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화
다음 날, 어스는 하우든 백작령의 주도를 돌아다녔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다는 유명한 공원도 가보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24시간 개방한다는 신전에도 가보았다.
여느 관광객과 달리 매의 눈을 하고서 말이다.
그가 이렇게 도심을 누비고 다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을 구하고 나서 쿨하게 사라진 소녀를 찾고 싶어서였다.
‘인연이 아닌가?’
자신은 보지 못하더라도 혹여 소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까 싶어 어제처럼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발품을 판 만큼이나 그는 더위에 익어 버렸다.
가로수 가지가 길게 뻗은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어스는 상큼한 과일 주스와 달달한 도넛을 먹으며 행인들을 구경하며 접시에 담긴 도넛을 죽여(?) 나갔다.
그때, 그를 향해 건장한 체구의 남자 두 명이 곧장 걸어왔다.
“실례합니다. 자유 마을의 마법사님이십니까?”
어스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건장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남자였다.
밖으로 드러난 팔은 잔 근육으로 덮여 쇠기둥이 아닐까 싶을 만큼 단단해 보였다.
노동으로 단련할 수 없는 종류의 근육이 분명했다.
그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옆에 서 있는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은 말을 걸고 다른 한 사람은 주변을 경계하듯 살피고 있다.
왜?
그에 어스의 마음속에 두 사람을 향한 경계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상한 일에 엮이면 일정만 꼬일 거야.’
의아했지만 피하면 그만이라도 생각한 어스는 시치미를 뗐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절 속이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님 입장에서 해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조용히 저희를 따라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존칭은 쓰고 있지만 그 내용은 협박에 가까웠다.
“지금 협박하시는 건가요? 그런데 만약 제가 당신이 찾는 그 마법사면 당신의 행동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네요.”
“제가 무례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저희를 따라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법사님을 찾는 분의 심기를 거슬리면 마법사님에게도 필시 안 좋을 겁니다.”
역시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니다.
상대는 지금 배후에 있는 자를 믿고 자신을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이면 쫄아서 눈치를 살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당당하게 ‘아니오!’를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어스는 등을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러곤 다리를 꼬았다.
상대의 협박에 오만함으로 상대하는 어스였다.
“내가 동네 똥개도 아니고 따라오라고 하면 따라가는 사람으로 보이나요? 똥개는 지천에 널렸으니, 그런 똥개나 데리고 가세요. 내 뜻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러니 더는 제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요.”
분명 저들을 보낸 자는 힘이 있는 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뭐?
하우든 백작가의 영애조차 직접 찾아온 자신이다.
그것도 존중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찾는 이의 신분도 밝히지 않은 것도,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일개 심부름꾼이 마치 상전이라도 된 듯 행동하는 것으로 봐선 저들을 보낸 자는 만나 보지 않아도 어떤 자일지 뻔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덥고, 발도 아픈데 불쾌할 확률이 높은 사람을 굳이 발품을 팔면서까지 만날 이유는 어스에게 전혀 없었다.
‘급하면 지가 오던가. 누구보고 오라가라야.’
남자는 어스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는지 난처한 표정으로 함께 온 동료를 쳐다보았다.
그에 주변을 경계하듯 살피고 있던 남자가 어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목소리를 내리깔고서.
“당신을 찾는 분이 누군지 알면 그렇게 나오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순순히 우리를 따라 오는 게 좋을 겁니다.”
“하. 내 참 어이가 없네. 당신들 귀머거립니까? 방금, 분명한 어조로 싫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가 목소리를 깔면 어쩔 건데? 잡아먹을 듯 노려보면 또 어쩔 건데.
“음…… 정말 따라오지 않을 겁니까?”
“정말 안 따라갈 건데요.”
“완력을 사용하겠습니다.”
봐봐, 이럴 줄 알았다니까.
“지금 납치를 하겠다는 겁니까?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데서? 궁금하네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감당? 적어도 이 도시에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남자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제야 어스는 저들을 보낸 배후의 권력이 상상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저들을 보낸 배후가 영주라도 된다는 건가?’
그럼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꼬리를 말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손님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어스는 언제 우려했냐는 듯 움츠린 어깨를 다시 폈다.
“그럼 나는 감당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의 시선 따위 무시할 수 있는 권력자? 사실 꺼림칙하다 하지만 거기에 굴복하긴 싫었다.
설사 그게 객기일지라도 굽히고 싶지 않았다.
꿈틀.
어스의 도발적인 말투에 남자의 턱관절이 부풀어 올랐다.
눈빛은 분노한 맹수를 연상시켰다.
그게 또 어스의 반발심을 부채질했다.
“감당할 수 있으면 완력을 써 보세요. 대신 나는 내가 가진 완력을 동원하도록 하죠. 과연 누구의 완력이 셀지 궁금하네요.”
남자는 어스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여 객기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래서 어린놈들이란.
“마법사가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다고 하더니…… 흠, 좋습니다. 지금은 물러가죠. 하지만 오늘 이 일은 분명 후회하게 될 겁니다.”
후회? 개풀 뜯어 먹는 소리다.
그렇게 치부하려고 했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이러다 진짜 사달 나는 거 아닐까?
‘그냥 왕도로 가버릴까? 여관비도 더럽게 비싼데, 물론 봉사료 5테스는…… 그건, 음…… 후훗.’
어스는 씰룩거리는 자신의 입꼬리를 급히 잡았다.
하지만 이를 본 남자는 그의 웃음을 자신과 자신의 주인에 대한 비웃음으로 생각했다.
으드득.
어금니를 힘껏 갈아붙인 남자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서서 가버렸다.
삼류 악당들의 전형적인 멘트인 나중에 두고 보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스에겐 들리는 것 같았다.
‘귀찮게 됐네.’
이대로 조용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스는 이 도시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왕도로 곧장 가는 역마차는 없지만 대신 왕도와 가까운 곳으로 운행하는 마차가 있으니 지금 가면 그 마차를 탈 수 있으리라.
어스는 곧장 행동에 나섰다.
‘그 여자애를 만나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품고서.
* * *
“뭐라? 달아나? 무슨 일을 이딴 식으로 하는 거야!”
어스를 데리러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두 남자, 그들은 이 사실을 상관에게 보고했다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고서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어스를 잡으러 갔다.
하나 그들이 어스가 묵고 있는 여관은 물론 도심을 뒤졌을 땐 어스는 이미 역마차를 타고 도시를 빠져나간 뒤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황당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어스의 태도를 보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튈 거라고는.
만약 조금이라도 이를 의심했다면 역부터 확인했으리라.
그랬다면 불호령이 아닌 격려를 받았을 텐데.
‘마법사라는 새끼가.’
‘그런 자식이 영웅이니. 자유 마을 놈들 머리는 장식인가?’
속으로 한탄했지만 결과를 중요시 하는 상관에겐 변명 따윈 통하지 않기에 두 사람은 상관의 폭언에 묵묵히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들을 혼내는 상관 역시 그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곧 자신도 저들처럼 화풀이 대상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큰도련님 성격상 몇 대는 각오해야겠지.’
그래도 저들은 다행이다.
‘그래도 너희들은 맞는 일은 없잖아.’
두 남자의 상관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렇게 그들을 보낸 남자는 창가로 걸어가선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도리아 아가씨와 만난 이야기는 큰도련님께 하지 않는 게 낫겠어.’
오늘 입수된 따끈따끈한 정보였기에 아직 위엔 보고하지 않았다.
만약 이를 보고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몇 대 맞는 것으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빌어먹을.’
* * *
한편 그 시간, 발빠른 행보를 보인 어스는 운명처럼 예의 그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역마차 안에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앉아 있는 소녀를 봤을 때 순간 꿈이 아닌가 싶을 만큼 놀랐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어 보려고 했지만 소녀의 고개는 내내 창밖으로 향해 있어 말 한 번 걸지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다.
눈이 마주치면 그때 감사의 말도 전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갈 요량으로 세부적인 대화내용까지 점검하면서.
그런데 2시간이 지나도록 이쪽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았다.
한 번쯤 쳐다볼 법도 한데.
‘이제 와서 말 붙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많이 이상할 듯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자마자 먼저 인사를 건네는 건데.
자연스러운 상황을 바랐던 것이 오히려 악수를 둔 듯했다.
앉은 자리만큼이나 마음도 편치 않은 상황이었다.
반면 마차는 쭉 뻗은 관도를 한 번도 쉬지 않게 힘차게 내달렸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달릴 것 같던 마차가 감속하기 시작했다.
마을이 있나 싶어 고개를 내밀어서 살폈지만 마을은커녕 인가도 보이지 않았다.
‘노숙인가 보네.’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잠든 것이 바로 어제인데, 단 하루 만에 풍찬노숙 신세라니.
“오늘은 여기서 밤을 지내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겠습니다.”
마부의 말에 승객들이 하나둘 마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어스는 부러 늦장을 부렸다.
안쪽 창가에 앉은 소녀가 마차에서 내리려면 반드시 자신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
그때 아는 척할 요량에서 어스는 내리는 승객들의 눈총을 버텼다.
그런데 그 노력(?)에 소녀는 찬물을 뿌렸다.
스윽.
소녀는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무심히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가 버렸다.
멍.
‘내 존재감이 이렇게 얕진 않은데.’
어스는 볼이 잔뜩 부은 채 마차에서 내렸다.
이후 어스는 소녀의 앞에서 얼쩡거렸다.
먼저 알아봐 주길 바라며.
‘와아, 만 하루도 안 됐는데 그새 날 잊은 건가?’
모조리 실패했다.
아무래도 먼저 말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안 그럼 종착지까지 가는 내내 신경 쓰일 것 같았다.
용기를 낸 어스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미소를 짓고서.
“안녕하세요.”
하지만 돌아온 건 소녀의 말없는 무심한 눈빛이 전부였다.
순간 당혹감이 밀물과도 같은 기세로 밀려들었지만 여기서 물러선다면 모양새가 이상할 것 같아 어스는 움츠린 어깨를 펴며 말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어제 마차에 부딪칠 뻔한 사람인데.”
“그런데?”
예상과 다른 소녀의 반응에 어스는 순간 자신의 눈과 기억을 의심했다.
설마, 다른 사람인가?
아니다. 분명 어제 그 사람이 분명하다.
이리 보고 저리 뜯어봐도 확실히 자신을 구해준 그 사람이다.
한데 어째서 모른 척하는 걸까?
난감한 표정으로 쩔쩔매는 그를 본 승객들이 소리 죽여 웃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모양새 빠지게.’
웃고 있는 저들의 속은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필시 단단히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거절당한 남자로.
당황이란 감정에 부끄러움까지 더 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순순히 물러서자니 그것도 이상한 노릇이었기에 어스는 본래의 목적을 상기하고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스라고 합니다. 어제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사색을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간결하고 빠른 어조로 그리 말하였다.
그제야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치근덕거리려는 목적은 아닌가 보네.”
“그런데 저 여자는 왜 저렇게 냉랭하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사람에게.”
이에 어스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재빠른 임기응변을 통해 자신에게 쓰인 굴레(?)를 벗어던진 어스는 그제야 당당하게 소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알면 가 봐.”
“예?”
“죄송하면 가 보라고.”
‘무뚝뚝한 게 아니라 싸가진가?’
은인이라서 나름 예의를 차렸던 어스는 소녀의 태도에 기분이 완전히 상해버렸다.
이후 어스는 의도적으로 소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역마차가 종착지에 도착할 동안 내내 의식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