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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97화 (97/250)

097화

본진에서 출발한 지 40분 만에 정찰대는 몬스터 무리와 조우했다.

게른 산맥 이후 5띠 던전은 어스도 처음이었기에 놈들을 포착했을 때 살짝 긴장했다.

몬스터는 정찰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경험 많은 두 용병의 조언과 적극적인 움직임 덕분이었다.

던전 몬스터는 케이브맨이라 불리는 거인이었다.

3미터에 육박하는 신장과 암석처럼 단단한 외피로 인해 검이나 창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

놈을 잡으려면 둔기나 마나를 사용해야 한다.

정찰대에서 마나를 다루는 자는 단 두 명이다.

기사 블릭과 마법사인 어스뿐이다.

디콘의 무장이 충실했지만 그들이 가진 무장 중 케이브맨에게 통할 수 있는 건 고작 한손 메이스가 전부였다.

하지만 양손으로 쓰는 메이스면 몰라도 한손 메이스로 저 단단한 외피는 부수기 힘들다.

무기의 수준을 압도적으로 끌어올릴 괴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모를까 디콘에게 이는 바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케이브맨을 잡을 수 있는 괴력이 있었다면 디콘이 아니라 몽크나 그보다 윗줄인 성기사가 되었을 테니까.

‘디콘은 신성력도 사용할 수 없지.’

사람들은 사제나 성기사가 쓰는 힘을 룬이 내려준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스 역시 얼마 전만 해도 그리 생각했으나 지금은 이에 강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농축된 마나의 힘이 체내에 유입되었습니다.

레이몬드 사제에게서 힐을 받을 때 시스템의 알림 때문이었다.

물론 이를 입 밖에 낼 생각은 없다.

아니, 입 밖에 내선 안 된다.

그리했다간 모든 걸 잃고 공공의 적으로 전락할 테니까.

케이브맨은 세 마리로 종유석을 다듬은 듯한 몽둥이를 지니고 있었다.

스쳐 맞아도 뼈란 뼈는 죄다 바스러질 것 같았다.

‘저기 맞으면 생명력은 얼마나 닳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했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할 생각은 없었다.

“블릭 경.”

“예, 어스 경.”

“케이브맨을 상대해 본 적 있나요?”

“말로만 들었지 케이브맨을 보는 건 저도 처음입니다. 어스 경은 저 놈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케이브맨을 목격한 이후 정찰대의 긴장감은 급격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모두가 어스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케이브맨은 저도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부딪쳐 봐야죠.”

“그럼 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겠습니다.”

어스는 자신이 보유한 스킬을 쭉 펼쳐보았다.

어떤 스킬이 놈들에게 쥐약이 될지 하나하나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의 선택을 받은 건 파이어 볼이었다.

블릭의 지휘에 따라 디콘 넷과 용병 둘이 준비를 갖춘 걸 확인한 어스는 한발 앞으로 나서 파이어 볼을 시전했다.

세 개의 파이어 볼이 주변을 붉게 밝히며 케이브맨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갔다.

지력 30, 강화 3의 영향으로 파이어 볼의 위력은 초기보다 몰라보게 강력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이를 믿었다.

상대의 외모가 범상치 않다지만 자신의 파이어 볼도 그 못지않았기에.

어스의 공격을 알아차린 놈들이 즉각 반응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놈들은 상당히 재빨랐다.

하나 파이어 볼을 피하기엔 부족했고, 놈들은 가슴팍, 다리, 팔에 파이어 볼을 맞았다.

“거아아아아!”

“코아아아!”

“코옵!”

단 한 놈도 죽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놈들이었다.

어스의 표정은 구겨졌다.

반면, 파이어 볼의 위력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정찰대는 어스의 마법에 놈들이 모드 제거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결과에 그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움켜잡았다.

케이브맨 셋이 괴성을 내지르며 어스를 향해 내달렸다.

달릴수록 놈들 사이에 격차가 발생했다.

다리를 다친 놈은 뒤에, 팔을 다친 놈은 선두였다.

가슴팍에 파이어 볼을 맞은 놈은 중간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파이어 볼을 버텼으니 이건 어떠냐.’

두 번째 준비한 스킬은 체인 라이트닝이었다.

번쩍!

세 놈이 동시에 경직되어 뒤로 자빠졌다.

파이어 볼의 위력이 강해졌다지만 3서클에 불과하다, 반면 체인 라이트닝은 5서클이다.

무려 2단계나 차이가 난다.

당연히 위력도 천지 차이다.

하물며 얼마 전 안전강화까지 모두 마친 상태라 체인 라이트닝의 위력은 더욱더 강력한 상황.

만에 하나 체인 라이트닝이 통하지 않는다면 마나 회복 포션을 물 마시듯 마셔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

되도록 포션은 지양하고 싶었기에 이번엔 어스도 긴장했다.

그 긴장이 무색하게.

-케이브맨을 처치했습니다. 30코인을 습득합니다.

-케이브맨을 처치했습니다. 30코인을 습득합니다.

-케이브맨을 처치했습니다. 30코인을 습득합니다.

놈들의 죽음을 알리는 알림이 떴다.

‘여기선 체인 라이트닝으로 밀고 나가야겠네.’

* * *

케이브맨은 수십 마리씩 떼 지어 모여 있지 않았다.

적게는 둘, 많으면 대여섯 마리가 전부였다.

체인 라이트닝의 특성상 적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다.

한데 적의 숫자가 두 자리 수 이하다 보니 우려했던 대로 마나 회복 포션의 소모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원정대는 하루 1킬로미터씩 전진했다.

케이브맨의 부산물은 하루하루 쌓여가고 있었다.

참고로 케이브맨의 부산물은 고가인 마법 통신구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였기에 부산물은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성과금에 대한 대원들의 기대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던전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보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어스가 사냥한 케이브맨의 숫자는 2백에 달했다.

‘이렇게나 잡았는데 레벨업이 안 되네.’

원정대는 별다른 피해 없어 좋아했지만 그에 반해 어스는 조바심이 생기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나연공법으로 마음을 달래곤 했지만, 레벨처럼 그의 마나연공법도 현재 별다른 진전이 없어 그의 애를 태웠다.

하지만 모든 게 다 답보 상태는 아니다.

루리아와의 관계는 그날 이후 많이 좋아졌다.

“맛이 어때요?”

매끼를 함께 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어스의 곁에, 루리아의 곁엔 서로가 있었다.

이러다 보니 원정대에선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로 소문이 났다.

이 사실은 레이몬드에게서 들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무척 당황했다.

루리아의 마음이 후퇴할까 봐.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하단 듯 행동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잡진 못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선 손을 마음껏 잡을 수 있었다.

“주방에서 갓 나온 것 같아.”

어스는 식도락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때문에 그의 인벤토리에는 유명한 음식점의 음식이 종류별로 보관되어 있었다.

정통 요리에서부터 퓨전 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시중에 있는 공간 주머니는 음식을 장기보관할 수 있지만 그 맛까지 유지하지 못한다.

반면 어스의 인벤토리는 그게 가능했다.

적당한 향신료와 육즙이 어울린 큼직한 스테이크와 곁다리 음식을 모두 먹은 두 사람은 차가운 과일 주스로 입안에 마무리했다.

“루리아 누나.”

“응?”

“…….”

허공에 띄워 놓은 파이어 볼의 불빛 때문인지, 과일 주스 때문인지 유난히 그녀의 입술이 탐스러웠다.

홀린 듯 한참을 바라보던 어스는 아차 싶었다.

루리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기 때문이었다.

“하, 하하. 이제 일어나죠.”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며 어스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턱.

하지만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루리아가 그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찌르르.

루리아도 따라 일어나 어스를 돌려세웠다.

쪽.

“내, 내일 봐.”

루리아는 전광석화처럼 사라졌다.

어스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 이렇게 황홀하고 달콤한 맛이라니.’

로맨스 소설에서 본 수많은 미사여구조차 이를 설명하기엔 부족해 보였다.

영혼이 탈탈 털린 어스는 밤새 뒤척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동굴이라 낮밤이 따로 없었지만.

* * *

5띠 던전이란 명성이 무색하게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이 쭉쭉 전진하던 원정대가 처음으로 위기를 맞이했다.

몬스터에 의한 것이 아닌 지형적인 요소 때문이었다.

원정대의 눈앞에 낭떠러지와 함게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외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 끝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끝은커녕 중간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다리 아래는 얼마나 깊은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으며, 그 아래선 간혹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좁은 다리에서 저와 같은 바람을 만난다면 균형을 잃을 게 뻔하다.

하지만 다른 돌아갈 길도 없기에 저 다리가 아니면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도 없었다.

“나, 난 못가네. 때려 죽어도 못 가.”

고소공포증이 있는 레이몬드는 보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지 시선 한번 주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사실 어스도 저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블링크 시전이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보스를 잡으려면 반드시 저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외면하는 건 비단 레이몬드 사제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그러했다.

하긴 무저갱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좁은 다리 위를 누가 건너고 싶으랴.

“그래도 가긴 가야 해요.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 없잖아요.”

“그, 그렇긴 하지만. 난 도저히 건너갈 자신이 없네.”

어차피 다 데려갈 필요는 없다.

누가 됐건 보스만 잡으면 되니까.

‘파이어 볼을 반대편으로 날리면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리되면 숨기고자 하는 블링크의 비밀이 들통나게 된다.

이것만은 감추고 싶은 그였기에 이는 못마땅한 방법이었다.

“어스 경.”

“예.”

“내 이런 말 해서 미안하네만 자네만 가면 안 될까? 어차피 지금까지 자네 혼자서 몬스터를 다 잡지 않았나? 그러니 보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못마땅하다.

‘저 인간은 잘 나가다 한 번씩 사람 빈정 상하게 만든다니깐.’

감정이 표정에 묻어날까 봐 감정을 추스른 어스는 기사들을 불렀다.

오랜 세월 육체를 단련한 그들이라면 반대편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 또한 역시 떨떠름한 반응이 나왔다.

저들을 통해 밧줄을 연결하여 이를 잡고 건널까 했는데 반응이 저러니 강요하는 순간 원수가 될 것 같았다.

그때.

“제가 해볼게요, 어스 경.”

루리아가 나섰다.

어스에게 있어 루리아의 말은 마른하늘의 날 벼락같은 소리였다.

차라리 자신이 가면 갔지 어떻게 연인을 험지로 보낸단 말인가.

어스는 처음으로 루리아 앞에서 정색했다.

“안 됩니다.”

“아뇨,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몸에 밧줄을 묶고 이동하면 설사 떨어지더라도 크게 다치진 않을 거예요.”

끝이 어디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만한 길이의 밧줄이 있을 리 없다.

설사 있더라도 문제다.

만약 다리가 무너져 아래로 떨어진다면 밧줄의 길이만큼 벽에 부딪쳤을 때의 피해도 심각할 게 뻔하다.

그러니 어찌 그런 위험한 일에 그녀를 내보내고 뒤에서 지켜보기만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감춰둔 패를 들키는 게 낫다.

백 번을, 천 번을 생각해도.

“웨이즈 경.”

“예, 어스 경.”

“원정대를 뒤로 물리세요.”

“예? 그게 무슨?”

“저길 건너가는 건 무립니다. 그건 경도 아실 겁니다.”

“다른 길은 없지 않습니까?”

“내게 방법이 있으니까 그 걱정은 내게 맡기세요.”

“방법이 있는 겁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다음에 볼 때는 밖에서 보게 될 겁니다.”

주변이 쥐죽은 듯 조용하였기에 그의 말은 모두의 귀에 생생했다.

이에 사람들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불었다.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웨이즈는 내키지 않았지만 지휘권자인 어스의 명령에 따랐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어스와 루리아만이 남았다.

“정말 자신 있어?”

“내가 어떤 마법산지 루리아 누나도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내 걱정은 티끌만큼도 하지 말아요. 다음에 볼 땐 분명 밖일 테니까.”

루리아는 말없이 어스를 응시했다.

진위 여부를 알아보겠다는 듯.

뭐, 그런다고 사람 마음을 어찌 그녀가 알 수 있겠는가.

루리아는 그와 끝을 알 수 없는 외다리를 쳐다본 뒤 어스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곤 입술로 그의 볼을 훔쳤다.

쪽.

“밖에서 봐.”

곧 루리아는 사라졌다.

번갯불인 줄.

멍.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더니……. 이러다 내 볼이 남아나지 않겠어.’

헤벌쭉.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