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화
동굴 내부는 대단히 단단하여 계속 되는 파이어 볼의 폭발에도 조금의 붕괴 조짐도 없었다.
처음엔 이를 우려하여 천장이나 벽면을 살폈지만 동굴의 내구력을 확인한 이후 걱정은 싹 잊고서 몬스터가 보이면 족족 파이어 볼을 날려 괴멸시켜 나갔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알림은 매번 2코인을 벌었다 알려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빅 고블린과 동급의 코인이 한 번에 우르르 쏟아졌다.
‘여기부턴 상위 고블린 구역인가?’
어떤 놈들인지 보기 위해 시간차를 두었다.
던전 내부의 몬스터와 외부의 몬스터가 다를까 싶어서였다.
몬스터 도감을 작성하고 있는 페어몬트에겐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눈에 힘을 주고 살피자 놈들을 볼 수 있었다.
체구는 빅 고블린만 했지만 녀석들에겐 볼 수 없는 긴 팔과 다리를 갖고 있었다.
‘달리기 경주하면 질 것 같은데.’
달리는 힘이 보통이 아닐 것 같았다.
팔의 굵기나 길이 역시 보통이 아니었기에 제대로 한 대 맞으면 골로 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생긴 것도 조금 무시무시하다.
동굴 고블린 전사.
알림이 알려준 놈의 이름이다.
파이어 볼이 뜸해지자 놈들은 살기등등한 기세로 발을 굴렸다.
긴 다리를 이용한 놈들의 움직임은 앞서 보았던 일반 동굴 고블린에 비할 수 없이 빨랐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볼을 연속하여 날려 놈들의 기세를 줄였다.
쾅쾅-!
좁은 지형이라 두 발의 파이어 볼이면 동굴의 폭 전체를 뒤덮을 수 있었다.
엄청 세 보이던 놈들도 파이어 볼 앞에선 앞서의 동굴 고블린과 다를 바 없었다.
직격이건 후폭풍이건 휩쓸리면 족족 죽어 나갔다.
무식한 돌진을 계속하던 놈들도 이젠 깨달았는지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돌을 집어서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날아오는 돌멩이는 볼 수 없었다.
마법으로 주변을 밝히고 있다지만 어디 태양에 비교하랴.
아니, 백주대낮의 평원이하더라도 그로선 식별하기 힘들 것이다.
날아든 돌멩이는 어스를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얼굴에 돌멩이를 정통으로 한 대 맞은 다음 화들짝 놀라 두 팔로 급히 얼굴을 가려 팔뚝과 몸으로 돌멩이를 받았다.
생명력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얼굴이 반쯤 박살나서 의식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아님, 고통에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거나.
이번에도 생명력 덕을 톡톡히 본 어스는 원거리 공격이후 여세를 몰아 달려오는 놈들을 향해 서둘러 파이어 볼을 시전했다.
동시에 생성된 3개의 파이어 볼이 곧장 날아가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동굴 지형이라 폭음이 무척 컸다.
당하는 놈들의 비명 역시.
쉴 새 없이 날아오는 파이어 볼에 질린 것인지 놈들이 처음으로 후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완전한 후퇴는 아니었다.
그것은 작전을 위한 후퇴였다.
간악하게도 놈들은 바닥과 천장의 종유석에 숨거나 매달려 있다가 어스가 접근하면 돌팔매와 함께 덤벼들었다.
처음 이 공격을 받았을 때 눈앞이 아찔했다.
‘개자식들이 왜 얼굴만 노려!’
지면뿐만 아니라 이젠 천장에 숨어 있는 놈들까지 신경 써야 하다 보니 이동 속도는 자연 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 역시 적잖이 쌓였다.
‘이대론 안 되겠어.’
보통의 마법사들이 시전하는 파이어 볼보다 자신의 파이어 볼이 훨씬 강하지만 굵고 두꺼운 종유석 뒤에 몸을 숨기면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히기 힘들었다.
그러니 다른 수를 써야 한다.
그런 그의 뇌리에 하나의 스킬이 스쳤다.
체인 라이트닝이었다.
천장과 지상의 거리는 4, 5미터 남짓으로 번개가 이어질 수 있는 사정권이었다.
문제는 체인 라이트닝에 지출해야 하나는 마나가 파이어 볼의 4배다.
포션의 과다 복용 때문인지 메스꺼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체인 라이트닝은 이를 더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
‘조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는데.’
-대상에게 규정에 없던 영향력이 발생했습니다.
-규정에 없던 영향력으로 인한 시스템 조율을 시작합니다.
-조율 완료까지 3일이 소요됩니다.
알림의 내용이다.
단 세 줄밖에 없지만, 무엇을 줄지 힌트조차 없지만 기대하게 만드는 문구가 여럿 있었다.
‘경험이 판단력을 흐린 격인가?’
후회의 감정이 좀더 진해진 순간이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황에서 후회는 의미 없는 짓이었다.
그의 손에서 체린 라이트닝이 발사됐다.
붉은빛이 전부였던 동굴에 그 무엇보다 강렬한 빛이 폭주했다.
놈들이 머리를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유입되던 코인이 이번엔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게 어디까지 가는 거야?’
출근과 퇴근이 빠른 체인 라이트닝이다.
그런데 이번엔 퇴근이 꽤나 늦었다.
당연히 어스에겐 호재다.
진작 체인 라이트닝을 썼어야 했는데.
파이어 볼을 날리며 마신 마나 회복 포션들이 떠오르니 더 아쉬웠다.
그래도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체인 라이트닝이라는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스킬을 앞세운 어스의 이동 속도는 그때부터 한층 더 빨라졌다.
* * *
체인 라이트닝을 앞세운 이후 거침없던 어스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좁은 동굴이 아니라 갑자기 넓은 공동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공동 중앙엔 덩치 큰 고블린 하나가 의자 비슷하게 생긴 종유석에 앉아 있었으며, 그 주변엔 전사 고블린들이 잔득 모여 있었다.
‘보스다!’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꽤나 수고하였기에 어스는 보스 사냥을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효과 만점이었던 체인 라이트닝이 곧장 놈들을 향해 날아갔다.
마나 : 100/300.
남은 마나는 깔끔하게 파이어 버스터 한발로 치환했다.
번개와 불이 거대 공동을 지격했다.
파이어 버스터는 굉음과 함께 불의 파도를 일으킨 뒤 이내 사라졌지만 체인 라이트닝은 흥분한 벌처럼 마구잡이로 이동하며 놈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에 놈들도 크게 당황한 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재빠른 놈들이지만 어찌 번개보다 빠를까.
꿀꺽.
‘체인 라이트닝!’
꿀꺽.
‘체인…….’
빠른 퇴근을 위해 어스는 속이 부대끼는 것도 잊고 체인 라이트닝을 남발했다.
그 결과 2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보스 고블린을 제외한 놈들을 모두 황천길로 보낼 수 있었다.
체인 라이트닝이 일으킨 번쩍거리는 불빛 때문에 어지럽던 눈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반면 어스의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
보스에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앞서 이곳보다 더 상위의 던전 보스도 죽였으니까.
‘저 종유석이 문젠가?’
보스 고블린이 앉아 있는 종유석은 지금까지 보았던 종유석보다 훨씬 크고, 광택까지 흘렀다.
그때 제 부하들이 모조리 감전되어 죽어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던 놈이 돌연 몸을 일으키더니 조악하게 생긴 지팡이를 치켜들곤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알아듣기 힘든 괴상한 말들을 쏟아냈다.
심상치 않다.
명색이 던전 보스, 필시 대단한 마법일 것이라 생각하며 어스는 선제공격에 들어갔다.
‘콜 라이트닝!’
체인 라이트닝과 동급이나 콜 라이트닝의 위력은 그보다 훨씬 강력했다.
대신 체인 라이트닝처럼 다수를 상대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녀석의 머리 위에서 허공을 쩍 가르며 나타난 굵직한 번개가 곧장 보스 고블린에게 떨어졌다.
백색의 강렬한 섬광!
시각적인 현상만 보면 간 떨어지게 무시무시한 위세였다.
하나 그런 위세도 놈 앞엔 통하지 않았다.
아니, 놈이 서 있는 종유석이 문제인 듯 했다.
‘번개는 소용없나?’
번개를 제외하면 불, 얼음, 그리고 무속성인 매직 애로우만 남았다.
이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 역시 불 속성.
어스는 놈을 향해 파이어 볼을 연달아 시전했다.
이것도 저 괴이한 종유석에 의해 차단당한다면 남은 건 아이스 스피어와 매직 애로우뿐이다.
종유석의 능력이 속성 차단에 있다면.
번개 공격엔 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보스 고블린은 그보다 낮은 등급의 파이어 볼은 부담이 됐는지 자리를 옮겼다.
여전히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릴 지껄이며.
종유석에서 뛰어내린 보스 고블린이 다시 몸을 일으키자 체인 라이트닝과 파이어 버스터에 쓸러 나간 예의 그 동굴 전사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 소환?’
10마리의 동굴 전사 고블린들이 땅을 박차고 어스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마나 회복 포션을 마실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파이어 볼 두 발을 사용할 정도의 마나는 남아 있었기에 급한 불을 끄듯 이를 모두 시전한 뒤 잽싸게 포션을 마셔 마나를 보충한 뒤 체인 라이트닝을 날렸다.
종유석에서 내려온 던전 보스도 이번엔 체인 라이트닝을 피할 수 없었다.
“꾸아아아아아-악!”
또 한 번 소환을 시도하던 놈은 그 한 방을 견디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했다.
종유석만 아니면 별 볼일 없는 놈이었다.
‘괜히 쫄았네.’
-보스 고블린 소환사 굴카이를 처치했습니다.
-2,000코인을 습득합니다.
앞서 두 개의 던전과 달리 이번 던전에선 알림이 무척 짧았다.
“뭐? 이게 끝이라고?”
설마 싶었는데 진짜 이게 끝이었다.
귀를 활짝 열고 기다려도 더 이상 어떤 알림도 없었다.
내심 업적 포인트를 기대하고 있던 어스 입장에선 손해막심이었다.
화가 치민 어스는 죽어 자빠진 보스를 냅다 걷어찼다.
보스를 처치했으니 지긋지긋한 동굴에서도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대로 그냥 가기엔 많이 아쉽다.
보스가 처리된 던전에선 오래 머물 수 없다.
어스는 발밑에 떨어진 굴카이가 쓰던 지팡이를 냉큼 집어 들었다.
더해 놈이 의자처럼 사용하고 있던 종유석의 잔해도 인벤토리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인벤토리를 꽉 채우려고 했지만 힘을 다한 던전이 소멸하면서 어스는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갔다.
던전에서 사라진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던전이 있던 예의 그 자리였다.
그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함인지 동쪽 산등성이에서 일출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 날 샜네.”
돌아가면 어머니의 잔소리가 결코 간단하게 끝나지 않으리라.
* * *
어스의 예상은 맞았다.
돌아오자마자 한숨도 못 잔 어머니에게서 폭풍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잔소리 모두 이치에 딱딱 맞는 것들이기에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친구라도 있다면 이를 핑계 삼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겐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고스란히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중간에 아버지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더 혼났을 것이다.
역시, 남자 마음은 남자가 알아주는 법이다.
잔소리와 별개로 아침을 챙겨준 어머니 덕분에 배를 든든하게 채운 어스는 그길로 곯아떨어졌다.
정오가 지날 무렵 깬 어스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곤 던전에서 가져온 종유석 조각과 보스가 쓰던 지팡이를 꺼내 살폈다.
‘팔면 돈이 될까?’
5서클 마법사라곤 하지만 그에 수반되는 지식이 아주 없는 어스로선 종유석의 가치를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지드 영감님은 알까?’
지드는 마법에 대해 아예 모르던 어스에게 마법사들의 세계에 대해서 알려준 피어스 남작령 주도에서 마법 상점을 운영하는 2서클 마법사였다.
생애 처음으로 알게 된 마법사 지인.
‘영감님이 모르면 허든 상회주에게 가 봐야겠네.’
종유석에 관한 건 그들에게 부탁하기로 하고 남은 지팡이를 살폈다.
모습이 특이할 뿐 재질은 나무였다.
과연 이게 놈의 소환과 연관이 있던 걸까?
놈이 지팡이를 사용하던 모습을 떠올린 어스는 그대로 따라 해봤지만 놈이 한 것처럼 소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주문이 있어야 하는 건가?’
사투리도 아니고 고블린의 언어다.
그걸 듣는다고 기억하는 건 당연히 무리.
건진 건 있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머리만 벅벅 긁던 어스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한 가지 깜빡하고 넘어간 일이 있음이 떠올랐다.
“아차! 연락!”
동료들에게 잘 도착했다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니.
뒤늦게 본 마법 통신구엔 문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처음엔 걱정, 이후엔…… 잔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