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화
교단의 임시 검문에 걸린 마차는 글리시아 남작 가문의 마차 한 대뿐만이 아니었다.
도로 한쪽에는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역마차를 비롯해 민간의 마차가 줄지어 서 정차해 있었다.
마차에서 모두 내린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교단에서 나온 디콘들의 일대일 검문까지 받았다.
그들 모두 영지의 정규군, 아니 왕국의 정규군조차 따를 수 없는 번쩍이는 무장을 하고 있었다.
대체 돈이 얼마나 많으면 병졸이라고 할 수 있는 디콘에게조차 저런 무장을 갖추게 할 수 있는 건지, 교단이 가진 재력에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깐깐하게 진행되는 검문 탓에 검문에 걸리는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다.
갈 길이 바쁜 입장에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누구 하나 이에 불만을 터트리지 않았다.
교단이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본인이 열성 신도여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룬의 축복이 있길.”
자신의 시간이 길에 버려졌음에도 검문을 무사히 마친 이들은 오히려 디콘의 수고에 감사하며 그들을 축복하기까지 했다.
“형제의 가는 길에 룬의 축복이 함께하길.”
그렇게 지루한 검문검색도 시간의 흐름 앞에 서서히 줄어들었다.
드디어 어스와 루리아가 탄 마차의 차례가 되었다.
건장한 체구의 남자 두 명이 마차로 다가왔다.
그중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탑승객 전원 마차에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교단의 위세가 대단하다곤 하지만 대륙의 기득권층인 귀족들의 경우에는 예외를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엔 어쩐 일인지 탑승객의 신분을 확인했음에도 디콘은 모두 내리게 했다.
이에 호위 기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디콘에게 항의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형제님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말은 그리했으나 태도는 완강했다.
교단과 척을 질 생각이 없다면 상대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국왕도 교단의 눈치를 보는 세상인데 하물며 남작 가문은 말해 무엇하랴.
마차의 문이 기척도 없이 열리며 그 안에서 루리아가 내렸다.
그녀의 뒤를 따라 어스도 불퉁한 표정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두 분의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루리아는 나직이 한숨을 내불고선 자신의 신분증을 내밀었다.
평민들의 신분증과 달리 귀족들의 신분증은 마법적인 효과를 가미했기에 위조가 어렵다.
그랬기에 앞서 다른 이들과 달리 꼬치꼬치 캐묻는 행동은 하지 않고 신분증만 확인하고 돌려주는 디콘이었다.
“감사합니다, 자매님. 어린 형제님도 신분증을 부탁합니다.”
‘어린 형제?’
그렇지 않아도 불쾌한 심정에 디콘의 호칭은 그를 더욱더 불쾌하게 만들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스는 용병패를 건넸다.
용병패를 받아든 디콘의 눈에 의심이 가득했다.
“본인 것 맞습니까?”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마른 체구에 앳된 모습의 남자애가 동패도 아닌 최고 등급의 용병을 상징하는 금패를 척 내주었으니까.
더구나 어스는 로브가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었기에 그냥 넘어가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 거 맞습니다.”
미심쩍은 눈으로 어스와 금패를 번갈아 보던 디콘은 패의 뒷면을 살폈다.
그곳에 인적정보가 새겨져 있었기에.
디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놀랐냐? 놀랐을 거다. 나도 내가 놀라운데.’
상대가 놀란 표정을 짓자 어스의 기분은 그제야 조금 풀렸다.
“마법사?”
“제가 칼이나 도끼 들고 설칠 몸뚱이는 아니죠. 보다시피.”
“기분 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어린 형제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눈빛은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스가 보기에 디콘의 눈빛은 흡사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듯 거만해 보였다.
정식 사제도 아닌 일개 디콘 주제에.
“존귀한 룬님의 일을 행하시는 분인데 제가 어찌 불만을 품겠습니까. 이제 끝났습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또 룬님의 행사에 불만을 가진 게 아닌가 싶어 걱정했습니다.”
‘이단 심판관에게 끌려갈 소리 하고 있네.’
어스는 더더욱 자신의 표정에 신경 썼다.
명색이 마법사, 그것도 4서클 마법사씩이나 되어 고작 디콘 따위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게 속상했다.
하지만 상대가 교단이란 든든한 뒷배를 가진 이상 일개 디콘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건 계승 귀족이라도 다르지 않다.
이교도로 낙인찍히면 왕족도 무사할 수 없는데, 하물며 용병 마법사의 목쯤이야 말해 무엇할까.
약한 놈이 기고 들어갈 수밖에.
“그럴 리가요.”
“신분증을 봤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드는군요. 실례지만 증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린 형제님.”
‘말끝마다 어린 형제네. 우라질 놈.’
우뚝하게 솟은 저 거만한 콧잔등에 주먹 한 방 꽂을 수 있다면 100테스도 아깝지 않을 텐데.
잠시 놈의 콧잔등을 멋지게 깨부수는 상상을 하며 어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죠. 제가 보일 마법은 4서클 파이어 버스터입니다. 모르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말에 뼈를 담아서 말하였다.
상대를 무시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나름.
어스 입장에선 다행하게도 상대는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루리아와 기사만이 이를 알아차리곤 흠칫했다.
어스는 천천히 몸을 돌려 세워서는 흔해 빠진 마법사들이 그러하듯 주문을 읊는 시늉을 했다.
‘이쯤 하면 시전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지.’
적당히 뜸을 들였다고 생각한 어스는 파이어 버스터를 발현했다.
그의 전면으로 거대한 불덩어리 하나가 신기루처럼 등장하여 그 위용을 뽐냈다.
그 순간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마, 마법이다!”
“우아, 엄청 큰 불덩어리잖아!”
“파이어 볼일까?”
파이어 볼의 유명세란.
“동그랗지 않잖아?”
“그럼 저건 뭐지? 엄청 대단해 보이는데.”
웅성웅성.
사람들의 관심과 그 못지않은 선망의 눈길을 통해 어스의 기분은 한결 풀렸다.
“이제 그 금패의 주인이 저라는 걸 믿으시겠습니까?”
“……놀랍군요. 정말 4서클이라니.”
확인을 시켜준 어스는 파이어 버스트를 해제했다.
별일 아니란 듯.
그러나 방금 어스가 선보인 한 수는 예사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만약 이 자리에 마법사가 있었다면 제 눈을 연방 비비며 어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을 것이다.
어찌 그리 간단하게 해제할 수 있느냐며.
다행하게도 이곳엔 이를 알아보는 자들이 없었고, 정작 이를 해낸 어스도 그게 대단한 건지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참고로 마법사를 여동생으로 둔 루리아 영애 역시 마찬가지였다.
“흠. 그런데 무슨 이유로 검문을 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범죄자를 찾는 거면 저희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밝힐 수 없습니다. 두 분과 일행의 신분은 확인했습니다.”
‘거 되게 깐깐하네.’
어스는 디콘에게서 용병 패를 돌려받았다.
그렇게 검문이 끝나나 싶었지만 검문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차 내부까지 뒤졌다.
명색이 귀족 가문의 마찬데.
‘교단엔 지들 말고 다 아랜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차까지 살피자 그제야 어스와 루리아는 마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어스는 루리아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처럼 그녀도 이 상황을 기분 나빠하는 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모르겠네.’
표정을 봐선 그녀의 속을 도저히 유추할 수 없었다.
전엔 저 표정이 멋지게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여우랑은 살아도 곰이랑은 못 산다는 말이 생각났다.
두 사람을 태운 마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그러나 마차 바퀴가 채 몇 바퀴 구르기도 전에 마차는 다시 정차했다.
놀란 마부가 마차를 급히 세운 것이다.
마부를 놀라게 한 사건은 비명 때문이었다.
그 비명의 주인은 여러 디콘 중 하나가 내지른 것이었다.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비명의 진원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스 역시.
‘헐! 디, 디콘을 죽인 거야? 교단의 사람을!’
교단과 연관된 인물의 목을 딸 바엔 차라리 왕의 목을 따는 게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단의 보복은 잔인하고 소름 끼칠 만큼 끈덕지다.
그런데 백주 대낮, 그것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단의 디콘을 해치다니. 범인은 죽어도 그 시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할 것이다.
아니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으리라.
교단은 연좌제도 서슴지 않는다.
교단의 행세만 보면 룬은 악신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혈혈단신인가?’
아마 그래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면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까지 잔인하게 죽을 테니.
“잡아라!”
“놓치지 마라!”
디콘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혼란스러운 장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범인의 꽁무니를 쫓는 그들을 쳐다보던 어스는 속으로 범인을 응원했다.
교단에 대한 반발 심리였다.
* * *
침대에 몸을 눕힌 어스는 오늘 낮, 임시 검문소에서 디콘을 살해하고 도주한 도망자를 떠올렸다.
그자의 모습에서 자꾸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칭호를 포기해 버릴까?’
지금 가진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하물며 이 힘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러니 교단과 척을 지게 될지도 모를 일은 여기서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머리는 그렇게 말하지만…….
스킬 슬롯 +3.
모든 스탯 +100.
차원 이동(재사용 30일).
‘차라리 하나만 줬으면.’
마음, 아니 욕심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하아.
‘제길, 교단 때문에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건지?’
차라리 위그드라실과 교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면.
“음, 그건 아니지. 하아.”
어쨌거나 이제라도 알게 된 건 천만다행한 일이다.
모르고 당한다면 그것만큼 억울하고 분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가슴에 드리운 묵직한 느낌에 답답함을 느낀 어스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8월의 마지막 밤, 그 밤의 공기는 선선하고 달콤하였으나 마음에 바윗덩이가 내려앉아 있어서인지 전혀 이를 느낄 수 없었다.
‘야경 하난 기가 막히게 예쁘네.’
예쁜 건 야경뿐만이 아니다.
그가 묵고 있는 객실 역시 예뻤다.
아니, 고급지고 화려했다.
3개월 전만 해도 이런 객실에 자신이 묵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디 객실뿐이랴 영주의 호의 또한 마찬가지며, 그 딸과의 오붓한 여행 역시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다.
꿈에서도 그리고 상상에서도 불가능한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이뤄지고 있었다.
이 모두가 자신이 힘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러니 이에 만족하며 현실과 타협하면 지금보다 아니 이보다 더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어,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멈추고 싶은데 멈추는 게 안 된다.
아니, 싫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 때문에 그러기가 싫었다.
창문을 열어 놓은 것만으로는 마음속에 피어오른 불길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진 어스는 여관을 나섰다.
산책이라도 하면 이 불길이 조금은 가라앉을까 싶어.
“루리아 영애?”
“어스 씨.”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저도 묻고 싶은 말이네요.”
평상복에 검까지 패용한 루리아의 모습은 평범한 여행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꾸미지 않은 수수한 그 모습을 보자 좀 전까지 느꼈던 교단에 대한 적의와 불쾌감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버렸다.
“잠도 오지 않고 해서 산책이나 할까 싶어 나왔습니다.”
“저도.”
“들어오시는 길인가요? 나가는 길인가요?”
“나가던 길입니다.”
그녀의 말에 어스는 잘 됐다는 표정으로 함께 걷지 않겠냐는 말을 던졌다.
루리아는 그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을 길잡이 삼아서 걸음을 옮겼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오가는 말은 없었지만 조바심도 어색한 기분도 전혀 들지 않았다.
마차에 타고 있을 때와 달리.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서일까?’
눈알을 굴려 루리아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마차에서 보던 표정과 달리 지금의 표정이 왠지 편안해 보였다.
착각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덧 두 사람은 마을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깨끗하게 관리된 광장엔 다수의 사람들이 편안하게 앉아 8월의 마지막 밤을 즐기고 있었다.
가족, 연인, 그리고 자신의 음악성을 자랑하고 싶은 거리 연주자들이 광장의 밤을 더더욱 아름답게 물들였다.
어스는 적당한 장소에 놓인 벤치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말없이 벤치에 앉아 평화로운 분위기를 눈에 담았다.
잔잔한 현악기의 음률에 광장의 소음이 섞이자 흡사 아름다운 합주처럼 들렸다.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였다.
이에 흥이 동한 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리아 영애.”
“예.”
“마법을 보여드릴까요?”
마법과 마술은 다르다.
마법은 신비이자 전통적인 학문이며 동시에 기사의 검처럼 힘을 상징한다.
반면 마술은 공연이다.
그러다 보니 마법사는 마술사들처럼 자신의 마법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갓 마법에 입문한 초심자들의 경우엔 이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사소한 기회만 주어져도 자신을 뽐내려 하는 경향을 보이나, 중위급에 이른 마법사가 그처럼 행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그런 경지에 있는 마법사가 마술사나 할 법한 공연을 자청하고 있었기에 루리아는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어스는 곧장 파이어 애로우를 시전 했다.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진 않지만 으스름한 가로등이 전부인 광장에서의 그의 파이어 애로우는 주변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신비였다.
그에 광장을 감쌌던 달콤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멎고, 일상의 따뜻한 대화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들 모두 어스의 마법 시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에 기분이 고무된 것인지 어스는 파이어 애로우를 연방 생성하여 그 숫자를 늘렸다.
그렇게 생성한 파이어 애로우의 숫자는 총 11개였다.
마나 : 10/230.
11개의 파이어 애로우는 어스의 생각에 따라 밤하늘을 유영하며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술과는 차원이 다른 신기 앞에 감탄은 물줄기라도 된 듯 끊이지 않고 감탄의 크기만 달라지기를 반복했다.
말도 안 되는 세밀한 통제와 조절 능력, 거기다 마법의 지속 시간은 우연히 이 광장을 찾은 이방인에겐 거대한 충격을 선사했다.
‘마,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