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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45화 (45/250)

045화

카멜이 어스와 루리아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찾아왔다.

그가 여관에 나타나자 여자들은 선망의 눈빛을 그에게 보냈으며, 그에 반해 남자들은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수컷의 질투심을 한 몸에 받고 있음에도 카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스와 루리아가 계단에서 내려오자 카멜이 먼저 다가왔다.

“늦은 건 아니죠?”

로비의 분위기를 읽은 어스는 불편한 기색으로 카멜을 재촉했다.

“저쪽으로 가죠. 계약서는 갖고 왔습니까?”

“물론이죠.”

어스의 재촉에도 카멜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녀와 함께 로비의 외진 곳으로 움직였다.

당당하게 걷는 그 모습이 꽤나 멋져 보였다.

곁눈질로 이를 본 어스는 마치 그를 따라하듯 허리와 고개를 들고서 걸었다.

자유 마을에서 사람들의 감사와 환호를 받을 때 이후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짧은 거리를 이동한 세 사람은 구석 자리에 앉았다.

“이건 마법계약서입니다. 읽어보시고 수정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세요.”

카멜이 내민 마법계약서를 받아든 어스의 동공이 지진을 만난 부실한 건물처럼 크게 흔들렸다.

계약서의 태반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진땀을 뻘뻘 흘리며 기억을 쥐어짜 냈음에도 소용없었다.

‘식당 메뉴판도 아니고.’

차라리 식당 메뉴판이면 한 끼를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건 마법계약서라 계약에 명시된 사항을 어기면 사달이 발생한다.

그러니 자존심을 지키자고 덥석 서명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루리아에게 이게 무슨 내용인지 읽어 달라기엔 자존심이 그를 막아섰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루리아 영애.”

“예, 어스 씨.”

“루리아 영애도 계약 당사자니깐 읽어 보세요. 보시고 문제가 없다면 저도 서명할게요.”

어스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루리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만에 하나 그녀가 자신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큰 낭패였기에.

다행히 루리아는 별말 없이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그제야 어스는 큰 시름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안도하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위그드라실이고 나발이고 일단 글자부터 마스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까막눈으로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지금 자신이 느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서둘러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법계약서의 내용을 모두 읽은 루리아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괜찮네요.”

계약서의 내용을 자세하게 듣고 싶었지만 좀 전까지만 해도 계약서 내용을 이해하고 넘겨준 것처럼 행동했기에 차마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을 알려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저도 그런 것 같아요. 하. 하. 하하.”

“어디 불편하세요?”

루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백해진 어스를 걱정했고, 맞은편에 앉은 카멜도 계약자의 건강을 걱정했다.

이에 어스는 손사래 친 뒤 검지에 상처를 내 계약서에 뿌렸다.

다음으로 카멜과 루리아가 그와 같이 행동했다.

그러자 계약서는 입자가 되어 세 사람의 가슴으로 사라졌다.

이로서 고대 유적지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용을 알 수 없는 계약서에 서명한 상태라 기대와 설렘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아뇨, 전혀.”

자신을 향한 두 사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어스는 화제를 돌렸다.

“카멜 씨의 동료분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분들과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제 동료들은 마을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같이 가시죠.”

루리아가 체크아웃을 한 뒤 어스는 그녀와 함께 카멜을 따라 마을 밖으로 이동했다.

20여 분을 걸어 도착한 그곳엔 튼튼한 4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카멜이 소리치자 마부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안쪽에 신호를 주자 마차 문이 열리고 카멜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서부터 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소녀까지.

그중 유독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었다.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다부진 체구의 남자들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체구와 얼굴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들을 보자 순간 어스는 도플갱어란 단어가 떠올랐다.

다행히 도플갱어는 아니었다.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였다.

“하커와 호커를 보면 다들 비슷한 반응을 하죠. 두 사람은 쌍둥입니다. 그런데 어스 씨는 쌍둥이가 처음입니까?”

“예, 처음입니다.”

“어쩐지. 어차피 이름을 말했으니 하커와 호커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두 사람은 검삽니다. 다른 무기도 제법 잘 다루지만 그중에서 가장 잘 다루는 게 검이죠. 하커, 호커.”

카멜의 말에 하커와 호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쌍둥이라 감정 표현이나 얼굴 표정도 똑같을 줄 알았는데 막상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자 선입견은 사라졌다.

형인 하커는 성격이 활달했고, 동생인 호커는 루리아와 다른 진중함을 가진 남자였다.

두 사람을 시작으로 나머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중 어스를 놀라게 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소녀라고 생각했던 소녀가 실은 남자였다는 점이었다.

“실례했습니다.”

“그런 오해 자주 받습니다. 물론, 기분 좋은 건 아니지만 모르고 한 일에까지 속상할 정도로 속이 좁진 않습니다.”

카멜의 동료, 앞으론 어스의 한시적인 동료들의 면면은 생각보다 뛰어났다.

어떻게 저런 조합을 모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카멜 파티엔 검사 셋, 정령사 한 명, 역사학자 한 명, 그리고 어스와 같은 마법사가 한 명 있었다.

외모에서 눈길을 끄는 쌍둥이 검사와 미소녀처럼 생긴 정령사를 제외하고서 어스가 가장 관심을 보인 인물은 바로 마법사 하들리였다.

3서클 마법사는 어스가 만나 본 마법사들 중 현재까지 가장 높은 경지의 마법사였다.

대충 자기소개를 마친 일행은 카멜의 재촉에 하나둘 마차에 탑승했다.

탑승이 끝난 마차는 곧 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게른 산맥이라.’

마차의 최종목적지는 헥터와 레오다니스 왕국이 접경지로 양국 군대의 잦은 마찰이 있는 곳이다.

이것은 첫 번째 관문에 불과하다.

두 번째 관문은 게른 산맥에 서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를 빼놓을 수 없다.

그곳의 몬스터는 다른 지역보다 억세고 강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그렇게 두 과문을 통과하더라도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진정한 보스, 바로 유적지가 기다리고 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산맥의 몬스터라……. 레벨 좀 올릴 수 있으려나.’

게른 산맥의 몬스터를 떠올린 어스는 벌써부터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어스 씨.”

“예, 하들리 씨.”

“정말 3서클이 맞습니까?”

자기 자신이 마법사여서인지, 아니면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나이에 자신과 동급의 경지여서인지는 몰라도 하들리는 내내 의심의 눈초리를 그에게 보내고 있었다.

3서클도 어스가 낮춰 말한 것인데.

“파이어 볼이라도 보여드려요?”

마차 안에는 카멜, 하커, 호커를 제외하고 여섯 명이 타고 있었다.

하커와 호커는 돌아가면서 마차를 몰았고 카멜의 경우에는 마차 지붕에서 경계를 맡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튼튼한 몸을 가진 검사였다.

루리아도 검사였지만 그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 많았기에 마차 안에 탑승한 상태였다.

어스의 바로 옆자리에.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네. 카멜에게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막상…….”

“이해해요. 한두 번 겪는 의심이 아니거든요.”

“젊은 친구가 마음이 넓군, 넓어.”

하들리의 의심에도 전혀 언짢아하지 않고 대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지 페어몬트가 껄껄 웃으며 칭찬했다.

덕분에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 * *

드디어 마차가 정차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어스에게만 집중됐다.

마차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고 있는 것인지 카멜, 하커, 호커 형제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말에서 마차를 분리하여 말을 쉬게 한 뒤 팔짱을 끼고서 지켜보았다.

루리아는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어스와 사람들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한쪽 옆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녀가 이동한 곳이.

‘루리아 영애가 왜 카멜에게 가는 거지? 설마?’

루리아와의 관계는 애매모호하다.

연인은 당연히 아니고, 친구라기엔 갭이 있어 그리 말할 수도 없다.

그냥 아는 지인 정도가 어스와 루리아의 관계였다.

냉정하게 말하면.

하들리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줄 요량으로 내심 이를 즐기고 있던 어스는 루리아의 행동에 이내 풀이 죽었다.

갑자기 만사가 시들해지고 귀찮아져버렸다.

“어스 씨? 준비가 필요합니까?”

“아뇨, 필요 없습니다. 얼른 끝내고 밥이나 먹죠.”

제자리에서 빙글 돌아선 어스의 머리위로 파이어 볼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듯.

한발 늦게 이를 알아차린 이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졌다.

“주, 주문도 없이 발현하다니!”

어스의 마법 발현은 같은 마법사인 하들리에겐 탄성을 넘어 충격까지 선사했다.

하들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파이어 볼은 곧장 날려 보냈다.

슈웅-!

파이어 볼은 벌판에 우뚝 서 있는 회백색의 커다란 바위를 가격한 뒤 사라졌다.

멀쩡했던 바위는 본래의 형체는 찾을 수 없는 흉물로 변해 버렸다.

그에 이를 지켜보던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루리아 역시.

그제야 어스의 시무룩했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루리아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던 어스는 자신을 향해 박수를 쳐 보이는 카멜엔 콧방귀를 날렸다.

물론 그 자신도 그게 유치한 행동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없는 먼지를 핑계 삼았다.

자기변명일 뿐.

하들리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어스를 향해 달려와선 소낙비처럼 말을 퍼부었다.

“역시, 불의 속성을 갖고 있었네요. 이를 감안하더라도 파이어 볼의 위력은 제가 본 불의 속성을 가진 어떤 마법사보다 강력하네요. 그리고 시전 속도를 볼 때 숙련기간이 꽤 된 것 같던데, 대체 언제 3서클의 경지에 올라서 파이어 볼을 그처럼 숙련한 겁니까? 아! 실례라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릇 마법사는 두 가지 재능을 갖고 있다.

마나의 재능과 속성의 재능이 바로 그것이다.

속성의 경우 불, 바람, 대지, 물이 흔한 편이다.

식물, 얼음, 번개 등은 희귀하다.

하들리의 경우에는 희귀한 부류에 속하는 번개 속성을 가진 마법사다.

참고로 이와 같은 속성 말고도 하나의 속성이 더 있는데 그건 바로 무속성이다.

무속성의 경우에는 어떤 속성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두 배울 수 있다.

한 가지 단점은 위력이 해당 속성을 보유한 마법사보다 떨어진다는 점인데 이를 제외하면 범용성에선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속성이 바로 무속성이었다.

대신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 하나 혹은 두 개의 속성을 가진 마법사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마법사 된 지 3개월도 안 됐다고 말하면…… 분명 입에 거품을 물겠네. 크크’

하들리의 반응은 어스의 자존감을 한층 높여주었다.

“이제 의심은 가셨죠?”

“의, 의심이 아니라…… 흠흠. 그리 느꼈다면 미안하네.”

“비아냥거리려는 의도는 없으니까 괜한 오해를 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분간이긴 하지만 동료잖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하들리 마법사님.”

첫 단추는 잘 끼운 듯 해 어스는 기분이 몹시 좋았다.

카멜과 나란히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루리아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루리아, 영애 우리 저쪽에서 밥 먹어요!”

“미안하지만 난 카멜 씨와 이야기 좀 할 테니 먼저 드세요.”

설마 이런 대답을 듣게 될 줄은 몰랐던 어스는 금방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단둘이 있었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도 지켜보는 상황에서 거절당했기 때문이었다.

루리아의 성격상 이를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선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 그의 불편한 심정에 기름을 붓는 이가 있었으니.

‘왜 웃는 거야 저 노인네는.’

바로 페어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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