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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51화 (51/250)

051화

썩 내키지 않아 보이는 페어몬트를 재촉하여 아귀의 소굴로 향하던 어스는 마법 공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상적인 지형을 발견했다.

지형의 모양은 주둥이가 긴 병 모양이었다.

‘좋네.’

다수의 적을 처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문제는 예상에서 벗어난 상황이 발생할 경우다.

“이 녀석아 사람 불안하게 왜 그리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냐? 설마 여기서 놈들과 싸울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맞는데요.”

“뭐? 너 미쳤냐?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면 달아날 구멍이 없는 곳이다.”

“저도 눈 있어요.”

“이 녀석 진짜…… 진심이냐?”

“저 믿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남자가 한 입 갖고 두말하면…… 뭔지 알죠?”

어스의 천연덕스러운 태도에 페어몬트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지난 며칠 그 고생을 하며 버틴 게 갑자기 허무해지기까지 했다.

“페어몬트, 저 자신 있어요. 그리고 일이 잘 못돼도 둘이 함께 가는 거잖아요. 외롭진 않을 거예요.”

“그게 말이라고 하냐? 멀쩡히 잘 사는 사람 데리고 와서 이게 뭐 하자는 짓이냐?”

“멀쩡히 잘 사시진 않았잖아요. 막말로 저 아니었으면…… 알죠? 무슨 말인지.”

페어몬트는 할 말을 잃었다.

어스의 말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여기서 뼈를 묻을 생각이냐?”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그거야 고만고만했을 때 이야기지, 이건 척 봐도 우리가 짧아.”

“페어몬트, 나 못 믿어요?”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라. 내가 이러자고 하면 넌 따를 거냐?”

“페어몬트는 내가 아니잖아요.”

어스의 뻔뻔한 태도에 페어몬트는 기가 차는지 한참을 입만 뻐끔거렸다.

“너 진짜 겁이 없구나?”

“그런 게 아니라 자신감이라고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러니 이왕 동참하기로 한 거 끝까지 화끈하게 갑시다. 그리고 0.0001퍼센트의 확률로 일이 잘못되더라도 페어몬트보단 제가 더 억울하지 않을까요?”

“0.0001퍼센트?”

다른 말보다 어스가 언급한 확률에 꽂힌 페어몬트였다.

“예.”

“하아, 네가 소문에 떠돌던…… 떠…….”

“왜요?”

“거, 검은 로브!”

“왜요?”

“내 얼마 전에 황당무계한 소문 하나를 들은 게 생각나서 그런다.”

그 말에 어스는 돌연 두 눈을 반짝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괴물 마법사?”

“그걸 네가 어찌…… 아, 너도 떠돌이니 그 소문을 들었겠구나. 혹시, 너…….”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자유 마을을 구한 괴물 마법사가 너냐? 라는 질문을 기대하며 나름 멋을 부리며 대답하려던 어스는 이어진 페어몬트의 말에 김이 새고 말았다.

“……요즘 젊은 애들이 자주 한다는 코스프레냐?”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

“세상천지에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을 코스프레해요?”

뜨악!

“저,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과장 된 게 아니고?”

“우리 부모님 걸고 맹세합니다.”

부모님까지 건 그의 맹세, 그리고 그에게서 뿜어지는 자신감을 보며 페어몬트는 그가 소문의 그 마법사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만약, 녀석이 소문의 그 마법사라면?’

그럼 이야기는 달라진다.

듣기로 수천 마리를 단신으로 상대했다고 하니 그보다 10분의 1수준의 아귀쯤이야.

“좋다, 이 일에 너도 목숨을 걸었으니 장난은 아닐 테니 한번 끝까지 가보자. 막말로 죽어도 네가 억울하지 내가 더 억울하겠냐.”

“그러니까요. 그래서 말인데요. 페어몬트가 미끼가 되어 주세요.”

노인공경!

아니, 노인 혹사에 주저함이 단 1도 없는 어스였다.

* * *

“어스야-!”

아귀의 소굴로 제 발로 찾아간 페어몬트는 미끼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짧고 튼튼한 두 다리를 바람처럼 놀리며 입구에서 빠져나온 페어몬트 뒤편으로 한 무리의 아귀들이 악에 받친 듯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뭐야? 쟤들 엄청 열 받았네.’

불을 뿜는 특이 개체라서 그런가?

의아했지만 당장은 제 발로 찾아와준 아귀들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파이어 볼!’

폭발력과 살상 반경만 따지면 파이어 버스트가 제격이다.

하나 파이어 버스트는 4서클이라 한 발당 100의 마나가 소모되기에 고작 230의 마나를 보유한 어스로선 감당하기 벅찬 소비였다.

그렇다고 파이어 볼이 부족한 건 아니다.

적어도 놈들이 뭉쳐 있는, 바로 지금과 상황에선 최상의 가성비를 가진 스킬이었다.

4개의 파이어 볼을 미리 생성한 어스는 그중 한 발을 전방을 향해 날려 보냈다.

쐐애애액. 콰아앙-!

-아귀를 처치했습니다. 7(×2)코인을 습득합니다.

……

……

-아귀를 처치했습니다. 7(×2)코인을 습득합니다.

골짜기라는 지형 때문인지 폭음이 전보다 두 배는 더 컸다.

순간 파이어 볼이 아니라 파이어 버스트를 날렸나 싶을 정도였다.

‘좋아!’

단 한 방의 파이어 볼로 6마리의 아귀가 죽어 그에게 경험치와 코인을 선사하고 멀고 먼 곳으로 떠나 버렸다.

흙먼지 자욱한 그곳에선 아귀들이 내지른 다급한 괴성으로 가득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도 섞여 있었다.

‘가라!’

띄워 둔 파이어 볼 하나를 더 날렸다.

놈들이 저 입구 밖으로 나오게 해선 안 된다.

이번에도 앞서와 같은 요란한 굉음이 터졌다.

폭발에 의한 충격인지 입구 양쪽 벽 일부가 부서져 떨어져 2차 피해를 낳았다.

호재였다.

‘운까지 따라 주네.’

또다시 울리는 즐거운 메시지.

이대로 쭉 달린다면 레벨 업도 바랄 수 있으리라.

세 번째 파이어 볼을 날리려던 그때 페어몬트가 숨을 헐떡이며 그에게 다가왔다.

먼지와 그을음이 가득한 것이 꽤나 고생한 듯 보였다.

미안하게.

“괜찮아요?”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어 인석아. 두 번 다시 이런 거 시키지 마. 어휴, 말년에 이게 무슨 꼴인지.”

“덕분에 계획이 착착 들어맞고 있네요. 봐요.”

“개뿔 아무것도 안 보이고만.”

“이제 걱정 마시고 양지 바른 곳에 누워 쉬세요.”

“어감이 왜 그래? 내가 송장이냐?”

“자격지심이에요, 자격지심.”

입씨름할 힘도 이제 남아있지 않는지 페어몬트는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잘해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너나 나나 바로 황천길이다.”

“걱정 마요. 확실하게 할 테니까.”

남은 파이어 볼을 날린 어스는 재빨리 마나 회복 포션을 들이켰다.

“그거 마나 회복 포션 아니냐?”

“맞아요.”

“서, 설마 너 마나 회복 포션 믿고 계획을 세운 건 아니지?”

페어몬트 입장에선 당연한 불신이다.

마나 회복 포션은 말 그대로 마나 회복에 도움을 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을 뿐, 마나를 순식간에 채워주진 않으니까.

“맞는대요.”

“무, 뭐라!”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이던 페어몬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성난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 이상 행동하지 않았다.

마나 회복 포션을 마시자마자 어스가 파이어 볼 4개를 동시에 생성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페어몬트의 두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너, 너…… 대체 뭐냐?”

* * *

-아귀를 처치했습니다. 7(×2)코인을 습득합니다.

-아귀를 처치했습니다. 7(×2)코인을 습득합니다.

……

……

……

-아귀를 처치했습니다. 7(×2)코인을 습득합니다.

시간 차를 두고 사냥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계속하여 어스를 즐겁게 하였다.

이대로 쭉 달린다면 레벨 업도 시간문제였다.

‘짜릿해, 역시…… 마법사는 마법을 써야지. 크크.’

분지 형태의 지형은 어스에게 최상의 가성비를 선사하고 있었다.

이러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페어몬트를 질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지칠 줄 모르고 스킬을 연사하던 어스의 표정이 어느 순간 환희로 물들었다.

잔뜩 들떠 있는 그의 표정을 본 페어몬트는 저도 모르게 어스와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표정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2를 획득합니다.

어스의 표정이 저리 극단적으로 환하게 물든 이유였다.

어스는 고민하지 않고 업적 포인트 모두 지력 스킬에 분배했다.

지력 1이 스킬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마나 회복 포션의 효능을 알게 됨으로써 그는 정신 스탯을 우선시하던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또한 당면한 문제도 이와 같은 결정에 적지 않게 작용했다.

던전 보스의 처리였다.

그런 그의 선택은.

‘파이어 볼!’

콰아아앙-!

보다 강력해진 스킬이 그의 결정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 * *

던전이라는 의문의 장소에 떨어진 사람들은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기대가 한풀 꺾인 채 지금은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키아아아-!”

화르르.

입에서 불을 뿜는 생소한 소형 몬스터. 처음 놈들을 발견했을 땐 고블린의 아류종인가 싶어 만만히 보았다가 뜬금없는 불줄기에 호된 경험을 맛보았다.

하나 지금은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전과 같은 일은 없었다.

“핫!”

낮은 기합과 함께 루리아는 전면으로 몸을 날렸다.

측면에서 날아온 불줄기를 뒤로 멀찍이 보내고, 네 발(?)로 달려드는 아귀의 옆구리를 길게 베어 내장을 토해내게 만들었다.

철퍼덕.

내장과 함께 쓰러진 놈은 관정에 의해 수 미터나 미끄러진 뒤 멈추었다.

한참을 고통에 허우적거리던 놈의 왜소한 몸뚱이가 잠잠해질 무렵 루리아의 검에 또 하나의 아귀가 당했다.

이번엔 목이었다.

서걱!

핏물을 뿌리며 허공을 한 바퀴 돈 머리통이 지면에 떨어지기 전 루리아는 다시 다리를 재빨리 놀렸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아귀가 불줄기를 뿜을 모양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들의 입에서 불줄기가 막 나오려는 찰나 당도한 루리아의 검이 수평으로 움직였다.

쩍 벌린 놈들이 입이 더욱 쩍 벌어지며 입안에 머금은 불길은 방향을 잃고 부챗살처럼 퍼졌다.

놈들이 입을 가른 루리아는 곧장 몸을 회전하여 놈들의 불룩 튀어나온 배를 갈라 그 내장을 쏟게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유난히 덩치가 큰 변종 아귀 하나였다.

변종 아귀는 지면을 박차며 루리아를 향해 접근했다.

일반 아귀에 비해 머리 하나가 더 큰 놈은 무척 빨랐다.

거기다 날카롭고 긴 손톱을 자유자재로 빼고 거둘 수 있어 꽤나 성가신 존재였다.

‘안 속아.’

지척에 이르자 놈이 손톱을 세웠다.

이미 이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루리아는 어렵지 않게 놈의 손톱을 막는다.

캉-!

검과 손톱이 부딪치자 들려선 안 될 소리가 들린다.

맑은 금속음이다.

놈의 손톱을 저지시킨 루리아는 그 상태 그대로 검을 아래로 내리눌렀다.

그에 놈이 중심을 잃었다.

루리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뿌렸다.

손톱을 엷게 깎으며 올라간 루리아의 검은 그 팔을 지나 단숨에 경동맥을 잘라 버렸다.

잘린 경동맥에서 피가 분출하자 놈은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제 목을 눌렀다.

그것은 놈의 실책이었다.

루리아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주저 없이 검을 내질렀다.

목표는 놈의 심장.

푹-!

검은 놈의 심장을 제대로 관통했다.

단숨에 생기를 잃고 허물어지는 변종 아귀의 가슴에서 검을 뽑은 루리아는 참았던 한숨을 토해내며 전장을 훑었다.

부상 하나 없이 깔끔한 승리를 일궈냈음에도 불구하고 루리아의 눈빛은 암울하고 무거웠다.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싸움이 벌써 열여덟 번이다.

그중 두 번은 정말 위험했다.

만약 치료 포션이 없었다면 그때 죽었을 것이다.

끝없는 싸움,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이 그녀의 가슴을 또 한 번 묵직하게 만들었다.

루리아는 옆구리에 고정된 공간 주머니에서 수통을 꺼내 메마른 입안을 적셨다.

양껏 마시고 싶었지만 며칠 동안 개울조차 발견할 수 없어 기존에 갖고 있던 물을 나눠 마시다 보니 그녀에게 갈증은 일상이 되어 있었다.

‘물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직한 한숨과 함께 루리아는 곧 전장을 이탈했다.

이곳에 남아 있다간 다른 무리를 만날 게 뻔하였기에 신속한 이탈은 필수였다.

이를 깨달은 게 얼마 전이다.

그런데 돌연 그녀가 걸음을 멈춘다.

그러곤 한 곳만 뚫어져라 응시한다.

“……?!”

방금 그녀는 폭음을 들었다.

그림 속으로 떨어진 이후 이제껏 듣지 못한 소리였다.

잠시 고민하던 루리아는 폭음이 들린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이어 볼이 터지는 소리였어. 하들리 씬가?’

한편 그 시간 폭음을 들은 이는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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