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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0화 (20/250)

020화

말리아 여관은 용병 길드 지부에서 도보로 20분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여관이었다.

여관의 형태는 ‘ㄴ’ 모양으로 보통의 여관처럼 식당도 함께 운영했다.

어스는 숙박비 할인을 받아 1일 숙박료로 20테스를 지불했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속장소가 이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숙박료를 지불하고 머물기로 했다.

‘눈탱이 맞은 건 아니겠지?’

거너가 말한 여관이니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2층 끝에 위치한 방은 혼자 쓰기엔 적당한 크기였고, 창문도 강가 쪽으로 나 있어 창문을 열면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 꽤나 좋은 위치였다.

그래도 20테스면 비싸지 않나 싶다.

뒤뜰에 있는 우물가로 가서 대충 몸을 씻은 어스는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기존에 입고 있던 옷과 달리 이 옷은 제법 오래 입었기에 후줄근했다.

여관으로 오는 중에 본 행인들의 복장을 떠올린 어스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을 실천했다.

* * *

마법 물품 가게 내부는 상점이 아니라 신전이 아닌가 싶을 만큼 조용했다.

그렇다고 손님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장면이 어스에겐 신기하게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점원이 그를 맞이했다.

옷차림만 보고 자신을 쫓아내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던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점원은 어스가 찾던 로브를 입고 있었다.

자연 거기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이에 점원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건 잠시였다.

점원이란 직분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음, 로브를 구입하고 싶습니다.”

“아하! 그래서 절 그렇게 유심히 보셨군요.”

“그, 그랬었나요?”

“예,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어스가 냉큼 사과하자 그제야 점원의 마음이 풀어졌다.

직업 정신과 별게로 그녀도 감성을 가진 인간이었으니까.

“로브 코너는 저쪽 우측 세 번째입니다. 혹시, 안내를 원하십니까?”

“부탁드립니다.”

점원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어스를 로브 코너로 이끌었다.

로브는 유리로 만든 판 안에 진열되어 있었다.

신기했다.

그러나 이는 잠시였다.

저처럼 귀하게 보관할 정도면 가격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허든 상회주에게 예상보다 많은 포상금을 받았기에 옷 한 벌쯤이야라고 생각했던 자신감이 여기서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옷에 대한 설명이 적힌 명패를 향해 눈알을 굴렸다.

도르르.

글자는 당연히 글을 모르니 알 수가 없다.

반면 숫자는 그도 알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격을 확인한 어스의 동공에 진도 9.9의 지진이 일어났다.

드드드드.

‘미, 미친 저게 옷 한 벌 가격이라고? 아무리 마법 물품이라지만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냐?’

저 돈이면 양이 몇 마린가? 아니, 양이 아니라 소도 살 수 있다.

암수 한 쌍 키우면 부농도 꿈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거액을 고작 옷 한 벌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삐걱거린다.

어스를 충격에 빠트린 로브의 가격은 2,800테스였다.

“손님?”

“앗, 네네.”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상품을 보여 드릴까요?”

가격을 보고 놀란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어스는 그제야 점원이 자신의 복장이나 나이 등을 따지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친절하게.

모른 척 하려다 놀란 마음도 진정할 겸.

“제 복장만 보면 가난한 평민 아이처럼 보일 텐데 어째서 그렇게 친절하신 건가요? 그렇다고 제가 손님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에요. 손님 맞아요.”

“일반인들은 발걸음을 하지 않는 곳이 저희 가게예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은 저희 같은 마법사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잖아요. 마법사의 미움을 사면 저주를 받는다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복장만 보고 판단하지 않은 이유를.

그런데.

“저희 같은 마법사? 혹시, 그쪽도 마법산가요?”

마법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점원을 할까? 상점 주인이면 모를까.

“마법사라고 불리기엔 실력이 부족합니다. 고작 2서클밖에 안 되니까요.”

일반인들은 1, 2서클만 되도 다 같은 마법사인줄 안다.

실제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서클로 호칭을 구분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1서클이든 3서클이든, 혹은 그 이상이든 호칭에선 동등하다는 의미다.

“그렇군요. 2서클 마법사였군요.”

서클이 없지만 어스는 3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3서클의 마법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마나 고리는 없지만.

각설하고.

덤덤한 어스의 반응에 여성 점원의 눈가에 의문이 자리 잡았다.

“실례지만 경지…… 앗,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참고로 전 파이어 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서클도 없는 데 서클을 이야기하자니 꺼림칙했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그러나 파이어 볼은 진짜였기에 조금이 거리낌도 없었다.

“처, 천재?”

저 소리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흐흠. 아뇨, 제가 보기보다 나이가 많아요.”

“……엄청 동안이신가 보네요.”

여성 점원은 어스의 나이를 스물 중반으로 생각했다.

그래야 그나마 납득할 수 있었으니까.

이를 알 리 없는 어스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엄청까진…… 아니에요. 참, 저 옷엔 어떤 마법이 부여 되었나요?”

“보온 마법과 클린 마법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하나도 아닌 두 가지 마법이 부여되었다는 말에 어스는 로브의 가격을 납득 할 수 있었다.

‘내게 딱 필요한 기능인데.’

하지만 가격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다.

살 수는 있지만, 예상 밖의 액수라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저보다 싼 로브도 분명 있으리라.

“혹시 그 기능에 저것보다 저렴한 건 없나요?”

명색이 마법산데 물건 값으로 흥정한다, 그것도 마법 물품 가게에서? 사실 이 말을 꺼내기 전까지 어스는 속으로 무수히 고민했다.

하지만 어쩌랴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니.

“몇 년 전 상품이 하나 있긴 한데,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실 거예요.”

색상 따윈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옷차림으로 마법사임을 증명하여 귀찮은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면 된다.

거기다 보온과 클린 마법까지 부여된 로브라면 더 뭘 바랄까.

“보여 주세요.”

그렇게 어스는 생애 처음으로 마법 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1,500테스.

그날 어스가 옷 한 벌 사는데 지불한 금액이었다.

‘괜찮아, 앞으로 벌면 돼.’

한참을 아주 한참을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데 온 힘을 다해야만 했다.

* * *

제이든 후작령에 도착한 어스는 이틀 째 되는 날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그는 후작령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관광을 넓혔다.

피어스 남작령에서 보지 못한 여러 음식도 맛보며.

“어스야!”

다다다.

어스의 이름을 부르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여인, 그녀는 린다였다.

덥석.

어스는 그녀의 육감적인 몸에 깊게 파묻혔다.

“웁웁웁-!”

탄탄함과 물컹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오묘하다.

그러나 그 느낌도 잠시.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시큼한 땀 냄새는 그나마 참을 만했다.

하지만 언제 세탁했는지도 알 수 없는 그녀의 오래된 가죽 갑옷의 냄새만큼은 도저히 참을 방법이 없었다.

“그, 그만해요. 숨 막혀 죽을 것 같으니까.”

“우리 어스 죽으면 안 되지. 호호.”

그제야 린다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어스는 잠시잠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서서히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있는 어스였다.

“어스, 혈색이 좋아 보이는구나.”

“대장도 좋아 보이네요. 이번 의뢰는 힘들지 않으셨어요?”

“호송 업무에 힘든 일이 있겠어? 지루하지. 참, 여긴 언제 왔어?”

“이틀 전에요.”

일행은 왁자지껄 떠들며 창가 쪽 넓은 테이블로 이동했다.

용병대가 완전체를 이룬 기념으로 거너가 한턱 쏘기로 했다.

그때 주방에서 말리아가 젖은 손을 닦으며 나왔다.

그녀를 본 거너가 환하게 웃었다.

“말리아 누님, 오랜만이에요.”

“사지 육신이 멀쩡한 걸 보니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네 보네.”

“보다시피. 요즘 장사는 어때요?”

“괜찮아. 그런데 그 어린 손님은 아는 사람이었어?”

“어라? 어스가 말 안했어요? 제 동룝니다.”

“이런, 진작 말하지. 지인 할인 해줬을 텐데. 하지만 이미 받은 건 토해낼 수 없어. 그런 쪽으로 난 단호하거든. 호호.”

말리아의 말에 어스는 내심 제 이마를 딱 쳤다.

거너가 이 여관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대신, 안주 하나는 공짜.”

말리아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술은 당연지사.

어스는 가족이 토머스 마을에 정착했다는 것과 아버지가 계약직 병사로 일하게 된 걸 말했다.

더해 대형 표범을 사냥한 것까지.

“대, 대형 표범을 잡았다고?”

“대장도 대형 표범 알아요?”

“대형 표범이면 거의 중대형급 몬스터야. 와, 그런 걸 잡다니.”

“저 혼자 잡은 게 아니에요. 기사님의 도움이 컸어요.”

“기사? 평범한 기사는 놈의 상대가 안 될 텐데?”

“마나 소드 사용자더라고요. 처음 마나 소드를 봤는데…… 음, 뭐랄까? 굉장히 강하고 아름답더라고요. 마법사가 안 됐으면 기사를 하고 싶을 만큼요.”

어스의 말에 거너는 놀라워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반응에 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사가 마나 소드를 운용할 수 있는 건 기본 아닌가요? 기사잖아요.”

대답은 거너가 아닌 어스 옆에 앉은 린다에게서 나왔다.

“이렇게 세상 물정이 어두워서야. 아무래도 누나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가르쳐야지 안 되겠다. 잘 들어, 어스. 기사라고 다 마나 소드를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야. 마법사보다는 아니지만 익스퍼트 급 기사도 그 못지않게 드물어. 그런데 그런 기사가 고작 남작이 다스리는 영지에 있는 거잖아. 그리고 내가 알기로 피어스 남작 영지엔 익스퍼트 기사가 둘이었어. 사실 둘만 있어도 대단한 거야. 그런데 네 말을 들어 보니 셋이잖아? 그건 흔치 않은 경우야.”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참, 그런데 제가 알기로 가시 표범 기사단의 기사는 두 자리 숫자로 알고 있는데…… 그럼, 그들은 뭐죠?”

“익스퍼트에 가까운 자들이거나 혹은 인맥으로 작위를 받았을 확률이 높아. 너도 용병이니까 이 기회에 알아두는 게 좋겠네. 너 금패 용병 알지?”

“당연하죠. 나도 용병인데.”

“용병이 딱히 자랑할 직업은…… 아니다. 아무튼 용병 중 최고 등급은 금패 1급이지, 이들을 제외 한 금패 2, 3급은 모두 유저 중상급에 속해. 너 용병계에서 금패 1급이 몇이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알기로 그 수가 열이 넘지 않아. 물론 이 왕국을 기준으로 했을 때야. 아무튼 그런 대단한 실력자가 고작 남작 영지에 세 명이나 있다고 생각해 봐? 너 같으면 놀라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하니깐 놀랄 일이긴 하네요.”

“그게 놀란 얼굴이야?”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그보다 3서클 마법사는 어때요? 익스퍼트 기사와 비교하면?”

“쳇,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3서클이면 익스퍼트 초급 정도 수준의 대우를 받을 수 있지.”

다른 이들도 린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니코만 빼고.

아무튼 그녀의 말에 어스는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왜? 바로 자신이 기사와 동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3서클 마법사니까.

“그렇구나. 그럼 저 금패 1급도 딸 수 있겠네요. 등급 시험 신청했는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뭐?”

린다의 반응은 격렬했다.

아니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일행 모두 그러했다.

다들 할 말을 잃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서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이에 어스는 제 입으로 자신의 경지에 대해 말했다.

“파이어 볼을 사용할 수 있어요.”

“저, 정말이야? 그 말?”

“내일이 승급 시험이니까 거기서 보여 드릴게요.”

이리 말하니 누가 그의 말을 믿지 않겠는가.

“진짜…… 너란 녀석은.”

놀란 마음을 혀 차는 소리에 묻는 린다.

“얼굴도 모자라 미친 재능까지. 대체, 신께선 내겐 뭘 준 거지? 어스, 넌 아니?”

술은 연방 들이켜며 자괴감을 주사에 남는 니코까지.

다른 이들도 별다르지 않았지만 유독 이 두 사람의 표정이 압권이라 눈길이 절로 가는 어스였다.

그러나 그의 자랑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파이어 볼은 몰라도 이건 그가 진심으로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이 자랑거리는 바로.

“참, 저 로브도 샀어요. 놀라지 마요, 자그마치 마법 로븝니다.”

소 두 마리를 입고 다니는 럭셔리의 남자, 그게 바로 자신이다.

브이(V).

저도 모르게 나온 손동작.

“어스? 그 손가락은 뭐냐?”

불콰한 얼굴의 니코가 물었다.

그제야 어스는 자신의 손가락 모양을 볼 수 있었다.

꿈에서 본 손 모양이다.

길쭉하고 네모난 물체 앞에서 다들 활짝 웃는 얼굴로 이런 손동작을 하는 것이니 분명 좋은 뜻일 텐데,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천국에 가면 그때 이유를 알아봐야지.

일단 지금은 넘어가자.

“승리자? 그냥 내가 만든 거예요. 하하.”

“쳇, 그래 맞다. 네가 승리자다. 부러운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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