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화
사냥터에서 매번 자유 마을을 오갈 수 없다 보니 일행은 숲 초입에 위치한 곳에 따로 캠프를 마련했다.
캠프라고 해봐야 특별한 건 없다.
식수 조달과 이슬을 피할 수 있는 텐트가 전부다.
오늘로 침묵의 숲에서 빅 고블린을 사냥한 지도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코인은 제법 모았지만 레벨은 올리지 못했다.
코인 : 543.
이백 중반이었던 코인이 오백 중반이 되었음에도.
‘아니, 왜 안 올라?’
고작 16레벨이다.
20레벨이라도 넘기고 이러면 모를까, 여기서 이러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코인이라도 적으면 모를까 4코인이면 결코 나쁘지 않은 액수였기에 3일 전부턴 오늘은 오르겠지, 오르겠지 하며 사냥에 나가곤 했다.
‘내일도 안 오르면 4일짼가?’
이건 어스가 생각했던 성장 속도에서 영 벗어난 길이었다.
“어스, 저녁 준비하자.”
일해의 중요한 먹거리는 모두 어스가 보관하고 있었다.
수량만큼이나 무게도 많이 나가는 화살은 캠프 한쪽에 넉넉하게 쌓아 두었기에 남은 무게만큼 식재료를 보관했다.
풍찬노숙도 서러운데 먹는 건 제대로 먹어야 덜 서럽지.
“빵 봐, 이 빵. 갓 구운 빵이랑 뭐가 다른지 제빵사도 분간할 수 없을 거야.”
인벤토리에 입고된 물건은 입고 당시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
때문에 갓 구운 빵을 입고하면 빵집에서 바로 사서 먹는 것처럼 식감이 살아 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니코의 감탄에 어스는 픽 웃으며 한마디 했다.
공간 주머니에 대한 욕심은 린다도 니코 못지않았다.
“가진 자의 여유. 칫. 나도 반드시 공간 주머니를 사고 말 테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하늘에 맹세까지 한다.
그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스, 거듭 말하지만 공간 주머니 보관 잘해. 잃어버리거나 누가 훔쳐 가면 안 되잖아.”
인벤토리의 매개체가 바로 어스다.
그러니 그를 훔치지 않는 이상 분실이 우려는 존재하지 않았다.
니코를 비롯해 다들 이를 알지 못하였기에 항상 입버릇처럼 이 말을 하곤 했다.
덤으로 사람 많은 곳에선 절대 공간 주머니를 사용하지 말라는 당부 역시.
“누구도 내 공간 주머니는 훔쳐 갈 수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니코의 걱정을 일축한 어스는 따끈따끈한 흰 빵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고향에선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흰 빵, 하지만 지금은 그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사실 흰 빵보단 육류가 더 비싸지만 사냥꾼인 아버지 덕분에 어스의 가족들은 육류만큼은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스는 육류보단 지금 먹는 흰 빵을 더 좋아했고, 이런 어스의 식성은 니코에겐 아직도 미스터리였다.
니코의 인생에서 고기에 집착하지 않는 최초의 인간이 바로 어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잡담과 함께 저녁 식사를 끝낸 어스는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게이브에게서 창술을 지도받았다.
그 뒤 잠들기 전에 아그네스로부터 글을 배웠다.
그 누구보다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아가는 어스였다.
* * *
거너 용병대가 빅 고블린을 사냥한지도 오늘로 10일차에 접어들었다.
하루 평균 그들이 사냥하는 빅 고블린의 숫자는 적게는 열다섯에서 많을 땐 스무 마리를 넘기곤 했다.
최저치인 15마리를 잡더라도 10일이면 150마리나 된다.
“어스, 여기!”
“옙!”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한달음에 달려간 어스, 그곳엔 빅 고블린 한 마리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린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어스는 냉큼 놈의 가슴에 창을 박아 넣었다.
동료들이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스킬 이외에도 이런 식으로 몬스터를 죽여 코인과 경험치를 버는 중이었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그의 동료들은 그저 그를 유별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2를 획득합니다.
-4코인을 습득합니다.
멍.
‘드, 드디어…… 드디어!’
어스의 얼굴은 환희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저와 같은 모습을 오랜만에 본 린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나긴.’
오랜만이라곤 하지만 전에도 보았기에 딱히 묻지 않았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17).
생명력 : 100/100.
마나 : 200/200.
인벤토리 : 1.
스탯 : 힘(1.1). 체력(1). 민첩(1). 지력(2). 정신(21).
직업 스킬(3/9) : 매직 애로우(+0/12). 파이어 애로우(+0/12). 파이어 볼(+0/12).
업적 포인트 : 2.
코인 : 598.
오랜만에 변한 상태창의 모습에 어스는 감개무량했다.
그래서 잠시도 여기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는 노릇.
마나가 풀로 채워졌으니 일행을 재촉해서 사냥을 더 해야 한다.
‘업적 포인트는 역시…….’
정신 스탯에 업적 포인트를 분배해버린 어스는 활기찬 목소리로 부산물 수거에 일손을 보태며 거너에게 사냥을 재촉했다.
‘매일 한 번씩 레벨업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히죽.
“아무리 몬스터라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가죽을 벗기면서 그렇게 웃는 건 아니지 않냐?”
니코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이번엔 콧노래까지 부르는 어스였다.
하지만 부산물을 모두 수거했을 무렵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어스는 더는 사냥할 수 없었다.
“비가 쏟아지겠어. 오늘은 복귀한다.”
하늘이 돕질 않아서였다.
* * *
천막만 설치하고 대충 지내던 캠프는 처음과 그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제법 널찍한 크기의 원두막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 원두막은 손재주가 좋은 니코의 주도하에 나흘 전 지어진 것이다.
처음엔 원두막이 아닌 오두막을 지으려 했지만 그건 오버라는 린다의 불꽃 같은 잔소리에 결국 원두막으로 하향 낙점했다.
쏴아아아.
일행이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굵직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봐요, 린다 누나. 내 말대로 오두막을 지었으면 지금보다 더 편했을 거잖아요.”
니코의 말에 린다의 입이 삐쭉거렸다.
“여기서 평생 살 것도 아닌데 오두막은 무슨 오두막이야.”
“최소 3개월이면 오래 있는 건데 원두막보단 당연히 오두막이죠.”
단기 3개월, 장기 6개월을 내다보고 침묵의 숲으로 왔다.
지금은 얇은 담요도 더워서 팽개치고 있지만 3개월 후부턴 글쎄.
“빅 고블린의 숫자가 줄어들면 그땐 장소를 옮겨야 해. 그땐 네가 머리에 이고 갈래?”
린다가 다다다 쏘아붙였다.
니코는 두 손을 들어 항복했다.
아무튼 지붕이 있는 원두막 덕분에 천막을 때리는 빗소리는 피할 수 있었다.
더해 축축한 바닥도.
“운치 있네.”
적당한 높이의 원두막 바닥에 앉은 어스는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감성에 빠져들었다.
반면 니코는.
“불이 안 붙네. 어스, 혹시 불 좀 붙여줄 수 있어?”
“내가?”
“너 불 마법 쓸 줄 알잖아.”
“그렇긴 한데 내가 아는 건 공격 마법인데 그걸 썼다가는 원두막이 박살 날걸.”
스킬 상점엔 파이어가 있다.
매직 애로우와 같은 1서클 스킬이다.
지금과 같은 우중에 불을 쉽게 피울 수 있지만 대신 직접적인 공격력은 없었기에 몬스터를 잡아야 성장하는 입장에서 파이어는 낭비였다.
그래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는데.
“그거 조절은 못 해?”
“음, 가능할 것 같긴 하네. 저기에 불을 붙이면 돼?”
가능성을 열어둔 어스의 말에 니코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니코뿐만이 아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 여름이라곤 하지만 비가 오면 밤에 추워질 수 있었다.
단순하게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닌 일행의 컨디션과 직결된 문제였다.
다들 할 일이 없었기에 어스만 쳐다보았다.
‘파이어 애로우!’
화르르.
시동어가 끝나자마자 신기루처럼 어스의 전면에 나타나는 불꽃의 화살.
어스는 이를 붙잡고서 쌓아 둔 모닥불 안쪽의 불쏘시개에 가져갔다.
서클에 상관없이 이 자리에 마법사가 있었다면 어스의 행동에 기함할 것이다.
폭발 성향을 띤 마법을 저렇게 사용하는 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법을 시전한 어스 본인도 이를 알지 못하고, 다른 이들도 그와 다를 바 없었다.
무지가 사고를 부르는 순간이다.
그런데, 정말 그래야 하는데 놀랍게도 그 위험천만한 행동에 따른 결과는 불행이 아닌 모두의 행복을 낳았다.
“됐다.”
니코가 환호작약했다.
“역시, 마법사.”
“어스가 있어서 편하네.”
쏟아지는 칭찬 속에서 어스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대장.”
“어?”
“비 때문에 마을에 가는 건 무리겠죠?”
어스의 말에 거너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거너와 어스는 3일에 한 번 꼴로 부산물을 자유 마을로 옮겼다.
겸사겸사 식량과 생필품도 샀다.
“비가 그치면 그때 가야지.”
“곤란하네요. 식자재가 오늘 저녁을 끝으로 똑 떨어질 텐데.”
“그래도 할 수 없지. 비가 그칠 때까진 보존 식품을 먹어야지.”
하루 이틀 내리다 그칠 비로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사냥도, 유일한 즐거움인 먹는 것도 어느 하나 해결할 수 없어진다.
이래저래 도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되는 날씨였다.
“어스, 누나랑 공부하자.”
대신 아그네스랑 공부하는 시간은 늘어나 나름 위안이 될 수 있었다.
“예에~”
* * *
비는 장장 삼일을 쉬지 않고 내렸다.
이런 날씨에 야외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보다 힘들다.
그러나 거너 일행에겐 어스가 있었기에 젖은 장작도 마른 장작처럼 사용할 수 있어 따뜻한 시간과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좁은 장소에 일곱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기에 답답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대신 사람들의 경험담을 통해 어스는 간접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의 입장에선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으니까.
“대장 비도 그쳤으니까, 마을에 다녀오죠.”
어스의 말에 다들 엉덩이가 들썩인다.
“나도 마을에 갈래.”
“나도.”
“저도.”
“그럼, 캠프는 누가 지켜?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 두 명만 더 데려갈게.”
거너의 말에 모두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어스를 제외한 다섯이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를 힐끗 쳐다보더니 둥글게 모였다.
대체 뭘 하려고 저러나 싶어 목을 길게 빼서 쳐다보던 어스는 그들의 행동에 웃고 말았다.
사람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가위바위보 게임을 통해 마을에 갈 사람을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참, 어린애도 아니고.’
한여름 태양도 무색할 만큼 과열되었던 게임에서 승자가 나왔다.
아그네스와 니코가 승리자였다.
고로 린다, 게이브, 깁스가 남게 되었다.
“올 때 맛난 거 많이 사와. 어스.”
“맛난 게 뭔데요. 린다 누나?”
“맛난 거.”
“예예.”
“어스 이 스승님은 시원한 맥주 부탁한다.”
“옙. 깁스 형은 부탁할 거 없어요?”
“음…… 아…….”
“깁스 저 녀석 또 사소한 거에 목숨 거네. 야! 그만하고 대충 말해. 그러다 해 넘기겠다. 쯧.”
린다의 핀잔에도 깁스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장애를 꿋꿋이 유지했다.
“겨, 결정했어. 오블라텐 한 개 아니…… 음, 두 개”
“깁스 형.”
“응?”
“오블라텐 말고 다른 건 뭐였어요?”
“사과 파이?”
“하. 제가 둘 다 사다 드릴게요.”
“어? 그건 안 돼!”
“왜요?”
“한 번에 다 먹으면 고유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없어, 끼니가 아닌 간식은 부족한 데서 오는 아쉬움을 만끽…… 악!”
깁스는 끝내 말을 다 할 수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린다가 참지 못하고 뒤통수를 날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야야, 얼른 가. 깁스 저러면 한도 끝도 없어.”
린다의 도움으로 최종 관문을 통과한 어스는 마을로 가기로 한 팀에 합류했다.
여느 날과 달리 조금은 많은 인원인 점을 제외하면 특별할 것도 없었다.
지금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