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화
괴물의 뒤를 쫓은 어스와 루리아는 끝내 놈을 발견할 수 없었다.
볼일을 보고 뒤처리를 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 때문인지 루리아 자체가 못마땅했다.
“루리아 영애는 먼저 돌아가세요. 전 주변을 더 둘러본 뒤 가겠습니다.”
“예?”
“가세요.”
나름 감정을 숨긴다고 숨겼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루리아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어스를 빤히 응시했다.
최근 들어 자신의 감정을 자주(?) 드러내는 루리아였다.
전이라면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음이 상했나요?”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우리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니까. 그렇다고 루리아 영애를 무조건 원망하는 건 아니에요. 그 괴물이 진짜 카멜이라면…… 음, 지금은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이 일은 나중에 페어몬트와 함께 상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루리아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끝내 그 말을 토해내지 않고 도로 삼켰다.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서.
“캠프에서 봐요.”
돌아서서 걸어가는 루리아를 잠시 응시하던 어스 역시 이내 움직였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아귀 떼의 습격을 받은 곳이었다.
점점 그곳과 가까워지자 아귀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복잡했던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지금은 힘을 키워야 해.’
그러기 위해선 사냥을 해야 한다.
자세를 낮추고서 이동하던 어스의 두 눈에 작은 동물을 생으로 뜯어 먹고 있는 아귀 두 마리가 들어왔다.
그 외에 다른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말릴 거면 아이스 스피어 쓰기 전에 말리던가. 애꿎은 마나만 날렸네.’
아이스 스피어에 들어간 마나면 매직 애로우 10발을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귀 열 마리를 죽일 수 있는 자원이다.
그런데 그런 자원을 허공 중에 날렸으니 이래저래 손해 막심이다.
‘여기서 나가면 무조건 마나 회복 포션부터 사고 말겠어. 매직 애로우, 매직 애로우!’
* * *
함정설치로 바쁘게 움직였던 페어몬트는 대충 일이 마무리되자 그제야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동굴을 등지고 앉아 출출한 속을 달래려 공간 주머니에서 여행자용 건포를 꺼내던 찰나 급히 이를 수습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그의 손엔 쇠로 만든 지팡이가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풀숲이 눕는 소리와 함께 한 인영이 페어몬트 앞에 나타났다.
루리아였다.
“엉? 루리아 영애, 영애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어스는?”
“일이 있어 저 먼저 왔습니다.”
루리아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분위기는 영 딴판이었다.
손에 쥔 지팡이를 슬그머니 내려놓은 페어몬트는 그런 루리아의 표정을 살피며 너스레를 떨었다.
“참, 내 몇 가지 함정이랑 알람 장치를 설치했네. 한번 볼 텐가?”
“아뇨, 그보다 할 말이 있어요.”
“내게?”
“예, 실은…….”
루리아는 괴물이 된 카멜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감 없이.
페어몬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차라리 죽은 카멜의 시신이 돌아다닌다고 했다면 오히려 납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멀쩡한 인간을 완벽한 괴물로 만든다?
이는 전례가 없던 이야기였다.
“더 이상 놀랄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아예 충격이군. 어찌,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 수 있는지.”
“페어몬트 씨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없네, 없어. 내 자랑은 아니지만 박학다식으로 따지면 이 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부하네만 그런 이야기는 난생처음일세.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했는데 이제 보니 섣부른 생각이었군. 허허. 그런데 어스는 어디 가고 영애만 온 것인가? 그런 일이 있다면 더더욱 함께 있어야지.”
“실은 카멜 씨를 공격하던 어스 씨의 마법을 제가 막았습니다. 그 일로 그가 저에게 실망한 것 같습니다.”
“어스가 카멜을 공격했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당시의 어스 씨는 그를 괴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설마 자신의 마법을 막았다고 녀석이 영애에게 삐진 건가? 그럴 녀석이 아닐 텐데.”
루리아의 말만 들으면 이는 매우 옹졸한 태도다.
동료를, 아니 동료일지 모를 존재를 공격하는 행위를 저지한 건 백번 생각해도 잘 한 행동이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스가 루리아에게 섭섭함을 느꼈다는 건 필시 모종의 일이 더 있지 않을까 싶었다.
‘녀석이 질투를 하고 있는 건가?’
그 외엔 어스의 태도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더구나 그런 징조가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었기에 지금껏 눌려왔던 감정이 괴물이 된 카멜을 루리아가 보호하려 들자 한 번에 터져버린 게 아닐까 싶다.
이성 문제에 있어서까지 냉철하기란 쉽지 않기에.
하물며 어스는 고작 열다섯, 한창 예민한 시기다.
“다른 이들도 걱정이군.”
페어몬트의 말에 루리아는 나직한 침음으로 동감을 표시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꽤 오랫동안.
이에 페어몬트는 조용히 일어나 함정 보강에 착수했다.
루리아에게서 들은 괴물을 저지하기엔 지금 설치한 함정이 약해보였기 때문이었다.
* * *
앞서 일행을 습격했던 아귀 떼는 하룻밤 사이에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지금은 그 수가 현저히 줄었다.
각오가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네 마리의 아귀가 괴성을 내지르며 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중 하나는 나무를 징검다리 삼아 겅중겅중 뛰기까지 했다.
다리도 짧은 것이.
미리 준비한 매직 애로우는 각자의 표적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퍽퍽퍽퍽-!
네 번의 파육음과 함께 놈들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졌다.
넷 중 둘은 즉사, 둘은 중상을 입었다.
자신의 안위가 풍전등화임에도 놈들은 여전히 입에서 불을 뿜지 않았다.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어스 입장에선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중상을 입은 녀석들이 숨통을 하나하나 끊어버렸다.
마지막 놈의 숨통을 끊자 생각지도 못한.
-레벨업.
-업적 포인트 2를 획득합니다.
‘벌써?’
레벨이 높아질수록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특히 30레벨 이후부터는 확연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레벨업은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껏 사냥한 아귀의 숫자는 고작 스무 마리 남짓에 불과했으니까.
‘선물 받은 느낌이네.’
스탯 : 힘(1.2). 체력(23). 민첩(1.1). 지력(11). 정신(27).
‘정신을 찍을까? 아님, 지력?’
지력의 효과로 스킬의 위력이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매번 지력만 찍기에는 마나의 총량이 마음에 걸린다.
‘아쉽지만 역시 지력 스탯으로 가야겠어.’
마나는 포션으로 채울 수 있지만 스킬 위력을 위해선 강화를 제외하곤 지력 스탯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장차 마녀를 상대로 싸우기 위해서라도 지력이 필수 같았다.
떨떠름했던 기분이 레벨업을 통해 한층 나아졌다.
더 이상 사냥할 아귀도 보이지 않았기에 어스는 캠프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제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뗄 수 없었다.
눈앞에.
‘카멜!’
루리아와 함께 뒤쫓았던 그 괴물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
상처 받은 맹수처럼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뜬금없는 일이라 조금 놀랐지만 그건 잠시였다.
“카멜? 정말, 카멜 맞아요?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 줄래요.”
대화가 통할 상대였다면 애초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이라고 뭐가 다를까.
털북숭이 괴물이 된 카멜은 곧장 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멜이 멀쩡했다면 사실 둘의 싸움은 어스가 불리하다.
카멜은 마나 소드를 쓸 수 있는 익스퍼트였으니까.
‘젠장, 죽여 버릴 수도 없고.’
차라리 몰랐다면 한 방에 죽여 버릴 텐데.
어스는 매직 애로우를 날렸다.
칼도 막아내는 몸뚱이다. 당연히 매직 애로우는 통하지 않을 터.
이를 감안하고도 매직 애로우를 사용한 건 다음 공격을 위해서였다.
‘일루젼!’
제발, 통하길.
자신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매직 애로우를 팔로 쳐내며 잠시 주춤했던 괴물은 이내 어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 속도는 앞서와 달리 현저히 느려지더니 이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괴물은 이내 자신이 머리를 감싸 쥐고서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통했다!’
어스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괴물을 피해 멀찍이 이동한 뒤 마나 회복 포션을 들이켰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마나를 가득 채웠다.
격렬했던 괴물의 발광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일루젼의 효과가 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재차 일루젼 스킬을 준비했는데.
“어, 어스…… 어스…….”
“카, 카멜?”
“다, 달아나…… 이 숲에서 달아나…… 크아아아아-!”
루리아의 말이 맞았다.
괴물은 진짜 카멜이었다.
‘젠장, 이러면 진짜…… 죽이기 애매한데.’
잠시 이성을 되찾았던 카멜은 다시 괴물이 되어 어스를 향해 발을 놀렸다.
그에 어스는 일루젼을 시전했다.
또다시 제 머리를 감싸며 쓰러진 카멜의 발버둥이 거세졌다.
앞서와 같은 반복.
이번에도 그와 대화가 가능할까 싶어 미리 질문을 준비했다.
발광이 잦아들자 바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어요?”
“서, 서쪽…… 크윽. 달아나. 어스!”
이후 이와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무려 일곱 번이나.
아무튼 그 일곱 번의 일루젼 공격에 괴물이 된 카멜은 제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체력이 완전히 빠져 버렸다.
혹시나 싶어 일루젼을 써 보니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어스는 인벤토리에 보관 중이던 밧줄로 카멜을 묶기 시작했다.
머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이걸 왜 샀을까 싶었는데 사두길 잘 했네.’
* * *
“이 녀석 대체 뭐하느라 안 오는 거야?”
벌써 해가 저물었다.
낮에도 어둑어둑한 숲이다. 하물며 지금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앞마당도 아니고 뭐가 나올지 모를 숲에서 이 시간까지 어스가 돌아오지 않자 애가 탄 페어몬트와 루리아는 동굴 입구에서 발을 동동거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제가 어스 씨를 찾으러 가봐야겠어요.”
“나랑 같이 가세. 혼자보단 아무래도 둘이 나을 테니.”
두 사람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움직였지만 이내 그 발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난데없이.
“우와아아아-!”
오늘 낮 페어몬트가 설치한 함정이 있는 방향에서 비명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짐승도, 몬스터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도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반사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던 페어몬트와 루리아는 이내 비명이 들린 곳을 향해 재빨리 발을 놀렸다.
현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어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스 역시 두 사람을 발견했다.
루리아를 바라보는 어스의 자존심은 무참하게 구겨지고 있었다.
‘쪽팔려, 쪽팔려서 내일의 해는 어떻게 보냐.’
“인석아, 왜 이렇게 늦었어! 너 때문에 가슴이 시커멓게 타버렸잖아!”
“봉변을 당한 건 난데 왜 페어몬트가…… 암튼 얼른 내려줘요. 대체 이건 언제 설치했대.”
“작업할 거라고 말했잖아.”
“그게 함정이라곤 안 했잖아요. 그리고 이런 건 위치를 미리미리 알려줘야죠. 나니깐 멀쩡하지 다른 사람이면 최소 5주예요, 5주.”
“떠드는 걸 보니 살만한가 보네. 흐흐.”
“말 시키지 말고 얼른 내려줘요.”
어스의 소원(?)은 페어몬트가 아닌 루리아가 이뤄줬다.
“어어어어!”
어스를 붙잡고 있던 팽팽한 밧줄이 어느 순간 힘을 잃었고, 그와 함께 어스는 아래로 추락했다.
너무 놀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당연히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다행히 어스가 지면과 충돌하는 일은 없었다.
잘린 밧줄을 루리아가 잡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지면과 한 뼘 남겨놓고.
‘설마…… 낮에 그 일에 대한 복수?’
아무리 생각해도 낮에 그 일이 그녀의 가슴에 맺혀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은 다 풀렸는데.
‘루리아 영애도 뒤끝이 있구나. 조심해야겠어.’
발목을 묶고 있는 밧줄을 인벤토리에서 꺼낸 단검으로 자른 어스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서며 한 곳을 가리켰다.
함정 때문에 잊고 있던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애, 페어몬트 그 녀석…… 아니, 카멜을 잡아 왔어요. 저기.”
어스가 가리킨 그곳에는 밧줄에 칭칭 감겨 있는 괴인이 신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