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화
마나 연공법을 손에 넣었지만 당장 이를 수련할 수 없었기에 인벤토리에 보관한 어스는 숲으로 일행과 함께 들어갔다.
기이한 이 세계의 숲은 자유 마을과 인접한 곳에 있는 침묵의 숲과 닮아 있었다.
억세고 강력한 몬스터의 출몰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항상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곳이 바로 침묵의 숲이다.
그럼에도 그곳엔 준도시급의 마을이 들어설 정도로 외지인들이 많이 찾곤 했다.
돈이 되는 몬스터가 많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돈에 혈안이 된 자들도 숲 안쪽으로는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독을 가진 식물이나 동물들이 많은데다, 워낙 우거진 곳이라 자칫 길을 잃고 숲의 미아가 될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이 숲 또한 그럴 수 있었다.
‘괜찮으려나?’
주변을 둘러보는 어스의 안색은 그 자신도 모르게 굳어 버렸다.
고도의 긴장감은 페어몬트와 루리아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스는 기분 전환을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그곳엔 미분배 업적 포인트 2개가 그를 보며 꼬리 치고 있었다.
이를 보자 팽팽했던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아끼면 똥인데.’
정신, 체력을 주력 스탯으로 생각했던 어스는 점점 지력 스탯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스킬 강화와 달리 지력 스탯은 해당 스킬 하나가 아니라 전체 스킬의 위력을 높이는 팔방미인이다.
사거리, 속도, 파괴력, 범위에서.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효자효년데.’
정신, 체력에 중점을 두었던 초반과 달리 지금은 지력 스탯의 효용을 깨닫자 더는 지력을 홀대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늘 부족한 업적 포인트를 정신이나 체력 스탯에 투자하듯 하기에는 지력 스탯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인 스킬 강화가 있다 보니, 여유로운 상황에선 지력에 대한 투자에 있어 항상 고민하곤 했다.
만약 스킬 강화가 없었다면 고민의 수위가 지금보단 현저히 줄지 않을까 싶다.
‘이참에 안전 강화까지 해 버릴까?’
3강화까진 확률 100퍼센트라 투자에 손해가 없다.
참고로 1강의 경우 스킬의 위력은 1퍼센트 상승, 2강은 3퍼센트, 3강은 5퍼센트다.
4강의 경우에는 3강의 2배인 10퍼센트.
‘저 서클보단 고 서클의 강화가 유리한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역시 비용이다.
1에서 3단계까지의 비용은 스킬 구입 가격의 2배, 실패가 존재하는 4에서 6까진 5배, 7에서 9까는 8배이며 이후엔 16배, 32배, 50배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요구한다.
코인 : 4,869.
현재 어스가 보유하고 있는 자금이다.
1에서 3서클 스킬은 모두 안전 강화인 3단계가 가능하지만 4서클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5서클 스킬을 위해서 움켜쥐고 있는 게 낫지.’
당장은 강화는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어스는 이내 눈길을 돌렸다.
어쨌건 스킬 위력을 높이는 데 마음이 기울고 있었기에 어스는 보유한 2업적 포인트를 지력 스탯에 투자하기로 결정 내렸다.
여기서 더 생각하면 또 흔들릴 것 같았기에 곧장 지력에 분배해 버렸다.
이로서 어스의 지력 스탯은 기존 한자리에서 두 자리 수자인 11이 되었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야릇한 기분에 빠져 한눈을 판 사이.
“움직이지 마라.”
돌연 페어몬트가 정색을 하며 어스에게 경고했다.
“예?”
“쉿!”
페어몬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스는 페어몬트가 주시하고 있는 방향으로 눈알만 움직였다.
고갯짓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그렇게 고개를 돌린 어스는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살벌하게 생긴 뱀 한 마리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사냥꾼인 아버지 덕분에 뱀은 참 많이도 먹었다.
그래서 도시인과 달리 뱀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덜한 편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가지고 있을 독은 겁이 났다. 저렇게 무섭게 생겼는데 독은 또 얼마나 강할까.
꿀꺽.
긴장한 나머지 마른침을 삼켰다.
무의식적인 행동인데, 뱀은 이를 기회로 본 것인지 쏜살처럼 날아 어스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놈은 온전한 형태로 어스의 목을 깨물 수 없었다.
루리아의 검이 놈의 목을 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 독한 놈은 대가리만 남은 상태에서도 어스의 목을 무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어스!”
“어스 씨!”
페어몬트와 루리아의 입에서 동시에 경악성이 터졌고, 어스의 입에선 헛바람이 터졌다.
하필 자신의 목을 물고 있는 놈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딱히 아프진 않다.
생명력 덕분이다.
하지만 그 사정을 모르는 페어몬트와 루리아는 당황한 나머지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거렸다.
그에 참다못한 어스는 두 눈 질끈 감고선 뱀 대가리를 손으로 잡아 멀리 던져 버렸다.
짓눌린 신음을 토하며.
오싹.
겨우 뱀 대가리를 떼어 낸 어스는 두 사람을 향해 원망 어린 시선을 던진 뒤 황급히 상태창을 열었다.
칼이나 몽둥이, 몬스터의 손톱에 당한 적은 있어도 독을 가진 뱀은 이번이 처음이라 두려움이 컸다.
생명력 : 200/210.
‘어라? 뭐지? 별거 아닌 놈이었나?’
엄청 흉하게 생겨서 무시무시한 독을 가진 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확인해 본 생명력은 고작 10이 떨어진 상태였다.
‘뭐지? 생긴 거만 그렇고 실은 이슬만 먹고 산 순한 놈이었나?’
“어스 씨,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진짜.”
“어스, 해독제다 얼른 마셔. 얼른!”
역한 느낌을 유발하는 걸쭉한 녹색 액체가 담긴 병을 내밀며 페어몬트가 재촉했다.
팔이나 다리에 물렸다면 상처 부위에서 몸에 가까운 쪽을 묶은 다음 상처부위를 절개하여 입으로 빨아내겠지만 하필 어스가 물린 곳이 목이다보니 그 방법은 애초 쓸 수가 없었다.
“안 마셔도 돼요. 저 멀쩡해요.”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해? 그놈 그거 맹독을 가진 놈이었어.”
“맹독이면 저 벌써 어떻게 돼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그렇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안색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어스에게선 중독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제야 이 사실을 알아차린 페어몬트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건 페어몬트뿐만이 아니었다.
“어스 씨,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그럼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선 어스는 그들 앞에서 가벼운 스트레칭까지 해보이며 자신의 건재를 증명했다.
그제야 그를 향한 두 사람의 걱정이 사그라졌다.
“정말이지 너란 녀석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계산이 서지 않네, 않아.”
“칭찬이죠?”
“욕했겠냐?”
“하긴. 하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위험한 지역에서 강한 동료는 만금을 주더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더구나 그 동료가 믿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스는 페어몬트와 루리아에게 신뢰 받는 동료였고, 어스 역시 이를 느끼고 있었기에 가슴 뿌듯했다.
“지금부터 제가 앞장섭니다. 잘 따라오세요.”
숲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어스는 선두에 섰다.
큰소리 탕탕 치며.
* * *
동료를 찾던 어스 일행의 전방에 아귀 세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바닥을 살피며.
먼저 이를 발견한 어스는 내심 환호했다.
지력 스탯에 투자한 성과를 볼 수 있는 적당한 기회가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반면 페어몬트와 루리아는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저들 이외엔 다른 놈들의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제가 처리할게요.”
어스의 뜻에 두 사람은 말없이 고갯짓으로 동의했다.
이에 어스는 매직 애로우 9대를 생성하였다.
6대는 대기 상태로 두고 3대를 날려 보냈다.
지력 11의 영향인지 매직 애로우의 속도는 전보다 빨랐다.
단숨에 매직 애로우는 표적에 적중했다.
그 충격에 놈들의 작은 몸뚱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서 뒤로 쭉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비명과 분노가 화산처럼 터져야 할 그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설마…… 다 죽은 걸까?
어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와 함께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페어몬트와 루리아 역시 놀랐는지 그 입을 다물지 못하고서 어스만 쳐다보았다.
‘미친, 진짜 화살처럼 강력해졌어!’
매직 애로우의 살상력은 시위를 날아간 화살에 비할 수 없었다.
살상력, 사거리, 속도에서.
그런데 그랬던 매직 애로우가 바뀌었다.
환골탈태라 아니할 수 없었다.
곧 놈들의 숨이 끊어졌다는 메시지가 터졌다.
그제야 어스는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낼 수 있었고, 이것이 신호가 되어.
“방금 그건 뭐냐? 보기엔 매직 애로우 같던데. 설마, 아니지? 아닐 거야. 매직 애로우가 어떻게 그런 위력을 낼 수 있겠어. 이보게, 루리아 영애, 영애가 보기에도 그렇지?”
“예. 분명 보통의 매직 애로우와는 달랐습니다.”
“인석아, 매직 애로우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게 그리 강해진 거야?”
페어몬트는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끈덕지게 어스만 바라보았다.
“왜 대답을 안 해? 설마, 너도 몰라?”
그럴 리가. 피 같은 업적 포인트 두 개를 지불하고 얻은 결과물인 것을.
하지만 이 문제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것이기에 페어몬트가 두 번 다시 묻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건 제 비기예요.”
조금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진중한 태도로.
* * *
아귀 떼를 섬멸한 골짜기 대첩(?)을 한 번 더 하고 싶은 욕망이 어스의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맹렬하게 용솟음쳤다.
하나 우거진 숲, 페어몬트 말로는 대륙 남부의 정글과 유사하다는 이 숲에서 그와 같은 일은 다시 할 수 없었다.
만약 그걸 시도하려 했다간 멀쩡한 사람 하나 잡을 게 뻔하다.
그게 누구냐고?
“뭐냐? 그 시선?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사람이 사람 얼굴 쳐다보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해요?”
“응, 넌 있어야 돼. 느낌이 그래.”
저것은 육감인가? 아니면, 연륜인가?
“흠흠.”
“뭐냐? 그 반응? 설마, 나에게 이상한 부탁을 하려고 그랬어?”
“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에이. 페어몬트랑 더는 이야기 못 하겠네.”
내심을 들킨 어스는 냉큼 루리아 곁에 붙어 섰다.
갑자기 자기 쪽으로 붙어 서는 어스의 돌발적인 행동에 루리아는 반사적으로 거리를 뒀다.
이를 오해한 어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카멜하곤 잘만 붙어 있더니.’
섭섭한 감정이 물밀 듯 밀려들었지만 이러한 감정을 들키기는 죽기보다 싫었기에 어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루리아를 향해 빙긋 웃어준 뒤 페어몬트를 향해 돌아섰다.
그런데 페어몬트의 태도가 이상했다.
석상도 아닌데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
“페어몬트?”
“우리보다 먼저 여길 지나간 사람들이 있나 보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기, 저쪽을 봐라.”
길게 쭉 뻗은 나뭇가지에 긴 천 하나가 매여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서 볼 수 있었지 아니면 그냥 지나쳤을 만한 장소였다.
세 사람은 곧장 천 쪼가리가 걸려 있는 나무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지만 찾는데 다소 애를 먹어야만 했다.
그래도 결국엔 천이 매여 있는 나무를 찾아냈다.
“어스, 올라가서 저것 좀 가져와 봐라.”
“예? 제가요?”
“그럼 내가 하리? 이 나이에?”
나이가 깡패다.
하긴 그게 아니더라도 페어몬트에게 나무를 기어 올라가서 저 높이 매여 있는 천을 가져오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엄두가 나지 않는 높이였기에.
그래서 어물쩍거리고 있을 때 루리아가 어스의 곁을 스쳐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전생이 원숭이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나무를 기똥차게 잘 탔다.
“페어몬트.”
“왜?”
“오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는 건 어때요?”
“흠흠, 난 부끄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랑할 일도 아니니. 오냐, 이번 일은 우리 둘 다 무덤 속까지 가져가는 걸로.”
그렇게 두 사람은 은밀한 얼굴을 하고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