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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57화 (57/250)

057화

“대화가 통했다고?”

“제 스…… 음, 마법에 당하자 짧은 순간 제게 말을 하려고 했어요. 사실 루리아 영애의 말을 믿지 못했는데 이젠 확실히 알겠네요. 카멜이 맞아요. 일방적인 내용이지만 그는 제게 두 가지 말을 했어요. 숲에서 달아나라고 했고, 또 하나는 서쪽 방향에 대해 말했어요. 참, 방향에 대해 말하기 전에 다른 동료들에 물었네요. 아무래도 서쪽에 그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말에 페어몬트는 낮게 침음하며 머리만 드러내놓고 있는 카멜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길고 빡빡한 털에 의해 가려져 있어 이를 걷어내면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싶어 해봤지만 이를 걷어냈음에도 카멜의 매끈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반면 루리아는 어스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어스는 낮게 기침하여 그들의 시선을 모았다.

“카멜이 남긴 쪽지에선 숲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럼에도 숲에서 도망치라고 할 걸 보면 보스라는 놈이 직접 나서서 침입자들을 사냥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니까요.”

“놈이 직접?”

“사람을 저 모양으로 만들 존재가 보스 말고 또 있겠어요?”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우리 입장에선 퍽 난감하겠군.”

어스의 말을 받은 페어몬트는 낮게 신음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에 잠긴 페어몬트를 일별한 어스는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루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루리아 영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스의 질문을 받은 루리아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한동안 쳐다보지 않을 것처럼 냉랭하게 굴던 그의 모습과 지금의 행동이 상반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루리아 입장에선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카멜 씨가 말한 서쪽을 탐방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어요. 더불어 숲에서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도 이참에 제대로 확인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카멜이 남긴 쪽지를 의심하는 건가요?”

“상황이란 고정적이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보스라는 존재가 직접 나서서 침입자를 찾아 돌아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셋이 함께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나도 루리아 영애의 의견에 동감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의견을 한데 모았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낮에도 어스름한 숲이다.

하물며 지금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야행성 동물이 아닌 이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어스의 경우에는 여기까지 카멜을 끌고 오느라 녹초가 된 상태였다.

“그럼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곧장 움직이죠.”

“잠깐, 그 전에 카멜의 의식을 회복시켰다는 마법을 걸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때?”

“아주 짧은 시간이에요. 고작 해봐야 한두 마디가 전부라 대화는 기대하기 힘들어요.”

그것도 그것이지만 4서클 스킬이라 여기에 들어가는 마나가 자그마치 100이다.

마나 회복 포션이 넉넉하다면야 상관없지만 보스가 침입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를 상황에선 이를 아끼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단편적이더라도 지금처럼 막막한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당장 그의 몇 마디 말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잖아. 어차피 지금은 해가 떨어져서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러기엔 마나 소비가 커요. 당장 보스가 나타나거나 아님, 어제처럼 아귀 떼가 출몰할 경우도 있잖아요.”

“마나 회복 포션만 있으면 마나는 금방 회복하는 거 아니냐?”

“맞는데, 마나 회복 포션이 무한한 건 아니잖아요.”

“음, 아쉽네.”

“그렇다고 시도하지 않을 건 아니에요. 자연적으로 마나가 차면 그때 시도할게요. 그리고 저 지금 엄청 피곤해요.”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되었고, 어스는 동굴 한쪽에 가서 몸을 뉘었다.

눈을 뜨고 있을 힘조차 남아나지 않았다.

반면 페어몬트와 루리아는 괴물로 변한 카멜을 번갈아 지키며 밤을 꼬박 지새웠다.

* * *

다음 날 아침.

어스는 자연적으로 회복된 마나를 사용하여 괴물이 된 카멜에게 일루젼을 시전했다.

역시나 그에게선 두 마디 이상은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어제와 달리 이번에 카멜에게서 듣게 된 내용은 일행의 우려를 크게 더는 이야기였다.

첫째, 보스는 현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음.

둘째, 프라이스의 행방은 카멜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숲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의 여부와 프라이스 형을 찾는 데 집중해야겠어요.”

“그래, 그게 좋겠구나. 그럼 굳이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되겠어. 놈이 움직이지 않는다니까. 다들 어때?”

숲의 규모가 방대하다 보니 현재 사용하고 있는 동굴보다 더 좋은 환경의 캠프를 마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작정 돌아다니기엔 간단히 생각해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이만한 곳이 또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곳을 포기하는 건 아깝죠. 전 찬성이에요.”

“저 역시.”

“카멜을 어찌할까 고민했는데 잘 됐구나.”

일단 캠프는 버리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덕분에 카멜에 대한 처분을 어찌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지금처럼 감시만 하면 되니까.

‘보스를 죽이면 카멜이나 다른 이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저주란 저주의 근원을 잘라내면 풀린다.

이는 유명한 이야기로 이를 모르는 이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러했기에 카멜을 선뜻 죽이자는 말을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외부 활동은 단독으로 할게요.”

“너 혼자서?”

“캠프만 관리하는 거면 모를까 여기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카멜이 있잖아요? 그러니 신중해야죠.”

“어차피 카멜은 꽁꽁 묶인 상태라 옴짝달싹도 못 해. 그러니 나 때문이라면 그럴 필요 없어.”

“어제 우리가 습격 받은 곳에 가보니 놈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흩어진 것 같은데 그중 일부가 캠프를 발견할 수 있잖아요?”

“거기 갔었다고? 그것도 혼자서?”

“간다고 했잖아요. 덕분에 카멜도 잡았잖아요. 아무튼 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어스의 말에 빈정이 상한 것인지 루리아는 돌연 그를 외면했다.

그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재차 설명해야 하나 싶어 잠시 고민하던 어스는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어스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움직였다.

하루를 길게 쓰려면 지금부터 부지런을 떨어야만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 * *

과연 숲에서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어스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렸다.

주변을 경계하고 살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프라이스 형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를 찾을 수 있다면 캠프를 보다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으며, 장차 보스와의 전투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이를 기대할 수 없었다.

지금은 지나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것이기에.

캠프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아귀 떼의 습격을 받은 곳에 도착했다.

혹시나 싶어 주변을 관찰하였지만 그 많던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단 한 놈도 찾을 수 없었다.

‘아쉽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어스는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그는 드디어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눈앞에 펼쳐진 구릉지.

‘이걸 왜 나갈 수 없다는 거지?’

눈으로만 보면 당최 이해할 수 없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숲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 한 걸음을.

“뭐, 뭐야?”

내디딜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에 뒤로 물러선 어스는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냈다.

발걸음이 막힌 것과 달리 창은 막힘이 없었다.

몇 번을 찌르고 또 찔러도 역시.

반면 발걸음은 여전히 내디딜 수 없었다.

‘미친.’

설마 했는데 카멜의 말은 진짜였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의문이 든다.

‘카멜은 왜 숲에서 빠져나가라고 했지?’

혹시 카멜은 숲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쪽지를 남긴 이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러데 이 숲을 벗어나도 달라질 게 있나 싶다.

던전을 나가기 위해선 보스라는 관문은 선택이 아닌 필수지 않은가.

아무튼 이 문제는 돌아가서 카멜에게 다시 물어봐야 할 듯싶었다.

숲 밖으로 나갈 수 없음을 확인한 어스는 이내 몸을 돌렸다.

더 있어 봐야 시간낭비였기에.

하지만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어스는 멈추어야만 했다.

아귀의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건 떼거리로 우는 소리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놈들이었는데.

소리로 보아 꽤나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무작정 달아났다간 얼마 안 가 뒤따라 잡힐 것이다.

‘일루젼을 써야 하나.’

잠시잠깐 긴장했지만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단이 있었기에 긴장감의 크기는 현저히 가라앉았다.

반면 줄어든 긴장감의 자리는 불만으로 채워졌다.

아니, 그건 아쉬움이었다.

마나 회복 포션만 넉넉해도 놈들 따윈 성장을 위한 양질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 그땐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마나 회복 포션을 긁어모으고 말겠어!’

아쉽고 급한 마음을 애써 누른 어스는 언제든 일루젼을 사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거리가 급격히 좁혀지자 그제야 어스는 일루젼을 선사했다.

스킬은 제대로 먹혔다.

“끼에에액!”

“끼아악!”

스킬에 먹힌 놈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혼란으로 인해 어스는 놈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었고, 이 기회를 틈타 어스는 냅다 달렸다.

하지만 이번엔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그가 달린 방향 전방에서도 아귀들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수가 방금 혼란을 일으킨 방향에 비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숫자였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지금은 화재 따위 걱정할 상황이 아니기에 어스는 자제했던 화속성 스킬을 사용했다.

전방을 향해 힘차게 날아간 두 개의 파이어 볼은 아귀 하나와 충돌한 뒤 폭발했다.

폭발에 휩쓸린 놈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쓰러진 놈들 위로 파도처럼 불꽃이 덮었다.

몸에 불이 달라붙자 놈들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이내 주변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싹 마른 풀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다.

환상에 빠져 난동을 부리는 동족을 피해 따라온 놈들을 향해 남은 마나를 매직 애로우로 치환하여 모조리 쏟아부은 어스는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필이면 그곳에 튀어나온 나무뿌리가 있어 이에 걸려 그만 자빠지고 말았다.

중심을 잡을 사이도 없이 꼬꾸라진 어스는 그만 돌부리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

체중이 다 실린 충돌이라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생명력 : 106/210.

‘미친.’

속으로 욕설을 토하며 벌떡 일어선 어스는 곧장 내달렸다.

생명력이 가진 신비한 효과가 없었다면 일어서긴커녕 그 즉시 정신을 잃었으리라.

아무튼 생명력 덕분에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아귀들이 괴성이 흡사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빼든 마나 회복 포션을 연속으로 들이키며 전방의 나무를 돌아가려던 그때 누군가 어스의 팔을 잡아 당겼다.

“……!”

화들짝 놀라서 급히 시선을 돌린 어스의 두 눈이 한없이 커졌다.

자신을 붙잡은 상대가 아귀가 아닌 프라이스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여기서 그를 보게 될 줄이야.

“형이 왜 여기서 나와?”

“얼른 엎드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프라이스만 있다면 아귀의 숫자가 제 아무리 많더라도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그의 정령으로 단단한 구조물을 만든 뒤 그 안에서 스킬을 난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라이스가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히든카드를 손에 쥔 기분마저 느꼈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실은 나 행운의 사나이일까?’

“멍 때리지 말고 얼른.”

프라이스는 힘으로 어스를 엎드리게 한 뒤 땅의 정령 노임에게 부탁하여 토굴을 만들었다.

사람의 힘으로 만들려면 족히 반나절은 걸릴 일을 노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다.

그제야 프라이스는 안심이 되었는지 음성에서 긴장감이 한층 꺾였다.

“저택에 있어야 할 녀석이 여긴 무슨 일이야?”

“이야기하면 길어. 그보다 만나서 반가워.”

“반갑긴 개뿔이 반갑냐? 여긴 겉만 그럴듯하지 실상은 지옥이야.”

“지옥일지 천국일지는 하기 나름 아니겠어.”

자신감 넘치는 어스의 말에 프라이스는 현실 파악을 제대로 못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입 다물고 가만있어. 놈들이 몰려오고 있어.”

“일단 나중에 이야기해.”

프라이스의 경고는 곧 현실이 되었다.

잔뜩 흥분한 아귀들이 떼 지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칠흑 같은 곳이었지만 소리마저 차단된 곳은 아니다.

고블린을 연상케 하는 작은 체구의 아귀, 당연히 체중도 가볍다 그러니 발소리는 클 수 없다.

하지만 그 수가 많다 보니 제법 크게 들렸다.

양철북을 때리는 소낙비를 연상시켰던 소리가 점점 잦아지더니 이내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프라이스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어스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안심하라는 신호였다.

안심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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