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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64화 (64/250)

064화

게른 산맥은 한때 준동맹 사이었던 헥터 왕국과 레오다니스 왕국이 결혼동맹을 통해 그 관계를 더욱더 돈독히 맺으려 하였을 때 벌어진, 하나의 끔찍한 비극으로 인해 두 왕국은 파국을 맞게 되었다.

헥터 왕국의 공주가 동맹 결혼 대상이었던 왕자의 방탕함에 스스로 자결한 것이 파국의 계기였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두 왕국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달았다.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뻔한 사건이었으나 당시 룬 교단이 중재하여 전쟁이라는 끔찍한 상태로까진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두 왕국은 지난 50년간 서로 문을 닫고 살았다.

물류의 이동은 물론 인적 왕래 모두 막아 버렸다.

레오다니스와 헥터 왕국의 이러한 조치로 인해 두 왕국과 국경을 면하고 있던 솔론 왕국은 중계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솔론 왕국은 이 부를 바탕으로 국력을 키워 소국에서 강국으로 거듭나 레오다니스와 헥터 왕국이 눈치를 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50년 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휘이이이이잉-!

“저곳이 게른 산맥이다.”

카멜의 손끝이 전방의 커다란 봉우리를 가리켰다.

일정에서 사나흘 정도 늦게 도착하였으나, 실제 저들이 체감하고 있는 시간은 서너 달이었다.

던전이란 기이한 세계 덕분이었다.

참고로 페어몬트는 이곳으로 오는 중간 들린 마을과 작은 도시에서 던전에 관해 알아보았다.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용병 길드, 상인 길드, 모험가들이 잠시 머무는 주점 등에서.

하지만 알아낸 것은 없었다.

“드디어 왔네요.”

카멜의 말을 어스가 받으며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헥터 왕국 최북단에 위치한 게른 산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청나지? 그런데 이건 빙산의 일각이야.”

프라이스가 어스의 팔을 툭 치며 말하였다.

“빙산의 일각?”

“앞으로 하루하고 반나절은 더 가야 게른 산맥의 초입이야.”

“하, 하루하고 반나절을 더 가야 한다고?”

“그래. 그러니까 단단히 마음먹는 게 좋을 거야. 산맥이 큰 만큼 골짜기마다 날씨가 다 다르거든. 그리고 거친 환경이라 몬스터들도 숲이나 들판에 사는 놈들과는 차원이 달라.”

‘침묵의 숲과 비슷한 곳인가?’

어스의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프라이스가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방금 침묵의 숲 생각했지? 그렇다면 그 생각 곱게 접어. 거기보다 게른 산맥의 몬스터들이 더 억세고 강하니까. 침묵의 숲 중간 지점의 몬스터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뭐야? 두 곳 다 가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말하네.”

“지금 너 모험가를 용병 따위와 비교하는 거야? 그건 모험가들에겐 큰 실례라고, 실례.”

“용병 따위라니! 지금 용병을 비하하는 거야?”

“비하는 아니고 두 직업군의 마인드를 말하는 거야. 용병은 가능서 있는 일에 움직이지만, 모험가는 가능성 ‘0’에도 움직이니까. 그러니 두 직업군 중 어느 쪽이 더 활동 범위가 넓겠냐?”

프라이스의 표정이나 목소리엔 모험가로서의 자부심이 잔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자부심은 비단 프라이스만이 아니었다.

루리아 영애를 제외한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용병이라고 해서 모두가 가능성을 따지는 건 아니야.”

“일부는 아닐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론 그렇잖아?”

“그…… 쳇. 그래, 잘났어. 모험가 나리.”

“자식 너도 이젠 모험가잖아. 그렇게 말하면 누워서 침 뱉기라고.”

“음…… 그런가?”

“응, 그래.”

“할 말 없게 만드네.”

솔직히 말하자면 모험가는 너무 무모한 사람들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동은 불나방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불나방 무리에 끼어들었으니.

“어스.”

“예, 카멜.”

“너도 알다시피 게른 산맥은 헥터 왕국과 레오다니스 왕국의 접경지역이다. 그게 무슨 의민지는 알고 있지?”

변두리에서 살아온 어스였지만 그 역시 헥터 왕국의 사람이었기에 레오다니스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레오다니스 왕국의 안 좋은 이야기만 줄곧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도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요.”

“정확하게는 병사들이지. 거기엔 헥터 왕국의 병사도 포함이야.”

“우리나라 병사는 왜요?”

“레오다니스 왕국으로의 밀입국이나 밀무역은 즉결 처분이거든.”

“재, 재판도 없이 바로 죽인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지금부터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는 게 좋아. 그리고 우리의 신분도 최대한 감춰야 해. 국경 지대 주민들이나 병사들에게 우리가 모험가라는 게 들키면 곤란해질 수 있거든. 그들 눈엔 우리를 모험가로 위장한 밀입국자나 밀무역업자로 보일 테니까.”

“신분이 확실한데도 그런다고요?”

일행 중엔 귀족, 마법사, 정령사, 그리고 당장이라도 기사 서임을 받을 수 있는 익스퍼트만 무려 세 명이다.

그럼에도 오해의 대상이 된다는 카멜의 말에 어스는 적잖이 혼란을 느꼈다.

“응.”

“황당하네요.”

“레오다니스의 접경지역의 분위기는 거의 비슷비슷해. 그건 레오다니스 쪽도 마찬가지고.”

“카멜이 레오다니스의 분위기는…… 설마? 레오다니스 왕국에 간 적이 있어요? 어떻게?”

제법 많이 친해졌기에 저들에 대해 거의 다 안다고 생각했던 어스는 이 사실에 깜짝 놀랐다.

헥터 인들에게 있어 레오다니스는 적국이다.

창검을 들고 서로 싸우고 있진 않지만 언제 싸워도 이상할 게 없는 왕국이 바로 레오다니스였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 카멜이 갔다고...?

‘설마?’

카멜만 레오다니스에 갔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든 어스는 일행을 살폈다.

물론 루리아 영애는 처음부터 살피지 않았다.

귀족인 그녀와 레오다니스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일행의 표정을 살핀 결과.

‘뭐야? 진짜 레오다니스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거야?’

표정만 보면 그리 보였다.

그래도 모를 일이라.

“다들 가 봤어요? 레오다니스에?”

“가 봤지.”

당당하게 인정하는 프라이스.

놀라웠다.

고작 2살 많은 나이임에도 적국 레오다니스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는 것에.

앞서의 충격이 커서인지 다른 이들의 말엔 충격량이 적은 편이었다.

“나, 난 레오다니스에는 안 가요. 차라리 아도니스에 두 번 가는 게 낫지.”

“너 모범 시민이었구나? 크크.”

“노, 놀리지 마. 프라이스 형. 그리고 나라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 아무튼 방금 그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할 테니까 혹시라도 내게 레오다니스로 가자는 말은 하지 말아줘. 난 내 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으니까. 루리아 영애도 나와 같은 생각이죠?”

동조를 바라였건만 돌아온 루리아 영애의 대답은 어스의 기대를 산산이 부숴놓고 말았다.

“필요하다면 레오다니스에도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린 모험가니까.”

“루, 루리아 영애는 헥터 왕국의 귀족인데 어떻게 그런…… 잠깐. 모험가요?”

“지금까지 난 줄곧 가문을 잇겠다는 생각만 하고 살아왔어요. 하지만 이번에 그 생각이 바뀌었어요. 난 가문이 원하는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내게 영애라는 호칭은 빼 줬으면 해요. 루리아 영애가 아닌 모험가 루리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말수가 없던 루리아가 한동안 아예 입을 꾹 닫았던 이유가 뭔지 몰라 의아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침묵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기 위한 고심의 시간이었다는 걸.

‘굳이 왜 어려운 길을 가려는 거지?’

납득할 수 없었지만 루리아의 뜻이 확고해 보여서 말도 붙이지 못했다.

반면 사람들은 그녀의 의견을 지지하며 힘을 북돋는 말을 해주었다.

순간 어스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게른 산맥에 진입하기 전까지 우리는 약초매집상이니까 혹시 누가 묻거든 그리 말해 줬음 해. 특히, 어스 넌 그 로브부터 벗는 게 좋겠다.”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어스는 카멜의 말을 따랐다.

로브를 벗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어수선해서인지는 몰라도 게른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을 에는 칼바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사이가 좋지 않은 왕국과 국경을 면한 곳이어서인지 사람들의 분위기는 지금껏 보아왔던 마을 주민들과는 사뭇 달랐다.

외부인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고향 마을을 떠나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던 어스는 새삼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마주치는 국경 수비대를 만나면 매번 검문을 받아야만 했다.

그때마다 앞서 카멜이 준 위조 신분증으로 증명을 대신했다.

처음엔 조마조마했지만 이런 일이 십 수 번이나 계속되자 그것도 무뎌졌다.

드디어 게른 산맥의 초입에 도착했다.

사람도 오르기 쉽지 않은 길이라 말과 마차는 인근 동굴에 숨겨 두었다.

몬스터나 육식 동물의 공격을 우려하여 입구는 땅의 정령 노임의 도움을 받아 숨구멍을 제외하고 막아 버렸다.

말은 수면초를 이용하여 재웠다.

그 옆엔 녀석들이 깨면 먹을 수 있는 건초로 넉넉히 채웠다.

“옷을 단단히 여미고 발밑을 조심해.”

카멜과 하커가 선두에 서고, 호커가 후미를 맡았다.

시커먼 바위들이 툭툭 튀어나온 골짜기를 따라 한참 걷자 가파른 경사가 나타났다.

‘이거 절벽이야? 경사야?’

보고도 믿기 힘든 경사였다.

설마 저곳을 올라가야 하나 싶었는데 진짜 저곳을 기어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카멜 형, 진짜 저길 기어 올라가야 한다고요?”

“지름길이야.”

“지름길? 그럼 다른 길도 있어요?”

“있긴 있는데 그쪽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몬스터와 조우할 공산이 커. 그러니 시간과 안전을 위해선 이 길이 최선이지.”

“이게 끝은 아니죠?”

“응.”

별거 아니란 듯 가볍게 대답하는 카멜의 말에 황당함을 느낀 어스는 자신만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보았다.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는 건 루리아뿐이었다.

아, 한 명 더 있다.

“나이 먹으니깐 이 짓도 점점 힘들어져. 아도니스를 끝으로 진짜 은퇴해야겠어.”

자신의 무릎 관절을 걱정하며 툴툴 거리는 페어몬트.

“발밑을 신경 써서 움직여, 중심은 최대한 지면과 가깝게.”

절벽을 연상케 하는 가파른 길에 다들 발을 디뎠다.

손까지 이용하여.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어스의 표정은 불안으로 점점 구겨지다 돌연 환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아! 블링크!’

이러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히죽.

어스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가파른 길 정상부를 쏘아보며 블링크를 시전했다.

5서클 스킬이라 한 번 시전하는 데 자그마치 200의 마나가 들었다.

200의 마나는 하급 마나 포션 한 병이 회복시키는 수치다.

하급 마나 회복 포션의 평균적인 가격이 100테스니 이 한 번의 이동으로 어스는 100테스를 쓴 셈이다.

평소라면 겨우 이런 일로 100테스라는 거금(?)을 쓰는 것에 매우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도 파티원의 십시일반의 손길로 인해 마나 회복 포션이 넉넉하였기에 고작 한 병은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상부에 도착한 어스는 느릿하고 올라오고 있는 동료들을 향해 적당한 모양의 바위에 밧줄을 여러 번 감은 뒤 이를 아래로 던졌다.

“그거 잡고 올라와요.”

씩.

어스가 내려준 밧줄을 잡고 손쉽게 올라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중 가장 크게 놀란 건 하들리였다.

“어, 어스 너 설마…… 설마, 공간 이동 마법도 사용할 수 있었던 거야?”

공간 계열의 마법은 익히기가 매우 까다롭다.

“블링크예요.”

고작 3서클인 하들리에게 있어 5서클은 너무나 먼 경지였다.

그러한 경지에 고작 열다섯 소년이 발을 딛고 있었으니 하들리 입장에선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자괴감은 어스가 툭 던진 용어 앞에 크게 흔들렸다.

“마, 말도 안 돼! 블링크로 저기서 여기까지 이동했다고?”

“그게 이상한가요?”

“이상? 이건 이상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야? 블링크가 5서클 영역의 마법이라곤 하지만 고작해야 이동 거리는 20미터 내외라고! 그런데 넌 몇 백 미터나 되는 곳을 이동했어! 이게 이상하지 않을 수 있겠어?”

하들리는 잔득 흥분한 채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고, 그제야 블링크가 어떤 마법인지 알게 된 사람들은 다들 놀란 얼굴을 하고서 어스를 쳐다보았다.

그 눈은 흡사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 뭐니?

그런데 저들보다 더 황당한 건 정작 하들리에게 충격을 선사한 어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뭐? 고작 20미터? 미친, 5서클 마법의 가성비가 왜 그따위야? 어이가 없네, 어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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