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화
납치를 감행했던 두 남자를 마법의 힘으로 패닉에 빠트린 어스는 소란을 듣고 달려온 가드들에게 두 녀석을 인계했다.
생각은 두 녀석을 좀 더 닦달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내일 바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서커스를 보려면 시간은 오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맹수 우리에 던져 버리세요. 사료비도 아낄 겸.”
“예? 아니, 그건 좀.”
어스의 말에 가드들은 진땀을 흘렸다.
일반인에게 있어 귀족만큼이나 두려운 존재가 있으니 바로 마법사다.
그러한 존재가 이런 말을 하였으니 가드들 입장에선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어스는 자신의 위치를 상기했다.
“방금은 화나서 한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치안대에 넘기세요.”
“예? 아예.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저희들과 함께 치안대로…….”
“치안대요? 제가 거긴 왜 가죠?”
“그야 진술을 하셔야지 저놈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겠습니까?”
가해자는 있고 피해자가 없다면 치안대에선 이 사건을 대충 처리할 게 뻔했다.
뒷돈을 찔러주거나 권력의 힘으로 입김을 넣지 않는 이상 열에 아홉은 그런 식으로 풀려나는 게 일반적이다.
어스는 그런 부분을 알지 못했다.
사회경험이 부족한 때문이었다.
“당신들이 대신하면 되잖아요?”
“그게 피해자가 직접 가서 진술해야 합니다. 저희들이 놈들을 데려가면 며칠 옥살이 하다 나올 게 분명합니다.”
“헐. 납치가 경범죄도 아닌데 그게 말이 돼요?”
어스의 반응에 가드들은 그를 세상 물정 모르는 마법사라고 단정했다.
답답했지만 상대의 나이가 어린 걸 감안하여 가드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상다반사임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뗐다.
아니, 떼려다 멈추었다.
“나 지금 급한 볼일이 있어서 이렇게 말할 시간이 없어요. 일단 공연이 끝날 때까지 놈들을 잡아두세요. 공연 끝난 후에 진술이든 뭐든 할 테니까요. 그럼 되죠?”
어스가 선수를 쳤기 때문이었다.
가드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와 범인들을 번갈아 보았다.
귀찮은 일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사건이 발생한 곳이 자신들의 경비 구역인데다, 상대가 마법사였기 때문이었다.
“그,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할게요.”
공연 시작 전에 루리아 영애와 함께 오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마음이 급해진 어스는 곧장 몸을 돌려세웠다.
하지만 첫발도 떼기 전에 그는 다시 몸을 돌려야만 했다.
제3의 인물이 장내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검은 정장에 중절모를 쓴 이십 대 중후반의 큰 키의 마른 남자였다.
놀랍게도 그 남자는 규모가 큰 이 서커스단의 단장이었다.
“위그드라실 서커스단의 로엘 단장이라고 합니다. 우선 불미스러운 일을 겪으신 점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조급함을 느끼고 있던 어스에겐 로엘의 출현은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로엘의 입에서 위그드라실이란 이름이 언급된 순간 그런 감정은 싹 사라졌다.
“위그드라실? 방금 위그드라실이라고 했나요?”
“예, 무슨 문제라도?”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대답하는 로엘 단장의 눈가에는 이채가 스쳤다.
공연을 보러온 사람이 공연단의 이름조차 모르고 왔다는 점 때문은 아니었다.
공연단의 이름을 모르고 찾아오는 관객들은 의외로 많으니까.
그럼에도 로엘이 어스를 눈여겨보게 된 이유는 위그드라실이란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로엘 단장님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마법사님.”
“참, 저는 어스라고 합니다.”
“어스 마법사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저희 공연장에서 불미한 일을 겪은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경비에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열 명의 병사가 도둑 하나 잡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선 안 되겠지만…… 음, 말이 옆으로 샜네요. 혹시, 서커스단의 이름은 단장님이 지으신 건가요?”
로엘의 눈빛이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아뇨, 초대 단장님께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째서 묻는 것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그렇군요. 큰 의미는 없습니다. 실은 얼마 전에 위그드라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는데 마침 그 이름을 이곳에서 듣게 되자 흥미가 동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단장님은 위그드라실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나름 조사를 해 봤는데 거의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흠흠, 제가 한 곳에 꽂히면 끝을 보기 전까진 멈추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뤼빅스 대륙엔 유명한 설화도 전설도 많은데 유독 위그드라실에 관심을 보이시다니 독특하시군요.”
독특하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인가? 어스는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런 말까지 들을 정도로 특이한 건가요?”
“위그드라실에 대해 어느 정도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대충은 알고 있죠. 고신이 세상에 심은 나무라는 정도.”
“이종족과 연관된 것도 아십니까?”
“엘프와 관련된 건 알고 있습니다.”
“음. 그럼에도 대답에 스스럼이 없으시네요. 교단에서 이단으로 명시한 이종족과 관련된 문제인데.”
로엘 단장의 말에 어스는 몰골이 송연했다.
칭호를 활성화하고 싶은 마음에 현실을 망각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룬의 교단에게 찍힌다? 제아무리 4서클 마법사라도 그들만의 리그인 종교재판의 칼날에서 무사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과거 이종족이 그러했듯 이 대륙을 탈출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인간의 눈길이 닿지 않는 오지로 숨어서 살거나.
참고로 노예제도가 불법인 왕국에서도 이종족 노예는 합법이다.
‘놈들의 감시망에 걸릴만한 행동이 있었나?’
만약 그랬다면 과격하고 잔인한 이단 심판관을 만났을 것이다.
아직 그런 기미가 없으니 아직까진 수용 가능한 선이지 않을까 싶다.
제발 그래야 하는데.
어스는 위그드라실에 관한 조사에 좀 더 신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놈들이 무섭긴 하지만 칭호를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마음을 다잡은 어스는 정색을 풀었다.
한편으론 로엘의 의중을 살피기 위해 심력을 쏟아부었다.
만에 하나 저자가 룬의 교단에 자신을 고발한다면 커다란 시련에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내 눈이 정확해야 하는데.’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다시 다잡은 어스는 시침을 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충실한 룬의 신돕니다. 위그드라실에 대해 알고 싶은 건 취미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취미조차 인정하지 않고 깐깐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그러니 되도록 입을 무겁게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하하. 물론, 룬이 신도시니 잘 아시겠지요.”
어스를 로엘의 말투가 꼭 자신을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어스의 표정은 삽시간에 금방 냉랭해졌고, 목소리엔 가시가 돋아 있었다.
“물론이죠. 그런데 이를 아는 분이 어째서 그런 위험한 이름을 공연단의 이름으로 쓰는지 모르겠군요. 이단 심판관이 무섭지 않나 봅니다.”
“이런 제 말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다른 뜻이 있어 그리 말한 건 아닙니다. 언짢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어스 마법사님. 그리고 저희 같은 부류의 단체가 그 이름을 쓰는 건 교단에서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희의 규모가 크다지만 그 근본은 비루하고 천한 광대패니까요.”
세상엔 천대받는 집단이 여럿 있다.
서커스단도 그중 하나다.
어스는 더 이상 로엘과 이런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구설수에 오르면 상대보다 자신이 더 큰 피해를 볼 게 자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운즈와 베르톤은 어째서 내게 대놓고 말한 거지? 혹시 다른 뜻이 있는 건가?’
어스는 그들이 자신에게 보인 호감이 실은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고도의 계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싹텄다.
그가 이러한 의심을 하게 된 배경엔 좀비 사태를 알리러 간 그들이 일언반구의 말도 남기지 않고 마탑으로 돌아간 것도 적잖이 작용했다.
그들이 영지에서 그를 기다려 줬다면 아마 이런 의심까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스 마법사님?”
“아! 실례했습니다. 그리고 전 서커스단이 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 전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커스를 구경하려던 마음은 이미 그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럼 저자들은?”
어스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벌벌 떨고 있는 납치범들을 쳐다보았다.
기분 같아선 엄벌에 처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식어버린 탓에 더는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풀어주든 치안대에 넘기든 알아서 해주세요.”
“마법사님을 납치하려던 자들인데 괜찮겠습니까?”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마법사님이 원하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참, 이건 저의 소소한 보상입니다.”
“이건 뭐죠?”
“평생 관람권입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던 어스는 말없이 이를 받아들곤 걸음을 재촉했다.
복잡한 심정을 품고서.
* * *
어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로엘의 뒤에서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로님, 어째서 처음 본 인간에게 그런 호의를 보이신 겁니까? 좀 전의 모습은 장로님답지 않으셨습니다.”
“그랬나?”
“예.”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군. 허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상하게 저자를 보니 친밀감이 들더군. 딱히 깊은 이유는 없네.”
로엘의 말에 검은 인영, 아니 푸리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렇다고 장로를 다그칠 수 없었기에 푸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푸리엘.”
“예, 장로님.”
“저자들은 적당한 곳에 묻어버리게. 우리 영역에서 그런 짓을 저지른 이상 벌을 받아야지.”
가드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두 납치범의 운명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푸리엘은 안색 한번 바꾸지 않고 그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조금의 반감도 없이.
“은밀히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음, 아닐세. 인연이 된다면 그때 알아봐도 되겠지. 이만 돌아가세. 인간들을 즐겁게 해 줘야 하니까.”
로엘의 말투는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 * *
어스와 루리아를 태운 글리시아 가문의 마차가 출발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거리는 무척이나 붐볐다.
때문에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느리게 움직였다.
그렇게 도시 밖으로 나오자 마차는 그제야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마법장치로 승차감을 높였기에 어지간한 비포장도로에서도 내부에 탑승한 사람이 불편한 일은 없었다.
거기다 외부의 소음까지 차단하는 장치까지 되어 있었기에 마차 내부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친한 사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남녀 둘이 앉아 있기에는 다소 불편한 환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시간이 넘도록 두 사람 사이에선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어스는 어스대로 생각에 잠겨 있었고, 루리아는 성격이 워낙 무뚝뚝하였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스 씨.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요?”
의외였다, 어스가 아닌 루리아가 먼저 입을 뗀 것은.
“예? 아뇨, 편안해요. 루리아 영애는 불편하신가요?”
“괜찮습니다.”
“예.”
물꼬를 틔웠지만 물꼬는 어스의 복잡한 심정으로 인해 막히고 말았다.
만약 이 자리에 루리아가 아닌 그녀의 여동생이 탑승했다면 절대 막히지 않았을 물꼬였다.
루리아는 여러 번 낮은 헛기침을 한 뒤 달싹이던 입술을 이내 다물었다.
어제의 어스였다면 이를 기회라 여기고 말을 이어나갔겠지만 지금의 그는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생각이 많은 상태였다.
그가 저리된 건 전적으로 룬에게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를 믿는 자들의 타인에 대한 억압적인 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은 단 하나 오직 룬 한 분뿐이다!
룬을 믿지 않는 자, 이 대륙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
대놓고 저리 떠들지 않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그들의 행동은 이 두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 그들에게 반하는 행위는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다.
그렇다고 위그드라실의 조각을 포기하자니 손실이 너무 컸다.
칭호를 활성화할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그드라실에 관한 건 앞으로 입 밖에 내면 안 되겠어.’
그게 현명한 판단이다.
하지만 그리 해선 어느 세월에 칭호를 활성화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할까 싶다.
지끈.
그리고 앞서 자신이 대놓고 위그드라실에 관해 묻고 다닌 일 역시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그가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마차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더니 이내 딱 멈추었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루리엘 아가씨, 교단의 임시 검문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차가 정차한 이유를 알게 된 어스는 저도 모르게 눈알이 빠르게 구르기 시작했다.
혹 자신 때문이 아닐까 싶어.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