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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55화 (55/250)

055화

‘젠장, 걸레가 됐네. 걸레가.’

생애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서 구입한 로브, 자유 마을에선 괴물 마법사의 상징인 그의 로브는 격전을 치르면서 군데군데 찢어지고 구멍이 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로브에 걸려 있던 마법 효과도 크게 반감한 듯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불이라도 피우고 잤어야 했는데.’

그럴 순 없었다.

자칫 동굴 입구로 연기가 새어나가게 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기에.

그래도 언제까지 불 없이 지낼 순 없었기에 조만간 방법을.

‘아! 파이어 볼 띄워 놓을걸.’

왜 이제야 이 생각이 든 건지.

어스는 자신의 머리통을 신경질적으로 연신 쥐어박았다.

참고로 파이어 볼의 효과는 단순히 난방기구(?)로서의 효과만이 아니다.

이를 입구에 배치하면 수문장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멍청해졌던 게 아닐까 싶다.

“일어났어요.”

“엇, 루리아 영애.”

밤인데다 입구까지 막아 놓았기에 동굴 내부는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루리아가 일어나 있는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자신이 깬 걸 정확하게 아는 걸까?

‘검사의 직감인가?’

페어몬트는 잠잠한 걸 보니 숙면 중인 듯했다.

어스는 허공에 파이어 애로우 하나를 띄웠다.

페어몬트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공격 마법을 어스 씨처럼 사용하는 마법사는 없을 거예요.”

주변을 불그스름하게 밝히는 파이어 애로우를 응시하던 루리아가 어스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조명 때문인지 아니면 기분 탓인지 루리아에게서 전에 볼 수 없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제가 한 별종 하죠. 하하.”

너무 크게 웃었나? 페어몬트가 갑자기 몸을 뒤척였다.

“아직 밤이에요. 좀 더 주무세요.”

“전 푹 자서 괜찮아요. 루리아 영애는 괜찮아요?”

“많이 잤어요.”

“전 출출한데 야식이라도 드실래요?”

이번 어스의 동료들은 개인 공간 주머니를 갖고 있었다.

공간 주머니의 가격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파티의 성격을 생각하면 놀라워해야 할 일인가 싶기도 했다.

유적지는 모 아니면 도다.

다시 말해 제대로 한 건 잡을 경우 5인 가족 기준으로 3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도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수익을 단숨에 올릴 수 있다.

대신 그만큼 위험하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전력의 파티가 만들어졌겠지.’

카멜의 파티엔 익스퍼트급이 무려 셋이나 된다.

카멜, 호커, 하커가 그 주인공이다.

이것만 해도 사실 엄청 놀라운 일인데 그것도 부족해 중급의 정령사와 3서클의 마법사까지 있다.

물론 페어몬트도 한 힘 하지만 사실 그들과 비교할 순 없다.

그렇다고 페어몬트가 카멜 파티에서 역할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다른 이들에게 없는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카멜 파티는 황당할 정도로 완벽한 조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가 아니라 전혀 없네.’

지금까지 왜 이런 생각은 못 했을까?

아니, 한 것 같긴 했지만 크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거 드실래요?”

루리아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건포도와 호두를 꺼냈다.

호두는 몰라도 건포도는 꽤나 비싼 간식이다.

역시, 영지 귀족.

“감사합니다. 저도 있는데 잠시만요.”

어스는 닭 꼬치구이 몇 개를 꺼내 내밀었다.

위그드라실 서커스단이 공연하던 소도시 버진에서 먹었던 닭 꼬치구이가 맛있어서 제법 많은 양을 구입하여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공간 주머니의 경우 기본적으로 보존 마법이 장착되어 있다지만 주가 되는 기능은 공간 확장이기에 이에 보존력이 약한 편이었다.

때문에 상하기 쉬운 음식의 경우에는 장기간 보존하기 힘들다.

육포나 곡물 가루 등과 달리.

반면 인벤토리는 공간 주머니와 같은 그러한 단점이 없다.

전혀.

“뜨, 뜨겁네요.”

꼬치구이를 받아든 루리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갓 구운 꼬치구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미리 말해야 했는데 괜찮으세요?”

“어스 씨는 모든 게 다 신비네요. 처음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마법사로만 생각했었는데.”

남들과 다른 건 두 가지 반응을 야기한다.

차별과 동경이다.

전자의 경우인 차별은 힘이 없을 때, 만만하게 보일 때의 반응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스스로는 물론 위협을 가하는 상대를 굴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강자에게 향하는 반응이다.

어스는 양극단에 있는 이러한 반응을 모두 경험한 바 있었다.

전자의 경험만 하던 당시 어스의 사고는 까칠하고 냉소적인 고립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하나 지금은 그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유연해졌다.

그 자신은 이를 알지 못했지만.

아무튼 예전의 그라면 필시 예민하게 반응할 법한 질문에도.

“신비? 그 말 멋지네요. 앞으론 괴물 마법사 말고 신비로운 마법사로 불리고 싶네요. 그러자면 더더욱 정진해야겠어요. 하하.”

진담과 농담을 섞어서 말했다.

그 말에 루리아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뭐야? 꿈인 줄 알았는데 진짜네. 어스, 너 인간적으로 그러는 거 아니다. 좋은 거 있으면 같이 나눠 쓰고, 맛있는 거 있으면 같이 나눠 먹고 그래야지. 어떻게 둘이서만 그 맛난 걸 먹고 그래? 내 입은 입이 아니냐?”

달짝지근한 닭 꼬치구이 냄새를 맡고 깬 페어몬트가 실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어스의 불만에 비하면 페어몬트의 불만은 아무것도 아니다.

‘에잇, 분위기 좋았는데.’

자신에게 별다른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루리아에 태도에 섭섭함을 느낀 어스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반 쯤 접었었다.

그랬던 마음이,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다시 되살아나며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끼던 찰나 페어몬트가 난입하여 분위기를 단숨에 망쳐 버리자 단단히 뿔이 나고 말았다.

덥석.

그래서 들고 있던 꼬치구이를 입에 다 우겨 넣었다.

로맨스 훼방꾼에겐 단 한 점의 구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로.

우물우물.

“너, 너어…….”

어스는 몰랐다. 이번 일로 페어몬트가 엄청 오래 삐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 * *

날이 밝자 어스와 루리아는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카멜이 쪽지를 남겼던 장소로 이동했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장소, 그것도 단 하루 만에 돌아가는 길이라 그곳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발걸음마다 경계심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꺄루꺄루우우.

푸드덕.

수풀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나무 사이로 날아가는 새로 인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이쪽은 어스.

반면 루리아는 검을 반쯤 뽑은 상태에서 민망한 표정으로 착검을 하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앞서 걸었다.

그런 그녀의 걸음걸이가 유난히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영애도 사람이구나!’

어젯밤 나누었던 닭 꼬치구이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며 어스의 심장을 몰랑몰랑하게 만들었다.

“같이 가요, 루리아 영애. 헤헤.”

“왜 웃는 거죠?”

루리아 역시 자신이 좀 전 보인 반응이 내심 걸렸는지 평소와 달리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전이라면 그녀의 태도에 위축되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귀여워 보였다.

‘이래서 사람은 고난을 함께해야 하는구나.’

던전에 떨어진 일, 처음엔 당혹스럽고 답답하고 짜증나고 두렵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의 뇌리에서 싹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즐거움과 기대감만이 그의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날이 좋아서요. 헤헤.”

무성한 가지와 나뭇잎으로 인해 하늘은 백 보 정도 걸어야 간신히 한 뼘 하늘을 볼 수 있을 만큼 드물다.

그런데 날이 좋아서라니.

루리아의 잔주름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미끈한 이마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와아. 주름도 저렇게 예쁠 수 있구나.’

“어스 씨.”

“예?”

“방금 그 일은 검사로서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 일로 제가 놀랐다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제가 루리아 영애를 왜 놀려요. 절대, 꿈에도 전 루리아 영애를 놀리지 않아요. 부모님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그, 그 태도도…… 하아. 아닙니다.”

“그런데 말투가 왜 그렇게 딱딱해요? 어제는 안 그랬는데.”

“어제?”

“그, 그러니까 어제는…… 음, 인간적이라고 해야 하나…… 음, 귀엽다. 헉! 왜 그러세요?”

귀엽다는 말이 나온 순간 돌연 루리아가 검을 뽑아들었다.

그 번개 같은 동작에 어스는 깜짝 놀랐지만, 그렇다고 겁먹거나 하진 않았다.

그깟 일로 그녀가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어스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 루리아는 어스의 전면에 서선 우거진 수풀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어스는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날선 긴장감에 그제야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었다.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검은 인영이 무성한 수풀을 위를 뛰어넘었다.

‘아귀가 아니잖아!’

건장한 성인 남정도의 신장을 가진 놈으로, 두 눈을 제외한 전신이 길고 까만 털로 뒤덮여 있었다.

“핫!”

놈이 수풀 위를 뛰어넘어 오는 순간 루리아의 검은 벌써 놈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검은 빠르고 정확했다.

날개가 없는 이상 저 검을 피하긴 불가능하다.

실제 털북숭이 괴인은 루리아의 검을 맞았다.

몸뚱이가 강철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지 않은 이상엔 살아도 그 숨이 오래 붙어 있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래야 하는데…….

“피해요!”

그녀의 검은 괴인의 털이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일개 털이 강철로 만든 검을 막아내다니.

괴인은 루리아의 공격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작 공격한 사람은 루리아인데 왜 자신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란 말인가.

‘이 새끼가 날 졸로 보는 건가?’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어스는 준비한 매직 애로우를 날렸다.

세 발의 매직 애로우는 괴인의 이마와 가슴과 복부에 꽂혔다.

퍽퍽퍽-!

세 번의 둔탁한 소리.

검을 맞아도 멀쩡한 몸뚱이답게 매직 애로우로 놈을 무력화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앞서 녀석의 튼튼함을 봤기에 어스는 놈을 상대할 스킬을 이미 준비해 두었다.

‘아이스 스피어!’

뒤로 살짝 밀렸다가 다시 어스를 향해 돌진하던 놈은 냉기로 똘똘 뭉친 아이스 스피어는 꺼려졌는지 모습을 드러낸 이후 처음으로 회피라는 동작을 시전했다.

그런다고 피할 수 있는 아이스 스피어가 아니지만.

아이스 스피어를 피하기엔 둘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잡았다!’

어스는 확신했다.

그러나 그의 확신은 이내 충격으로 바뀌었다.

괴인이 아이스 스피어를 막거나 피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제3자가 등장하여 아이스 스피어를 쳐냈기 때문이었다.

“루, 루리아 영애 이게 무슨 짓입니까!”

상대는 루리아였다.

믿기 힘든 일이었다.

“어스 씨, 그는 카멜이에요!”

아이스 스피어의 위험성을 알아차린 걸까? 털북숭이 괴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달아나 버렸다.

끝장을 보기 전까진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굴던 녀석이라 이에 적잖이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카멜이라니, 그 괴물의 어디가 카멜이라는 거죠?”

아무리 루리아라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훼방을 놓은 터라 어스는 그녀에게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카멜 씨가 평소에 차고 다니던 목걸이를 봤어요.”

“괴물이 카멜을 죽이고 목걸이를 빼앗을 수도 있잖아요?”

“목걸이는 괴물의 목에 걸려 있어요. 또한 카멜이 그 괴물에게 당했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마법으로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키메라 제작이 있긴 하지만 그 괴물의 모습 그 어디에도 그와 같은 만행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대체 그 괴물의 정체는 뭘까?

어스의 머릿속은 생각이 얽히고설키며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 녀석이 카멜이건 아니건 차후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놈을 제압하거나 그게 안 되면 죽여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죽을 순 없으니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루리아가 반발할까 싶었지만 다행히 그녀는 수긍했다.

하지만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었다.

“제압이 불가능하면 죽일 겁니다.”

설사 그 괴물이 카멜일지라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만약 루리아가 막는다면 단독으로 움직일 마음을 먹었다.

“좋아요.”

다행히 루리아는 그의 뜻에 반하지 않았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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