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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6화 (16/250)

016화

다음 날 어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요새를 향해 느긋하게 이동했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뻔한 풍경인데…… 이상하게 정감이 가네.’

괜히 풀도 건드려보고, 나무도 툭툭 차보기까지 하며 그리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고향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터에 목책과 감시탑이 서 있었으며, 무장한 병사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자신은 물론 모든 것이 변한 것이 어스는 새삼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요새에서 일하는 행크 씨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를 만나러 왔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행크?”

“예.”

“아! 네가…… 아니, 어스 마법사님이시군요.”

“절 아세요?”

“알죠. 나도 토벌에 참가했었는데. 멀찍이서 본 게 전부지만 그때 인상 깊었습니다.”

병사가 안 들여보내 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간단하게 방명록에 지장을 찍은 어스는 문을 통과하여 요새 내부로 들어갔다.

그럴듯한 외양과 달리 내부는 아직 공사가 진행 중에 있었다.

집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훈련장과 물자를 저장할 창고를 짓느라 구슬땀을 흘리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군사시설물이라 그런지 영지군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열에 여덟이나 되었다.

정문 경비가 알려준 건물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때 갈색 자작나무 마을 회관이었던 건물이었다.

저곳은 요새의 관리와 군수품 및 인력을 관리하는 일종의 행정관청과 같은 곳이었다.

요새에 일이 있는 방문객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버지를 면회하려고 왔습니다.”

“아버지?”

“예.”

면회객이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간간이 있었기에 근무자는 인적사항을 물었다.

어스는 그 질문에 대답한 뒤 면회객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로 이동해서 기다렸다.

이 건물 뒤편에 있는 건물로 전에 보지 못했던 건물이었다.

‘지은 지 얼마 안 됐나 보네.’

금방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한 시간이 지나서야 어스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무료함에 좀이 쑤시던 상황이라 더없이 반가웠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기에는 딱히 사교적인 편이 아닌지라 눈길만 몇 번 마주치는 것으로 그쳤다.

“아들!”

“아빠!”

어스는 어머니가 챙겨준 음식을 아버지에게 전해 준 뒤 그간 자신이 겪은 일들에 대해서 말했다.

“참, 나 은패 2급 용병이 됐어.”

“그거 높은 거냐?”

“당연하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전에 비해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전보다 날렵하고 강인해 보였다.

정규군도 아닌 임시직인데 일반 병사들처럼 훈련을 하는 건가 싶었다.

내년이면 마흔인데 굳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래도 아버지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니 만류할 생각은 없었다.

사냥꾼으로 숲과 산을 돌아다니는 것보단 동료들과 함께 정찰하는 편이 오히려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다 봉급도 꽤나 받는다고 하니 남은 건 번듯한 저택 하나 짓고 온 가족이 떵떵거리며 살날도 그리 멀지 않으리라.

부자가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자 이 모습을 좋게 본 면회객 중 한 사람이 슬쩍 끼어들었다.

“같은 아버지로서 참 부럽습니다. 하하.”

상대는 오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점잖은 인상의 잘 차려입은 남자였다.

남자의 칭찬에 행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자식 칭찬에 싫어할 부모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때 면회실의 문을 열고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섰다.

병사들의 군복과는 차별화된 군복이었다.

그를 본 행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예를 표했다.

“소대장님을 뵙습니다.”

아버지의 상관이었다.

그에 어스도 얼떨결에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행크 조장이군요. 옆엔?”

“제 아들 녀석입니다. 어스야 인사드려라. 제이콤 소대장님이다. 아빠가 신세 많이 지고 있는 분이다. 하하.”

행크의 말투에는 어스에 대한 애정과 자랑스러운 마음이 가득 묻어있었다.

어스를 향한 소대장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 역시 행크의 아들이 마법사인 걸 알고 있었다.

고블린 토벌 당시 참전하지 않아 얼굴은 알지 못했지만.

어스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제이콤은 행크에게 양해를 구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저도 면회 온 분이 계셔서.”

“예, 그러십시오. 소대장님. 허허.”

제이콤 소대장이 말한 면회객은 부자의 화기애애함을 부러워하던 예의 중년의 남자였다.

두 사람의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어스는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 자리 불편하지 않아? 상관도 있는데.”

“흠, 편한 자리는 아니지.”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밖으로 나갈래?”

“그럴까.”

행크는 어스의 말에 냉큼 대답하곤 함께 면회실을 나섰다.

그러나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두 사람은 입구에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제이콤 소대장이었다.

“행크 조장.”

“예. 소대장님.”

“괜찮으면 동석하지 않겠습니까?”

아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상관의 부탁이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였다.

어스는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제이콤 소대장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며.

그래도 어쩌랴 능력도 죄라면 죄인 걸.

아버지 얼굴을 봐서 허튼소리가 아니면 들어주기로 작정했다.

‘아빤, 아들 잘 둔 줄 알아.’

어험.

“이 분은 제 삼촌이신 허든 씨입니다. 주도에서 상회를 운영하고 계시죠.”

“행크라고 합니다. 허든 씨.”

“반갑습니다. 행크 조장님.”

“그리고 이쪽은 제 아들 어스입니다.”

“행크 씨는 든든하시겠습니다. 효심도 깊고 거기다 마법사라니. 하하.”

“제 조카에게 듣기로 행크 씨는 이 지역에서 알아주던 사냥꾼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조카도 조카지만 그보다 행크 씨를 만나기 위해섭니다.”

조금은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던 어스의 자세가 급격히 공손하게 변하였다.

아니,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이었다.

‘내, 내가 아니라 아버지였다니…….’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게 설레발 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를요?”

“예.”

그때부터 허든은 진지한 태도로 행크를 보고자 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 * *

허든이 행크를 찾은 것은 자신의 광산에서 사람을 해친 대형 표범을 사냥해 줄 것을 의뢰하기 위함이었다.

어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행크는 이쪽 업계에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냥꾼이었다.

그와 같은 평가가 없었다면 애당초 갈색 자작나무 마을에서도 행크 일가는 버티지 못하고 쫓겨났을 것이다.

각설하고.

허든의 광산은 영지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놈을 사냥하는 일에 기사까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문제는 대형 표범의 활동 범위에 있었다.

놈의 활동 범위 이내엔 갈색 자작나무 마을에서 오랫동안 금지로 지정한 곳이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주변 지리에 익숙한 사냥꾼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녀석이 있을 만한 곳이 금지라는 이유로 잠시 고민하던 행크였지만 곧 허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기사도 동행한다고 하자 받아들인 것이다.

한데.

“네가 왜 간다는 거야?”

“아빠를 그런 위험한 곳에 가게 할 순 없잖아요. 그러니 아들 된 도리를 다하겠다는 거잖아. 그런 말도 있잖아. 자식보다 먼저 죽으면 그거 아동방임죄라는 말. 그러니까 내가 쉰 살 때까지만 살아. 그럼 웃으며 보내 드릴게.”

어스의 농담 속에 담긴 진심, 이를 알아본 행크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기사님도 가신다고 하니깐 별문제는 없겠지. 좋다. 너도 준비해.”

“기사만 있어? 마법사도 있잖아. 이건 좀처럼 보기 힘든 최강 조합이라고. 그러니 아빠나 마음 푹 놓고 계셔.”

“허든 씨도 허락했으니까. 대신, 너도 알다시피 그곳은 금지다. 그 안에 뭐가 있을지 아빠도 잘 몰라. 그러니 그곳에 들어가면 매사 조심, 또 조심하고 아빠의 지시에 잘 따라야 한다. 독단적으로 행동하면 절대 안 돼. 알았지?”

‘거긴 제가 더 잘 아는데요.’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꾸중도 꾸중이지만 겁에 질려 달아났던 자신의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참에 내 손으로 트라우마를 깬다.’

“물론이죠.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아들.”

“예.”

“갑자기 웬 존대? 너 혹시 아빠 속이는 거 있냐?”

이런, 위장술이 들키고 말았다.

이래서 가족에겐 비밀이 있어선 안 된다.

“그냥 해본 거야. 나도 사회적 지위와 나이가 있는 데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굴 수 없잖아.”

다행히 행크도 그 문제는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하긴, 명색이 마법산데.”

“명색이 아니라 그냥 마법사.”

“알았다, 알았어. 저놈의 마법사 부심은.”

그렇게 어스의 제이든 후작령행은 지연되고 있었다.

* * *

허든이 돌아가고 이틀이 흘렀다.

행크는 상부의 허락을 받아 그동안 집에서 가족들과 보냈다.

이 시간이 모두에겐 소중했다.

이 집안의 장남은 이번 일이 끝나면 또 언제 다시 올지 예측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시간이 흘러 드디어 대형 표범을 잡기 위해 금지로 향했다.

인원은 어스를 포함하여 열여섯 명으로 꾸려졌다.

기사와 어스 그리고 행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 전원은 갈색 자작나무 출신의 남자들이었다.

저들 또한 행크와 함께 계약직으로 요새에서 일하고 있었고, 다들 아버지의 조원이다.

한땐 서로가 서로에게 내키지 않은 사이였지만 지금은 과거의 앙금을 잊고 진정한 동료로서 잘 지내고 있었다.

파티의 수장은 올해 서른넷인 찰슨 커렌 기사가 맡았다.

하나 실제 파티를 이끄는 사람은 행크였고, 기사는 그런 행크를 존중해주었다.

‘괜찮은 사람이네.’

기사 찰슨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어스의 평가였다.

참고로 찰슨 커렌은 익스퍼트 초급의 기사로 마나 소드 사용자였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진짜 실력자였다.

어스는 이번 기회에 기사의 상징이라 불리는 마나 소드를 구경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스 넌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나서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상황이 나쁘면 너 자신부터 챙겨. 알았지?”

“시작도 안 했는데 왜 그런 불길한 소릴 하는 거야? 그리고 익스퍼트인 찰슨 기사님도 있잖아? 설마, 덩치만 큰 짐승 따위가 마나 소드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실은 아빠도 들은 게 있어서 그래.”

“뭘?”

“찰슨 경의 경지가 익스퍼트 초급이라서 마나 소드 유지 시간이 1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구나. 물론 그 안에 놈을 잡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아닐 경우도 생각해야지. 그래서 말하는 거다. 아빠 말 명심해.”

범인의 10분과 초인의 10분의 그 무게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행크는 물론이거니와 어스도 이를 알지 못하였다.

10분이란 그 시간 안에 익스퍼트 기사가 작정하면 백 명도 베어 버릴 수 있다는 걸.

“고작?”

“그러니 조심해야지. 평생 사냥꾼으로 살아왔지만 허든 씨가 말한 대형 표범은 아무리 생각해도 범상치 않아.”

어스는 자신이 본 대형 표범을 떠올렸다.

확실히 일반적인 맹수와는 무언가가 다른 느낌이었다.

당시엔 두려웠고, 이후엔 놈만 생각하면 몸이 떨려서 애써 잊으려 했지만 지금은 놈을 잡아야 하기에 기억을 쥐어짜 보니 그 역시 행크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화살은 시위를 떠났으니 지금 돌아가는 건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영주도 관심을 갖고 기사까지 딸려 보낸 사안인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럴 수 없다.

야반도주라도 할 생각이면 모를까.

‘잡아야지, 무조건. 나도 놈에 대한 기분 나쁜 기억도 잊을 겸.’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열의를 가진 이는 다름 아닌 어스였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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