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화
5서클 마법사와의 관계가 틀어질 것을 우려했음인지 맥코믹 남작은 어스의 상상을 초월한 액수를 의뢰비 명목으로 내놓았다.
인정사정없이 무거워진 지갑, 거기다 아카데미 입학 추천장까지 손에 쥔 어스와 그 일가는 허든 상회주가 제공한 마차에 몸을 실었다.
변방 작은 상회가 제공한 마차이기에 고생을 각오했던 어스는 막상 마차에 몸을 싣자 각오가 무색해졌다.
승차감은 물론이거니와 난방까지 구비된 고급 마차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어스의 가족들은 마차의 성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빤, 아무렇지도 않아? 이런 엄청난 마차를 탔는데?”
“처음이 아니니까.”
어스는 목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마차에 작은 흠집이라도 잡히면 어쩌나 싶어 몸을 사리고 있던 어스의 부모님이 관심을 보였다.
“처음이 아니라고?”
“엄마. 나 마법사야. 그리고 잊은 거야? 영주님의 초빙까지 받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그러니까 어디 가더라도 주눅 들 필요 없어. 내 아들이 마법사다, 내가 마법사를 낳은 엄마다! 그렇게 당당히 어깨 쫙 펴고 살아도 돼. 아빠 역시.”
더해 자신의 경지까지 말해 줄려다 그건 참았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놀라면 부모님의 심장에 안 좋을 수도 있으니.
“오빠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봐. 아까 영주님이 직접 배웅까지 해줬잖아. 나 그때 가슴 졸여서 숨도 못 쉬었다니까.”
“엄만, 어제 영주님 내외께서 초대한 식사자리가 더 놀랐어. 음식이 맛있긴 했지만 가슴 졸이며 먹다 보니깐 체하기까지 했다니까. 행크, 당신은 어땠어?”
“갈색 자작나무 마을 최고의 사냥꾼이 바로 나라고. 곰 앞에서도 호탕하게 웃는 나…….”
“또 허풍.”
“흠흠, 확실히 귀족은 귀족인가 봐. 더구나 보통 귀족도 아니고 영주님 앞에서 뭘 먹으려니 사실 나도 편하진 않았지. 하지만 당신처럼 체하진 않았어. 아직 내 위장은 튼튼해서 돌도 소화시킬 수 있거든. 하하.”
“엄마아빠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그런데 그거 알아 오빤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먹었었어. 나보다 겁도 많고 소심했는데 그 모습 보곤 깜짝 놀랐다니까. 덕분에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먹을 수 있었어. 정말, 처음이었어. 오빠가 있어 든든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한 게.”
여동생의 말에 흐뭇했던 어스는 마지막 말엔 인상을 구겼다.
“전엔 안 그랬다는 거야?”
“사실 전엔 별 볼일 없었잖아. 키도 나보다 작고, 힘도 약하고, 걸핏하면 신경질에 한번 삐지면 되게 오래가고 막 그랬잖아.”
완벽한 저격이다.
반론의 여지도 없게 만드는.
남매니깐, 그러니까 저리 말하는 것이리라.
사이좋은 남매는 세상에 없으니까.
하지만 부모님은 분명 여동생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으리라.
부푼 기대감을 품고서 어스는 부모님을 보았다.
그런데.
“인정.”
절망 하나 추가.
그래도 아빠는 다르리라.
“우리 아들이 좀생이긴 했지. 도저히 반박할 말이 없네. 허허.”
와르르.
어스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좋게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싶다.
어스의 숨겨진 본능이 슬금슬금 머리를 내밀었다.
뒤끝이란 이름의 녀석이었다.
불만을 터트리기 직전, 어스는 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학수고대하던 소식이 드디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조율이 완료되었습니다.
-칭호 승리의 노래가 생성됩니다.
-승리의 노래 칭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상태창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기대가 컸다.
시스템을 놀라게 할 정도의 사건이기에.
하나 막상 상태창을 열어 그 내용을 확인한 순간 어스는 결코 기뻐할 수 없었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50).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2/100). 승리의 노래(2/12).
생명력 : 245/245.
마나 : 310/310.
인벤토리 : 1(+4).
스탯 : 힘(2.3). 체력(30). 민첩(2.2). 지력(30). 정신(43).
직업 스킬(9/9) : 매직 애로우(+3/12). 파이어 애로우(+3/12). 파이어 볼(+3/12). 파이어 버스트(+0/12). 아이스 스피어(+3/12). 일루젼(+0/12).
콜 라이트닝(+0/12). 블링크(+0/12). 체인 라이트닝(+0/12).
업적 포인트 : 0.
코인 : 13,261.
‘어째 이름부터가 마음에 안 들더라니.’
두 번째 칭호 역시 첫 번째와 같은 조건을 달성해야만 비로소 활성화되는 방식이었다.
물론 활성화되었을 때의 효과는 대단했다.
마나 회복률 10퍼센트 추가 상승.
마나 +150증가.
생명력 +200증가.
문제는 당장 이 효과를 손에 쥘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네 오빠를 너무 놀렸나보다. 얼굴이 돌덩이가 됐어. 어스, 엄마는 언제나 네가 자랑스러웠어.”
“아빠도 마찬가지다.”
두 분의 말은 당연히 어스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줬으면 온전한 것으로 주던가, 매번 이딴 식으로 사람 간을 보는 시스템의 태도에 정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녀석이 실체를 가진 존재였다면 보기 좋게 쌍코피를 터트려줬을 텐데.
‘주먹이 운다, 주먹이.’
* * *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마법사가 된 이후 어스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남들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들이 반년 사이에 수시로 등판하여 그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고향 마을 몰살 사건.
몬스터 웨이브.
용병 동료들의 죽음.
왕족과 귀족을 동료로 만든 일.
임관 제안.
그리고 연이은 던전 격파까지.
어떻게 이런 일들이 고작 반년 만에 일어날 수 있는지 돌이켜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아니, 불행을 쫓는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내심 왕도로 가는 여정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어스의 마음 한편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천만다행하게도 왕도에 도착할 때까지 평범을 벗어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나치게 평온했다.
그래서 왕도에 도착하자마자 만세 삼창을 할 뻔했다.
* * *
어스의 가족들은 왕도에 아무런 연고가 없기에 우선 마부가 추천한 여관에 머무르기로 했다.
다음 날, 피어스 남작령으로 돌아가는 마부에게 어스는 묵직한 돈주머니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마법사님?”
“오는 동안 수고하셔서 드리는 거예요.”
마부를 배웅한 어스는 여관 내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족들 모두 식사를 끝내고 왕도 관광을 나선 상태였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주문한 어스는 마법 통신구를 확인했다.
동료들이 보낸 문자가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문자를 확인한 어스는 우선적으로 루리아에게 답장을 보냈다.
십 분에 한 번, 열 글자 내외로 상대에게 보낼 수 있는 마법 통신구이기에 한 번 연락을 보낸 뒤 잠시 시간이 비었다.
주문한 차를 마시며 창밖을 구경하던 어스에게로 두툼한 외투로 전신을 감싼 중년인이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어스 님이십니까?”
“한스 씨?”
“예, 제가 중개업자 한스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스 역시 왕도가 처음이라 관광이 마려웠지만 여관에 남은 이유는 가족들이 앞으로 생활할 집을 계약하기 위해서였다.
중개업자 한스는 루리아 영애의 소개로 알게 된 남자였다.
그에게서 어스는 왕도의 부동산 시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당이 딸린 2층 주택의 경우 이 가격이면 당장이라도 구입이 가능하십니다. 양심을 걸고 맹세하는데 이 지역에서 이만한 가격은 없을 겁니다.”
도시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물가는 높다.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다.
어스는 여동생이 다닐 아카데미와 가까운 곳에 집을 얻고 싶었지만 그런 곳에 집을 사고 나면 여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돈이야 또 벌면 되지만 사람 일이란 게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중개업자 한스가 언급한 집의 가격은 185만 테스였다.
185만 테스는 순수 집값이다.
취득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 그리고 중개수수료는 별도였다.
이를 다 합치면 대략 3만 테스였다.
그러니 총 188만 테스다.
다행히 어스의 수중엔 300만 테스에 가까운 현금이 있었기에 집을 구입하더라도 당분간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일국의 수도답게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대중 마차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대중 마차가 아닌 개인 승용마차로 이동했다.
한스가 타고 온 마차였다.
‘중개업자라고 만만히 볼 건 아닌가 보네.’
여관에서 30여 분을 마차로 이동한 어스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조용한 주택가로 근방엔 제법 큰 규모의 시장이 있어 장을 보기엔 편리했다.
시장까진 도보로 15분 남짓 거리였다.
그리고 5분 남짓 거리엔 대중 마차 정류장이 있어 이 점도 마음에 들었다.
3개월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 내부도 제법 깨끗했다.
마당이 생각했던 것보다 좁다는 게 조금 걸렸지만 왕도의 인구 밀집상황과 물가를 비교하면 이곳을 계약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지기 전까진.
“이 집보다 더 좋은 집이 더싸게 나온 곳이 있나요?”
“하하, 왕도에서 그런 곳은 없을 겁니다. 아, 검은 소용돌이 주변이라면 모를까.”
“검은 소용돌이요?”
“예, 정말 좋은 집인데 하필 검은 소용돌이가 생기는 바람에 주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말았죠.”
“혹시 그 집, 볼 수 있을까요?”
“예? 그 집을 보시겠다고요?”
“안 되나요?”
“며칠 전만 해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지금은 왕래가 가능하니 보는 건 문제 없지만 제 입장에선 추천하진 않습니다. 어스 님도 들으셨겠지만 검은 소용돌이 안에 대규모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지요. 만에 하나 놈들이 거기서 나온다면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겁니다.”
도리아 하우든 영애가 던전에서 나온 이후 그녀를 통해 던전 내부의 상황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각 왕국의 정예와 마탑 그리고 교단이 결성한 원정대가 속속 귀환하면서 던전에 대한 정보는 더 많이 풀린 상태였다.
이에 고무된 몇몇 대영지에선 자체적으로 던전을 닫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지만 결과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어스가 거듭 요청하자 한스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안내했다.
‘띠 3개네. 할 만한데.’
어스가 보고자 했던 집과 던전의 거리는 직선으로 100미터 남짓이었다.
주택가였지만 유흥시설이 밀집한 번화가에서처럼 병사들이 많았다.
던전 때문이다.
“이 집보다 더 가까운 집들의 시세는 어떻게 돼요?”
“예?”
“궁금해서요.”
“매물로 나온 집은 없습니다. 다들 관망하고 있죠. 검은 소용돌이를 닫을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럼 이 집은?”
“집 주인이 급히 처분해야 할 상황이라 일단 매물로 나왔죠.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런 상황이라 구매자가 없습니다.”
앞서 본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집이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집으로 단층 별채까지 보유하고 있었으며, 마당도 앞서 본 집의 3배에 달했다.
뒤뜰엔 우물도 있어 따로 물을 살 필요가 없었다.
참고로 대도시의 경우 물장수들이 있다.
시골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직업이다.
“던, 아니 검은 소용돌이가 생기기 전 가격이 궁금한데 얼마였죠?”
“최소 300만 테스였죠. 그런 집이 반값에 나왔으니 매물로 내놓은 주인 속은 말이 아닐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150만 테스를 버는 건가?’
이건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가격이다.
“이 집으로 할게요.”
* * *
며칠 후 어스는 전 주인과 만나 집을 매입했다.
각종 세금과 수수료까지 합쳐 총 152만 테스가 들었다.
집 안의 가구와 집기가 마음에 든 어스는 전 주인과 협상하여 3천 테스에 모두 양도 받았다.
일주일 만에 일을 마무리 지은 어스는 집문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2군 지역에.
그날 어스는 가족들과 함께 만찬을 즐겼다.
아직 가족들에겐 자신이 구한 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던전을 공짜로 닫아야 하다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맥코믹 영주처럼 고위 관료를 만나 던전을 닫아 줄 테니 보상금을 달라고 하기엔 아는 고위 관료도 없는데다, 설사 만남이 성사되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더라도 이 일이 문제가 되어 차후 코가 꿰일 수도 있는 일이라 은밀히 처리하기로 했다.
-뭐? 던전을 사냥하겠다고?
-의뢰?
-아니라고?
-그럼 왜?
-시세 회복? 큭큭.
-아쉽겠네.
-네 덕에 웃는 사람 많겠네.
-다음엔 솔론 왕국에서 해.
-카멜 형의 연줄이면…….
-……솔론에서 벼락부자 됨.
프라이스와의 문자를 통해 솔론에서 한몫 단단히 챙길 여지도 있다 보니 많이 억울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