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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40화 (40/250)

040화

어스는 루리아와 함께 영주관으로 복귀했다.

기사 단장이 작성한 보고서를 루리아에게 받아든 글리시아 남작은 어스를 크게 칭찬하며 귀빈으로 대접했다.

보상이 당장 떨어질 줄 알았던 어스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야 두둑한 주머니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노심초사했던 그간의 일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활짝.

덤으로 지난 며칠 동안 어스는 루리아와 부쩍 가까워졌다.

좀비 사태에서 마을 사람들을 구한 일도 일이었지만, 영주관에 머무는 동안 어스가 게이브에게 배운 창술을 홀로 연습하는 걸 본 루리아가 엉성한 그 모습에 조언을 하면서부터 관계가 진척됐다.

“힘과 유연성이 부족하군요. 하지만 며칠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어요. 그러니 당장 잘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열심히 하시면 분명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예요.”

평소의 루리아는 기껏 두세 마디 하는 게 전부다.

오죽하면 그녀가 벙어리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영지에 나돌기까지 했을까.

물론 한때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그러한 소문까지 났던 그녀가 지금 어스 앞에선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그녀가 좋아하는 분야였기에 저런 열정을 보이는 것이지, 어스에게 딴 맘을 품은 건 아니다.

이를 알면서도 어스는 마냥 좋았다.

“안 그래도 성과를 봤습니다. 루리아 영애.”

이건 빈말이 아닌 사실이다.

1.1이었던 힘 스탯이 지금은 1.2로 변했으니까.

어스의 대답이 의외였을까?

“그걸 알아차릴 정도면 어스 마법사는 꽤나 예민한 감각을 지니신 분이로군요.”

“설마, 루리아 영애도 아셨습니까?”

“쭉 지켜봤는데 모를 리가 있겠어요? 명색이 신체를 단련 중인 예비 기사인데.”

“절 지켜봤다고요?”

“오해하진 마세요. 연무장에서만 그런 거니까.”

다른 곳에서 훔쳐봐도 상관없는데.

“아…… 그렇군요. 그런 뜻이었군요.”

대놓고 실망하는 어스의 모습에 루리아는 묘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마침 고개를 든 어스는 그 눈길에 지레 놀라서는 연방 뒷걸음질 쳤다.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처럼.

‘한심해, 한심해! 어스 너 이런 놈 아니잖아!’

순식간에 홍당무로 돌변한 그의 얼굴에 루리아는 풋사과처럼 살짝 웃어 보인 뒤 다시 그의 자세를 봐주었다.

이럴 땐 냉혹한 교관으로 돌변하는 루리아였다.

“중심, 다리에 힘을 더 주세요. 허리를 그렇게 돌리면 허리 나갑니다. 팔!”

어스는 이런 루리아도 좋았다.

히죽.

* * *

루리아와의 꿈같은 시간도 신전에서 사제가 도착하면서 끝이 나고 말았다.

어스는 자신을 찾아온 사제에게 양치기 소년의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한 번 소상하게 설명해야만 했다.

특히 네크로맨서는 보지 못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만 했다.

귀머거리도 아니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는지.

참고로 이제껏 그가 진술한 내용 중 위그드라실의 ‘위’ 자도 그의 입에선 나오지 않았다.

어스는 어렴풋하게 이번 사태의 원인이 위그드라실의 조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추측 역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제 남아 있을 명분도 없네. 더 있고 싶지만 그건 민폐겠지.’

루리아와 좀더 발전적인 관계…… 악수가 아닌 손을 잡거나 혹은 볼에 뽀뽀하는 그런 깊은(?) 관계까지 갈 수 있으면 하고 바랐던 어스에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남자가 너무 질척대는 것도 꼴불견일 것이기에 우연히 한 번 더 겹치면 그땐 남자답게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물론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어스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을 상기하며 곧장 영주를 찾아갔다.

하나 부언하자면 영주는 어스를 매우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을 그에게 부여했다.

이는 흔치 않은 경우였으나 어스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쪽으론 그의 지식은 백지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뭐라? 떠나겠다고? 으음. 혹시, 섭섭한 점이라도 있었나? 아니면, 불편한 점이라도?”

“아닙니다. 모두가 잘 대해 주셨습니다, 영주님.”

“어스 마법사.”

“예.”

“일전에 내가 했던 제안 말인데, 정말 마음에 없나?”

일전 오스완드 글리시아 영주는 어스에게 영지의 수석 마법사 직을 제안했다.

작위와 봉토는 기본 옵션이다.

당시 오스완드 영주의 제안을 받았을 때 어스가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은 루리아였다.

가족을 항상 우선시하던 그에게 있어 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어스는 오스완드 영주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의 성장과 칭호 활성이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영지의 수석 마법사 직을 수락하면 몬스터 사냥은 몰라도 칭호 활성화에 필요한 위그드라실의 조각을 구하는 데는 반드시 애로가 발생할 터,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하고서 거절했던 것이다.

그 마음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지난 며칠 사이 루리아와 부쩍 친해졌기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렸으나 자신의 목적을 상기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하하, 아닐 세. 아니야. 내가 괜한 말을 했군. 미안하네.”

말은 그리했으나 오스완드 영주는 어스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인재를 영입하려는 마음 이외에 그에게 다른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그를 붙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오스완드 영주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며 겉으론 쿨한 모습을 보였다.

“아닙니다. 대신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와서 돕겠습니다.”

“용병 마법사로서 말인가? 이런, 내 말이 당혹스러웠나 보군. 농담으로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말게. 아무튼 자네의 마음은 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겠네. 그리고 내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요청하게. 내 자네를 위해 두 발 벗고 나설 테니까. 그럼 언제 떠날 생각인가?”

“내일 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마침 인근 영지로 떠나는 마차가 있어 그 편에 갈까 합니다.”

“마차?”

“상행을 나서는 마차가 있더군요.”

“일전에 듣기로 왕도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예.”

“잘 됐군, 잘 됐어. 마침, 왕도에 볼일이 있어서 모레쯤 왕도로 가야 하거든. 일정을 하루만 늦추는 게 어떤가?”

공짜로 마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건 마음에 든다.

하나 영주와 얼굴을 마주 보고 가는 건 아무래도 영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루리아만 갈 걸세. 왕도로.”

“…….”

이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어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오스완드 영주는 그가 루리아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스와 루리아를 엮어 주려는 건 오스완드에겐 가문을 이어줄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완드 영주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데릴사위였다.

동급의 가문이나 혹은 몰락귀족도 있었지만 그런 자들보단 어스가 더 그의 눈엔 데릴사위로 적합해 보였다.

열다섯에 4서클이면 향후 1, 20년 후엔 5서클 혹은 6서클도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더구나 어스에겐 가문이란 뒷배가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외부의 세력이 우리 가문을 흔들게 둘 수는 없지.’

사실 오스완드 영주가 어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가 이런 생각을 먹게 되면서였다.

또한 두 딸 중 누구의 남편으로 삼을지 역시 그에겐 고민거리였다.

기사로사의 재능을 가진 장녀 루리아.

마법사의 재능을 가진 차녀 소피.

그처럼 고민했던 오스완드 영주의 결정은 어스가 루리아를 소피아보다 더 마음에 들어하자 자신의 후계자로 루리아를 낙점했다.

둘째 딸의 성격상 영주의 자리를 수행하기엔 부족한 점도 이러한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어스는 이를 우연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모레 떠나겠습니다. 영주님.”

* * *

글리시아 남작 영지는 물론 전국에 큰 파란을 일으켰던 좀비 사태에 대한 고강도 조사가 이뤄지는 와중에 어스는 루리아와 함께 왕도로 향하는 마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영지 귀족의 마차답게 탑승감은 흡사 구름을 타고 가는 것처럼 편안했다.

하나 몸은 편안했지만 마차 안에 타고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은 그처럼 편하지 못했다.

할 말이 떨어진 어스는 그녀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궁리하느라 자신을 독촉하였으며, 루리아는 루리아대로 아버지의 언질이 있어 마음이 심란한 상태였다.

남자로 보지 않던 남자를 남자로 봐야 하는…… 그런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루리아 명심해라. 네가 어스 마법사를 네 남편으로 삼는다면 내 자리는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어차피 너도 생면부지의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단 그 편이 낫지 않겠느냐? 이 아비가 여러 날을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물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루리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루리아 본인도 가문을 잇고 싶은 마음을 줄곧 놓지 않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문제는 아버지의 제안이 그녀에겐 커다란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인에서 남자로 그를 봐야 한다는 점이.

‘남자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루리아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그런 쪽과 거리가 멀었다.

스스로를 되돌아본 루리아의 심정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에선 그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고작 그게 전부인 자신, 그에 반해 상대는 외모나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모두 출중했다.

‘지위나 신분도 그의 재능 앞에선…… 없겠지.’

불과 열다섯에 4서클 경지에 오른 마법사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 따윈 지금도 충분히 씹어 먹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그러니 모든 면에서 그에게 내세울 건 없다.

실시간으로 자존감이 뚝뚝 떨어진 루리아는 더더욱 입이 무거워졌다.

표정 역시.

그 때문에 어스는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불편한가?’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생각이었다.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었는데 설마 가시방석이 될 줄이야.

루리아의 눈치를 한참 살피던 어스는 먼저 용기를 내기로 했다.

물론 신체적인 부분에서 자신보다 그녀가 한참 우위에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남잔데 여자에게 리드를 부탁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남자는 곧 죽어도 자존심이 아니던가.

‘할 수 있다. 난 잘 할 수 있어.’

각오를 다진 어스는 드디어 입을 뗐다.

2시간 만에 처음으로.

“흠흠. 루리아 영애께선 언제부터 기사가 되려고 하셨습니까?”

시작은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자평한 어스의 표정에서 그제야 어색함이 조금 걷힌다.

하지만.

“일전에 말씀드렸습니다.”

돌아온 루리아의 대답은 그를 더욱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아니, 당황케 했다.

큰일이다.

여자는 사소한 변화도 알아봐 주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하물며 인생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깜빡했으니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불을 끄려고 준비한 게 물이 아니라 기름이었다니.

어스의 멘탈은 탈출구 없는 미로에 던져져 헤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입을 다문다면 이 분위기는 여정 내내 이어질 것이다.

‘아, 안 돼 그것만은 절대!’

그래 그것만은 안 된다.

만약 그리된다면 숨이 막혀 죽을지도.

“아, 하하. 그랬죠. 그랬었죠. 요즘 생각이 많아져서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절대, 루리아 영애의 말을 흘려들은 건 아닙니다. 맹세할 수 있어요! 진짜예요. 믿어 주세요.”

흘려들은 건 아니다에서 멈춰야 했다.

뒷말은 너무…… 너무 구차하다.

‘어스, 정신 차려! 너답지 않게 왜이래?’

어스는 스스로를 닦달하며 정신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루리아도 적잖이 당황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점심시간이 되어 마차가 정차할 때까지 단 한 마디 말도 못 한 채 각자 자아성찰(?)로 진땀을 흘렸다.

뻘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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