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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58화 (58/250)

058화

프라이스는 어스의 이야기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카멜을 만나서 제압했다는 부분에선 턱이 잘못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커졌다.

“카멜 형을 잡았다고?”

“엥? 그런데 형은 알고 있었던 거야? 카멜 형이 그렇게 된 걸?”

“그 순간을 봤으니까.”

“봤다고?”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도 도우려고 했지만 내가 발견했을 땐 상황이 거의 마무리 단계였어.”

청순한 외모와 달리 프라이스의 성격은 상남자 스타일이었다.

말투나 행동 모두.

아무튼 그런 프라이스가 동료가 당하는 걸 보고도 도와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는 건 확실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페어몬트의 말처럼 진짜 악마급인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보스를 처리하는 건 한참 뒤로 미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슴에 바윗덩어리를 올린 것처럼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오는 어스였다.

“오해하지 마. 형이 비겁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니까. 아무튼 형이라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솔직히 페어몬트와 루리아 영애로는 전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일단, 그곳으로 가자.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아까 그놈들이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오더라고. 후각이나 청각이 예민한 것 같지 않던데 말이야.”

아귀를 사냥하는 일은 차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성급하게 행동할 필요는 없다.

어스는 못다 한 이야기는 캠프로 돌아간 뒤마저 하기로 하고 일단 프라이스와 함께 캠프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무리에서 떨어진 아귀를 만났지만 소수였기에 처리는 문제가 없었다.

“무슨 매직 애로우가 스피어처럼 강해? 영약이라도 먹었어?”

“마법이 영약으로 강해져?”

“황당해서 그렇지.”

강한 동료는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어스의 강함을 확인한 프라이스는 어쩜 겉만 멀쩡할 뿐 실상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괴이한 이 세계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가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녀석은 말도 안 되는 천재니깐. 어쩜 가능할지도.’

* * *

어스가 무사히 돌아온 것에 반가움을 드러냈던 페어몬트와 루리아는 그의 뒤에서 프라이스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서 입만 벌렸다.

하나 이도 잠시 반가움이 폭발한 페어몬트는 그 짧은 다리를 번개처럼 놀려서는 프라이스를 와락 껴안았다.

“무사했구나! 무사했어. 하하.”

“페어몬트 그만 흔들어요. 멀미 나요.”

“멀미가 문제냐?”

“문제죠, 나 삼 일 내내 물만 마시고 버틴 상태라고요.”

“넌 대체 얼마나 여기 있었던 거야?”

“한 달하고 보름이요.”

“뭐?”

“미, 미친.”

“미치기 일보 직전에 어스를 만나서 다행이지, 아님 자포자기했을 거예요. 아무튼 페어몬트를 보니까 좋네요. 루리아 영애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프라이스 씨.”

“감사합니다. 영애.”

한 폭의 그림처럼 선이 고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자 한편의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네 사람은 곧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 안쪽엔 누에고치 모양의 카멜이 누워 있었다.

그런 그의 입엔 재갈이 물려 있었다.

그가 소리라도 지를까 싶어 취한 조치였다.

카멜을 바라보는 프라이스의 표정이 복잡하게 물들었다.

동료가 당하는 걸 보고도 도망친 일이 떠오른 것이다.

어스는 그런 프라이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순 없어. 그건 무모함이야. 그러니까 형은 현명한 거야. 그 덕분에 우릴 만났잖아. 그러니까 자책은 내려놓고 지금은 괴상하게 변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힘을 내자고.”

“그들을 구한다고? 어떻게?”

“보스만 처리하면 돼.”

확신에 찬 어스의 태도에 프라이스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보다 늦게 이 세계에 들어온 상대가 자신보다 이곳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잔득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페어몬트가 방법을 찾은 건가?’

마법에 있어 어스의 재능은 인간의 것이 맞나 싶을 만큼 매우 특출하였지만 이를 제외하면 보통의 시골 소년과 다를 바 없었다.

“페어몬트가 방법을 찾아낸 거예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

“내가? 천만에.”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이미 저 녀석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아무튼 난 저 녀석에 대한 생각은 깔끔하게 접어두기로 했어. 정신건강을 위해서 말이야. 흘흘.”

자신을 주제로 사람들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정작 주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라이스를 이용한, 정확하게는 땅의 정령 노임을 이용한 아귀 소탕 계획이었다.

‘이곳을 개미지옥처럼 만들어야 해.’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하여 골짜기에서 아귀들을 섬멸한 경험, 그 경험을 이번에도 살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엔 노동력의 부족으로 지형지물의 변형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이젠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금은 부실한 대화나 할 여유가 없어요. 프라이스 형의 말에 따르면 아귀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대화의 주도권을 단숨에 움켜잡은 어스는 자신의 계획에 대해 빠른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미에.

“참, 프라이스 형 아깐 내가 경황이 없어서 말 못 했는데 남는 마나 회복 포션 있으면 다 토해봐.”

* * *

어스가 세운 계획은 일견 무모해 보였다.

적을 끌어들여서 소탕하는 건 이쪽의 전력이 이를 감당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행이 머물고 있는 곳은 퇴로라곤 달랑 동굴이 전부였다.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좁은 입구라 이곳만 잘 틀어막으면 얼마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오랜 기간 버티는 건 어려웠다.

페어몬트와 루리아가 이를 지적하였고, 어스의 계획에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프라이스가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그럼에도 어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페어몬트 잊었어요? 우리가 합작으로 일군 골짜기 대첩을?

이 한마디로 반대 의견을 제압했다.

물론 최악의 경우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동굴 주변의 지형에 변화를 주는 한편 동굴 내부의 확장에도 힘을 쏟았다.

이 모든 걸 사람의 힘으로 했다면 변변한 연장도 없는 이상 한 세월일 테지만 중급 정령 노임이란 사기적인 일꾼이 있어 일은 신속하게 착착 이뤄질 수 있었다.

반나절이 지나자 동굴 내부는 더 넓어졌고, 동굴 입구 주변의 지형은 적이 한 번에 밀려와도 차례를 지켜야 할 정도로 적당한 간격의 지물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일이 끝나자 프라이스는 손끝 하나 까딱일 힘조차 남지 않았는지 쓰러지고 말았다.

“혹시 모르니깐 식수를 확보할게요. 모두 힘냅시다!”

어스, 페어몬트, 루리아까지 세 사람은 계곡에서 물을 길어 동굴 내부에 마련한 웅덩이에 이를 들이부었다.

과연 오늘 중으로 웅덩이를 다 채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깊이 판 웅덩이였지만 끝내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봐요, 하면 되잖아요.”

“루리아 영애면 몰라도 네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에고고. 30년은 너끈히 쓸 수 있는 내 우월한 관절이 오늘부로 수명이 다한 것 같구나. 크흑.”

초반 기세 좋게 물동이를 옮겼던 어스는 어느 순간부터 그 일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노인네와 귀족 영애가 그보다 체력과 힘, 그리고 스피드에서 월등히 우월했기 때문이었다.

-거치적거리니까 비켜.

페어몬트에게 하도 많이 들은 이야기라 아직도 이 말이 어스의 귀에 맴돌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어스의 자존심은 조금의 상처도 받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번 작전의 주연은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자자, 그만 떠들고 두 분 푹 쉬세요.”

괴물 같은 체력을 자랑하는 페어몬트도 확실히 힘이 들었는지 더는 투덜거리지 않고 얌전히 누웠고, 루리아도 힘이 들었던지 한쪽에 자리를 폈다.

“괜찮으니깐 주무세요. 영애. 불침번은 제가 쭉 맡을게요.”

“수고하세요.”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루리아가 눕는 걸 확인한 어스는 동굴 입구로 걸어가서 바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되네. 난 잘 할 거야. 이번이 처음도 아니니까.’

땅의 중급 정령 노임의 역사를 비추는 달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고 훤한 건 제게 자신의 미래이기 때문이리라.

실상 땅의 중급 정령 노임이 나무와 바위 등을 모조리 뽑아서 평지로 만든 뒤, 그 위에 페어몬트가 머리를 쥐어짜며 구상한 장벽이 깔때기 모양처럼 세워져 있어 그러했다.

장벽이 제아무리 높더라도 어찌 잎이 무성한 나무에 비할 수 있으랴.

당연히 밝을 수밖에.

이를 응시하던 어스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런 그의 표정이 모호해진다.

‘이 파티는 대체 뭘까? 무엇이기에 포션을 왜 이렇게 많이 갖고 다니는 거야. 사람 든든하게.’

마나를 다루는 건 비단 기사와 마법사만이 아니다.

정령사 역시 마찬가지다.

덕분에 어스는 프라이스에게서 다수의 마나 회복 포션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것도 중급으로.

‘모조리 하급으로 만들어야지.’

기존의 포션 등급을 바꾸는 건 정밀한 방식의 제조법이 있어야만 가능한 힘든 작업이다.

포션의 등급을 내리는 것도 그리고 올리는 것 역시.

아무튼 그러한 정밀한 작업은 어스의 손에 들어오면 어찌 된 영문인지 어머니들이 대충 만든 음식처럼 맛깔나게 변하는 마법이 되곤 했다.

성공률 100퍼센트라는 사기적인 확률로.

‘이건 좀 아쉽단 말이야.’

* * *

모든 준비를 갖춘 캠프에 드디어 아귀 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프라이스가 합류하고 나서 2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전에 놈들이 나타났다면 매우 곤란했을 테지만 지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놈들의 출현을 제일 먼저 알린 건 새였다.

공포에 질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새떼!

“진짜, 괜찮은 거 맞지?”

“프라이스 형, 대체 내가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야? 대량 학살은 내 특기라고 말이야.”

“못해도 천은 넘어 보인다고, 반면 우리는 고작 넷! 산술적으로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너도 산수 배웠을 거 아냐.”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왔다.

큰돈을 벌고, 그 돈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큰 숫자를 더하고 빼기 같은 걸 할 땐 헤매지만 이상하게 돈 계산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계산이 척척 되곤 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여서일까? 하여튼 생각해보면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참고로 이는 어스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산수는 본능이 아닐까 싶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해. 봐! 보여? 저게 현실이야.”

“야!”

“귀청 떨어지겠네. 암튼 잘 봐둬. 형이 잡은 줄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부터 확실하게 알게 해줄 테니까.”

“페어몬트랑 루리아 영애만 아니었어도 이 미친 짓에 동참하지 않았을 텐데.”

어스를 흘겨보던 프라이스는 팔짱을 끼고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루리아와 페어몬트를 보았다.

‘진짜 괜찮나?’

루리아는 표정에서 감정을 읽기 힘든 포커페이스의 소유자라 일단 패스하더라도 페어몬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미숙한 편이다.

그런데 그런 양반이 지금 담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프라이스였다.

“일 잘못되면 포션값 다 물어내. 그것도 열 배로 알았어?”

“잘되면 공짜?”

“…….”

“형, 이게 나 하나 잘되자고 벌이는 짓이야?”

나 잘되기 위한 짓 맞다.

저들은 몬스터를 백날 잡아봐야 가죽이나 부산물을 팔아 돈 몇 푼 버는 게 소작이다.

반면 자신은 무궁무진한 이득을 얻는다.

‘역시 내 능력은 무덤 속까지 갖고 가야 해.’

이 사실을 프라이스나 혹은 다른 이들이 안다면 배가 아파서라도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그야…… 흠흠. 암튼 네 손에 우리 세 사람의 목숨이 달렸어. 그리고 저주로 인해 괴물이 된 카멜, 하커, 호커, 하들리까지. 그러니까 네 말에 꼭 책임져라.”

책임을 강조하는 프라이스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자 진지했다.

그래서 더 이상 가볍게 상대할 수 없었다.

“나도 그들의 동료야. 그러니 지켜봐.”

진지에 진지로 응수한 어스는 몸 관절을 가볍게 푼 뒤 깔때기(?) 안으로 제 발로 뛰어드는 놈들을 향해 손을 쑥 내밀었다.

“파이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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