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77화 (77/250)

077화

자신의 경험이 결코 범상치 않다고 여겨 상태창을 확인한 어스는 큰 실망감을 느꼈다.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어떤 변화도 없어서였다.

‘사기당한 기분이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49).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2/100).

생명력 : 245/245.

마나 : 300/300.

인벤토리 : 1(+3).

스탯 : 힘(2.3). 체력(30). 민첩(2.2). 지력(30). 정신(41).

직업 스킬(9/9) : 매직 애로우(+3/12). 파이어 애로우(+3/12). 파이어 볼(+3/12). 파이어 버스트(+0/12). 아이스 스피어(+3/12). 일루젼(+0/12).

콜 라이트닝(+0/12). 블링크(+0/12). 체인 라이트닝(+0/12).

업적 포인트 : 0.

코인 : 247.

‘중간에 방해받은 것 때문일까?’

방해한 사람들이 타인들이었다면 화를 내던 짜증을 부리던 아무튼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상대를 향해 심한 말을 퍼부어 버렸을 테지만 상대가 가족이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으니, 그 당시 어스가 느꼈을 상실감과 분노의 크기는 현재의 감정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들 모두 무사하니까.’

아쉽고 섭섭하고 그리고 미련이 생겨 좀처럼 상태창을 끄지 못하던 어스는 깊은 한숨을 연달아 내쉬며 상태창을 끄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할 일도 없고, 가족들 모두 다들 나가고 없다보니 이 시간을 이용하여 윌리엄 작슨을 찾아가기로 했다.

마른세수를 통해 지금의 울적한 기분을 슥삭슥삭 지우고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렇게 문을 활짝 열고 한 발 앞으로 딛으려 할 때였다.

뜬금없는 손님이 찾아왔다.

-대상에게 규정에 없던 영향력이 발생했습니다.

-규정에 없던 영향력으로 인한 시스템 조율을 시작합니다.

-조율 완료까지 3일이 소요됩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 손님은 항상 일방통행이었다.

단 세 문장의 알림이었지만 이 문장들이 촉발시킨 어스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당연히 좋은 방향이다.

‘봐, 맞잖아! 보통 경험이 아닌 거!’

자신의 경험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늘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던 알림이 이제야 반응하다니.

필시 조율이 완료되면 대박 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문장 자체가 이미 기대를 잔뜩 부추기고 있지 아니한가.

빙그레.

숙소 입구를 막고 서서 멍하니 웃고만 있는 어스, 마침 숙소로 돌아오던 그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된 루시는 ‘저 인간 뭐지?’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다 여전히 입구에 서서 앞을 가로막자 더는 참지 못하고 한 소리 했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의 온기가 저 인간으로 인해 왕창 새고 있었으니까.

“뭐하는 거야? 들어갈 거면 들어가고 나갈 거면 얼른 나가! 안 그래도 외풍 때문에 고생인데 이러면 밖이나 안이나 다를 바 없잖아.”

“여기 외풍 있어? 못 느꼈는데.”

당연히 그는 느낄 수 없다.

안 그래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데 여기에 4가지 옵션이 부여된 마법 로브 앞에 외풍이 어디 명함이나 내밀 수 있으랴.

이보다 열 배는 더 추운 게른 산맥의 추위도 로브에 걸려 있는 부여 마법 앞에 무릎 꿇었거늘.

장작 꾸러미 두 개를 등에 짊어진 루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사람은 주머니가 든든해야 한다는 어른들이 말이 맞나 봐. 전엔 초가을만 되도 춥다고 이불 속에서 안 나왔으면서.”

그땐 그랬지.

‘추억 돋네.’

누가 그랬다.

현재가 행복하기에 추억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라고.

“네가 불 담당이야? 고생하네.”

“얼른 비켜. 냉골에서 자고 싶어?”

“너 오빠가 뭐 하는 사람인지 까먹었냐? 오빠, 마법사야. 마법사! 여기 가도 우와! 저기 가도 우와! 내가 그런 엄청 대단한 마법사라고. 그런데 그런 위대한 오라버니가 설마 하나뿐인 가족들을 냉골에 자게 할까. 장작 없이도 후끈하게 잘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걱정 하지 마.”

“전엔 고블린 앞에서도 쩔쩔 맸으면서 어디서 거짓말이야.”

성인도, 성자도 제 고향에선 앞집 어스, 뒷집 어스, 옆집, 옆옆집 어스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참에 개명할까?

너무 흔해빠진 이름이라 멋도 없고, 폼도 안 나는데.

“거짓말? 가소롭군. 잠깐 있어 봐.”

잠시 쭈그려 앉은 어스는 바닥에 글을 쓱쓱 써내려나갔다.

글자가 하나씩 완성될수록 루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 글을 알아?”

“이 오라버니가 힘든 생활 중에서도 노력한 결과 중 하나다. 하물며 마법이야 얼마나 더 열심히 수련했겠냐?”

그간 하지 못했던, 아니 하자니 민망해서 차마 제 입으로 하지 못해 입이 간질거렸던 자랑을 여동생을 상대로 몽땅 쏟아내고 있었다.

십년 묵은 체증이 한 번에 쏙 내려가는 느낌이 아주 청량했다.

최고급 맥주의 첫맛처럼.

루시는 격세지감을 느낀 듯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꾹 다물고 있었다.

부럽고, 자랑스럽고, 그러면서도 한편 자신의 처지에 루시의 코끝은 시큰거리고 있었다.

“참, 아빠랑 엄마는?”

“아빠는 오빠 고기라도 먹여야 한다고 숲. 엄마는 주방에 재료 얻으러 갔어.”

“안 그래도 되는데.”

“엄마아빠 마음이니까 주면 맛있다고 해. 어린애처럼 깨작거리지 말고.”

“깨작이라니. 오빠 몸 보면 모르겠냐? 이 키, 키 보여? 그리고 이 근육은 어떻고. 계집애처럼 깨작거리면 가당키나 했겠어?”

얼굴 빼면 시체이던 시절이 있었다.

여동생이 누나 같고, 오빠가 남동생 같다는 소릴 듣던 흑역사가.

소매를 위로 걷어 올린 어스는 자신의 근육을 자랑했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찾을 수 있는 근육이다.

루시는 황당한 얼굴을 하고서 그를 스쳐 지나갔다.

난로 옆에 자리 잡은 그녀는 손도끼로 장작을 묶은 밧줄을 툭툭 쳐서 끊어내더니 소매를 걷어 올리곤 장작을 잘게 쪼개기 시작했다.

바싹 마른 비스킷도 저처럼 쉽게 쩍쩍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난로의 불빛 때문인지 여동생의 팔뚝에 유난히 음영이 깊다.

어스는 그 팔뚝과 자신의 팔뚝을 비교하다 소심한 표정으로 소매를 내렸다.

‘저 녀석 나 없는 동안 영약이라도 먹은 건가?’

장작 두 꾸러미를 순식간에 잘게 쪼갠 루시는 이를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돌아서서 어스를 응시했다.

턱 끝을 살짝 세우고서.

그 순간 어스의 귀에 환청이 들렸다.

넌 아직 멀었어, 멀었어, 멀었어.

“다시 소매 걷어봐.”

자존심이 카드 집 무너지듯 무너져버렸다.

“나, 남자는 속살을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게 아니랬어. 그보다 너 그동안 뭐했어? 뭐했기에 그런 멋진... 아니, 팔뚝이 오크 팔뚝만큼이나 굵어졌냐?”

상처 난 자존심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도발했다.

이 도발은 항상 적중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약발도 다한 건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것인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갑자기 진지해진 루시.

“수련.”

“활쏘기?”

“그거랑 다른 것도 해.”

“다른 거?”

“검술.”

“…….”

“뭐야? 그 표정은?”

“검술은 또 뭐야? 그걸 네가 왜 배워?”

“전에 말했잖아. 나 기사가 될 거라고.”

기사는 어린 소년들에겐 동경의 대상이다.

여자애들은 보통 공주님인데.

하여튼 특이한 녀석이다.

뉘 집 자식인지.

‘우리 집 자식이군.’

그래도 내 자식이 아닌 게 어딘가.

“여전히 애네, 애야.”

“내 꿈이자, 목표야. 그렇게 말하지 마.”

“기사란 게 겉보기에만 좋아 보이지 실상은 엄청 고달픈 직업이야. 그냥 편하게 살아. 다른 여자애들처럼.”

“역시, 오빠완 말이 안 통해. 나갈 거면 나가.”

‘저 녀석 진짜 진지한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사라니.

‘응원해줘야 할까?’

마냥 응원하기엔 기사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어스는 내키지 않았다.

“루시.”

“또 무슨 말 하려고. 싫은 소리 할 거면 하지 마. 오랜만에 만난 오빠랑 싸우기 싫으니까.”

“싸움 말고 대련해 볼래?”

“나랑? 나 루신데?”

“지고 울지나 마라.”

용병으로 잔뼈가 굵은 이에게서 기초를 다졌고, 중급 익스퍼트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물론 수련 기간이 짧고, 이런 저런 일로 인해 꾸준히 수련하진 않았어도 제대로 배운 자신과 그렇지 못한 여동생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어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숙소 뒤편에 있는 공터로 거음 했다.

창 대신 봉을 잡은 어스.

투박한 모습의 목검을 잡은 루시.

“세 번 양보하마. 덤벼!”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대사였다.

설마 그 대사를 여동생에게 할 줄은 몰랐지만 어쨌거나 대사 하나는 기똥차게 맛깔났다.

만족, 만족, 대만족.

그렇게 폼을 잡고 소리친 이후 어스는 자신이 배운 바를 몸으로 실천했다.

완벽한 자세를 잡고서 여동생의 공격을 대비했다.

그 모습이 의외인지 루시는 말을 하려다 도로 삼킨 뒤 다부진 얼굴을 하고서 땅을 박찼다.

‘다리를 노리는 거군.’

눈에 훤히 보이는 이깟 공격이야.

어스는 즉시 하체를 보호했다.

세 번은 양보하겠다고 했으니 지금은 방어 위주였다.

그러나 양보의 횟수를 다 채우면 그땐 폭풍 같은 기세로 단숨에 여동생을 굴복시키리라.

그리하여 일장 연설을 선사하리라.

우물 안 개구리여 깨어나라고, 세상엔 너보다 재능이 출중한 사람들이 넘친다고, 너는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기사라는 허황된 목표는 접으라고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래야 하는데.

다리를 노리던 루시의 목검이 갑자기 방향이 바뀌었다.

몸까지 빙글 돌렸다.

춤추나?

그 생각이 언뜻 들었다.

빡!

호쾌한 타격음이 터졌다.

어스의 반대편 허벅지에서.

‘어라? 이게 뭐지?’

생명력 덕분에 고통은 전혀 없다.

충격 역시.

생명력의 이러한 효능 덕분에 어스는 남들은 충격과 고통으로 물러서야 하는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돌진할 수 있었고, 생각이 끊어져야 할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엄청난 맷집이라고만 생각했다.

“뭐야? 겉멋만 잔뜩 들었지 알맹이가 없잖아. 그런데 안 아파?”

위신 추락!

“바, 방금은 내가 봐준 거야. 이제부터가 진짜다. 덤벼!”

어스는 이 말을 후회했다.

세상 어떤 사람이 열 번, 스무 번을 얻어맞고도 봐준단 말인가.

이 대련에서 어스는 정말 골고루 얻어맞았다.

머리 빼고 다.

“그만하자. 오빠 괴롭히기 싫어.”

다들 좋아졌다고 했는데.

대체 그들의 눈은 뭐란 말인가?

여동생한테도 쳐 발리는 창술 어디가 좋아졌다고.

“하아, 이건 봐준 거야. 그 증거가 여기 있잖아. 내가 아파하는 것 같아? 천만에 네 공격 모두 이 몸이 다 막은 거야. 봐라? 상처하나 없잖아.”

창술이고 나발이고 이젠 몽땅 던져버린 어스는 딱 한 가지, 여동생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때리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틈은 더 많아졌고, 이로 인해 루시는 너무 많은 선택지에 오히려 곤란을 겪었다.

이를 알 리 없는 어스는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여동생을 한번 때리겠다는 일념으로 봉을 휘둘렀다.

‘창, 창이 아니라 봉이라서 못 맞추는 거야. 창이었다면 벌써 맞췄을 거야.’

허공에 삽질 할 때마다 비겁한 자기변명을 하며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루시는 더 이상 어스를 때리지 않았다.

기사가 꿈인 루시의 눈에 제 오빠는 딱 세 살 먹은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 약자(?)를 상대로 목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그래서 목검은 뒤로한 채 상체와 하체를 적당히 움직이며 어스의 공격을 모조리 피했다.

차라리 멀찍이 떨어져 피했다면 덜 속상할 텐데, 얄밉게도 손가락 한두 마디의 간격으로 피하고 있었기에 어스로선 더욱더 약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일루젼!’

“꺄아아아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