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청명한 하늘 아래 지상은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사나운 불꽃이 충격파와 함께 퍼져 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모진 고통을 토해내며 아귀들이 속속 쓰러져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제 동족이 그러한 죽음을 두 눈 뜨고 보고 있음에도 놈들은 이에 전혀 겁먹지 않았다.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것인지, 아님 독전관이 뒤에서 서슬 퍼런 칼을 들고 협박을 하는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생존에 대한 본능은 몬스터 역시 별다를 바 없을 텐데.
‘환경 때문인가?’
성장을 생각하면 최상의 장소지만, 힘이 부족한 경우엔 최악의 장소가 던전이 아닐까 싶었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쇄애애애, 쾅쾅!
“끼에에엑!”
“코오옼!”
“끄에에에!”
생의 마지막을 알리는 비명과 함께 속속 사라지는 아귀!
허무 속으로 사라지는 놈들과 달리 이를 선고하는 어스는 빠른 속도로 부유해지고 있었다.
역시 사냥의 맛은.
‘대량 학살이지.’
그 맛을 제대로 알고 있어서 그런지 웬만한 숫자의 몬스터는 이제 눈에 차지도 않는 어스였다.
코인을 지급하는 목소리만 지겹게 듣다 갑자기 생소한 목소리가 들렸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2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더디기만 했던 레벨업의 순간이 드디어 그를 찾아왔다.
맛없는 포션을 먹지 않고 단숨에 마나가 가득 찼다.
‘그렇지!’
심장이 간질간질한 것 같더니 역시 그 느낌은 레벨업이 목하에 다다랐음이 맞았다.
이번엔 정신 스탯에 투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마나 : 230/230.
‘딱 20만 더 채우면 파이어 볼은 한 번에 다섯 번 가능한데.’
욕심이 동한다, 여기서 레벨 하나만 더 올리면 되니까.
하지만 마나의 경우에는 포션으로 대체할 수 있다 보니 과연 이게 정답일지, 오답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기쁜 선물을 받아 잠시 멈칫한 사이 아귀 몇 마리가 아수라장을 빠져나왔다.
“야!”
이에 프라이스가 소리쳤다.
그에 화들짝 놀란 어스는 반사적으로 파이어 볼을 날린 뒤 프라이스를 향해 씩 웃었다.
“적당한 긴장감은 인생이 활력이라잖아. 그리고 명색이 중급 정령사가 고작 저 몇 마리 때문에 놀라서야 되겠어?”
역시 지금은 지력이 답일 것 같았다.
지금처럼 아귀만 상대한다면야 당연히 정신 스탯이겠지만 던전의 보스를 상대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한방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 한 방을 위해 어스는 지력에 업적 포인트 2를 투척했다.
포인트를 떠나보내니 고민도 동시에 사라졌다.
어스가 다시 집중하여 파이어 볼을 날렸다.
지력 15의 파이어 볼은 앞서와 차이를 보였다.
파이어 볼의 직경은 그대로였지만 파괴력과 범위에서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다.
파이어 볼의 위력이 갑자기 강해지자 일행모두 놀라서 어스를 쳐다보았다.
이번이 처음도 아닌 페어몬트와 루리아까지 말이다.
‘새삼스레.’
한땐 사람들의 관심이 싫고 짜증나고 그리고 두려웠다.
하나 지금은 그때와 달리 사람들의 시선은 어스에게 뿌듯함을 선사했다.
사람들이 놀라고 더 놀랄수록.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쾅쾅!
부나방 같은 무모함을 자랑하는 아귀 떼!
멈추지 않는 놈들의 계속되는 행동은 어스의 배를 잔득 불렸다.
그 덕분에 또 한 번의 레벨업 이후 어스는 드디어 1만 코인을 손에 쥘 수 있었다.
5서클!
드디어 5서클 스킬을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했다.
‘캬아~, 지릴 뻔했다. 흐흐.’
파이어 볼을 연속으로 날린 뒤 짧은 시간을 번 어스는 스킬 상점을 활성화했다.
앞으로 그가 구입할 수 있는 스킬은 총 3개.
‘이 때문이라도 칭호는 무조건 만들어야해.’
적당히 타협하고 살면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어스는 젊었다.
아니, 어리다.
5서클은 그의 눈길을 끄는 스킬이 유독 많았다.
할 수 있으면 모두 구입하고 싶다.
그러나 그놈의 스킬 슬롯 제한 때문에 군침은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의 군침을 유발시킨 5서클 스킬, 그중 어스는 콜 라이트닝을 선택했다.
단일 대상으로 한 이 스킬은 빠르면서도 매우 강력한 스킬이다.
‘이 녀석이 보스에게 통해야 할 텐데.’
던전의 주인을 상대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끝에 낙점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어스의 고민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5서클엔 정말 군침 도는 스킬들이 많았기에.
“정신 안 차려! 이번엔 수십 마리가 빠져나왔잖아!”
프라이스가 버럭 하며 땅의 중급 정령 노임을 소환하여 흙의 창을 놈들을 향해 날려 보냈다.
그에 비좁은 통로를 빠져나온 놈들은 이에 모조리 꼬치가 되어 쓰러졌다.
‘내 코인.’
5서클 스킬을 구입하며 잠시 찾아든 현타, 어스는 이를 몰아내고 다시 파이어 볼을 날렸다.
콜 라이트닝, 이를 쓰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물릴 대로 물린 파이어 볼을 연방 날려 보냈다.
쾅-!
* * *
부나방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악착같던 아귀들도 그제야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취를 감춘 건 아니고 전열을 정비하는 것인지,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려는 것인지 일부는 숲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어스 일행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지 제 자리를 지켰다.
덕분에 어스 일행도 엉덩이를 붙이고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오물오물.
어스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입안을 가득 채운 음식을 흘러내리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입술을 다물었다.
아님, 기쁜 나머지 헤 웃다가 입안의 음식을 흘렸으리라.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35).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2/100).
생명력 : 210/210.
마나 : 230/230.
인벤토리 : 1(+2).
스탯 : 힘(1.2). 체력(23). 민첩(1.1). 지력(17). 정신(27).
직업 스킬(7/9) : 매직 애로우(+0/12). 파이어 애로우(+0/12). 파이어 볼(+0/12). 파이어 버스트(+0/12). 아이스 스피어(+0/12). 일루젼(+0/12).
업적 포인트 : 0. 콜 라이트닝(+0/12).
코인 : 2,326.
“뭐가 좋다고 눈웃음 살살 치고 있냐?”
“형은 꿀 같은 이 휴식이 안 좋아?”
“미친놈.”
실실 웃고 있는 지금의 어스를 보고 저와 같은 말을 한 건 아니다.
그러기엔 어스를 응시하는 프라이스의 눈빛은 매우 따뜻했으니까.
“어떻게 그 예쁜 입으로…….”
“죽는다.”
한 떨기 청초한 백합 같은 외모는 정작 프라이스 본인에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소였다.
그러하다 보니 유독 예쁘다는 말을 싫어했다.
‘사, 살기다!’
공과 사가 철저한 프라이스의 반응에 화들짝 놀란 어스는 급히 도리질했다.
“하, 하늘이 예쁘다고, 하늘이! 누가 형보고 그랬을까.”
“암튼 신기하단 말이야. 너…… 정체가 뭐야? 인간이 맞긴 맞아? 혹시, 신화에 나오는 드래곤의 후예 뭐 그런 거 아냐?”
드래곤이라. 어쩜 그럴지도.
그렇지 않고서야 특별할 거 없는 사냥꾼의 아들에 불과한 자신이 반년이 안 되는 시간에 5서클 마법사가 되는 건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더해 성장 방식 역시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다.
‘법을 무시하면 감옥에 가고, 법칙을 무시하면…… 천벌이 떨어지려나?’
천둥 벼락이 내려칠 때도 벼락에 맞지 않은 걸 보면 딱히 천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마침 이러한 장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별 생각 없이 내뱉은 페어몬트의 말이 비수가 되어 어스의 심장에 꽂혔다.
“남들은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을 어스 넌 일상다반사로 겪는 것 같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넌 안 이상하냐?”
“그 말은 주술사를 찾아가서 굿이라도 하란 말이에요?”
“주술사? 그런 이들이 이 땅에 남아 있겠냐? 교단에서 잡아들여 죄다 태워버렸을 텐데. 정, 걱정되면 아도니스 대륙으로 건너가 보던가.”
“…….”
“뭐야? 그 표정? 진짜 주술사라도 찾아갈 생각이냐?”
“글쎄요.”
진짜 찾아봐야 할까?
“호오, 진짜 관심이 있나 보네. 그럼 말이다. 너 갈 때 나도 따라가면 안 되겠냐?”
페어몬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프라이스가 황당한 표정을 하고서 끼어들었다.
“페어몬트 이번 일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안 했어요? 힘에 붙여서 더는 모험가로 활동할 수 없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잖아요.”
“그건 뤼빅스에서고, 아도니스면 내 남은 삶을 불태워도 부족하지 않지.”
“이종족의 땅인데 인간인 우리가 돌아다니면 칼 맞아요, 칼.”
“이종족은 오히려 인간보다 이성적인 존재야. 다름을 인정하는 널린 마음을 가진 자들이지. 흠흠, 어디 가서 내가 이런 말 했다고 하지 마라. 교단에 들어가면 이단 심문관에게 잡혀갈지 모르니까.”
저 말은 마냥 농담으로 들을 수 없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곤 했으니까.
“저도 교단이라면 넌더리가 나는데 교단에 신고할까. 우리 중엔 그런 사람 없으니까 괜한 걱정 마요. 그렇지 어스? 루리아 영애?”
두 사람의 태도로 봐선 교단에 대한 불만이 큰 듯 보였다.
루리아는 입에 든 음식을 꿀꺽 삼키며 역시나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가 무언의 몸짓으로 동의하자 남은 사람, 어스에게로 시선이 꽂혔다.
“넌 왜 대답 안 해?”
프라이스는 어스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수 없었다.
숲속으로 사라졌던 아귀들이 엄청난 놈을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미, 미친 저건 뭐야!’
* * *
어스 일행이 캠프로 삼고 있는 동굴 깊숙한 곳, 밧줄에 칭칭 묶여 흡사 고치를 연상시켰던 괴물이 돌연 두 눈을 치켜뜨며 온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저와 같은 반응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번은 그 전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튼튼한 밧줄, 그것도 몇 겹으로 겹쳐진 그 밧줄이 놀랍게도 팽팽해지더니 어느 순간 파열음을 내며 하나씩 끊어지기 시작했다.
툭, 투툭, 투두둑.
이는 어스와 그 일행을 경악감에 빠트린 거대한 몬스터의 출현과 함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을 옥죄던 밧줄을 모조리 끊어낸 괴물, 아니 카멜이 천천히 일어나선 본능에 이끌린 듯 동굴 입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보다 더 흉측한 괴물로 변한 모습을 하고서.
“크르르릉.”
* * *
“저, 저건 뭐야?”
“오, 오우건가?”
집채만 한 덩치를 자랑하며 모습을 드러낸 짙은 회색피부의 몬스터.
놈에게서 발산되는 기운이 어찌나 강맹한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던 아귀들조차 순한 양이 되어 놈의 눈치만 살폈다.
놈은 그게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스 일행을 응시했다.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놈의 눈은 무척이나 사납고 포악하여 소심한 자는 그 눈과 마주치는 즉시 바지를 지릴 정도였다.
그런 놈이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일행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놈은 꽤나 빨랐다.
또한 힘도 좋아서 두꺼운 장벽도 그 힘에 맥을 추지 못하고 부서졌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놈의 인생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아님, 힘자랑에 미친 놈이던가.
“파, 파이어 볼로 감당할 놈이 아냐.”
“프라이스의 의견에 동감이다. 다른 마법 없어? 세고 강한 거?”
프라이스와 페어몬트가 어스를 재촉했다.
루리아는 말없이 검을 빼든 채 언제든 출수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루리아의 실력이 또래에 비해 뛰어난 편이긴 하나 오우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저 몬스터를 상대로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사실은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물러서지 않고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에 용기를 얻은 어스는 저도 모르게 떨고 있던, 이제야 알아차린 다리에 힘을 빡 주고서 허리를 꼿꼿이 폈다.
물론 그런다고 정신적인 타격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기에 중간에 다리에 힘이 풀릴 것을 대비하여 창을 지팡이 삼아 일보 앞으로 나왔다.
‘확실히 파이어 볼은 간에 기별도 안 가겠어. 파이어 버스터가 좋을까? 아님…… 콜 라이트닝일까?’
그렇지 않아도 콜 라이트닝이 몹시 마려웠던 어스에게 놈은 아주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다.
‘설마, 5서클 스킬을 맞고도 멀쩡한 건 아니겠지.’
콜 라이트닝에 대한 설명은 앞서 구입했던 스킬들에 비해 설명의 내용이 매우 단출했다.
강력한 한줄기 번개!
이것이 콜 라이트닝에 대한 설명 전부였다.
왤까?
‘음, 진정한 파이터는 입이 무거운 법이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아무튼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하며 어스는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는 거대한 몬스터를 응시했다.
어느덧 놈과의 거리는 80미터로 좁혀졌다.
이렇게 떨어졌음에도 압박감이 대단했다.
하물며 코앞에서 본다면?
당연히 이는 사양이다.
“어스!”
“어스야!”
다급해진 페어몬트와 프라이스가 동시에 소리쳤고, 그 순간 어스의 입에선 옅은 긴장감이 서린 음성이 터졌다.
“콜 라이트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