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화
몬스터 웨이브라는 두려운 상황을 이겨낸 자유 마을 전체에 막대한 양의 자금이 풀렸다.
자금의 출처는 몬스터 웨이브를 성공리에 막아낸 승리가 남긴 몬스터의 부산물이었다.
돈 냄새를 맡은 많은 상인들이, 광대패들이 자유 마을로 몰려들었다.
한산했던 거리는 하루하루 변모하기 시작했다.
복작복작.
거너의 결정을 들은 이후 어스는 이틀을 더 그들과 함께 했다.
떠나기 하루 전 어스는 거너에게 투자 금이란 명목으로 5천 테스를 건넸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지금의 어스에게 그쯤은 좋은 추억을 선사해 준 동료들의 앞날을 위해 흔쾌히 투척할 수 있는 액수였다.
생각보다 많은 포상금에다 그가 지분을 갖고 있는 몬스터 부산물이 좋은 가격에 판매되면서 그에 따른 이익금도 적지 않았다.
처음엔 어스의 돈을 받지 않으려던 거너는 어스가 재차 투자자를 무시하는 것이냐며 생떼를 쓰자 그제야 이를 받았다.
그를 자신의 사업에 투자한 투자자로 생각하겠다면서.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쌍도끼 여관의 노바가 어스를 조용히 불렀다.
“무슨 일이세요?”
“일은 무슨, VIP고객님을 위해서 소소한 선물을 드리려고 불렀지.”
처음엔 덩치나 인상에 주눅이 들어서 말 붙이는 것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조금 친해 진 것 같기도 하고.
“음, 하긴 제가 이 여관에 매출을 엄청 올려드리긴 했죠. 하하.”
“없는 말은 아니니까. 그래도 설마하니 내가 그것 때문에 선물까지 줄까.”
소소하다는 말과 달리 제법 값진 것인지 노바의 얼굴은 제법 진지했다.
그에 어스는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노바 아저씨께 중요한 물건이면 안 주셔도 돼요. 정 주고 싶으면 여행 중에 먹게 음식이나 잔뜩 싸 주세요. 전 그거면 충분합니다.”
“고놈 말 더럽게 예쁘게 하네. 됐어, 주기로 마음먹었으니깐 받아서 버리든 팔아먹든 네 마음대로 해. 옜다, 이거나 갖고 가라.”
고풍스러운 느낌의 오래된 상자 하나를 테이블에 올린 노바는 그길로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상자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의미와 가치가 높은 물건일수록 작다는 말이 있다.
주워들은 게 많아 한번 입을 털면 끝날 줄 모르는 니코에게서 들은 말인지, 아니면 그 못지않게 은근히 수다스러운 게이브에게서 들은 것인지는 몰라도.
‘보석일까?’
설마, 반지는 아니겠지.
반지를 담았다고 하기엔 상자가 크다.
주변에 보는 시선도 없었기에 어스는 상자를 바로 열었다.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입을 벌린 상자에는 어스가 상상도 못 할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저 돌조각처럼 보이는 물건이다.
하나 어스에겐 특별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었다.
반면 노바에겐 추억이었다.
안타까움과 슬픔이 깃들어 있는.
-위그드라실의 심장을 발견했습니다.
-온전한 위그드라실의 심장이 아닙니다.
-활성불가.
-위그드라실의 조각입니다.
-위그드라실의 조각을 습득하시겠습니까?
바로 시스템이 이 정체 모를 물건에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대체?”
놀란 마음을 겨우 진정한 어스는 그 이름에 주목했다.
위그드라실의 심장.
‘심장은 알겠는데…… 위그드라실은 뭐지? 아그네스 누나에게 물어볼까?’
심장의 조각이라고 하기엔 아무리 살펴봐도 동물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심장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돌조각처럼 되는 걸까? 아직까지 돌처럼 보이는 동물의 심장을 본 적이 없다 보니 의문만 쌓여 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여기에 휩쓸려 있을 순 없었다.
중요한 물건 같으니 일단 챙기기로 했다.
그렇게 어스가 위그드라실의 조각에 손을 대자 조각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위그드라실의 조각을 습득하셨습니다.
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굉장히 황당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현상에 흠칫 놀랐던 어스는 돌연 심장 어림이 따끔거려 놀란 마음을 진정할 시간도 없이 앞섬을 급히 열어젖혔다.
‘무, 문신?’
엄마가 다른 건 다 따라 해도 문신은 용병들을 따라하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했는데.
검지에 침을 묻혀서 빡빡 문질러도 문신은 사라지지 않고 때만 밀려나왔다.
이상 현상은 비단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열 생각도 안 했는데 상태창이 알아서 눈앞에 좌르르 펼쳐진 것이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28).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1/100).
생명력 : 210/210.
마나 : 230/230.
인벤토리 : 1(+1).
스탯 : 힘(1.1). 체력(23). 민첩(1). 지력(3). 정신(27).
직업 스킬(4/9) : 매직 애로우(+0/12). 파이어 애로우(+0/12). 파이어 볼(+0/12). 파이어 버스트(+0/12).
업적 포인트 : 0.
코인 : 4,023.
기존에 없던 항목인 칭호가 생겼지만 아직 비활성화된 상태였다.
‘조각이라더니.’
그래도 칭호를 활성화할 경우에 주어지는 보상은 확인할 수 있었다.
차원 이동(재사용 30일), 모든 스탯 +100, 스킬 슬롯 +3이 칭호 위그드라실의 계승자를 활성화할 경우에 얻을 수 있는 3가지 보상이었다.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스탯 +100이란 수치는 현재 레벨업에 2업적 포인트를 적용하면 250레벨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건 노력하면 가능한 수치였기에 세 가지 보상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킬 슬롯을 늘릴 수 있다니…… 완전 초대박이잖아!.’
두근두근.
그런데 차원 이동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재사용 시간이란 특이한 장치를 생각하면 뭔가 대단한 것 같은데 이름만 봐선 가슴에 확 와닿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스는 차원이란 단어 자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해란 지식이나 경험이 동반되어야 원활한 것인데 어스는 이제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한,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유아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건 아그네스 누나에게 물어봐야겠어.’
얼마 후면 그들과 헤어져야 하는 데 글은 이제 누구에게 배울지 그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차라리 그들과 얼마 동안 함께하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과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겹치는 부분이 없어 어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떠나기 전 차원이란 단어의 내용을 듣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어스는 가장 중요한 걸 까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바로.
‘이 물건의 출처지.’
어스는 서둘러 노바가 들어간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그거?”
“예, 그거.”
“그게 뭔지 알고 그렇게 흥분한 거야? 20년 넘게 알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는데.”
다급한 얼굴로 자신을 찾아온 어스에게서 쏟아지는 질문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고 있는 노바의 얼굴엔 의문이 가득했다.
“그래서 뭔지 모른다고요?”
“넌 내가 그거 알아본다고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모를 거야. 거기다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지.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더라고. 하다못해 그게 뭔지조차.”
노바의 태도에서 어스는 위그드라실 조각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노바가 겪은 시련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요즘 그와 동료들이 자주 짓던 상실감이 노바의 얼굴에서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들어보니 20년도 더 된 이야기인 것 같은데, 그 세월이 무색할 정도면 그가 잃은 사람들은 그에겐 무척 소중한 사람이었으리라.
“고생 많으셨네요.”
“그렇지, 그런데 그거 아니? 그 물건에 너처럼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너 하나뿐이라는 걸. 솔직히 지금은 내가 더 궁금하다. 대체 그게 뭐니? 아는 게 있다면 말해 줄 수 있을까? 물론, 그게 엄청난 가치를 가진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네가 선물한 이상 돌려달라는 치졸한 말은 하지 않을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위그드라실의 조각이 무엇인지는 사실 어스도 잘 알지 못했다.
이름도 생소했거니와…… 잠깐, 혹시 노바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자세한 내용은 저도 모르지만 이름은 알고 있어요.”
“뭐? 정말이야? 아니, 어떻게. 그 유명한 학자도, 마법사도, 연금술사에 대륙 절반을 제 손금 보듯 들여다본다던 정보 길드에서조차도 알아내지 못한 걸 어떻게 네가 알고 있는 거냐?”
덩치만큼이나 큰 노바의 손은 무기를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여관을 운영하는 한편 주방도 같이 보고 있었기에 삶의 흔적이 쌓여 또 다른 의미로 강인했다.
그런 손이 작고 연약한 어스의 어깨를 힘주어 잡고 있으니 보통은 입에서 비명이 터져야 정상이다.
하나 어스는 몸만 조금…… 아니, 많이 흔들릴 뿐 그 얼굴에선 한 점의 고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생명력 덕분이었다.
생명력 : 210/210.
생명력이 100일 때는 두꺼운 옷을 입었다면, 210인 지금은 질기고 단단한 갑옷을 입었다고 해야 할 만큼 차이를 보였다.
예로, 동급의 공격을 100에 받았다고 했을 때 10의 생명력이 줄어든다면, 210인 지금은 10의 절반인 5의 생명력만 줄어들었다.
이 사실은 얼마 전 자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기겁할 행위였지만 어차피 칼로 베고, 몽둥이로 내려쳐도 고통이 없다 보니 정신적인 거부감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다.
물론 시험 자체를 누구에게 보인 적은 없었다.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실험했다.
“제 스승님이요.”
“네 스승이라면 전에 말한 그 용병 마법사 말이냐?”
“예.”
“엄청 대단한 사람인 것 같구나.”
제자를 보면 그 스승을 아는 법이다.
스승이 저 말을 들었다면 몹시 기뻐 할 것이다.
‘들리니? 목소리. 노바 아저씨가 널 칭찬하고 있어. 크크.’
그러나 이 또한 비밀.
“선물로 주신 물건의 이름은 위그드라실이라고 해요. 혹시, 이 이름을 들어 본 적 있으세요?”
“위그드라…… 뭐?”
“위그드라실이요.”
“이름이 어렵네.”
반응을 보니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궁금증 하나는 풀렸네. 적어도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구한 그 물건의 이름은 알았으니.”
역시, 사연이 있는 물건이었다.
게이브와 깁스를 떠올린 어스는 씁쓸한 마음을 다독이며 노바와 몇 마디 말을 더 주고받은 뒤 아그네스를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유적지라.’
노바와 그 동료들이 위그드라실의 조각을 발견한 장소였다.
보물을 노리고 들어간 그들은 정체도 모르는 이거 하나만 달랑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노바는 동료이자 사랑하는 연인을 그곳에서 잃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노바는 용병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 * *
아그네스를 찾은 어스는 차원이란 것에 대해 물었다.
차원 뒤에 붙는 이동은 그도 알고 있었기에 차원이란 단어의 의미만 알면 해석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그네스를 찾았는데.
“차원?”
“예.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런 단어는 어디서 들은 거니? 잘 쓰지 않는 단언데.”
어스의 주변인물이야 뻔하니 그들이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 돌아다니다가 어디서 주워들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없으면 어스에게 글은 누가 가르쳐 줄까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에 생각이 미친 아그네스는 한 가지 꾀를 냈다.
그건 바로.
“나도 모르겠네.”
“예? 아그네스도 몰라요?”
혹시 이동이란 단어를 빼먹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걸까? 하긴, 같은 단어도 주어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는 걸 감안하면 그럴지도.
“차원 이동이요. 이게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요? 이동은 무슨 의민지는 알겠는데, 차원이란 게 애매하더라고요. 그래서 정확하게 알고 싶어요.”
“차원 이동? 마법과 관계된 거니?”
“마법?”
“아냐?”
슬롯에 등록된 스킬이 아니다 보니 차원 이동을 마법이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그네스의 말을 들어 보니 차원 이동이라는 것은 스킬 슬롯에 등록되지 않은 마법이 아닐까 싶었다.
그럼 어째서 차원 이동엔 마나가 필요 없는 걸까?
어스가 차원 이동을 스킬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의 두 번째였다.
자고로 스킬이라 함은 마나를 기반으로 사용되어야 함인데, 이게 상식인데 이놈은 그런 게 없었으니까.
‘내가 멍청한 게 아니야. 차원 이동이 잘못한 거지.’
아무렴, 그러고 말고.
아무튼 아그네스의 말에서 어스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차원 이동은 스킬로 봐야 한다는 걸.
‘스킬 상점엔 차원 이동 스킬은 없던데 왜지?’
세상의 모든 마법을 다 파는 것이라고 생각했더니 그건 아닌가 보다.
어차피 다 배울 수도 없으니 세상의 모든 마법을 다 판다고 해도 의미는 없으려나.
“어스?”
“예, 누나.”
“그 단어가 마법과 연관된 것이라면 내가 아는 것과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음…… 전문 용어라는 말이죠?”
이미 이게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았다.
하지만 당장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99개의 위그드라실 조각을 더 모아야 비로소 차원 이동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적지에 대해 알아봐야겠어.’
용병대의 해산으로 멘탈이 흔들렸던 어스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이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응.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공부는 꼭 해. 알았지?”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