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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95화 (95/250)

095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어스의 집은 2월 첫날에도 파티를 열었다.

이번엔 차분한 가운데 각자 선물을 준비하여 태어난 아이와 산모에게 마음을 전했다.

하늘아래 의지할 곳이라곤 단 둘 뿐이었던 조쉬와 실비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감동한 부부의 눈물은 선물한 사람들의 가슴에 꽤 깊은 여운을 남겼다.

영원한 불행도 없듯 영원한 행복도 없다.

여운이 가시자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스는 거너와 함께 자신의 방에서 자신이 구상한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아그네스, 린다, 니코도 부르려 했지만 그들 모두 두 사람에게 맡겨 버렸다.

자신들의 미래가 달린 일임에도 말이다.

“치료 포션 제작에 전념하는 건 어때? 전에도 잘나가던 게 지금은 생산이 수요를 못 따라가서 가격이 2배나 올랐더라.”

“던전이 원인이죠?”

“그렇지. 덩달아 용병들 몸값도 천정부지야. 이런 시절이 올 줄 알았으면 해체하는 게 아니라 규모를 더 키웠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

“솔직히 말해서 거너 형이 용병대를 해체한 건 린다 누나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죠.”

“그런 말 하지 마. 나도 그 사건 이후 마음이 돌아섰던 것도 사실이니까.”

게이브와 깁스를 떠올린 거너의 얼굴은 씁쓸함으로 물들었다.

어스 역시 그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지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둘 다 좋은 사람들이니까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됐다, 그 이야긴 그만하자. 어차피 용병이란 게 칼끝에 선 인생이니까. 그보다 정말 치료 포션에 집중할 생각은 없어? 내 생각에 최대 4배까지 뛸 것 같은데.”

공방은 돈을 벌려고 하는 사업이 아니다.

안정적인 마나 회복 포션을 공급받기 위한 사적인 용도였다.

그러던 것이 이왕이면 재료값도 충당하는 한편 예전의 동료들을 다시 불러들여 함께 잘 먹고 잘 살면 좋지 않을까 싶어 거너 일행을 찾아간 것이다.

“제가 이번에 소비한 마나 회복 포션의 물량만 천 개예요.”

“뭐? 천 개? 던전을 몇 개나 돈 거야?”

치료 포션과 달리 마나 회복 포션의 수요는 일부에 한정되어 있어 가격에 변동은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그럴지 장담할 수 없었다.

치료 포션과 마나 회복 포션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약초의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반면 포션 제작에서 가장 큰 가격 비중을 차지하던 몬스터 부산물의 가격은 전보다 오히려 품질이 더 좋아졌음에도 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운송, 보관, 유통, 가공 등에 소요되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삶 가까이에 던전이 자리한 영향이다.

“별로 안 돼요. 아무튼 마나 회복 포션은 한 달 기준으로 최소 1천 개는 생산해야 해요. 나머진 형이 조쉬 씨와 상의해서 결정하세요. 참, 확보한 재료는 어떻게 됐어요?”

“네 말대로 약초 위주로만 확보했어. 조쉬 씨에게 물어보니 지금 확보한 양이면 마나 회복 포션 2천, 치료 포션 3천 개까진 제작이 가능하다더라. 물론 하급 기준이지만.”

글리시아 영지에서 대박을 터트릴 줄 알았다면 재료 확보에 더 투자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만약 그랬다면 최소 2배 이익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배는 항구를 떠났음인데.

“그리고 저와 인연이 있는 피어스 남작령의 허든 상회에 연락해서 포션에 들어가는 약초를 부탁해뒀어요. 오늘 아침에 연락하니까 제법 많은 물량을 확보했더라고요. 20일 후면 도착할 거예요.”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을 텐데 자금엔 여유가 돼?”

자신이 보유한 현금을 듣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거너의 턱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굳이 그 이야기는 꺼낼 필요가 없으니 넘어갔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허든 상회를 끌어들였다면…… 우린 필요 없지 않나?”

“아니죠. 생산은 조쉬 씨가 하지만 관리는 형이 맡아 줘야죠. 제가 장담하는데 조쉬 씨보다 형이 더 바쁠 거예요. 인원이 부족하면 뽑아서 쓰시고요. 그리고 제가 단독으로 던전 원정을 할 경우 부산물이 나올 텐데 포션 제작에 필요한 부산물 외에 나머진 형이 판단해서 판매하세요. 허든 상회를 이용해도 되고 다른 상단을 알아봐도 되고, 전적으로 형에게 맡길게요.”

“전에 한 이야기보다 규모가 엄청 난데. 어스야.”

“예.”

“너 나 믿을 수 있어?”

“배신 때리게요?”

“그럼 제 명에 못 살겠지?”

“당연하죠.”

“크크. 빈말이라도 믿어 준다는 말은 안 하네.”

“우리가 그런 말 할 사이는 이미 지났잖아요. 아무튼 관리를 맡길 테니까 형이 잘 처리해 주세요.”

“넌?”

“전 따로 할 일이 있어요.”

이후 어스는 거너와 몇 가지 일을 더 상의한 뒤 운용자금으로 100만 테스를 내놓았고, 거너는 우려했던 대로 턱이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사업 계획을 마무리한 어스는 가족들과 따로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출발…… 하려다 하지 못했다.

자신을 찾는 손님이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 * *

“벤슨 할리? 네가 여기 왜 와?”

어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기세등등한 벤슨 할리를 보았다.

“왜? 어이가 없네. 당연히 지난날의 잘못을 사과받기 위함이다.”

“알았어, 얼른 사과하고 꺼져.”

“감히, 할리 가문의 나 벤슨을 또 한 번 모욕하려는 것이냐! 근본도 모르는 천것이.”

마법사를 준 귀족으로 인정한다고는 하지만 정통 귀족에겐 아무래도 밀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어스는 어디에 소속된 마법사도 아닌 개인이었기에 벤슨 할리 입장에선 문제의 소지도 없었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거너, 린다, 니코, 아그네스는 용병 시절 사용하던 무기를 들었다.

행크 역시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활을 들었다.

루시 역시 이에 질세라 자신의 오빠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벤슨 할리를 같은 시선으로 쏘아보며 목검을 만지작거렸다.

어스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었다며 온몸으로 이를 발산하는 이들을 보자 든든함이 차올랐다.

곧 조쉬와 그의 아내에 이 집의 고용인들까지 여기에 가세했다.

이를 본 벤슨은 기분이 나빴는지 그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천한 것…….”

그러나 벤슨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주춤거려야만 했다.

어스의 좌우로 파이어 볼 7개가 자신을 태워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리시아 영지의 던전을 정리하면서 받은 보너스 업적 포인트와 레벨업으로 받은 업적 포인트 모두 정신 스탯에 분배한 현재 어스의 마나 총량은 350으로 파이어 볼 7개를 시전할 수 있는 양이었다.

“지금 누구보고 천하다는 거지? 그것도 내 집에서? 진정 죽고 싶은 거냐? 벤슨.”

벤슨 할리는 혼자 오지 않았다.

뒤에 기사로 보이는 남자 셋을 대동하고 있었다.

마법사와 기사가 싸울 경우 거리의 유무가 승패를 좌우한다.

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깨지지 않은 진리였다.

어스와 두 기사와의 거리는 불과 10미터, 기사의 살상반경에 든 상황이다.

만약 기사가 공격한다면 어스는 두 눈 뜨고 목이 잘리게 될 것이다.

거너, 린다, 아그네스는 처음부터 벤슨 할리가 아닌 저 두 명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눈 한번 떼지 않았다.

어스 역시 벤슨이 대동한 두 기사를 크게 신경 쓰고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이를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쳤다.

그렇다고 무작정 큰소리만 치는 건 아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내가 교단을 믿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물론 그의 믿음은 신을 향한 것이 아닌 교단이 가진 영향력이다.

이처럼 든든한 배경이 있는데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찌 초라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랴.

한편 벤슨은 이를 까맣게 모른 채 오직 실력 하나만 믿고 어스가 자신을 여전히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혀, 협박이냐! 하하. 감히 할리 가문의 3남인 나 벤슨에게 협박이라니. 네놈이 아무리 마법사이더라도 이는 귀족을 모욕하는 처사임을 모르느냐!”

“닥치고 용건이나 밝혀. 우리가 얼굴 보고 하하 호호할 사이는 아니잖아.”

“언제까지 그리 거만하게 구는지 내 두고 보겠다. 나 할리 가문의 3남 벤슨이 마법사 어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네놈이 나설 일은 없을 테고. 저들이냐?”

어스는 무시조로 툭 던졌다.

이에 벤슨의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가 되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비열하게 웃었다.

“천하고 무식한 놈이라 당연히 결투의 예도 잘 모르겠지. 그래 이해하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이건 정당하고 합당한 것이다. 자, 선택해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게 빌며 개처럼 짖던가 아니면 결투에 응하던가.”

“그거 좋네. 무릎 꿇고 개처럼 짖는 거. 그런데 말이야. 벤슨, 그것만 하면 너무 싱겁지 않아?”

“싱거워? 그게 무슨 개소리냐?”

“너도 잘 아는구나. 됐다. 그건 됐고. 내기는 어때?”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설마 이 의미를 모르진 않으리라.

“시, 신성한 결투에 돈을 걸자는 것이냐? 하하. 역시, 혈통은 못 속이는군.”

“내기 없으면 결투도 없다. 그러니 그냥 가라. 설마, 결투에 응하지 않는 상대를 공격하려는 건 아니지? 더구나 왕도에서?”

어스가 결투를 거절할 것이라곤 아예 생각하지 않았는지 벤슨 할리는 크게 당황했다.

“조, 좋다. 내기. 그래, 얼마냐? 말해 봐.”

“조금 많은데.”

“하하, 감히 대 할리 가문의 3남인 내 앞에서 돈 자랑을 하려는 것이냐? 지나가는 개도 웃겠군.”

녀석의 건방이 곧 사색으로 바뀌리라.

“별로 안 돼.”

한 장, 두 장, 세…… 다섯 장.

교단에서 공증한 1천만 테스 수표 다섯 장이 어스의 손에서 팔랑거렸다.

제아무리 부유한 할리 가문의 3남이라곤 하지만 5천만 테스는 벤슨 역시 지금껏 만져 본 적이 없는 거금이었다.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벤슨 할리,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란 건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벤슨 할리.

“거, 거짓말이다! 그건 가짜야! 어떻게 너 같은 별 볼일 없는 녀석이 그런 거액을 가지고 있단 말이냐!”

“너 그거 교단 모독이다. 잘 생각하고 말하는 게 좋을 텐데.”

“무슨 개소리냐! 내가 언제 교단을 모독했단 거지? 오히려 네 놈이 교단을 모독한 것임을 모르더냐! 그 수표가 진짜면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데 평생 널 주군으로 모시마! 그러나 반대라면 네가 날 평생의 주군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벤슨이 데려온 두 기사는 뛰어난 안력으로 수표의 정교함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할리를 만류하려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그 입을 틀어막지 못했다.

“새끼, 내가 유능한 건 알아서 그새 잔머리를 굴렸군. 그런데 이걸 어째. 너 같은 식충일 들일 생각이 내겐 쥐뿔도 없는데 말이야. 아무튼 수표를 못 믿겠다고 했으니 이건 어때?”

어스는 성기사임을 증명하는 패를 내밀었다.

성기사 사칭은 교단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뜻이다.

귀족이나 왕족을 사칭하는 사기꾼은 있었을망정 교단의 신분증은 위조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성기사를 사칭한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성기사를 천한 것이라고 불렀지? 네 그 말 그대로 교단에 전해 줄게. 너랑 할리 가문이 과연 얼마나 잘 버티는지 두고 보마.”

연이은 충격에 벤슨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흐느적거렸고, 그런 그를 두 기사가 잡아주었다.

엄청 당황했다.

교단의 인물, 그것도 성기사를 상대로 결투를 신청한 건 벤슨 할리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할리 가문 전체에 악영향이 미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걔 데리고 가세요. 그리고 오늘 이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다면 확실한 성의를 보이라고 전하세요. 놈이 깨면 놈에게 전하든 혹은 할리 가문에 전하든.”

벤슨, 아니 할리 가문에 톡톡히 빚을 씌운 어스는 과연 할리 가문이 어떻게 나올지 내심 기대하며 세 사람을 웃으며 배웅했다.

‘이것이 바로 찾아오는 금융 서비스란 건가?’

고비 아닌 고비를 넘긴 어스, 하지만 그의 진짜 고비는 따로 있었다.

가족과 지인들이었다.

특히, 거너의 경우 충격은 더 컸다.

별거 아니라고 내준 100만 테스가 어스에겐 진짜 별거 아닌 푼돈에 불과했단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 * *

“루비오 님. 할리 가문에서 그자와 접촉했습니다.”

“할리 자작가?”

“예, 필시 할리 가문에 그자의 소식이 들어간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직계를 보내는 성의까지 보일 리 만무합니다.”

루비오는 수하의 말에 눈살을 모으며 답답한 속을 손끝에 싫어 탁자를 때렸다.

단단한 오크 탁자는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쩍쩍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를 본 루비오의 수하는 상관의 분노에 몸을 잘게 떨었다.

루비오가 이처럼 분노한 배경은 교단 내부의 권력 다툼에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려는 자들 때문이었다.

세속에 찌들대로 찌들어 신앙심을 저버린 자들.

“교단 내부 권력 다툼에 외부 세력의 개입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성전단 13대의 힘을 모두 투사하여서라도 할리 가문의 비리를 찾아내도록.”

“그럼 성기사 어스는?”

“잊었나? 우리의 계율을.”

“입교한 자는 해하지 않는다.”

“됐으니 그만 가봐.”

수하가 물러가자 루비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누적된 힘을 더는 견디지 못한 탁자가 힘없이 무너졌다.

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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