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화
거친 비바람을 뚫고 운 좋게 도착한 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마을에서 가장 좋은 여관에 투숙했다.
보통은 2인실이나 3인실을 섞어서 투숙했지만 오늘은 전원 1인실에 묵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푹 쉬기 위함이었다.
대충 씻은 다음 침대에 앉자 쏟아지는 졸음에 못 이겨 어스는 기절하듯 누웠다.
열두 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나자 그제야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다.
온몸에 힘도 넘쳐났다.
기이할 정도로.
“아! 맞다. 보상을 받았었지.”
모든 스탯 +1확정이 기이할 정도로 넘치는 힘의 원인이었다.
‘상태창!’
던전에서 돌아온 이후 몇 번 확인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다.
날씨도 엉망인데다 당장 몸을 누일 곳을 찾기 위해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몸과 마음이 가뿐한 지금, 뚜렷한 정신으로 다시 보게 된 상태창은 또 한 번 그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선사했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44).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2/100).
생명력 : 215/215.
마나 : 275/275.
인벤토리 : 1(+3).
스탯 : 힘(2.2). 체력(24). 민첩(2.1). 지력(18). 정신(36).
직업 스킬(8/9) : 매직 애로우(+0/12). 파이어 애로우(+0/12). 파이어 볼(+0/12). 파이어 버스트(+0/12). 아이스 스피어(+0/12). 일루젼(+0/12).
콜 라이트닝(+0/12). 블링크(+0/12).
업적 포인트 : 10.
코인 : 12,572.
업적 포인트 10개를 줘야만 되는 힘과 민첩 스탯, 그 스탯의 앞자리가 1에서 2가 되어 있었다.
힘 스탯은 온몸에 느껴지는 활력이 증거, 그럼 민첩은?
냉큼 일어선 어스는 자신의 유연성을 테스트했다.
제자리높이뛰기를 해보고, 펀치와 발차기도 해보았다.
‘나아진 건가?’
확연한 변화는 없는 듯 보였지만 전보다 몸이 가뿐해진 느낌은 확실했기에 민첩 스탯의 증가를 확인하는 실험은 그만두고 다시 앉았다.
인벤토리 용량이 40에서 50킬로그램으로 늘어났다.
힘과 민첩 스탯처럼 정신, 지력, 체력 스탯도 1씩 상승해 있었다.
그 영향으로 변한 생명력과 마나.
‘애매하게 5네.’
업적 포인트가 무려 10개나 있으니 문제 될 건 없다.
블링크를 구입하며 쓴 1만 코인, 언제 그만한 액수를 벌까 싶었는데 복구된 걸 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처럼 큰 변화를 보인 상태창이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빈 슬롯도 이제 하나뿐이네.’
딱 하나 남은 스킬 슬롯이 그의 마음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블링크는 잘한 선택 같아서 스킬 슬롯이 아깝진 않았다.
만약 블링크를 구입하지 않았다면 필시 마녀에게 당했을 테니까.
아쉬움을 털어낸 어스는 인벤토리를 살폈다.
마나 회복 포션과 치료 포션을 물마시듯 마신 덕분에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었던 포션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급 치료 포션 1개.
하급 마나 회복 포션 달랑 2개.
그나마 다행한 건 돈은 넉넉해서 보충은 문제없었다.
‘순식간에 빈털터리 되겠네.’
조만간 날아갈 자신의 재산을 생각하며 작게 푸념하던 어스의 두 눈이 이내 반짝인다.
지금까지 경황이 없어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마나 연공법이 눈에 쏙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저것만 해도 남는 장사였어.’
마나 연공법을 한동안 쳐다보던 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 뒤뜰로 가기 위해 객실을 나섰다.
아래층을 향하는 계단의 절반쯤 밟았을까? 식욕을 자극하는 달짝지근한 냄새를 맡았다.
꼬르륵.
‘꿀꺽. 씻는 건 먹고 나서.’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1층 식당은 한산했다.
아니, 한산해야 하는데.
“어스 일어났냐?”
“배고프지? 얼른 와서 먹어.”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서 일행 모두 그곳에 앉아 있었다.
점심 식사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언제 다 모였데요?”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픈 상태였기에 앉자마자 눈앞에 있는 노릇하게 익은 닭다리부터 뜯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배 많이 고팠나 보네. 허허.”
“당연히 고프죠. 그 고생을 했는데.”
“아무튼 한 명도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이렇게 모여서 다행이다.”
페어몬트의 말에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뼈만 남은 닭다리를 내려놓고 날갯죽지를 쭉 찢는 어스를 보았다.
저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괴이한 세계에서 자신들이 모두 무사히 탈출한 배경에 저 어린 마법사가 있다는 걸.
“고맙다, 이 은혜는 조만간 꼭 갚으마.”
카멜이 어스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그 답지 않게 진지하게 말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커, 호커, 하들리, 프라이스, 루리아까지.
부끄럽게.
“뭘 그렇게까지. 우린 동료잖아요.”
“그래, 동료지. 우린 동료야.”
그들 사이엔 전에 없는 유대감이 뜨겁게 싹트고 있었다.
이후 파티 원들은 던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며 저녁까지 먹고 마셨다.
덕분에 어스는 씻을 기회도 없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다시 곯아떨어졌다.
쿨쿨.
* * *
제대로 씻지 못해 머리가 까치둥지가 된 어스는 퉁퉁 부은 눈을 문지르며 여관 뒤뜰로 향했다.
거셌던 비바람도 이젠 그 힘이 꺾였는지 빗줄기가 크게 가늘어져 오후쯤 되면 완전히 그칠 것 같았다.
‘모든 게 꿈만 같네.’
던전에서 있었던 일은 어스는 물론 일행 모두에게 꿈처럼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최장 2달에서 짧으면 1주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현실로 복귀하자 고작 2시간 남짓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박학다식한 페어몬트나, 신비학에 관심이 많던 하들리조차 이번 일은 전무후무한 사태였다고 입을 모아 말했을 뿐이다.
날씨가 안 좋았기에 게른 산맥은 내일 날씨를 봐가며 출발하기로 했다.
솔직히 지금 날씨에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지만 던전에서의 피로감이 워낙 쌓여 있었기에 엉덩이들이 무거워진 상태였다.
물을 길어 대충 씻은 어스는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달라진 자신의 힘을 음미했다.
‘이러면 또 못 참지.’
인벤토리에서 창을 빼든 어스는 가볍게 이를 휘둘렀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창의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으며, 창의 흔들림도 현저히 줄어있었다.
손 아귀힘이 강해져 보다 단단히 창대를 쥘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흥이 동한 어스는 그 자리에서 기본 창술을 연속으로 연습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수평과 수직 그리고 한 점을 노린 찌르기까지 확실히 이전보다 쉬웠다.
“밤새 영약이라도 먹었냐?”
성장한 스탯의 힘을 처음으로 시험하였기에 이를 본 페어몬트가 감탄을 터트리며 주먹만 한 눈곱을 떼며 다가왔다.
부지런한 양반이 이 시간에 일어난 걸 보니 확실히 어제 술이 과하긴 과했나 보다.
“잘 주무셨어요.”
“잘 잤지, 잘 자고말고. 허허. 그런데 너 많이 달라졌다. 창끝에 제대로 힘이 깃들어 있어. 예전엔 무용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하도 흐느적거렸었는데.”
“한창 자랄 나이잖아요.”
“키도 좀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바짝 다가선 페어몬트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어스와 자신의 키를 비교했다.
설마, 키까지.
그럼에도 이상하게 기대가 된다.
“이야, 요만큼 컸어, 요만큼이나.”
페어몬트의 엄지와 검지의 간격을 본 어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손가락의 거리가 꽤나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술이 덜 깬 거 아니에요?”
“진짜라니까. 오, 마침. 저기 루리아 영애네. 루리아 영애 이리 와서 어스를 보게. 어스의 키가 무려 이만큼이나 컸다니까.”
씻으러 왔다가 씻지도 못한 채 소환(?)된 루리아는 급히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점검한 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가왔다.
“어떤가? 루리아 영애가 보기에?”
“컸네요. 요만큼.”
페어몬트가 잰 것보다 조금 줄어든 간격이었지만 분명 루리아의 엄지와 검지에도 간격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 진짜다! 나 컸어! 컸다고!’
평생 이 키로 살면 어쩔까 싶어 내색하지 않았지만 은근 불안했던 어스는 속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만약 이 자리에 두 사람이 없었다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췄을 것이다.
루리아를 시작으로 일행이 하나둘 푸석한 얼굴을 하고서 나왔다.
페어몬트는 어스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한 듯 일행 모두에게 어스의 키가 자랐다는 말을 했다.
“사람이 풀도 아니고 하룻밤 새 어떻게…… 어라? 진짜네!”
프라이스에 이어 다들 어스를 둘러싸고 검증에 들어갔다.
엄지와 검지의 간격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사이에 간격은 확실했다.
고로.
‘힘 스탯이 올라서인가? 아님, 민첩?’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취한 어스의 귀로 호커의 목소리가 더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근육도 조금 붙은 것 같기도 하네.”
“다들 해장해야죠. 아침은 제가 사죠.”
아침이라곤 하기엔 늦고, 점심이라고 하기엔 이른…… 줄여서 아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 어스는 간만에 주머니를 풀었다.
어제와 오늘 연속 이틀째 그들은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쌓인 음식과 술로 배를 채웠다.
‘놀고먹는 인생도 나쁘지 않네.’
지금 이 상태 그대로 현실에 안주해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이번 게른 산맥 유적지 탐사만 끝내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근사한 집하나 짓고 유유자적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진짜 그래 버릴까?’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부모님이랑 여동생이랑 그렇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가족과 고향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물씬해진 어스였다.
“어스야, 이번 일 끝나고 나랑 아도니스 건너가는 건 어때?”
“아도니스? 페어몬트,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아도니스 대륙은 왜?”
어스가 대답하기 전 프라이스가 먼저 질문했다.
그에 다른 일행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페어몬트와 어스를 번갈아 보았다.
“실은 거기서 어스와 아도니스 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했거든. 나처럼 녀석도 관심이 있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이참에 한밑천 단단히 챙겨서 이종족의 대륙을 밟아보려고.”
“아니, 그런 멋진 일에 저를 빠트릴 생각은 아니죠?”
“프라이스, 너도 가게?”
“물론이죠. 정령사인 제게 있어 이종족의 대륙 아도니스는 교육의 장이라고요. 당연히 가야죠. 어쩜 상급 정령사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모름지기 사내라면 모험 아니겠어요.”
“지금도 충분한데 더 강해지려고?”
“이번 일로 깨달았어요. 제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그래서 더 강해지려고요. 그러니까 두 사람 따라갑니다.”
낙향을 생각하고 있던 어스에게 있어 이는 반갑지 않은 분위기였다.
프라이스를 시작으로 카멜, 하커, 호커 그리고 나설 것 같지 않던 하들리까지 술기운 때문인지 동참을 선언했다.
‘뭐, 뭐야? 이 분위기는!’
외국으로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대양을 넘어 타 대륙으로 가겠다니!
절대,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어스는 눈앞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입을 뗐다.
아니, 떼려고 했는데.
“거기에 제 자리도 있을까요?”
“루리아 영애도 관심이 있는가?”
“예.”
상기된 얼굴을 하고서 루리아까지 나서자 어스는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전에 한 말도 있었기에.
‘마, 망했다!’
이래서 사람은 항상 입을 신중하게 놀려야 하는 법이다.
“좋아! 가즈아, 아도니스로!”
“가자! 아도니스로!”
“카멜 파티의 모험은 이제 시작이군요! 카멜 형, 한마디 해요. 파티 장이잖아요.”
‘난 왜 빼? 내게도 의견이란 게 있잖아! 그리고 아도니스가 이웃 나라도 아니고 왜들 쉽게 말하느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이성적으로!’
“내 생각엔 어스가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번 일, 그리고 아도니스에 관한 이야기도 어스 네가 꺼냈잖아.”
아닌데, 페어몬트의 말에 별생각 없이 맞장구쳤을 뿐인데…… 고작 그뿐인데.
“하하, 남자는 모름지기 모험이죠!”
그런데 머리와 입이 따로 노는 이 괴현상은 대체…… 설마, 던전에서 물을 잘못 마셔서 그런가? 아님, 마녀의 저주?
도리도리.
어스의 머리는 울상이었으나, 그 입은 술기운에 요란한 북처럼 큰소리 탕탕 치고 있었다.
“오! 사내대장부!”
“어스를 위해 건배!”
“모험을 위해!”
“모험가여 영원하라!”
아무래도 가진 돈 탈탈 털어 마나 회복 포션을 대량으로 구매해 둬야 할 듯싶었다.
분위기를 보니 이종족의 대륙, 신비의 대륙이라 불리는 아도니스에 진짜 갈 것 같으니까.
‘위그드라실은 엘프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니까 어쩜 그곳에서…….’
가진 것에 만족하는 소소한 삶을 살려고 작정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한편으론 그런 목가적인 삶을 살기에는 아직은 이른 나이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던 말도 있으니까.’
그러니 겸사겸사 그곳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이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짱짱한 실력자들과 함께 가는 것이라면 어쩜 일생일대의 기회이지도 않을까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