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화
4서클 마법사는 일곱 불꽃 마탑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경지로 통한다.
하물며 그러한 경지에 이른 자의 나이가 고작 열다섯이었으니 사람들이 받는 충격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들 모두 마법사였으니까.
이에 젊은 마법사들은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어스를 보았고, 그의 마법을 보길 예외 없이 간청했다.
그에 어스는 마차가 야영을 위해 멈춘 길옆 공터로 이들을 이끌고 갔다.
그중엔 마법과 무관한 루리아도 있었다.
‘저 표정 이면의 표정도 꽤 보기 좋았는데.’
파이어 버스트를 언급했을 때 언뜻 본 루리아의 얼굴을 떠올린 어스의 입가에 엷은 미소를 맺혀 있었다.
하나 그 미소는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파이어 버스트!
솔직히 저들이 자신의 마법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것이 저들이 알고 이는 4서클 마법인지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파이어 볼과 달리 파이어 버스트의 경우에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마법이었으니까.
그건 어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것은 마법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닌, 스킬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진 자신의 마법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과연 4서클 스킬도 그럴 것인지는 그도 확신하지 못했다.
더구나 저들은 마탑에 소속되어 있는 정식 마법사들이다.
그러다 보니 어스의 입장에선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홀로 공터 중앙에 선 어스는 진중한 표정으로 시동어를 외쳤다.
생각이 아닌 육성으로.
“파이어 버스트!”
화염의 기운이 웅축된 불덩어리가 어스의 전면에 그 위용을 드러냈다.
“지, 진짜야!”
“헐. 시동어만으로 파이어 버스트를 생성하다니! 이게 말이 돼?”
“다, 당연히 안 되지. 하지만 눈앞에 증거가 있잖아?”
“그런데 공간 속성 아니었어? 설마, 이중 속성자!”
젊은 마법사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그리고 뜨거운 그 반응을 통해 어스는 낯선 단어에 주목했다.
공간 속성, 이중 속성이 바로 그가 주목한 단어였다.
‘내 스킬이랑 마법이랑 확실히 차이가 없나보네. 다행이야, 정말.’
속성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알아보면 될 것이다.
글리시아 영지까지는 아직 한참 더 가야 한다.
그전에 충분히 이 의문은 풀 수 있으리라.
지식의 착은 창고라 불리는 다운즈와 베르톤은 머리에 든 지식이 무색하게 입이 가벼운 사람들이기에.
저들은 하나를 물어도 둘, 셋 혹은 그 이상의 대답을 해주는 수다쟁이였다.
파이어 버스트를 생성한 상태에서 어스가 자신들을 빤히 쳐다보자 그제야 젊은 마법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의 행동에 예의가 없다는 걸 깨닫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4서클의 마법사가 4서클의 마법을 발현한 상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멍.
이 때문에 그들의 입은 자연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생성한 상태에서 집중이 흐트러진다? 이는 마법의 실패로 귀결된다.
더 나아가 고서클의 마법의 경우에는 본인은 물론 주변에까지 피해를 입힌다.
그래서 마탑에 입문한 마법사들이 스승으로부터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바로 마법을 생성하였을 땐 딴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는 기초 중에 기초!
‘뭐지? 왜 다들 굳어 버린 거야?’
그런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않은 어스의 눈엔 당연히 저들이 도리어 이상할 수밖에.
아무튼 사람들이 자신을 집중하자 어스는 그제야 파이어 버스트를 날렸다.
허공을 가르고, 수면 위를 빠르게 날아간 화염의 덩어리는 바위와 부딪치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력을 버티지 못한 바위가 산산 조각 났다.
그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가는데, 파편 하나하나에는 불꽃이 감싸고 있어, 주변에 2차 피해를 입혔다.
떠억!
어스의 놀라운 집중력(?)에 놀라 입을 벌렸었던 젊은 마법사들은 이번엔 스킬의 위력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사실 저 젊은 마법사들의 경지는 고작해야 2서클이다.
그중 절반은 1서클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저들이 4서클 마법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들이 아는 4서클 파이어 버스트는 책을 통해서였다.
설명과 그림이 전부다.
그러니 마법사이면서도 마법을 보고 저리 놀라는 것이다.
마나 : 130/230.
‘당분간 업적 포인트는 정신 스탯에 분배해야겠어.’
파이어 버스트의 위력은 만족스럽지만 반면 마나를 너무 많이 잡아먹는 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그에겐 큰 문제가 아니다.
왜? 레벨을 올리면 되니까.
반면 보통의 마법사들의 경우에는 서클을 늘려야만 한다.
그 외에 마나를 늘릴 방법이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단점은 적고, 아니 없다시피 한 존재.
그게 바로 시스템에 의해 마법사가 된 어스였다.
“변변치 않습니다. 파이어 버스트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젊은 마법사들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파이어 버스트가 일반적인 마법과 다르지 않음을 눈치챈 어스는 호들갑을 지그시 누르며 겸손, 겸허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젊은 마법사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졌다.
“벤슨 녀석 운이 좋았어. 저런 대단한 마법사와 결투 재판을 벌였다면 파이어 버스트에 뼛조각 하나 남지 못했을 거야.”
다운즈의 말에 다들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젊은 마법사들의 시선이 어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피 글리시아가 조르르 달려와선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스를 바라보았다.
“정말 열다섯 살 맞아요?”
“맞습니다. 소피 영애.”
“그냥, 소피라고 불러주세요. 부담스러우면 소피 씨라고 해도 돼요. 그나저나 정말 엄청난 분이시네요. 그런데 고유 속성이 둘 맞으세요?”
차차 알아보려고 했던 ‘속성’에 대해 소피가 먼저 언급하자 어스는 내심 옳다구나 싶었다.
“고유 속성이요?”
소피는 그런 어스의 엉큼한(?) 속도 모른 채 흥분한 표정으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어스는 고유 속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내 인벤토리를 보고 오해했구나.’
그런데 공간 속성이 그렇게 희귀한 속성이었다니.
어스는 재빨리 스킬 상점을 열었다.
공간과 관계된 스킬을 확인한 어스는 이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 이유는 공간에 관련된 스킬이 몇 없는 데다, 있는 스킬도 당장은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블링크라…… 저건 나중에 구입할까?’
공격 마법이 아닌 탓에 지금까지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스킬이었지만 소피와 그 외 마법사들의 태도를 보니 배워 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링크는 5서클로 가격은 1만 코인이다.
코인 : 4,023.
‘앞으로 육천은 벌어야 하네.’
6천 코인, 빅 고블린을 예로 들면 1,500마리가량 잡아야 한다.
어스는 달라진 젊은 마법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역마차가 정차한 야영장으로 이동했다.
노을에 물든 하늘을 머리에 이고서.
* * *
역시나 역마차가 다니는 노선은 안전한 통로였다.
몬스터라곤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하긴 이러니 역마차 산업이 이처럼 발달할 수 있었으리라.
몬스터는 없었지만 이동이 무료하진 않았다.
자신에게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한 루리아 글리시아의 변화도 보기 좋았고, 소피를 비롯해 젊은 마법사들과의 대화에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과의 대화가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그에겐 감춰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끔 진땀을 빼기도 했다.
특히.
“용병 마법사라는 어스 씨의 스승님은 어떤 분이세요? 외모는? 나이는? 성함은?”
자신이 마법을 배운 계기와 방식에 대해 질문이 쏟아질 땐.
그때마다 어스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예.”
“에? 정말 아무것도 알려주시지 않은 거예요.”
수다쟁이는 소피만이 아니었다.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그녀의 여자 동문들도 별다르지 않았다.
“그럼 독학으로 지금의 경지에 다다른 건가요? 대체 몇 살 때부터 마법을 배운 거예요? 혹시, 천재세요?”
처음 역마차를 탔을 때 어스의 옆에는 다운즈와 다일이란 남자 마법사들이 앉아 있었다.
전면엔 베르톤이, 그런데 파이어 버스트 시전 이후 다일은 소피에게 밀려나서 저만치 떨어져 앉았고, 다운즈와 베르톤 역시 여자 마법사들에 의해 밀려나고 말았다.
덕분에 어스의 주변은 꽃(?)으로 만개했다.
아주, 대단히, 짜증나게 시끄러운 꽃들이었다.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세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세요? 여자 친구는 있으세요? 얼굴은 언제부터 그렇게 잘 생겼어요?”
‘어지럽군. 어지러워.’
“어멋, 용병이요? 헐, 계속 용병 마법사로 일을 하실 생각이세요?”
“어스 님이 우리 마탑에 오신다면 탑주님은 물론 모든 분들이 환영할 텐데, 마탑에 가입할 생각은 없으세요?”
소피보단 덜 했지만 다른 여자 마법사들도 어스에겐 피곤함을 유발하는 존재였다.
‘남탕으로 가고 싶어.’
다운즈, 베르톤 다일 웨이즈 등이 모여 있는 남탕(?)을 바라보는 어스의 시선엔 부러움이 가득했다.
다행히 어스의 피곤함은 마차가 글리시아 역에 도착하면서 해소될 수 있었다.
* * *
벤슨 할리가 어스에게 탈탈 털리고 나서 떠난 이후 일곱 불꽃 마탑의 젊은 마법사들의 성비는 6 대 6이 되었다.
나이든 이들도 아닌 청춘 남녀의 성비가 이처럼 딱 맞아 떨어지면 없던 로맨스도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여자 마법사들 모두 어스에게 관심을 보였기에 로맨스의 ‘로’자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몇몇이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을 눈에 섞어서 보내기도 했지만 어스 입장에선 억울한 노릇이었다.
‘쟤들 싫어.’
어스는 글리시아로 오면서 자신도 몰랐던 여성관에 대해 알게 됐다.
수다스러운 여자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과묵한 포커페이스의 루리아가 더 없이 빛나 보였다.
글리시아에 도착한 일행은 곧장 영주관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루리아 자매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일행은 그들이 열어준 만찬에 참석했다.
만찬장에서 어스는 루리아 자매의 부모, 특히 아버지에게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용병 마법사!
어스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고위(?) 마법사였기에 남작은 그를 영입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순순히 넘어갈 어스가 아니었다.
만찬이 끝난 어스는 남작의 배려로 귀빈실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짐이라곤 작은 배낭 하나가 전부였기에 풀 짐도 없었지만.
벌렁.
침대에 대자로 누운 어스는 천장을 바라보며 연방 피식거렸다.
만찬장에서 받았던 영주의 환대가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침댄지? 구름인지 모르겠네.’
여기서 자면 내일 아침은 하늘에 둥둥 떠 있지 않을까 싶었다.
* * *
8월 중순을 기점으로 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이며 하순인 지금은 아침저녁으론 잠들기 딱 좋게 변하였다.
그래서일까? 어스는 늦은 아침에야 간신히 눈을 떴다.
혼자의 힘은 아니었다.
루리아 글리시아의 여동생이 맞는지 심히 의심스러울 만큼 수다쟁이 소피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소피 영애가 날 좋아하나?’
역마차에서도 그렇고 어제 만찬장에서도 옆에 딱 달라붙어서 어찌나 말이 많던지, 순간 먹고 있던 파이로 얼굴을 덮어 버리는 상상까지 했다.
“10시가 넘었어요. 어스 님.”
“그러게요. 잠자리가 좋아서 그런지 푹 자버렸네요. 하하. 그런데 소피 영애.”
“영애라뇨? 소피라고 불러주세요.”
“아뇨, 그럴 수 없습니다. 소피 영애는 귀족이고 전 평민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이름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귀에서 피를 흘리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칫, 그런 분이 벤슨 할리 선배와 결투 재판을 하려고 했어요?”
“그것과 이건 엄연히 다르죠. 그런데 다른 사람을 보내도 될 텐데 어째서 소피 영애가 직접 오신 건지……?”
“그, 그럴 수는 없죠. 다른 분도 아닌 어스 님인데. 얼른 씻고 일어나요. 어스 님 기다린다고 저 밥도 안 먹었다고요. 얼른 먹고 유적지 가야죠.”
그 말에 어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씻고 곧장 내려가겠습니다.”
소피를 쫓아낸 어스는 번갯불에 콩 볶듯 재빠르게 씻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머릿속은 위그드라실 조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