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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78화 (78/250)

078화

여동생과의 대련에서 결국 어스는 승리했다.

쓰러진 건 루시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대련이었다.

결투도 아니고, 당연히 이곳은 전장도 아니다.

그런 장소에서, 그것도 여동생을 상대로 무려 4서클 스킬을 갈겨버렸으니 솔직히 염치없는 승리였다.

일루젼의 충격, 그 충격에 비명을 터트린 루시는 처음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다 이후엔 환상에 맞서 싸웠다.

입술을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까지 흘리며 버텼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놀라운 체력이었다.

일루젼에 당하고도 무려 30분을 버티다 체력이 소진하여 쓰러졌으니까.

치료 포션을 먹여 상처를 치료하고 정신을 들게 만든 어스는 루시가 본 환영에 대해 듣곤 기함했다.

루시가 싸웠던 상대는 오우거였기 때문이다.

베테랑 용병도 오우거를 만나면 공포심에 사지가 마비될 지경인데, 그런 상대를 향해 물러서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고 하니 여동생의 정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치지 왜 싸워?”

“아빠랑 엄마는 다쳐서 의식이 없고, 오빠는 질질 짜고 있는데 어떻게 나만 살겠다고 도망 쳐.”

다 좋은데 거기서 왜 자신만 질질 짜?

대체 저 녀석의 머릿속에 자신은 어떤 모습이기에.

그 점은 심히 못마땅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칫. 정말 기사가 하고 싶어?”

“하고 싶다고 다 해? 그냥 해본 말이지. 나 같은 걸 누가 종자로 삼겠어. 어림도 없지.”

하겠다고 말할 땐 하지 말라고 했지만, 막상 이런 말을 듣자 생각이 달라진다.

‘어쩜 루시는 루리아 누나 못지않은 재능을 가진 건가?’

어스가 아는 여자들 중에 루리아만큼 강한 여자는 없었다.

더구나 루리아의 나이는 고작 열일곱이다.

만약 루리아가 받은 교육을 루시가 받게 된다면 4년 후엔 어쩜 루리아보다 더 강한 여검사가 될지도.

“기회가 생긴다면 어쩔래?”

“그럼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할 거야.”

여동생의 표정과 기세가 일변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끝까지 손에서 목검을 놓지 않은 아이.

이러니 도저히 응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응.”

“종자는 모르겠지만 체계적인 교육은 받게 해줄 수 있어. 한번 해볼래?”

“무슨 말이야?”

“왕도에 평민도 다닐 수 있는 아카데미가 있다고 들었어.”

“아, 아카데미?”

“졸업 성적이 좋으면 기사로 발탁 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만큼 힘들 거야.”

“조, 좋…… 하지만 돈이 많이 들잖아.”

“오빠 돈 많아. 아까 네가 본 건 내 재산의 10분의 1도 안 돼. 어떻게 할래?”

“정말 괜찮겠어?”

말은 저리해도 두 눈은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열정이란 건가?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당연하지. 너 하고 싶은 거 다해도 돼.”

“엄마아빠가 허락할까?”

“그건 이 집안의 장남인 오빠에게 맡겨.”

“그, 그럴게.”

처음으로 여동생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어스는 시대의 사명을 받은 선구자처럼 결의를 다졌다.

* * *

아버지가 잡아온 꿩 두 마리를 어머니가 요리하여 식탁에 올렸다.

오랜만에 부모님의 수고가 가득 들어간 음식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에 보답하듯 어스는 인벤토리에 보관 중인 디저트를 꺼냈다.

가격이 제법 나가는 것이라 맛도 맛이지만 보기도 좋았다.

어스는 자신이 겪었던 위험한 이야기는 쏙 빼고서 즐거웠던 것만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툭 말을 꺼냈다.

“루시를 아카데미에 입학시켰으면 해.”

“뭐?”

“아카데미?”

“응. 아카데미.”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아빤, 루시의 꿈을 알고 있어?”

당연히 모르리라.

“기사.”

어? 아네.

“어, 어떻게?”

“자식 일을 어떻게 아빠가 모를 수 있겠어. 하지만 우리 처지에 가당키나 하겠어. 영지의 병사가 되는 것만 해도 엄청난 출센데.”

능력이 없어서 자식의 꿈을 지원해주지 못하는 가장의 표정은 참 슬펐다.

어머니 역시 그 슬픔을 얼굴에 담고서 나직이 한숨을 내쉰다.

이러면 일이 의외로 잘 풀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루시를 왕도에 있는 아카데미에 입학시킬 생각이야.”

“왕도에 있는 아카데미에? 대영지의 물가도 비싼데 왕도면 그보다 더 비쌀 텐데 우리 형편으론…….”

“아빠! 나 마법사야. 그것도 엄청 유능한 마법사라고. 아까 돈주머니들 봤지. 사실 그건 내가 가진 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루시 하나쯤은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시킬 수 있어. 루시 혼자 왕도로 보내는 게 걱정되면 엄마아빠도 함께 왕도에 가서 살아도 돼. 장난 아니고, 농담 아니고 진심이야.”

아직은 어린 자식이다.

그런 자식이 고생해서 번 돈을 사지육신 멀쩡한, 아직도 젊은 자신들이 쓴다는 건 행크와 엘이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딸애의 장래를 생각하면 아들의 제안을 마냥 거절할 수 없었다.

어스는 부모님이 흔들리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이쯤 모르랴.

“마차 한 대 임대할 테니까 모레쯤 가는 것으로 하자. 입학시험이나 일정도 알아보려면 미리 가 있는 게 좋아. 집도 알아봐야 하고.”

“여기 있는 집이랑 땅은 어쩌고?”

“지금 저 검은 소용돌이 때문에 살 사람도 없잖아?”

“그, 그야 그렇지만.”

“아빠, 이건 루시를 위한 일이라고. 하나밖에 없는 딸의 장래가 걸린 일이야.”

“그럼 넌?”

“나?”

“말이 좋아 용병이고, 모험가지 사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잖아. 아빠가 모를 줄 알고? 다 알아.”

“내가 정말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아니다. 그냥 보여 줄게.”

백번 말해봐야 무엇하랴.

어스는 파이어 볼을 시전했다.

지력 30의 영향으로 일반적인 파이어 볼 보다 더 강해진 스킬, 그것만 해도 놀라운 위력을 자랑하는 파이어 볼은 강화까지 된 상태라 더 크고 강력해졌다.

그러한 것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6개가 허공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가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건?”

“파이어 볼. 그리고 저건 내 힘의 절반에도 못 미쳐. 저보다 더 대단하고 위력적인 마법이 있거든. 진짜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나 혼자서 몬스터 웨이브도 막아냈어. 그때 그 일로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불리는지 알아? 괴물 마법사로 불려. 하우든 백작령에가서 괴물 마법사에 대해 물으면 세 살 먹은 어린아이까지 다 알고 있을 걸. 어디 그뿐이야. 내 인맥을 들어보면 놀라 까무러칠걸.”

“모, 몬스터 웨이브? 방금 몬스터 웨이브라고 했어? 혹시, 얼마 전 침묵의 숲에서 있었던 그 몬스터 웨이브?”

“어라?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요새에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에게서 그 말을 들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아들이라니.”

“와아, 소문이 여기까지 난 거야?”

“그런데 소문에 그 괴물 마법사는 불길한 검은 로브를 입고 다닌다던데?”

“아, 그거 낡고 헤져서 버렸지. 대신 이게 그 로브보다 몇 십 배, 아니 몇 백배는 더 비싼 옷이야. 물론, 이건 내 돈으로 산건 아냐. 선물 받은 거지. 내가 어찌나 잘났는지 다들 비싼 선물을 못 해줘서 안달이걸랑.”

행크와 엘이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루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루시의 표정이 싹 변했다.

“그렇게나 대단한 마법사씩이나 되는 분이 어린 여동생에게 마법을 쓴 거야? 그깟 대련에 이겨 보겠다고?”

“…….”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지금 널 위해 이 오빠가 약을 치고 있는데.

어스는 몹시 당황했다.

“루시,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가 네게 마법으로 공격했다고?”

“어스, 루시의 말이 사실이냐? 정말 동생을 공격했어?”

집안의 든든한 장남에서 졸지에 여동생을 때린 파렴치한 아들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아차차, 나 윌리엄 님과 약속이 있는 걸 깜빡했네. 다들 쉬고 있어요.”

어스는 그 길로 곧장 내빼며 통탄했다.

‘역시, 여동생이랑 돈독해지는 건 무리야, 무리.’

* * *

가족에게 특혜(?)를 베푼 윌리엄 작슨과의 자리에서 어스는 또 한 번 임관제안을 받았다.

과거에도 거절했는데 하물며 지금이야.

어스는 좋은 말로 윌리엄의 제안을 거절하며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피어스 남작령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 내용은 윌리엄 또한 알고 있었기에 흥미를 끌어내지 못했다.

이후 형식적인 이야기를 그와 나눈 어스는 가족들이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숙소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블링크.’

홀로 찬바람을 맞이하고 있는 달을 보고 블링크를 사용하였으나 실제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천국은 달에 있다는 미신도 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시도했으나 그때도 지금처럼 실패했다.

이렇게 따지면 시선이 닿는 곳까지 공간 이동한다는 설명은 오류 아닌가?

하지만 일반적인 블링크의 이동 거리에 비하면 지금도 사기이니 달에 못 간걸 탓할 생각은 없었다.

지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맹추위를 자랑하는 밤하늘에 홀연히 나타난 어스, 강력한 바람에 로브자락이 어지럽게 날리고, 머리카락 역시 정신없이 이리로 저리로 날리고 있었지만 중심이 무너지진 않았다.

처음엔 엄청 쫄아서 바지에 살짝 지렸지만 이 짓도 자주하다보니 이젠 추락도 즐길 수 있는 마인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어스가 이리 갑자기 블링크를 사용한 건 얼어 죽기 딱 좋은 바람을 쐬기 위함이 아니었다.

‘사람도 지위고하가 있듯, 던전에도 분명 있어. 그게 아마 그 띠겠지.’

처음 접했던 던전은 유령 저택이었다.

대륙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던전과는 완전 달랐다.

만약 알림이 던전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검은 소용돌이와 그 곳을 별개로 생각했을 것이다.

고향으로 오면서 봐두었던 인적 없는 산속의 던전, 어스는 그 방향으로 연거푸 블링크를 시전했다.

‘거북하네.’

하루 종일 포션을 마시느라 황천길로 가지 않을까 싶을 만큼 몸이 안 좋아져 한 동안은 포션은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문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기에 이를 감수하고 포션을 사용했다.

‘저기네.’

목표물을 발견한 어스는 곧장 지상으로 공간 이동했다.

던전 주변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벌레야 얼어 죽었다지만 산짐승이나 새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동물들은 저게 위험하다는 걸 아는 거지.’

게른 산맥에서 발견한 던전의 띠는 5개.

토머스 마을의 던전의 띠는 3개.

그리고 어스의 눈앞에 있는 던전의 띠는 2개였다.

‘과연 넌 어떨까.’

어스는 곧장 검은 소용돌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 * *

앞서 두 개의 던전을 경험했다.

그것이 어스에겐 독으로 작용했다.

‘미친, 동굴이잖아!’

설마 이런 환경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만만하게 들어왔던 어스의 안색은 순식간에 핼쑥해졌다.

그간 다방면으로 알차게 써먹었던, 구명기라고 해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던 블링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제 발등을 찍어 버린 어스는 겨우 자책을 떨쳐내며 걸음을 옮겼다.

보스를 처치하지 않는 이상 여기서 나갈 방법이 없는 이상 그로선 이 상황이 내키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가야만 했다.

‘제발, 만만한 곳이어야 할 텐데.’

주변이 어두운지라 파이어 애로우를 생성하여 라이트를 대신했다.

생성한 파이어 애로우는 총 열 다섯 발.

남은 마나는 ‘0’이다.

꿀꺽.

마나 : 300/300.

마나 회복 포션이란 자신에게만 통하는 사기적인 효과가 없었다면 애초 여긴 발도 디디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죽었으리라.

거친 노면과 듬성듬성 돋아난 종유석의 그림자가 넘실거릴 때마다 지레 놀란 식은땀의 양도 늘어났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오랫동안 걸은 듯 숨이 가빠왔다.

심리적인 요인인 걸 알고 있었지만, 이를 핑계로 쉬고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이동 거리는 시간이 무색하게 얼마 되지 않았다.

다시 이동하던 그는 곧 걸음을 멈추었다.

이번엔 다른 이유에서였다.

“크르르르릉.”

“코루루루루!”

여섯 쌍의 시퍼런 안광이 귀화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몬스터와의 대면이었다.

파이어 애로우의 빛이 닿기엔 떨어져있었기에 어떤 놈들인지 파악이 어려웠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그런 생각을 하고 막 공격하려던 찰나 놈들이 먼저 움직였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안광의 크기에 비해 놈들의 덩치는 작았다.

그 덩치에 어울리게 무척이니 기민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여섯 쌍의 안광, 위협적인 그 안광을 향해 어스는 거느리고 있던 파이어 애로우를 모조리 전방을 향해 투사했다.

그와 동시에 파이어 볼 6개를 생성하여 전방에 일렬로 배치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어둠을 가르며 힘차게 날아간 열다섯 발의 파이어 애로우는 정확히 네 마리의 몬스터를 명중했다.

-동굴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2코인을 습득합니다.

네 번의 비명, 그리고 네 번의 알림.

‘고블린?’

놈들의 정체를 알림을 통해 확인한 순간 어스를 짓누르던 압박감은 일시에 증발했다.

동족 넷이 순식간에 죽었음에도 남은 두 놈은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 그런 놈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이어 애로우와는 비교도 안 되는 파이어 볼이었기에 놈들의 운명은 더 처참했다.

앞서 네 놈은 사체라도 남겼지만 놈들은 그것도 남기지 못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띠가 적을수록 약한 던전이었어.”

더 이상 걱정할 게 없다고 판단한 어스는 보무도 당당하게 걸으며 낌새가 조금만 이상해도 파이어 볼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콰아-앙!

그가 사용하던 파이어 볼은 전에도 강했으나 지금은 더 강해진 상태다.

화력과 범위 모두.

더구나 이곳은 동굴이었기에 강화된 파이어 볼이 활약하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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