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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37화 (37/250)

037화

글리시아 영지로 향할 때의 인원은 어스를 포함하여 총 14명이었다.

남녀 비율은 딱 떨어지는 1 대 1이었다.

하지만 유적지로 향하고 있는 현재는 남성이 1명 더 많았다.

루리아 글리시아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섭섭하게.

“어스 님이 보시기에 우리 영지는 어떤가요?”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지 특별할 게 뭐 있겠나 싶지만, 만찬에다 귀빈실까지 내어준 영주의 딸이 직접 묻는데 거기다 대고 목가적인 풍경만을 말하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서 말을 지어냈다.

인사치레로 한 말에 불과했지만 소피는 이를 몹시 좋아했다.

‘칭찬은 나만 한 게 아닌데.’

다른 이들도 글리시아 영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중 몇 마디는 앞서 다운즈가 한 말을 차용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소피의 귀엔 전혀 이상하지 않았나 보다.

어스는 다운즈의 시선을 고개를 돌려 회피했다.

유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마차의 분위기는 전과 별다르지 않았다.

소피, 나리아, 메리, 제시, 리나, 로제가 어스를 삼면으로 포위한 형국이었다.

그녀들의 질문과 간식 공세에 시달리며 건성으로 대꾸하는 어스는 죽을 맛이었다.

‘설마 신종 고문법인가?’

어스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여자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표방했다.

처음엔 여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그를 부러워하던 남자들도 지금은 내심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거의 말라갈 때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글리시아 가문에서 내어준 커다란 고급 마차는 마법적인 장치가 되어 있어 앞서 탔던 역마차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다 왔습니다, 소피 아가씨.”

부드러운 정차 후 하인 하나가 다가와 이를 알렸다.

그제야 어스의 표정이 확 피어났고, 그에 남자들은 그를 안쓰러워했다.

잔득 기대를 품고 마차에서 내린 어스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실망했다.

‘설마, 이게 다야?’

위그드라실의 조각을 선물해준 노바의 말과 완전히 다른 모습에 실망하는 그의 곁으로 베르톤이 다가왔다.

“감상이 어때요?”

“베르톤 씨는 어때요?”

“실망한 표정이네요? 그런데 어쩌죠? 전 이곳이 마음에 드는데. 하하.”

베르톤은 어스보다 5살이나 많았다.

그리고 일행 중 유일한 20대였다.

그럼에도 베르톤은 자신보다 한참 아래인 어스에게 말을 놓지 않았다.

베르톤이 어스에게 예의를 지키는 건 그의 습관이었다.

마법사의 재능을 발견하여 평민에서 일약 마법사가 되었지만 나이 스물이 된 지금도 여전히 1서클에 머물러 있는 베르톤은 적지 않은 자괴감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베르톤은 지식의 축적을 통해 자신의 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스가 눈에 들어왔으니, 그의 입장에선 시기와 질투심에 눈이 멀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음에도 베르톤에게선 그런 기미는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그와 보다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이뤄질 수 없었다.

수다쟁이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게 전부는 아니겠죠? 베르톤 씨.”

그렇다면 무척 실망할 것이다.

제발, 아니라고 해줘.

인공적인 흔적의 기둥, 건물이 있었을 것 같은 터와 이를 뒤덮은 잡초만이 8월 중순의 따가운 햇살 아래 살랑이고 있었다.

유적지 옆 초지엔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 떼가 있었고, 양치기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이쪽을 훔쳐보는 어린 양치기 하나가 전부였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붑니다.”

“그, 그렇군요.”

괜히 왔다, 진짜 괜히 왔다.

후회가 그의 가슴에서 밀물처럼 밀려든다.

물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조리 실망스러운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부수입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올렸고, 지식도 꽤 충전한 데다, 영주와 밥도 먹고 그가 제공한 귀빈실도 제공 받기까지 했으니까.

그럼에도 이런 마음이 드는 건 그의 최대 관심사였던 유적지에서 건질 게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런 식이면 살아생전에 칭호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1/100).

슬쩍 상태창을 열어 본 어스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언제 저걸 다 채울 수 있을지.

하지만 그런다고 없던 칭호가 생기지는 않는 법.

조급하지 말자, 조급해하지 말자.

어스는 그리 마음먹기로 했다.

그러자 답답했던 속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저 유적지는 통합 제국 시절에 지어진 군사기지였다고 합니다.”

“통합 제국이요?”

“모르세요?”

아직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어스였기에 사람들과의 대화는 매번 새로웠다.

“예.”

“그럼 어스 씨의 이름이 흔한 이유도 모르겠네요?”

여기서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왜 나오는 걸까? 어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베르톤이 껄껄 웃었다.

어스가 눈살을 찌푸리자 베르톤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여자애들이 왜 어스 씨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하하.”

“잘생겨서?”

“그, 그것도 있지만 실은 귀여워서가 아닐까 싶네요. 참고로 저희 마탑에 조각같은 외모의 남자들도 몇 있죠. 그들 곁에 서면 누구나 비참함을 느낀답니다. 저 역시.”

“제가 그들보다 못하다는 거군요.”

“그래요. 하지만 그들 곁엔 여자애들이 접근하지 않아요. 왠지 아세요?”

“음…… 귀여움이 없어서?”

“정답.”

“저기 베르톤 씨. 남자에게 귀엽다는 말은 나쁜 말 아닌가 싶은데.”

“이런, 말이 딴 데로 샜네요. 본론으로 가죠, 본론으로. 하하.”

말을 회피했지만 어스는 이를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그보단 방금 자신의 이름이 흔한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통합 제국을 모른다면 블루 어스란 이름도 모르겠군요.”

“블루 어스요?”

“통합 제국의 이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에 이 땅을, 아니 뤼빅스 전체를 지배한 국가였죠. 혹시, 천 년 전 뤼빅스 대륙의 지배 종족에 대해 아는 건 있으세요?”

물어볼 사람에게 물어봐야지, 그걸 자신에게 묻는 저 의도는 뭘까?

“아뇨.”

“그럼 제가 설명하죠.”

베르톤은 마법사가 아닌 선생님을 하면 딱 맞을 타입이었다.

“블루 어스 제국이 어떤 곳이었냐 하면…….”

열정적인 그의 설명 덕분에 왜 이 세상에 어스란 이름이 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은.

‘우리 마을엔 어스라는 이름은 나밖에 없었는데.’

* * *

베르톤과의 대화에서 어스는 유적지에서 발견 된 유물 대부분이 왕도로 옮겨진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왕실 박물관에서 매년 한 차례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행사를 가진다는 것 역시.

왕실 박물관을 직접 관람한 베르톤은 그곳에 있는 유물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다.

이때의 베르톤은 수다쟁이 6인방을 합친 것보다 말이 더 많았다.

그래도 그들과 달리 베르톤의 수다에는 그녀들에게 없는 영양가가 있었다.

그래서 귀담아들었다.

‘두 달 뒤라.’

왕도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두 달이란 일정을 생각하면 천천히 움직여도 그전에 왕도에 도착할 수 있다.

문제는 박물관에서 위그드라실의 조각을 발견할 경우다.

‘훔쳐야 하나?’

걸리면 자신은 물론 집안도 풍비박산 나리라.

그렇다고 마음을 접기에는 칭호를 활성화하고 싶은 마음을 이길 수 있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심정으로 유적지를 둘러보았기 때문인지, 한껏 고무된 베르톤과 다운즈가 얘기하는 유적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두 시간에 걸친 유적지 관광이 끝난 일행은 글리시아 가문의 하인들이 설치한 캠프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했다.

곧장 돌아가지 않고 하룻밤을 자는 건 일출 시에만 볼 수 있는 이 유적지의 특별한 광경 때문이었다.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단체로 입을 맞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쁜 의도는 아니겠지.’

그렇게 식사가 끝난 뒤 젊은 마법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어스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어스는 일출이 뜨기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뿐만 아닌 모두가.

“도,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다급한 목소리가 그들을 깨웠다.

* * *

캠프에 찾아온 건 오늘 낮에 보았던 양치기 소년이었다.

일반인은 거의 입지 않는 로브를 차려입은 십수 명의 남녀, 그것도 고급스러운 마차에다 하인까지 대동한 무리의 등장은 한적한 시골에선 충분한 구경거리였다.

그렇게 흔히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을 한참 구경하고 돌아간 양치기 소년은 시골에서 자라는 소년답게 자잘한 집안일을 도운 뒤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한밤중 갑자기 마을 곳곳에서 비명과 악다구니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 소란에 깬 양치기 소년은 눈앞에 펼쳐진 믿기 힘든 장면에 무작정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공포심과 무기력함에.

그렇게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진 마을에서 탈출한 소년은 오늘 낮에 본 한 무리의 마법사들을 떠올렸다.

그들이라면 자신의 마을에 닥친 재앙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고 맨발로 달리고 달려 캠프에 도착한 것이다.

두 발이 피투성이가 된 소년은 울며불며 사정을 설명했고, 그에 어스를 비롯한 모두는 소년이 악몽을 꾼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 죽은 사람들이 살아서 산 사람을 공격한다고?”

“예, 아가씨. 분명 죽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서 마을 사람들을 공격했어요.”

소피의 질문에 소년은 마을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대답하곤 울음을 터트렸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일어나? 말이 안 되잖아.’

어스는 소년의 말이 황당무계했다.

어찌 죽은 자가 되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반면 그의 일행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점이 어스에게 당혹감을 선사했다.

세 살 먹은 어린애도 믿지 않을 황당한 이야기를 믿는 자들 모두 마법사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어스는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기로 했다.

“베르톤 선배, 저 아이의 말을 종합하면 좀비일 것 같은 데 선배 생각은 어때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수백 년 전에 사라진 네크로맨서의 사령술이 왜 이런 곳에? 으음.”

“지금 그게 문제냐? 대륙의 공적이 나타났는데?”

“그, 그야 그렇죠. 일단 영주관에 이를 알려야죠. 진짜 네크로맨서가 나타난 것이라면 심각한 상황이잖아요.”

“그래야지. 이건 우리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니까.”

좀비는 어떤 것인지 지금까지 들은 말을 종합하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문제는 네크로맨서였다.

대체, 네크로맨서가 무엇이기에.

어스는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라는 게 악마나, 마족 같은 겁니까?”

“헐, 설마 어스 씨는 네크로맨서를 모르나요?”

두 눈까지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 소피의 태도에 어스는 무식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으음, 그렇긴 한데 기분은 좋지 않네.’

글공부를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내심 다지며 어스는 낮은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소피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렸다.

이에 베르톤이 나섰다.

“네크로맨서는 죽음의 힘을 사용하는 악랄한 마법삽니다. 역사적으로 그들이 자행한 일들은 하나같이 끔찍했죠. 양치기 소년이…….”

베르톤의 말은 몹시 빨랐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속도는 아니었다.

“……그런 존잽니다. 그래서 다들 놀란 것이고요.”

“으음. 그렇군요.”

베르톤은 미심쩍어하는 어스의 표정에 내심 한숨을 내불었지만 마음이 바빠서 이를 못 본 척했다.

네크로맨서의 등장은 그만큼 중차대한 사안이었기에.

“일단, 영주님을 찾아가자.”

그 말에 모두가 움직였다.

하인들은 마부를 도와 마차와 말을 연결하는 사이, 마법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양치기 소년은 그들의 선택에 크게 놀랐다.

“저희 마을을 도와주세요! 사람들을 살려주세요!”

하지만 누구 하나 마을로 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딱 한 명.

“내가 남아 있을 테니 여러분들은 영주님께 이 사실을 알리세요.”

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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