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화
무형의 힘이 작용하여 아래로 추락하던 어스는 겨우 포션을 마실 수 있었다.
그땐 지상과 불과 10미터 남짓 위치한 곳이었다.
고개를 돌릴 여유도 없었기에 어스는 지상을 향해 블링크를 급히 시전하여 추락사를 모면할 수 있었다.
바닥을 몇 번 뒹굴고 몸을 일으키자 동족을 눈앞에서 잃은 코볼드 전사들이 피 눈물을 흘리며 그를 향해 짓쳐들었다.
‘대체 뭐야? 방금 그건?’
코볼드 전사 무리의 기세는 대단히 흉흉했지만 그에 위축될 만큼 어스의 정신력은 약하지 않았다.
인벤토리에서 마나 회복 포션을 꺼내 냉큼 마신 어스는 살기를 머금고 달려오는 개머리 몬스터를 향해 파이어 볼을 날렸다.
파이어 볼의 폭발력에 놈들의 살이 찢겨 나가고 뼈가 부러져 나가떨어진 놈들을 불꽃이 뒤덮어 그 생명을 살라먹었다.
잔혹하고 끔찍한 동족의 죽음이 눈앞에 펼쳐졌음에도 놈들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조바심쳤다.
조바심의 이유는 인간이 다시 하늘에서 공격할 걸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잡는다.
어떻게든 죽인다.
놈들의 머릿속엔 온통 이러한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은 여전히 어스에겐 닿지 못했다.
쉴 새 없이 날아오는 파이어 볼 때문이었다.
이에 놈들은 머리를 썼다.
아니, 고기방패를 세웠다.
영리한 전술이었다.
하나 그들은 이게 곧 실수임을 깨달았다.
“체인 라이트닝!”
파이어 볼보다 더 강력한 위력의 스킬이 동족의 몸뚱이를 징검다리 삼아 미쳐 날뛰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파이어 볼 때는 그나마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었지만 이어지는 번개는 생명의 불꽃이 차게 식은 다음에야 볼 수 있었다.
죽은 자의 눈으로 본 것이니 과연 이를 보았다고 해야 하는 진 모르겠지만.
200에 육박하는 코볼드 전사 중 서 있는 전사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까맣게 탄 모습으로 바닥을 장식할 뿐이었다.
어스는 이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전방에 우뚝 서 있는 석조 피라미드만 예의 주시했다.
좀 전 자신을 잡아채서 끌어내렸던 무형의 힘, 어스는 그 힘의 출처로 저 피라미드를 의심하고 있었다.
죽음의 향기로 자욱한 장내를 무심히 내려다보던 석조 피라미드에서 진동이 발생했다.
진동이 멈추자 피라미드에 입구가 열렸다.
자박자박.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구부정한 허리의 늙은 코볼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뼈로 만든 각종 장신구를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서.
‘코볼드 주술산가?’
그게 아니고선 좀 전 자신을 붙잡아서 끌어 내렸던 힘은 설명할 수 없다.
놈의 힘은 그거 하나일까?
알아볼 생각은 없다.
속전속결!
어스는 늙은 코볼드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강력한 한 방을 선사했다.
‘콜 라이트닝!’
그가 보유한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스킬이 현현했다.
콰르르릉, 번쩍!
지상을 향해 내리꽂히는 거대한 번개 줄기는 단숨에 나약한 늙은 코볼드의 몸을 잿더미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스 역시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나 결과는 그의 눈을 경악으로 부릅뜨게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이 콜 라이트닝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요즘 스킬을 막는 몬스터들이 자꾸 나오는 것 같은데.’
답답함에 입술을 질끈 문 어스는 일단 포션을 먹기 전 남은 마력을 다 쓸 생각으로 파이어 볼을 시전했다.
한데 스킬 자체가 무언가에 막힌 듯 나오질 못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스는 이에 당황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던전 보스 코볼드 주술사가 죽은 전사들의 영혼을 희생하여 대상에게 억제 저주를 걸었습니다.
-체력 스탯이 저주에 저항합니다.
-체력 스탯의 부족으로 저주가 적용됩니다.
-저주의 영향으로 20분간 스킬 사용이 불가합니다.
제 동족의 영혼을 희생시켜 완성한 저주에 의해 스킬 사용이 봉쇄당한 어스는 순간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하나 놈이 저주를 건 이후 제 자리에 옴짝달싹도 못한 채 자신만 빤히 쳐다보고 있자 당황한 마음은 이내 헛웃음으로 바뀌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낸 공격이었나?’
다른 저주나 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스에게도 방법이 있었다. 이럴 때를 위해 그동안 갈고닦은 창술이 빛을 발할 때였다.
혹시 녀석이 꾀를 부렸을 가능성에 대비해 어스는 바닥에 떨어진 돌을 들어 보스를 향해 던져 맞췄다.
그럼에도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쭈글쭈글한 주름만 부들부들 떨 뿐이다.
“멍청한 녀석, 제 발등을 스스로 찍었구나! 던전 보스라도 몬스터는 몬스터가 보네.”
몇 번 더 놈을 명중한 어스는 완전히 긴장을 풀었다.
그러자 경황이 없어 놓쳤던 알림 내용 중 일부가 생각났다.
체력 스탯이 저주에 저항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체력 스탯의 숨겨진 또 다른 효과를 알 수 있었다.
체력 스탯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며 어스는 놈을 제거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앞서 경험한 바로 띠 두 개인 던전은 보스를 잡아도 보너스 업적 포인트가 없었다.
그러니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혹시나 저번처럼 주변에 돈이 될 만한 게 있나 싶어 살폈지만 딱히 돈 되는 건 보이지 않았다.
‘피라미드 안에 있을까?’
눈이 피라미드로 향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새는 모이 때문에 죽고, 인간은 욕심 때문에 죽는다는 말을 복기하며.
보스에게 다가가던 어스는 곧 걸음을 멈추었다.
피라미드 안에서 한 무리의 코볼드 전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앙!”
“쿠아아아아-!”
망했다.
바로 보스의 멱을 땄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보스에게 달려들까?
보스의 위치는 달려오는 코볼드 전사 쪽에 훨씬 가까웠다.
아니, 애초 놈은 피라미드 입구 근처를 떠나지 않았으니 어쩜 이 모든게 놈의 노림수이지 싶었다.
‘머리 좋은 놈이었네.’
코볼드 전사의 숫자는 서른, 거기다 각자 무장도 상태도 인간 정에 병사를 연상시켰다.
아직 저주는 풀리지 않은 상태.
덩치에도 밀리고 머리수에서도 밀린다.
그러니 방법은.
어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길로 내뺐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놈들의 달리는 힘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둘 사이의 거리는 눈에 띄게 좁혀지고 있었다.
어스는 심장이 철렁했다.
제 동족을 학살한 자여서 그런 것인지, 처음부터 인간을 증오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놈들은 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잡히는 순간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난처한 상황. 공터만 벗어나면 방도가 있을 것 같은데 놈들을 따돌리고 숲까지 도착할 자신이 없었다.
오랜만에 겪어 보는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상황이었다.
‘이대로 달아나는 건 힘들어.’
20분이 이렇게 긴 시간인지 몰랐다.
정말.
저주를 없애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시전자 제거.
둘째, 시간.
셋째, 저주를 상쇄시킬 수 있는 힘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이 중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첫 번째인 시전자 제거였다.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지만.
‘어, 어떻게 하지?’
이 와중에도 거리는 더욱더 좁혀졌다.
곧 따라잡힐 것 같았다.
기적이 없이는 코볼드 전사에게 잡혀 갈가리 찢겨 죽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어스는 이를 악물고 달리던 방향에서 정반대로, 녀석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 그의 손에는 창이 들려 있었다.
갑작스런 어스의 돌진에 코볼드 전사들이 무기를 고쳐잡는 사이 어스는 그들 앞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어스를 맞이한 것은 방어 자세를 갖춘 코볼드 전사의 방패였다.
포위하듯 어스를 향해 퍼져 움직이느라 정작 그의 앞에 선 코볼드 전사들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주변을 둘러싸게 되면 죽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타앗!”
어스는 그간 연습한 창술로 앞을 가로막은 방패를 제겼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코볼드 전사를 스쳐 지나가며 어스는 곧장 내달렸다.
어스가 보스를 향해 달려가자 이에 놀란 코볼드 전사들이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투척했다.
빡.
머리에 한 방.
생명력 : 215/245.
생명력 30이 날아갔다.
생명력의 효능이 충격과 고통을 상쇄시켰다.
덕분에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기절하는 일도 없었다.
또 다른 것에 등짝을 맞았다.
이번엔 단창이었다.
생명력 : 155/245.
생명력이 대폭 하락했다.
잽싸게 치료 포션을 꺼내 마시며 생명력을 회복했다.
무기에 명중되고도 멀쩡하게 달리는 어스의 모습에 코볼드 전사들은 충격을 받았다.
앞서의 투척 공격이라면 죽어도 열 번은 넘게 죽어야 할 상황이다.
아니, 설사 죽지 않더라도 기절하고 남을 공격인데 그 모든 공격이 일체 통하지 않자 동족 학살자를 향한 거센 증오심도 순간 흔들리고 말았다.
그것은 어스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놈들이 투척하느라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한데 이어 정신적인 충격까지 더해져 양측의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뒤는 아예 쳐다보지 않고 오직 보스만 쳐다보며 사력을 다해 달리던 어스의 눈에 서서히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 잡을 수 있다! 잡을 수 있어!’
어스는 희망을 본 반면, 코볼드 전사들은 꽁지에 불붙은 송아지처럼 크게 당황했다.
투척을 포기한 놈들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그러나 그땐 이미 한발 늦고 말았다.
어스의 창이 보스의 얄팍한 가슴을 뚫고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스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보스 코볼드 주술사 라이라이를 처치했습니다.
-2,000코인을 습득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를 옭매던 저주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어스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홱 돌려서는 자신을 향해 여전히 달려오는 놈들을 향해 파이어 볼을 속 시원히 갈겨주며 짧은 시간이나마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나 스트레스와 별개로 어스의 미간에 드리운 그늘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이러다 제명에 못 죽지 싶네.’
* * *
어스가 보스를 잡은 뒤 원정대 또한 던전을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빠른 귀환에 맥코믹 영주는 서둘러 이들을 맞이했다.
누구 하나 잃지 않고 돌아온 원정대를 보며 기뻐하던 찰나, 영주의 눈에 시뻘게진 얼굴을 한 게이비 단장이 보였다.
의문을 갖던 그때, 찰슨이 영주에게 다가갔다.
찰슨은 던전 내에서 있었던 일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영주에게 보고했다.
이에 맥코믹 영주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외부인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기사단장을 문책할 수 없었기에 감정을 삭이며 어스를 치하했다.
‘찰슨 님은 어쩌자고 그걸 곧이곧대로 보고하는 거야? 하더라도 게이비 저 작자가 없는 곳에서 하던가 해야지. 융통성이 이렇게 없어서야 사회생활을 대체 어떻게 하려고.’
영주에게 보상을 받고 이대로 모른 척하면 그뿐이다.
그렇게 하면 되는데 양심이란 놈이 끝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스는 내심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맥코믹 영주를 응시하며 입을 뗐다.
불쾌한 감정을 최대한 얼굴에 담고서.
“제가 평민이긴 하나 마법삽니다. 운이 좋아서인지 이 나이에 5서클을 이룰 수 있었지요.”
어스의 고백(?)은 맥코믹 영주를 비롯한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5서클의 경지면 자작까지 가능한 실력자다.
나라에 공을 세우지 않은 이상 세습은 무리더라도 단승이긴 하나 자자까지 넘볼 수 있다.
한데 그런 자의 나이가 고작 열다섯이니, 단승을 넘어 세습 귀족의 반열도 시간이 문제 일뿐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 정말인가?”
“마법사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건 딱히 어렵지 않죠. 당장 마법을 보여드리면 되니까요. 보여드릴까요?”
“아, 아닐세. 자넬 믿네.”
어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이 뻔히 보이는 데 증명하라는 말까진 차마 할 수 없었던 맥코믹 영주는 손사래 쳤다.
“감사합니다. 그럼 마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 고향이 잘 됐으면 합니다. 또 그리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주님 같은 훌륭한 분이 계시니까요. 하지만 영주님이 아무리 훌륭하시더라도 밑에 사람이 사방 천지에 적을 만들면 과연 그 영지가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 어스 마법사.”
“오해하진 마세요. 제가 영주님과 영주님이 다스리는 피어스 영지의 적이 되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고맙네.”
맥코믹 남작이 제 아무리 영지 귀족이라곤 하지만 5서클씩이나 되는 마법사가 앙심을 품고 영지에 해코지 하려고 든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무력을 쓴다면 무력으로 이를 막을 순 있을 것이다.
하나 상대가 고위 권력자를 부추긴다면? 대귀족은 물론, 국왕도 그의 실력을 알면 끌어들이고 싶을 테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닙니다.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나머진 영주님께서 결정하실 일이니까요.”
마지막까지 맥코믹 남작에게 부담감을 팍팍 안겨준 어스는 곧장 퇴장했다. 그가 떠난 자리엔 오싹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게이비 단장, 아니 처남. 갈색 자작나무 요새에서 근신하게 내가 부를 때까지. 그곳에서 한 발짝도 나와선 안 될 것이야. 그리고 단장직은 윌리엄 부단장에게 일임할 터이니 그리 알게. 찰슨 경.”
“예, 영주님.”
“게이비 경이 허튼짓하지 않도록 옆에서 감시하게. 필요하면 강압적인 수단도 허락하겠네.”
“매, 매형! 제 말도 들어주십시오. 제가 그리한 건 그놈이 주제도 모르고 매형의 제안을 거절…….”
“한 번, 딱 한 번만 더 말하게. 갈색 자작나무 요새가 아니라 지하 감옥으로 보내줄 터이니.”
온화한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운 법이다.
더구나 맥코믹 남작은 영주이자 동시에 기사였다.
그것도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자였다.
그런 그가 대놓고 기세를 피어 올리자 게이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나가자 홀로 남은 맥코믹 남작은 어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보다 많은 보상을 준비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