의 눈에 드디어 딛고 설 수 있는 지면이 들어왔다.

그제야 어스는 자신을 잠식하고 있던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여, 역시 사람은 땅을 밟고 있어야 해.”

어스는 간만에 해후한 지표면에 입을 맞춘 뒤 대자로 뻗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이 일시에 풀리면서 허탈감에 빠졌다.

30분간 지면과 하나가 된 듯 누워 있다가 정신을 차린 어스는 벌떡 일어나서 앞으로 걸었다.

그런 그의 주변은 파이어 애로우가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1시간 내내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었다.

그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걱정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쯤 전방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스 서식진가?’

과거 던전 보스인 마녀 타라카를 떠올리면 5띠 던전의 보스와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든 생각은 하나였다.

운이 좋았어!

그러나 지금은 빨리 보스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자연 어스의 걸음이 빨라졌다.

작고 희미한 빛이 점점 커졌으며, 빛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동굴 역시 커졌다.

하지만 어스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분 일초라도 빨리 보스를 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운 상태였다.

빛을 뿜어내는 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공동의 벽과 천장엔 이야기로만 들었던 야광주가 박혀 있었다.

별들이 사는 세상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장관이었지만 이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눈앞에 거대한 케이브맨이 수련자처럼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음에도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놈이 눈을 뜨기 전에 끝내야 할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 어스는 이를 좇았다.

‘콜 라이트닝!’

그래서 자신이 가진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스킬로 놈의 정수리에 벼락을 냅다 꽂았다.

번쩍, 콰-앙!

굵직한 뇌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잘게 부서진 채 사라졌다.

작은 뇌전이 사방으로 튀며 위험천만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 중심에 있던 거대 케이브맨이 고개를 좌우로 살짝 돌리며 눈을 떴다.

놈의 안광이 어찌나 형형한지 번갯불인 줄 알고 지레 놀란 어스는 블링크로 자리를 옮겼다.

‘뭐, 뭐야? 그냥 눈빛이었어?’

대상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어스가 모습을 드러낸 곳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에 어스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놈이 자신이 나타날 곳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예감도 꼭 안 좋을 땐 적중률이 높았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으로 속단하기엔 이르다.

그간 수천 병의 포션을 마시며 쌓은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여 포션을 취한 어스는 블링크를 연달아 사용했다.

첫 번째 블링크.

‘설마?’

두 번째 블링크.

‘망했다!’

이동된 자리에서도 놈의 시선이 그대로 따라왔다.

블링크는 어스에겐 히든 카드였다.

그런데 그 카드가 모조리 놈에게 간파당하고 있었다.

콜 라이트닝이 통하지 않은 것보다 이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큰 놈인데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이건 숫제 산 하나가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았다.

* * *

거대 공동의 케이브맨은 꽤나 진중했다.

얼마나 진중한지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했음에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선제공격을 당했음에도 반격하지 않았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뒤 거대한 눈을 빛내며 관찰하듯 어스를 살피기만 했다.

일반적인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러한 모습이 더욱더 어스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발광이던, 발기던 아무튼 뭔가 반응이 있으면 심리적으로 덜 위축될 텐데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게 벌써 30분 째다.

주르르.

얼굴도, 등줄기도, 저도 모르게 쥔 손바닥도 땀으로 흥건해졌다.

놈의 손에 맞아 죽는 게 아니라 탈수증상으로 죽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다.

그래서 지르고 보자는 심정으로 스킬을 사용하려 했는데.

“너는 인간인가?”

놈이 말을 했다.

마녀 타라카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마녀는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였기에 애당초 정상적인 대화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놈과는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보고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인간인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긴장감으로 굳은 심신을 달랠 겸 말장난으로 시간을 벌었다.

아니, 더 벌고 싶었다.

심리적인 위축감을 조금이라도 더 덜어내기 위해서.

“형상은 분명 인간인데 어째서 인간인 네게서 그분의 향기가 나는 거지?”

‘뭐지? 고도의 심리전인가? 에이. 설마. 한낱 몬스턴데.’

“너는 모르는가?”

놈의 목소리에선 진한 그리움 같은 게 느껴졌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병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굳이 저런 연출을 하면서까지 자신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일 이유가 있을까? 상대가 가진 최강의 화력도, 이동기도 모두 막아내고 간파한 놈이 아닌가.

‘놈이 혹할 만한 냄새가 내 몸에서 난다고?’

힌트라도 주면 이를 붙잡고 풀어볼 텐데 다짜고짜 저러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분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

혹시, 신과 연관된 건가?

명색이 성기사니 아예 그쪽과 연관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자신은 신성력을 사용…….

‘아니지, 농축된 마나라고 했는데.’

시스템이 분명 그리 말했다.

그렇다면 놈이 지금 맡고 있는 건 신성력이, 신이 내려준 힘이라고 믿는 사람들처럼 놈도 그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분의 향기를 품고 있음에도 그분을 모르는 건가? 안타깝군. 이런 상황만 아니면 살려주고 싶은데.”

놈은 대화를 원할 뿐, 살려둘 마음은 애당초 없었다.

이를 확인하자 어수선했던 어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군.”

싸움은 기세다!

설사 그 기세가 가짜라고 해도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일단 놈에겐 번개 속성은 안 통하는 것으로 단정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파이어 버스트.’

모든 마나를 파이어 버스트에 쏟았다.

어스를 중심으로 4개의 거대 불덩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파이어 버스트는 모성을 도는 위성처럼 그의 주변을 돌면서 보스의 눈을 현혹했다.

아니, 했으면 싶은데.

파이어 버스트가 맹렬한 기세로 케이브맨 보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사이 어스는 신속한 동작으로 포션을 들이켰다.

무형의 장벽이 이번에도 파이어 버스트를 가로막았다.

콰앙-!

피해는 줄 수 없었다.

다만 놈의 시야를 차단하는 효과는 볼 수 있었다.

이 틈에 어스는 포션을 마셨다.

‘파이어 버스터도 안 통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난감하다, 엄청.

남은 속성은 이제 수속성의 아이스 스피어.

이것도 놈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그땐, 이도 저도 아닌 무속성의 매직 애로우 뿐이다.

‘가만, 놈에게 일루젼은 통할까?’

일루젼은 차후로 미루었다.

일단 회복한 마나로 블링크를 사용했다.

여기서 그는 바짝 긴장했다.

도착점이 간파당할까 싶어서였다.

다행히 이번엔 간파당하지 않았고, 이에 어스는 큰 시름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후 어스는 파이어 버스트 대신 파이어 볼을 사용했다.

피해를 주기 위함이 아닌 교란의 목적이었다.

‘아이스 스피어가 통해야 할 텐데.’

슈아아아아.

* * *

다행히 수속성의 아이스 스피어는 놈에게 통했다.

놈의 전신을 보호하는 무형의 벽이 유형화됐다.

똑같은 화살이지만 그것이 보일 때와 보이지 않을 때의 차이는 엄연히 다르다.

그처럼 무형의 벽을 식별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공격에 차츰 깎여 나가는 것을 확인한 어스는 더 이상 놈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문제는 무형의 벽에 피해를 입히는 게 아이스 스피어 하나라는 게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아이스 스피어 하나만 줄곧 날릴 수는 없었다.

놈이 샌드백도 아니고 제 자리에 가만있는 게 아니다 보니 블링크를 수시로 사용해야 하는데, 파이어 볼로 놈의 시선을 교란하지 않은 상황에선 어김없이 블링크가 간파 당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파이어 볼을 건너뛰고 블링크를 사용했을 때 어스는 죽을 뻔했다.

놈이 휘두른 거대한 석조 칼에 맞아.

다행히 그 칼은 어스의 팔만 스쳤다.

생명력 덕분에 고통이나 상처는 남지 않았지만 로브가 상했다.

그래도 살아남았으니 감사한 노릇이다.

아무튼 스쳐 맞은 그 공격에 100의 생명력이 날아갔다.

‘제대로 맞으면 그냥 죽는 거야.’

경각심이 최고조까지 높아진 이후 어스는 잊지 않고 파이어 볼을 사용했다.

마나 회복 포션을 넉넉하게 준비하였기에 포션이 떨어질 걱정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제길, 앞으로 5띠 던전은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피해축적에 힘을 쏟았다.

제아무리 단단한 성벽도 지속되는 공격에는 버티지 못하듯 놈이 가진 무형의 장벽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

바사삭.

그때부터 사정은 180도 달라졌다.

아이스 스피어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킬도 놈에게 피해를 입혔다.

“끄아아아아아아-!”

자신을 살려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지껄이더니 이젠 그 입에서 비명이 터지고 있었다.

감미롭다, 미치게.

“죽으면 안 아파 그러니 빨리 죽어! 파이어 볼! 아이스 스피어! 파이어 버스트!”

공격을 쏟아붓고 블링크로 재빨리 뒤로 빠지며 포션 완샷.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 왔다.

‘콜 라이트닝!’

콰르르릉. 번쩍.

콰르르릉. 번쩍.

연속 2회.

흉측한 몰골로 변한 놈의 단단한 외피가 일제히 폭발하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끝인가? 그렇게 말하기엔 이르다.

알림이 뜨지 않았으니까.

벌컥.

‘콜 라이트닝!’

-던전 보스…… 8,000코인을 습득합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 3을 획득됩니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3을 획득합니다.

‘대박!’

드디어 지겨운 동굴형 던전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다.

큰 선물과 함께.

그러나 웬걸 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이템이 발견되었습니다.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습득하시겠습니까?

뭔가 더 준단다.

아이템?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시스템이 주는 건 모두 승낙해야 한다.

“승낙!”

-아이템 무형 방벽을 습득합니다.

-아이템을 결합할 장비가 있어야 합니다.

시스템과 별개로 던전이 무너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당장 장착할 장비가 없으면 큰일 날 상황인 것 같았다.

“로, 로브 장착!”

-해당 아이템과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거절 알림에 화들짝 놀란 어스는 서둘러 인벤토리에서 손때 묻은 창을 꺼냈다.

그런 어스의 표정은 불안했다.

방벽이면 방패랑 맞지 않나?

그런데 방패가 없었다.

그러니 이거라도 꺼낼 수밖에.

“이거!”

그래서 그의 목소리엔 불안감이 가득했다.

-무형 방벽을 창에 장착합니다.

살았다, 아니 다행이다.

-아이템 활성화까지 72시간의…….

이어진 말은 다 듣지 못했지만 마나 연공법이 칭호화되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조율이 필요하다는 건 좋은 일로 볼 수 있었다.

‘고생 끝에 행복이라더니.’

어스의 육신과 의식은 던전의 완전한 붕괴와 함께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