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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89화 (89/250)

089화

안정적인 주거환경과 생존과 직결된 금전적인 문제를 한방에 해결되었기 때문인지 연금술사 조쉬의 건강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물론 그 때문은 아니다.

매일 제공되는 영양가 있는 음식과 양질의 치료까지 병행된 덕분이었다.

조쉬가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곤 있었지만 당장 무리한 일을 하기엔 무리였다.

더해 그가 일할 작업장도 완성되지 않았다.

앞서 본채 지하실을 공방으로 하려고 했지만 장시간 생활하기엔 작업자의 건강을 해칠 공산이 농후하단 생각이 들어 작업장이 들어설 건물을 아예 따로 짓기로 했다.

다행히 어스의 집은 부지가 넓어 건물 한 채 들어서도 문제 될 게 없었다.

파격적인 결정을 한 어스는 중개인 한스에게서 소개받은 건축업자와 계약했다.

업자는 곧장 공사에 돌입했다.

어스가 웃돈을 얹어주며 공사를 재촉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요즘 어스의 집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루리아 누나, 요즘 어때?

-던전 때문에 정신이 없어.

-도와줄까?

-괜찮겠어?

-며칠 내로 갈게.

-왕도에 있잖아?

-벌써 잊었어? 나야, 나.

-그렇구나, 그럼 조만간.

-응, 조만간 봐.

그래, 연애는 이래야 하는 거다.

내용은 별거 없지만 이 얼마나 달달 한가.

‘거너 형은 언제쯤 도착하려나.’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올라온다고 했으니 오긴 올 테지만 언제 올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그들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뭉칫돈이 줄지어 나가면서 지갑이 얇아졌기 때문이었다.

지갑도 살찌우고, 루리아도 보고, 더해 던전까지.

‘글리시아로 가야겠어.’

나리아를 통해 어스는 루리아가 더 좋아졌다.

아름다움과 멋짐이 공존하는 외모에다, 말수도 적다.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처음에야 그렇지 자주 보다보면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기쁨, 분노, 당혹감 등을.

문제는 루리아의 마음이 자신이 아닌 카멜에게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들은 말이 아니기에, 자신의 오해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활동하는 내내 두 사람이 자주 붙어 있는 걸 봐서인지 그 점이 커다란 가시처럼 어스의 마음을 항상 거북하게 만들곤 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내 착각일 수도 있지.’

그랬으면 싶다.

어스는 솔론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프라이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고급 정보는 최근 프라이스를 통해 입수하고 있었다.

다행히 프라이스는 자신이 아는 걸 감추지 않고 그에게 공개했다.

이는 프라이스가 그를 외인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카멜이 허락한 것일지도.

‘루리아 누나만 아니면 카멜 형과도 감정 상할 일은 없는데.’

루리아를 생각하자 어스의 몸이 부쩍 달아올랐다.

어스는 곧장 아래층으로 향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거실에 앉아 있었기에 당분간 외부에 나가 있겠다는 말을 전했다.

“얼마나 걸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거너 씨 일행이 온다고 하지 않았어?”

“오면 통신구로 연락해 바로 달려올게.”

“위험한 일은 아니지?”

“전혀.”

던전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찌 위험하지 않으랴.

굳이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몸조심해.”

“걱정하지 마. 참, 이 돈 받아.”

어스는 가진 돈의 80퍼센트를 어머니에게 건넨 뒤 2층으로 향했다.

경량화 배낭을 구입한 이후 어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특히, 제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마나 연공법 수련 때문이었다.

* * *

어스는 루리아 가문이 있는 글리시아 영지로 출발했다.

블링크를 통한 이동이라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물품이나 마차 편은 필요 없다.

마나 회복 포션만 넉넉하면 된다.

다행히 왕도에서 글리시아 영지가 위치한 곳은 전날, 게른 산맥에서 고향인 피어스 남작령까지 가는 거리보다 짧았기에 포션 과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은 겪지 않았다.

영주관 정문.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고급스러운 로브를 입고 있었기에 어스를 대하는 병사의 태도는 공손했다.

“루리아 영애를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은 하신 겁니까?”

“예.”

“성함이?”

“어스라고 합니다. 그리 전해 주시면 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연락하겠습니다.”

10여 분쯤 기다렸을까? 루리아가 직접 마중 나왔다.

사람들의 이목을 우려하여 나름 호칭에 신경 쓰며 두 사람은 안으로 향했다.

탁.

작은 응접실의 문을 닫자 그제야 남들을 신경 쓰지 않고 편히 대화할 수 있었다.

“정말 와줬구나.”

“당연하죠. 온다고 했잖아요.”

“왕도에서의 생활은 어때?”

“누나가 소개해 준 한스 씨 덕분에 어려움은 없었어요.”

수수료를 제법 물어야했지만 깔끔한 일처리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기에 아깝진 않았다.

어스는 왕도에서 지낸 일과 예전 동료들과 다시 뭉치기로 한 일을 말해주었다.

어스가 열 마디 하면 루리아는 두 마디, 혹은 세 마디가 전부였지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는 장족의 발전이다.

“연금술 공방이라…… 음, 네가 소비하는 포션의 양을 생각하면 괜찮은 선택 같아.”

“조쉬를 만난 건 아무래도 행운인 것 같아요.”

“처음부터 네가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잖아.”

“임신부에게 자리 양보는 당연한 거죠. 하하.”

자리를 양보하라며 자신에게 눈치를 줬던 늙은 승객에 대해선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그 승객이 아니더라도 조쉬의 아내를 봤다면 자리는 양보했을 것이다.

분명.

“확인된 던전의 숫자가 19였죠? 등급은 어때요?”

“띠 5개 하나고 나머진 3띠 이하.”

“5띠 던전이면 깨기 쉽지 않을 텐데.”

생애 첫 던전인 유령 저택 내부에서 입장했던 던전의 등급은 알 수 없지만, 게른 산맥에서의 경험을 비춰볼 때 5띠 이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블링크와 마나 회복 포션!

이 중 단 하나라도 없었다면 어스는 물론 루리아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아버님이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출타 중이야.”

“영주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진 던전 원정은 못하겠네요.”

“응.”

이는 어스의 예상에 없는 상황이었다.

“영주님이 오시면 그때 다시 올까요?”

“아니, 네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아버님께 통신했어. 마침, 연락이 왔네. 잠시만.”

공간 주머니가 아닌 품속에서 마법 통신구를 꺼낸 루리아는 그 내용을 확인하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문자 한통을 보낸 뒤 고개를 들었다.

“늦어도 오늘 저녁엔 돌아오신다고 해.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할 텐데 쉴래?”

“제가 어떤 방식으로 여기 온 건지 알잖아요. 전 괜찮으니까 게스트 룸이나 하나 내주세요. 참, 동료들과는 연락하고 있어요?”

“아직.”

“카…… 카멜 형과도 안 했어요?”

무심코 나온 말이라 내심 깜짝 놀랐지만 이미 뱉은 말이라 어스는 태연을 가장했다.

“응.”

그녀의 말에 어스는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바쁘지 않으면 제 창술 봐줄래요?”

루리아는 어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어스는 오스완드 영주가 올 때까지 루리아와 함께 있어 즐겁지만 온전히 이를 만끽하기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예에 있어 진심인 루리아 탓에.

* * *

오스완드 영주는 어스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오스완드 영주가 저처럼 기뻐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골치를 썩이고 있는 던전 원정에 도움이 될 전력이 제 발로 찾아와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래가 촉망되는 마법사가 자신이 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모험가로 잠시 활동하다가 지금은 잠시 쉬고 있습니다.”

“모험가?”

오스완드 영주의 반응에 어스는 내심 놀랐다.

루리아가 고향에 온지 꽤 지났음에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걸 이 반응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웠지만 당사자가 함구한 일이다.

그러나 루리아가 먼저 입을 열기 전에 말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

“모험가라…… 허허. 젊어하기엔 좋은 경험이지. 참, 왕도에 있었다면 던전 원정대에 관한 이야기도 이미 들었겠군.”

왕도에서 들은 이야기보다 프라이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 굳이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왕도니까요.”

“그렇지 물산과 사람이 모두 모이는 곳이니 당연하겠지. 그렇다면 던전 관련 발표에 대해서도 알겠군?”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원정대에 합류해 줄 수 있겠나?”

오스완드 영주는 원정대를 꾸리기 위해 용병 길드에 의뢰를 넣었다.

예전이라면 충분히 계약이 가능했던 의뢰가 모두 거절당했다.

대부분의 용병들이 계약이 된 상태라는 통보였다.

이에 놀란 오스완드 영주는 직접 용병 길드를 찾았다.

영주인 자신이 직접 가면 달라질 것이라 여겼다.

하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크게 실망하던 차에 딸애에게서 어스의 방문을 듣게 되자 오스완드 영주는 이에 기대를 갖고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그마저 놓칠까 봐.

“전날 영주님께서 제게 베푼 은혜가 적지 않은데 어떻게 모른 척하겠습니까? 그리고 루리아 영애와의 뜻깊은 우정도 있고요. 원정대에 합류하겠습니다.”

“오! 정말인가?”

“사내가 어찌 한 입으로 두말하겠습니까.”

“자네 덕분에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군. 고맙네, 고마워. 내 자네의 깊은 의리에 경의를 표하네. 그리고 그 경의에 걸맞은 보상 역시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일반 귀족도 아닌 영주가 자신의 명예까지 걸고서 한 약속이다.

얇았던 지갑이 생각 이상으로 두툼해질 수 있으리라.

어디 금전적인 이득뿐이랴.

좋아하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점수를 땄으니 이건 이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역시, 오길 잘했어.’

어스는 속으로 희희낙락하였지만 겉으론 차분하고 듬직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의 그런 태도는 더욱더 오스완드 영주에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어스를 데릴사위로 낙점한 오스완드 영주 입장에선 더 이상 줄 점수도 없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어스 입장에선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루리아의 마음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더라도 정작 당사자가 자신을 남자로 보지 않는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니까.

“아닙니다. 그럼 원정은 언제 하실 건가요?”

“용병들과의 계약이 무산된 이상 영지군으로 원정대를 꾸려야만 하네. 때문에 전력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도를 강구한 뒤에야 가능할 듯하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혹시나 어스가 실망하고 발길을 돌릴까 싶어 마지막 말을 유독 강조하는 오스완드 영주였다.

“영주님.”

“원하는 게 있다면 마음에 두지 말고 말하게.”

“영지의 전력 공백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게 짐꾼만 내주십시오. 그럼 제가 책임지고 원정을 무사히 끝내겠습니다.”

얼토당토 않는 말이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오스완드 영주는 어스가 던전을 만만히 본다고 생각했다.

아니, 젊음이의 객기라 판단했다.

“던전은 자네가 생각하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네. 그곳은 들어가긴 쉬우나 빠져나오기 위해선 반드시 던전의 주인 격인 몬스터를 처치해야만 하네.”

다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상대가 루리아의 아버지였기에 어스는 그의 말을 끊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앞서 여러 나라에서 정예를 뽑아서 원정대를 보낸 적이 있지. 다들 아는 내용이지.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내용도 있다네. 그건 바로 원정대의 피해 상황일세. 다행히 우리 헥터 왕국은 운이 따라주어 난이도가 낮은 던전에 입장하여 피해가 전무했지만, 필리스 왕국의 경우에는 원정대 전력의 반이 심각한 피해를 당했다고 하네. 왕국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라 필리스에선 쉬쉬하고 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지. 이제 던전이 어떤 곳인지 알겠는가?”

이만하면 젊은이의 객기를 충분히 꺾었다고 생각한 오스완드 영주는 정색을 풀고 부드럽게 웃었다.

미래의 사윗감으로 점찍은 이상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게 오스완드 영주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오스완드 영주가 어떤 심정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저 진심의 반만이라도 루리아 누나에게 받아봤으면.’

기쁨과 아쉬움이 그의 마음에서 교차했다.

묵묵히 두 사람의 대화만 듣고 있던 루리아가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스 마법사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그가 원하는 걸 들어 주셔도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실은…….”

루리아는 제 아버지에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이제야 털어놓았고, 그에 오스완드 영주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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