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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90화 (90/250)

090화

모든 원정대엔 교단의 인물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국제 합의에 따라 오스완드 영주는 신전에 이를 통보했다.

던전 자체가 몬스터의 소굴이니 당연히 그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전력을 기대하였으나 막상 도착한 이들은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하급 사제 하나와 디콘 넷이 전부였다.

디콘은 세속 사제로 불리지만 실제 저들은 교단의 병사로 보는 것이 맞았다.

성기사나 전투 사제가 따로 존재하는 교단이었지만 그 수가 많지 않다보니 디콘이란 전례 없는 위계를 만들었다.

왕들이나 영주들에게 있어 이는 마뜩찮은 조직이었다.

자신의 나라에, 자신의 영지에 외부 무장 세력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그 누가 좋아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디콘이란 군사 조직은 교단의 입김을 더욱더 강력하게 만드는 수단중 하나로 그 역사가 무려 천 년에 이른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스완드 영주님.”

“어서 오십시오. 레이몬드 사제님.”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원정대를 꾸리셨다니.”

“영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하긴 하죠. 이럴 때 일수록 신전에 나와 룬께 기도하면 좋을 텐데.”

집에서 개인적으로 하는 기도는 공짜다, 하지만 신전에서 하는 기도는 공짜가 아니다.

물론 대놓고 돈을 내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헌금함을 들이미는 데 어찌 이를 외면하랴.

이러하다보니 신전에선 부유한 자의 방문을 좋아했다.

부자 한명이 서민 백 명보다 더 많은 헌금을 내기 때문이다.

권력자도 신전이 좋아하는 부류였다.

권력자치고 가난한 자가 없으니까.

거기다 그들은 사회적인 지위에 따른 체면도 중시하기에 더더욱 씀씀이가 컸다.

하물며 이 경우엔.

‘대륙의 모든 부는 교단에 쌓여 있다는 말도 있지.’

모르긴 몰라도 이번 일로 적잖이 뜯어 갈 것이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라곤 하지만 어쩜 여친, 더 어쩌면 아내가 될지 모르기에 마냥 남의 호주머니 같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강도로 보였다.

“레이몬드 사제께서 어리석은 저희를 위하여 룬께 간청해주십시오.”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하면 원정대 규모는 어찌 됩니까?”

응접실의 주인은 당연히 오스완드 영주였지만 사제는 마치 제 집이라도 되는 것 마냥 행동했다.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었지만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왕이 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먼저 이번 원정대의 책임자부터 소개하고 마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 이 사람은 제 딸의 지인인 마법삽니다. 어스 마법사 저 분은 레이몬드 사제님일세.”

내키지 않았지만 룬 교단의 성세와 힘을 생각하여 어스는 굽히고 들어갔다.

“어스라고 합니다. 레이몬드 사제님과 함께하여 영광입니다. 룬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길.”

“룬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흠, 한데 젊군요. 아니 이 경우엔 어리다고 해야 하나?”

오스완드 영주는 어스의 감정을 고려하여 개입했다.

“보기와 달리 어스 마법사는 매우 뛰어난 마법삽니다. 그의 명성 또한 드높지요. 혹시 침묵의 숲에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에 대해 아십니까?”

“들어는 보았습니다. 혹시, 어스 마법사가 소문의 그 괴물 마법사라도?”

어스를 바라보는 레이몬드 사제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맞습니다.”

“듣기론 거칠고 위압적인 용모라고 들었는데 꽃과 같은 소년이라니. 소문이란 참 오묘하군요. 어떤 게 진실인지 모르겠군요. 실력이라도 보면…… 흠, 좋을 듯한데.”

에둘러서 말했지만 실상은 네 능력을 보여라는 뜻이었다.

레이몬드 사제의 태도가 내내 마음에 들지 않던 어스는 그가 자신을 꽃에 비유하자 더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어스는 자신의 마법으로 사제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나가시죠.”

어스는 의도적으로 로브 자락을 거칠게 쳐 그 자락이 사제를 때리게 만들었다.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이를 얻어맞은 사제는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이쿠, 이런 실례했습니다. 제가 부주의해서 사제님을 놀래게 만들었습니다. 사제님, 괜찮으세요?”

어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죄인마냥 쩔쩔 맸다.

이에 대놓고 화를 낼 수 없었기에 레이몬드 사제는 억지웃음으로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모두 영주관 뒤뜰로 나왔다.

“영주님. 저기 저 나무에 제 마법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나무가 못쓰게 될 텐데 괜찮을까요?”

“상관없네.”

사실 오스완드 영주 역시 어스의 마법은 본 적 없었기에 내심 그의 실력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다.

때문에 레이몬드 사제의 도발적인 말투에도 모른 척했다.

어스는 자신이 보유한 스킬 중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킬을 시전 했다.

바로.

‘콜 라이트닝.’

콰르르르릉, 번쩍!

세상을 뒤덮는 묵직한 굉음과 함께 지상을 향해 내리 꽂히는 굵직한 새하얀 번개.

한 줄기 번개는 거대한 나무를 반으로 쪼개고도 힘이 남아 지면을 까맣게 태워 버렸다.

‘마녀는 이런 걸 어떻게 수십 방이나 맞고도 버텼을까?’

유령 저택의 마녀는 지금 생각해도 그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눈앞의 전경에 모든 이들이 숨을 멈추었다.

영문을 모르고 있던 병사와 하인 하녀들은 이에 놀라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었다.

예고도 없고, 딱히 준비하는 모습도 없이 곧장 거대한 벼락을 내리 꽂은 어스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기세등등.

모두가 벙찐 얼굴로 어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이에 어스는 자랑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으나, 보는 시선이 있어 애써 이를 억눌렀다.

겸손, 겸손, 겸손!

“바, 방금 그…… 그 벼락 어스 마법사의 마법인가?”

“콜 라이트닝이라는 마법이죠.”

“대, 대체 저와 같은 위력의 마법이면 몇 서클인가?”

“5서클입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겨울 매서운 바람에 불씨를 머금은 잿더미가 일제히 일어나 휘날렸다.

이를 배경으로 서 있는 어스의 모습은 모두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천재 소년 마법사로.

‘무, 무조건 잡아야 한다. 지금도 이럴 진데 장차는!’

어스를 향한 마음이 더욱더 커진 오스완드 영주는 루리아와 그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금이라도 합방시켜 거사를 치르게 만들어 버릴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는 생각에서 그쳤다.

실제 그런 일을 하려했다간 두 번 다시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니까.

아무튼 콜 라이트닝의 시전으로 어스는 초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레이몬드 사제의 콧대를 초토화 시킨 것이다.

* * *

어스의 스킬 시현을 통해 오스완드 영주는 고비 하나를 무사통과 할 수 있었다.

오스완드 영주의 고비란 바로 던전 원정대의 빈약한 전력이었는데, 이젠 어째서 그와 같은 빈약한 전력으로 원정에 나서는 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글리시아에서 파악한 던전은 총 열 아홉.

그중 하나에 어스를 선두로 한 원정대가 속속 입장했다.

어스는 오스완드 영주에게 짐꾼만 요청했지만 당사자인 영주 입장에선 차마 그럴 수 없었기에 1명의 기사와 20명의 병사를 차출하여 원정대에 합류시켰다.

루리아도 원정대에 합류했다.

그녀가 자청한 일이었다.

오스완드 영주는 단 한 번의 반대도 없이 루리아의 청을 받아들였다.

원정대의 총 인원은 148명으로 이중 짐꾼은 120명이었다.

어스가 이끄는 원정대가 입장한 던전은 세 개의 띠를 가진 던전이었다.

밖은 한 겨울이었지만 던전 내부는 늦은 봄이었다.

지형은 들판으로 들판 중심엔 기괴한 모습의 섬을 품은 넓은 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보스는 저 섬에 있겠군.’

물론 확인은 해봐야 하겠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던전을 정리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에 보스는 천천히 잡기로 했다.

던전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에 잔득 움츠리고 있던 사람들은 눈앞의 아름다운 전경에 빠져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이건 데브란 약초네. 이 계절에 여기서 이걸 보다니!”

“토질이 엄청 좋네.”

웅성웅성.

풍경에 한눈에 팔려 있는 사람들.

이에 어스는 오스완드 영주가 붙여준 기사를 조용히 불렀다.

“웨이즈 기사님.”

“예. 어스 마법사님.”

“사람들을 단속해 주세요.”

어스의 지시를 받은 웨이즈는 군소리 없이 그의 명령을 수행했다.

어수선했던 분위기와 소란은 이내 잦아들었다.

“던전이 이런 곳이라니…… 모르고 왔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스 마법사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여전히 못 마땅한 레이몬드 사제가 호위인 네 명의 디콘을 대동하고 어스에게 다가왔다.

첫 만남부터 저랬다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자신의 힘을 보고 난 뒤에 태도가 바뀌었기에 어스의 뇌리에 박힌 레이몬드 사제는 저열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굳게 박힌 상태였다.

당연히 표정 역시 좋을 리 만무하다.

“동감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숙영지는 웨이즈 기사님이 계시니 맡기고 전 정찰에 나설 생각입니다.”

소똥에 꼬이는 파리처럼 자꾸 달라붙으려는 레이몬드 사제의 태도가 거슬리던 어스의 입장에서 정찰은 유용한 핑계거리였다.

더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비장의 한 수로 자리매김한 블링크가 바로 그것이었다.

“병사들이 있는데 굳이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저랑 다과나 즐기시는 건 어떻습니까? 풍미가 깊은 와인도 있습니다.”

‘차라리 찬물에 귀리 빵을 먹으면 먹었지 너랑?’

현실에서도 이 말을 시원하게 날려주고 싶었지만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어 속내를 감추었다.

“다음에 하시죠. 지금은 정찰이 중요합니다.”

“그럼 다녀와서 한잔 하시죠. 풍광도 좋고 날씨도 좋지 않습니까? 하하.”

어울리지 않게 호탕한 척은.

어스는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다.

마침 루리아가 보여 어스는 그녀를 대동하고 정찰에 나섰다.

기사 웨이즈가 날랜 병사 몇을 붙여주겠다고 말했지만 거절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레이몬드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어스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씩씩 거렸다.

“기분이 안 좋아?”

“피크닉도 아니고 긴장해서 그래요, 긴장.”

“네가?”

“나도 사람이잖아요. 당연히 긴장 되죠.”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누나가 그건 어떻게 알아요?”

“레이몬드 사제가 그렇게 싫어?”

“에? 혹시, 티 많이 났어요? 그럼 그 작자도 알겠네요?”

“걱정 돼? 사제의 미움을 받을까봐?”

“그자의 미움 따윈 조금도 두렵지 않죠. 그자의 입이 신경 쓰일 뿐.”

“교단 상부에 너에 대해 안 좋은 보고라도 할까 봐 그래?”

블링크를 사용하면 정찰은 순식간이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마침 전방에 적당한 크기의 바윗돌이 호수를 향해 비스듬히 누워 있어 앉기에 딱 좋았다.

어스를 따라 루리아도 그의 옆에 앉았다.

‘이, 이렇게 나란히 앉아있으니까 꼭 데이트하는 기분이네.’

루리아도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어스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감정의 동요가 없는지 그녀의 표정은 견고한 성벽을 방불케 했다.

힘들군.

“넌 룬을 믿지 않니?”

상상하지도 못한 루리아의 돌직구에 어스는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어스는 급히 주변을 경계했다.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어떡해요? 불신자로 낙인찍히면 어쩌려고.”

“우리밖에 없잖아.”

‘우, 우리…… 우리라니.’

화들짝 놀란 마음도 그녀의 표현 한마디에 사르르 녹아 버렸다.

두근두근.

“오, 오랜 만이네요. 누나랑 이렇게 단둘이 있는 게. 하.하.하.”

“거북해?”

“예?”

“가끔 날 꺼려하는 것 같아보였거든.”

불신자로 낙인찍히기 딱 좋은 소릴 듣고 놀란 가슴보다, 지금 이 말이 어스를 더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카멜과 함께 하던 그녀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날이면 의도적으로 루리아의 말을 무시하곤 했다.

그러니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엄연히 자업자득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할까?

어쩜 지금이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작은 마음의 불씨는 순식간에 커졌다.

‘차이는 게 두렵다고 언제까지 짝사랑만 할 수 없어.’

어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설레고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는 그에게 정신 차리라는 의미인지 찬물 한 바가지를 퍼부었다.

“오크야.”

몬스터가 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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