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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80화 (80/250)

080화

블링크를 이용하여 단숨에 피어스 남작령 주도로 이동한 어스는 제일 먼저 지드가 운영하는 마법 상점부터 찾았다.

던전으로 인해 어수선한 건 이곳도 다르지 않았다.

상당수의 가게가 문을 닫아걸었으며, 행인들로 북적일 거리 역시 드문드문했다.

“룬께 죄를 고하라! 회개하라!”

“오! 룬이시여! 저희를 가련히 여기소서.”

“가련히 여기소서.”

패닉에 빠진 교인들이 한산한 거리를 점거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남녀노소 손에 손을 잡고서 하늘을 향해 절하였다.

‘신전에서나 하지.’

속으로 혀를 찼지만 이를 드러낼 순 없었다.

대륙에서 교단과 척을 지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 마음에 안 들어도 속으로 욕할 뿐이다.

어스는 걸음을 재촉했다.

돼지 멱 따듯 소란한 장내를 지나치자 그제야 귀가 평화를 되찾았다.

지드의 가게에 도착한 어스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가게 주인인 지드는 없고 웬 중년 아저씨가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여기, 지드 씨가 운영하던 가게 아닌가요?”

“전 주인 말씀이시군요. 두 달 전인가 가게를 넘기고 떠났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나요?”

“아뇨.”

지드를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묻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게를 나온 어스는 허든 상회로 걸음을 옮겼다.

옷차림이 범상치 않았기에 상회의 일꾼은 그를 정중하게 맞았다.

예전과 비교되는 태도였다.

“상회주님을 만나고 싶어 왔습니다. 상회주님께 갈색 자작나무 마을의 어스가 찾아왔다고 전해 주세요.”

“어스? 아! 마법사님이 바로 그 분이셨군요. 자유 마을의 구원자? 맞죠?”

역시 상회.

“흠흠, 구원자는 아니고 거기서 괴물 마법사로 불린 적이 있죠.”

“여, 영광입니다.”

“하하, 영광까지야.”

“냉큼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러다 넘어지지 않을까싶을 만큼 전력을 달린 직원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스는 의자에 앉았다.

곧 직원이 돌아왔다.

허든 상회주를 대동하고서.

“오! 정말 어스 마법사님! 이거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키도 전 보다 부쩍 크신 것 같고. 인물도 좋아지셨습니다.”

상인의 혀는 달콤하다더니 역시.

“오랜만입니다. 상회주님.”

“어스 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역시, 크게 될 분이라 생각했는데 제 예상보다 더 큰일을 하셨더군요. 하하. 자 따라오십시오.”

허든은 어스를 고위 귀족 대하듯 깍듯하게 대하며 자신의 사무실까지 안내했다.

비서에게 미리 말해 놓았는지 앉자마자 다과가 나왔다.

예의상 감사 인사를 나눈 뒤 어스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왕도 이주에 필요한 마차와 마부를 구하는 일이었다.

“왕도로 가신다고요?”

“여동생 공부 때문에요.”

“루시 양 말이군요.”

“기억하시는군요.”

“공부라면?”

“아카데미 기사학부에 보내려고요.”

허든 입장에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단신으로 막아낸 대단한 실력의 마법사와의 연결 고리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참, 그리고 이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어스는 종유석 조각을 꺼내보였다.

보스 고블린의 지팡이도 보일까 하다가 그건 그만두었다.

페어몬트와 하들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어스의 가족이 왕도로 떠난다는 말에 아쉬움을 느꼈던 허든은 어스가 내놓은 물건을 보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허든의 반응에서 어스는 짙은 돈 냄새를 맡았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더 많이 챙겼을 텐데.

던전과 함께 사라진 종유석을 떠올린 어스는 속으로 입을 다시며 허든의 입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렇게 큰 마정석은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어스 마법사님?”

‘어라? 이게 말로만 듣던 마정석이라고?’

마정석은 자연의 정기가 농축된 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마정석은 마법 물품 제작에 있어서 가장 핵심 재료로 과거 마정석 광산을 두고 세 개 나라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는 일화도 있었다.

종유석의 정체를 알게 된 어스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지팡이 줍는 시간에 종유석 부스러기를 더 챙겼어야 했는데.

앞으로의 지출을 생각하면 사실 가진 현금도 충분한지 불투명했기에 더더욱 아쉬운 어스였다.

“비밀입니다.”

“괘, 괜찮으시다면 저희 상회에 넘기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허든 상회가 피어스 남작령에서나 알아주는 상회지 헥터 왕국 전체로 보면 구멍가게나 다름없었다.

하나 지난날 그가 자신에게 베푼 은혜가 적지 않은데다, 인품도 좋은 상인이기에 어스는 그의 양심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러죠.”

“저희 상단의 감정사에게 감정을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최상품이 아닐까 합니다.”

역시 양심이 있는 상인이다.

허든의 말에 어스는 남은 마정석까지 모두 내놓았다.

본인 입으로 최상품이라고 말했으니 설마 가격을 후려치는 일은 없으리라.

더해 유적지에서 주운 고대 동전 역시 내놓았다.

“이것도 봐 주세요.”

허든의 지시를 받은 감정사가 도착했다.

깐깐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마정석과 고대 동전을 감정하곤 최고의 평가를 내렸다.

허든은 이 모든 걸 구입하길 원하였고 어스는 쿨하게 그 거래에 응했다.

그 결과 어스는 50만 테스에 육박하는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대도시의 물가가 비싼 걸 감안하더라도 100만 테스에 육박하는 자금이라면 가족들이 먹고사는 데, 그리고 여동생의 학비로 부족하지 않으리라.

“참, 왕도로 가신다니 마차 편은 구하셨습니까? 어스 님?”

“지금부터 구해봐야죠.”

“그렇다면 저희 상회에서 마부와 마차를 무상으로 빌려드리겠습니다.”

“공짜라고요?”

“물론이죠. 이렇듯 과거의 인연을 잊지 않으시고 귀한 물건을 팔아주셨는데 저 역시 그에 보답해야지요.”

이는 허든 상회주의 노림수였다.

그와의 인연을 놓지 않으려는.

“감사합니다. 허든 상회주님.”

“천만에요. 하하.”

* * *

요새로 돌아온 어스는 피어스 남작이 보낸 친필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

그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면 영주의 초대에 크게 감동했을 테지만 이미 바다를 봐버린 그에게 있어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발목이 잡히지 않을까 싶어 걱정했다.

반면 어스의 부모님은 이를 무척 반겼다.

“영주님의 친필 초대장이라니! 대대손손 가보로 남겨야겠어.”

“그러게요. 확실히 우리 아들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봐요. 영주님이 직접 초대까지 해주시다니. 호호.”

부모님이 기뻐하자 기분은 좋았다.

당연히 여동생도 그럴 것이라 옆을 고개를 돌린 어스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뻐하는 부모님과 달리 여동생은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넌 안 기뻐? 오빠가 영주님의 친필 초대장을 받았는데? 설마…… 질투?”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닌데 표정은 왜 그래?”

“내가 들은 말이 있어서 그래.”

초대장에 손때라도 탈까 싶어 제대로 만지지도 못하던 행크와 엘이나는 딸아이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하였다.

“루시, 그게 무슨 말이니?”

“윌리엄 부단장님의 당번병 아저씨가 동료들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엿들었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우연히.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무슨 말을 들었는데?”

마냥 기뻐하던 엘이나도 그제야 석연치 않다고 느꼈는지 꺼림칙한 표정으로 루시를 재촉했다.

“검은 소용돌이에 군사를 보낸다는 말이었어.”

루시의 말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행크와 엘이나의 마음에.

“루시, 넌 영주님이 오빠를 거기에 보내려 한다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오빠는 마법사잖아? 그리고 엄마도 아빠도 그 이야기는 알지 않아?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성기사와 사제들로 구성된 원정대가 검은 소용돌이에 들어갔잖아.”

엘이나는 딸의 말을 심상치 않게 생각했지만, 그에 반해 행크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왔다는 말은 없어. 이런 상황에서 영주님이 굳이 자신의 군대를 죽을지 살지도 모를 검은 소용돌이로 들여보낸다는 건 아빠 생각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행크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그랬기에 루시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표정에서 미심쩍은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영주님이 초대장을 보냈으니까 안 갈 수 없잖아? 내가 다녀오면 무슨 이유로 불렀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내 생각에 아마 날 영입하려는 게 아닐까 싶어. 사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날 영입하려는 영주나 귀족들이 꽤 있었거든.”

어스는 분위기를 전환하게 위해 냉큼 선물을 꺼내놓았다.

더해 오늘 허든 상회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히 이야기하며 모두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 * *

다음 날, 어스는 요새에서 내준 마차를 타고 영주성으로 향했다.

블링크를 이용하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마차를 타고 이동해야했기에 3시간을 이동한 끝에 겨우 주도에 도착한 뒤 거기서 20분을 더 달린 끝에 겨우 영주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어스는 총집사의 안내로 응접실로 향했다.

하인이나 하녀가 아닌 총집사가 손님을 마중하고 안내하는 경우는 상대를 귀한 손님으로 맞이한다는 의미였다.

이 정돈 어스도 알고 있었기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러웠다.

하녀가 내온 다과를 절반쯤 먹었을 때 예의 총집사가 다시 와서 그를 영주의 집무실까지 안내했다.

“반갑네. 맥코믹 피어스일세.”

“어스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주님.”

“자네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네. 그 나이에 정말 대단한 일을 해주었네.”

‘뭐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영주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말하자 어스는 영주도 알아주는 자신의 명성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이어질 영주의 말에 궁금증을 느꼈다.

물론, 대충 어떤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선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임관!

아마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리라.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정한 상태다.

그래도 상대가 직접 이를 언급하지 않았기에 어스는 영주의 치하에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군. 하하.”

어스는 영주가 자신을 소년이 아닌 청년이라고 말해주자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나이도 어린데다 얼굴까지 조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외모만 보고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윌리엄 부단장과 찰슨 경에게서 자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두 사람 다 내가 신뢰하는 기사들이라 꼭 한 번 자네를 만나고 싶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군. 혹시, 임관할 생각은 없는가? 허락한다면 내 적극적으로 어스 마법사를 지원함세.”

맥코믹 남작은 선정을 베푸는 지배자이기 이전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기사다.

한창때는 직접 몬스터 토벌에 나서 영지민의 안전을 도모한 것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나이가 쉰을 넘어 전처럼 활동하진 않았지만 그의 과거를 기억하는 나이 든 영지민들은 그때를 회상하며 영주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인물이다 보니 변방의 일개 남작 영지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사를 여럿 보유하고 있었다.

“영주님의 선정으로 저와 저희 가족이 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당연히 영주님께 임관하여 영지에 보탬이 되어야겠지만 아쉽게도 제가 따로 하는 일이 있어 임관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송구합니다. 영주님.”

“역시.”

“예?”

“윌리엄 부단장이 그러더군. 거절 할 것이라고. 그래도 내가 말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단박에 거절이라니. 조금 섭섭하군. 허허. 마음에 담아 두진 말게. 참, 자네도 알 듯 지금 온 대륙이 난리일세. 자넨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화의 주제가 갑자기 던전으로 튀자 어스는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은 건 다행이라 생각했다.

“걱정스러운 일이죠.”

“아직 세상엔 공표되지 않았지만 검은 소용돌이에서 귀환한 이가 있다네.”

“연합 원정대가 돌아온 것입니까?”

던전이 위험한 장소이긴 하지만 원정대의 전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러한 전력이면 시간이 문제일 뿐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경험상.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들이 돌아왔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네.”

“예? 연합 원정대가 아니라고요? 그럼 누가?”

혹시 파티원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영주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어스의 기대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이었다.

“도리아 하우든 영앨세.”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었다.

“하우든 백작 가문의 도리아 영애를 말씀하신 겁니까?”

“자네도 알고 있었나? 이번 일에 대해?”

“아, 아뇨. 그 일은 저도 영주님께 처음 듣습니다. 제가 놀란 건 도리아 영애 때문입니다. 실은 그분과 인연이 있거든요.”

그의 말에 맥코믹 영주는 깜짝 놀랐다.

“백작가와?”

“가문은 아니고 도리아 영애 개인과의 친분입니다.”

“명성에 걸맞은 인맥이군. 그런 인맥이 있다니 더는 임관에 대해선 말도 꺼낼 수 없겠군.”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어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더는 자네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네.”

“감사합니다. 영주님.”

“사실 자네를 청한 건 임관도 임관이지만 그보단 마법사인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서 급히 초대했네.”

곤혹스러운 표정을 잠시 뜸을 들이던 맥코믹 영주는 허심탄회하게 말하였다.

“제 도움이요?”

“앞서 언급했듯 도리아 영애가 무사히 귀환하면서 검은 소용돌이 내부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네. 사례가 이번이 처음인데다 보다 좀 더 기다릴까 싶었지만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이참에 검은 소용돌이를 없애려고 한다네. 그 일에 자네가 협조해줬으면 하네. 협조해 준다면 그에 따른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해주겠네. 고향을 위해 힘 한번 써주지 않겠나? 어스 마법사.”

“좀 더 기다리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하필 검은 소용돌이가 주요 보급 창고 입구에 발생하는 바람에 하루라도 빨리 제거해야 한다네.”

맥코믹 영주가 서두르는 이유를 그제야 납득 할 수 있었다.

“일단 던…… 아니, 검은 소용돌이를 먼저 볼 수 있을까요?”

대도시의 물가는 시골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지금 가진 현금이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충분한 액수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단순한 관광이면 모를까 가족 단위의 정착이기에 금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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