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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73화 (73/250)

073화

그것은 새하얀 대리석 바닥이었다.

그런데 문지방을 넘어 바닥을 딛자마자 대리석 바닥이 단숨에 복병이 되어 어스의 육체를 집어삼켰다.

물리적인 공격이나, 마법적인 공격을 예상하고 있던 어스에게 이는 뒤통수였다.

‘블링크!’

머리마저 잠기기 전 어스는 블링크를 시전했다.

이는 몸이 가라앉는 동시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머리까지 바닥에 잠겨버렸을 것이다.

허공에 몸을 띄운 어스는 대리석 바닥에 닿기 전에 얼른 마나 회복 포션을 마시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공간 이동했다.

“왜?”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블링크 사용했어? 갑자기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사람이 방금 대리석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그게 할 소리예요!”

놀란 가슴이 채 진정되지 않았던 어스의 언성은 절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빠져? 그게 무슨 말이야?”

“봤잖아요.”

“뭘 봐? 너 잘 걸어가고 있었다고.”

어스가 바닥으로 빨려 들어갔음에도 그 누구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놀랍게도 그들의 눈엔 어스가 멀쩡한 모습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스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으니 저들 입장에선 충분히 의아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들리의 말에 어스는 깜짝 놀랐다.

그럼 방금 자신의 그 경험은 뭐란 말인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봐.”

어스는 자신이 방금 겪은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들리와 페어몬트가 머리를 맞대었다.

“어스, 괜찮아?”

“괜찮아요. 누나. 그런데 정말 저 멀쩡하게 걸어가고 있던 거 맞아요?”

“응.”

루리아와 이야기를 나누며 놀란 가슴을 진정하자 그사이 결론을 도출했는지 하들리가 다가왔다.

“두 종류 이상의 고위 마법이 걸린 방인 것 같다. 내 스캔과 탐지를 벗어날 정도면…… 최소 6서클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

“6, 6서클?”

마탑은 왕국과 교단의 영향에서 벗어난 단체다.

물론 한두 개의 마탑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륙의 모든 마탑이 연합하여 대륙의 모든 왕국, 그리고 교단과 협상을 통해서 달성한 지위다.

실제 그 협상에서 마탑 연합이 그들에게 뭘 줬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달성한 지위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세간에 이런 말이 떠돌고 있다.

국법과 교단의 마수를 피하고 싶으면 마탑에 숨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무튼 이런 마탑 연합에서조차 6서클 마법사의 숫자는 수십 명에 불과하다.

물론 이를 신뢰할 순 없다.

왜냐면 각국이 전략적 목적으로 자국 내 소드 마스터의 숫자를 축소하듯 마탑 또한 그러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하들리는 최소라고 했다.

6서클이 이웃집 개 이름도 아닌데.

꿀꺽.

“그럼 우리 힘으로 뚫는 건 불가능하단 이야긴가요?”

“마법을 해제하면 돼. 경험상 저 방을 통과하면 마법이 해제될 가능성이 80퍼센트 이상이다.”

그렇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블링크로 이동하면 되니까.

“잠깐, 좀 전에 두 종류 이상의 마법이 걸려 있을지 모른다고 했죠?”

“그래서 우려스러운 거야.”

“두 종류는 뭔데요?”

“환상과 공간 왜곡.”

공간 계열의 마법 재능은 매우 희귀한 편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재능만 있다면 마탑이 정한 최우선 영입대상이 된다.

예전 루리아 여동생 소피 일행이 어스가 인벤토리에서 물품을 꺼내는 걸 보고 기함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나머진?”

“그건 무의미한 질문이지.”

“겪어 봐야 안다는 거로군요.”

“그렇지.”

두렵다, 지금이라도 후퇴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런데 꼭 사람이 갈 필요 있어요? 정령이 들어가도 되지 않나요?”

“반발력 때문에 정령은 들어갈 수 없어. 힘으로 뚫으려고 한다면 뚫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중급 정령의 힘으로 저길 뚫는 건 무리지.”

“그래도 시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프라이스가 자청했다.

그 결과.

프라이스는 혼절하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노임이 받아서 역소환되자 그 여파가 고스란히 정령사인 프라이스에게 미친 결과였다.

‘정령사도 마냥 좋은 건 아니구나.’

역시, 정답은 마법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냥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프라이스가 나가떨어졌으니 파티에서 남은 카드는 자신이 유일하니까.

더구나 앞서 큰소리까지 탕탕 쳤는데.

자존심이냐, 목숨이냐.

쓸데없는 걱정이다.

당연히 목숨이지.

“포기가 정답일 것 같은데? 다른 분들 생각은?”

명색이 왕잔데 6서클 마법사쯤은 얼마든지 섭외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여기서 어스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명색이 왕자인 카멜이 3서클 마법사만 대동한 점이었다.

단순한 여행이면 모를까 모험가 파티를 꾸린 상황에서 말이다.

물론 3서클 마법사라곤 하지만 하들리의 경우에는 스캔과 탐지 마법에 관해선 그 경지가 3서클로 보기 힘들지만, 어쨌건 그가 3서클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시작부터 제대로 꼬여버린 경우다.

난색, 난색 또 난색.

이것이 지금 이 순간 일행에 드리워진 먹구름의 이름이었다.

* * *

일행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부로 진입할 수 없다면 외부를 통해 들어가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결과는 실패했다.

어스도 이에 참가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창문 하나 깰 수 없었다.

이 또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 참 짜증 나는 신비다.

“할 수 없군. 이걸 사용할 수밖에.”

시도란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카멜이 나섰다.

그것은 목걸이였다.

투박한 느낌의 목걸이였다.

명색이 왕자다.

그런 사람이 비장의 한 수처럼 말하고 있으니 투박함이 오히려 더 특별하게 보였다.

“충전이 다 된 겁니까?”

“내일 정오쯤.”

“그럼 오늘은 쉬어야겠네요.”

저 목걸이가 뭔데? 대체 무엇이기에 다들 저 목걸이를 신뢰하는데.

궁금증이 목구멍까지 꽉 채울 무렵 어스의 심정을 읽은 것인지 카멜이 설명해주었다.

“이건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마법 물품이야.”

마법의 힘으로 만들어진 물품인데, 그것이 오히려 마법을 무효화시킨다고 하니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저런 게 있으면 진작.

‘충전이 필요하다고 했지. 대체 얼마나 걸리는 거야?’

이와 같은 의문도 카멜은 친절하게 풀어주었다.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어.”

“다행이네요.”

“다행이라곤 할 수 없지. 초입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이걸 쓰게 됐으니까.”

“그거 하나뿐이에요?”

어스의 질문에 카멜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카멜뿐만이 아니다 모두 그런 표정을 지었다.

“천재에겐 하나같이 약점이 있지. 어스의 약점은 상식부족인 거 같아.”

페어몬트가 혀까지 차며 말하였다.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니까.

그런데 가난한 시골출신 평민에게 이는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이를 요구하는 잣대가 잘 못이다.

그럼에도 가끔 사람들은 이를 망각한다.

당연히 그 이유는 어스가 마법사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천재도 씹어 먹을 괴물 마법사로 불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또 어스의 매력 아닐까요?”

루리아가 말하였다.

그 말에 방금까지 침울했던 어스의 기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핑크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었다.

‘루, 루리아 누난 날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런 의미가 아닐진대.

아무튼 착각도 개인의 자유니까.

그렇게 일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유적지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낮인지 밤인지 지하라 알 수 없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밤은 편치 않았다.

“어스, 어스 일어나. 리빙 아머 무리가 오고 있어.”

유적지의 가디언들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차라리 이게 낫지.’

* * *

리빙 아머와의 전투로 밤(?)을 꼴딱 세운 일행의 도전은 예상보다 늦게 시작됐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마법 무효화 목걸이의 효과로 무사히 마법이 중첩된 곳을 통과한 카멜이 어스를 당황시켰던 예의 그 방의 마법을 해제하면서 일행은 그 다음 방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두 번째 방은 페어몬트가 실력을 발휘했다.

퍼즐을 맞춰서 기관을 해제하는 방식의 과제였다.

‘어떻게 저렇게 생긴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거지?’

보고 쓰라고 해도 못 쓸 것 같은 괴상한 글자, 역시 역사학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새삼 페어몬트의 학식에 감탄하고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2시간이 걸려 문제를 풀었지만 아직 휴식을 취하기엔 일행은 쌩쌩했다.

그 다음 방의 과제는 민첩함과 동체시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방이었다.

당연히 어스는 열외였다.

‘전투 마법사로 이미지가 굳어져버리겠네.’

방을 통과하는 일에서 어스는 지금껏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젯밤 리빙 아머의 대규모 공격에선 그 누구보다 그의 활약상이 컸다.

때문에 방을 통과하는 일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음에도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었다.

하커가 방안으로 들어가 기관에서 쏟아지는 화살과 독침을 요리조리피하며 기관 장치를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었다.

‘설마 독침이 보이는 건가? 어떻게 몽땅 피할 수 있지?’

이래서 다들 익스퍼트, 익스퍼트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더구나 중급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처음엔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지만 30분이 넘어가자 지켜보는 것도 지쳐버린 어스는 고개를 돌렸다.

어젯밤에 끝내지 못한 결정을 위함이었다.

그것은 대단히 행복한 고민이었다.

‘눈 딱 감고 체력 스탯에 몰아줘버려?’

리빙 아머의 대규모 공격, 압도적인 화력으로 놈들을 쓸어버린 덕분에 레벨 3개를 올릴 수 있었다.

누적된 경험치도 꽤 있었기에 가능한 성장이었다.

더해 주로 사용하는 파이어 볼도 이참에 강화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시 포인트 분배가 주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어스는 이번엔 체력 스탯에 업적 포인트를 몰아주기로 결심했다.

죽어버리면 말짱 꽝이니까.

‘옛다, 먹어라.’

이로써 체력 스탯은 30, 생명력은 245가 되었다.

좀 더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하커는 여전히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체력도 좋지.

잠시 던진 관심을 회수한 어스는 파이어 볼 강화에 들어갔다.

파이어 볼(+3/12).

확률 100퍼센트 구간이라 긴장감은 단 1도 없었다.

참고로 1강부터 3강까지의 강화 비용은 해당 스킬 구입가의 2배다.

이후 4부터 6은 5배.

7부터 9는 8배.

10강 16배.

11강 32배.

최종 12강의 경우에는 50배다.

마음을 가다듬고 확률이 적용되는 4강에 도전했다.

앞서 1에서부터 3강까지 지출한 비용보다 딱 500코인 적은 2,500코인이 이 한 번의 강화에 들어갔다.

확률적용 첫 관문이니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강화 실패!

착각이었다.

‘그, 그래. 제물이라 생각하자.’

황당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도전에서도 실패의 맛을 보자 뒷목이 당겼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고함이라도 내지를 텐데.

부글부글.

속이 끓어 올랐다.

오기가 치밀었다.

그래서 곧장 3번째 시도를 하려다.

‘또 날리면?’

덜컥 겁이 났다.

아니, 실패하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이미지, 그 이미지를 위해 어스는 3번째 시도를 접었다.

치미는 울화.

어스는 이 울화를 달래기 위해 다른 스킬에 손을 댔다.

어차피 3강까지 100퍼센트.

‘7,500코인이면 4서클 세 번을 강화할 액순데.’

생각하니 또 열이 뻗친다.

남은 코인은 19,447.

어차피 스킬 모두 강화할 생각은 있었기에 바닥부터 기본을 다지기로 했다.

‘강화.’

매직 애로우(+3/12).

파이어 애로우(+3/12).

도합 1,200코인.

이제 남은 금액으로 가능한 건 4서클 하나를 3강화 할 수 있다.

‘파이어 버스트, 아이스 스피어, 일루젼. 이 중 뭘 하지?’

고민 끝에 어스는 아이스 스피어를 선택했다.

강화를 모두 마치자 그의 수중엔.

코인 : 247.

가슴이 아릿하다.

4강 실패로 의미 없이 날아간 코인이 떠오르며 더더욱.

“깼다! 하커가 성공했어!”

“역시, 하커 형.”

“고생했다. 하커.”

때마침 관문 하나가 해제되었다.

유적지의 중심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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