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화
사소한 마찰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작전은 세워졌다.
거듭 논의 한 끝에 안전하고 안정적인, 그러나 효과는 확실한 방법이다.
단점은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인데 그쯤은 묵직한 돈주머니가 다시 거론되자 불평불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각자의 입으로 쏙 들어갔다.
“이제 작전은 그렇게 마무리하기로 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를 거론하자고.”
할 이야기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어스는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려다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이를 본 허드슨이 한마디 했다.
“저 녀석도 두당 포함은 아니겠지?”
시선은 어스에게 던지고 말은 거너에게 하는 허드슨이었다.
“당연히 포함이지.”
“뭐? 저딴 꼬맹이를 계산에 넣는다고?”
“저 꼬맹이의 정체를 알면 그 말 못 할 텐데.”
“정체? 설마 저딴 녀석이 기사라도 된다는 거야?”
거너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말투에 웃음기를 살짝 뿌리고서.
“설마.”
“지금 날 놀리는 건가?”
걸핏하면 무기에 손을 가져가는 건 용병들의 습관인가?
진짜 싸움으로까지 가지 않는다는 건 앞서의 분위기를 통해 이미 파악한 어스는 이번엔 놀라지 않았다.
대신 거너를 보았다.
거너는 무기에 손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하지만 싸움이 벌어진다면 순식간의 그의 애병은 거너의 손에서 춤을 출 것이다.
과격하고 잔인하게.
“그럴 리가.”
“말 제대로 해야 할 거다. 내 기분이 엄청 나빠지려고 하니까.”
“기사는 아니고 마법사다.”
그 순간 모두이 시선이 어스에게로 집중됐다.
갑작스레.
찰나 당황했지만 마법사라는 이름이 세간에 가진 영향력을 알고 있었기에 어스는 나름 마법사가 할 법한 폼을 잡았다.
저 폼의 예시가 된 인물은 마법상점의 주인 지드였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3서클의 벽을 넘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어스가 본 유일한 마법사였다.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
코웃음을 치던 허드슨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어스가 자신의 앞에 파이어 애로우를 생성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말이 나오기 전에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해 버렸다.
소소하나마 허드슨에게 한 방 먹여준 어스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향한다.
“정말 마법사였어!”
허드슨만큼이나 놀란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프랭크였다.
그는 전날 어스에게.
-저 꼬맹이는 왜 달고 다니는 거지? 돈 떨어지면 내다 팔려고 데리고 다니는 건가?”
이런 말을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그 꼬맹이가 마법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말이다.
파이어 애로우를 취소한 어스는 그대로 일어서서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버렸다.
‘사람은 퇴장이 멋이어야지.’
어스로 인해 한바탕 소란해진 회의 분위기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지만, 회의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마무리됐다.
* * *
오크들을 처리하기 위한 전략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사냥을 위해 부락에서 나오는 오크를 처리하여 놈들의 숫자를 줄인다는 게 전략의 골자다.
이를 위해 용병들은 이틀에 걸쳐 놈들을 살폈다.
그 결과 사냥에 나서는 오크의 숫자와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용병들은 놈들이 다니는 길목에 함정을 마련했다.
또한 실력과 사용하는 무기를 고려하여 마흔두 명을 2개 조로 편성하여 그 자리에 매복했다.
각각의 조는 원거리와 근거리 무기를 기준으로 정했다.
어스는 마법사였기에 원거리 조에 편성됐다.
그의 옆에는 아그네스가 함께하고 있었다.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앉은 아그네스가 어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긴장돼?”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죠.”
“계획대로만 된다면 이건 거저먹는 일이 될 거야.”
공짜는 좋은 것이다.
다만 그걸 누가 먹느냐가 관건이지만.
“오크가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나 봐요?”
“나름이지.”
“그럼 인간처럼 똑똑한 놈도 있어요?”
“있었지.”
“있었다? 경험담이에요?”
“어, 그때 엄청 고생했었지.”
“힘센 놈보단 똑똑한 놈이 까다로운 건 인간이나 몬스터나 같나 봐요.”
“네 자랑?”
“설마요. 저 하나도 안 똑똑해요.”
“그런 사람이 마법사라고? 그 말을 누가 믿겠어.”
더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스는 주제를 바꾸었다.
아그네스와 달리 마법사면서 글을 모른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오크는 어때요? 상대하기 많이 까다로워요?”
거너 용병대에는 은패 용병만 다섯이다.
은패 1급 둘.
은패 2급 하나.
은패 3급 둘.
아그네스는 거너 대장과 같은 은패 1급의 용병이다.
그쯤 되면 오크는 손쉽지 않을까?
“원거리에선 딱히 어렵지 않아. 다들 저돌적이라 무작정 달려드니까. 하지만 근접전 상황이라면 두 마리까진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같다는 말은 근접전으로 싸워보진 않았다는 건가요?”
“항상 활로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럼 두 마리라는 건?”
“한 마리는 처치 가능, 두 마리면 시간이 걸려.”
활만 잘 쏘는 용병이 아니라는 소리다.
하긴 은패 1급이면, 은패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다.
“그렇군요. 그럼 거리만 내주지 않으면 수십 마리도 문제없겠네요?”
“이론상으론 가능하지만 실전에선 그렇게까지 잡을 수 없어. 난전에선 아군을 맞출 수 있거든.”
“하긴 우리 편이랑 엎치락뒤치락하면 조준하기 힘들겠어요.”
“그렇지. 마법은 어때?”
활은 그냥 시위만 놓는다고 해서 화살이 알아서 과녁에 명중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시야를 가리는 지물이나 거센 바람 따위는 궁수들에겐 장애물이다.
반면 마법, 아니 어스의 스킬은 기본적으로 명중률에 보정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스킬이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건 아니기에 백발백중은 아니다.
그에 근접할 뿐.
“거리가 떨어진 상태면 날아가는 시간이 있으니까 난전에선 활과 다를 바 없겠네요. 대신 거리를 좁히면 활보단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말하다 보니 기회가 닿으면 실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애초 난전 자체를 성립시키지 않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파이어 볼이라면 어떻게 작용할지…….
당장은 너무 멀리 있었다.
“역시, 마법은 사기네.”
“그런가요?”
알면서 되묻는 건 자랑이 하고 싶어서다.
“아그네스 누나, 오크에게 매직 애로우가 통할까요?”
“그보단 파이어 애로우가 낫지 않을까 싶네. 참, 파이어 애로우는 몇 번 쓸 수 있어?”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11).
생명력 : 100/100.
마나 : 150/150.
인벤토리 : 1.
스탯 : 힘(1). 체력(1). 민첩(1). 지력(2). 정신(11).
직업 스킬(2/9) : 매직 애로우(+0/12). 파이어 애로우(+0/12).
업적 포인트 : 0.
코인 : 268.
상태창을 열고 닫으며 마나를 확인한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매번 이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기에 습관처럼 열고 닫곤 했다.
닳는 것도 아니고, 누가 훔쳐보는 것도 아니다.
‘1렙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레벨이네.’
역시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일곱 번이요.”
“일곱 번이라고? 너 2서클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2서클 마법을 일곱 번이나 쓸 수 있는 거야?”
주도의 마법 물품 상점의 주인 지드에게서 어스는 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 그가 주로 한 질문의 초점은 자신과 다른 마법사와의 차이에 관해서였지 서클별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 그게 이상한가요?”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유독 민감한 어스는 반사적으로 이에 반응했고, 아그네스는 과민한 그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문제의 소지는 없었기에 넘어갔다.
“나도 자세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보통 자신의 경지와 동급인 마법의 경우 3번, 무리하면 4번까지 쓴다고 들었어. 그 이상은 서클에 무리가 발생한다고 들었거든. 너도 마법사니까 알겠지만 서클에 무리가 발생하면 마법사의 생명은 끝이잖아.”
‘어라? 난 마나가 0이 되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여기서 어스는 자신과 일반적인 마법사 사이에서 또 하나의 다름을 찾아냈다.
물론 아그네스 본인이 마법사가 아니라서 저 말이 확실한 것인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참고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두 사람 사이에 더는 말이 오가지 않았다.
오크가 매복 지역으로 오고 있었다는 신호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집중하자, 집중. 하나라도 더 잡아야지.’
* * *
서른두 마리의 오크가 매복 지역에 들어왔다.
놈들의 후각이 예민하기에 용병들은 자신의 체취를 향이 강한 풀의 즙을 통해 지운 상태였다.
덕분에 오크들은 매복한 용병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두근두근.
오크를 응시하는 어스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긴장감인지, 두려움인지 아니면 놈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치와 코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이를 느꼈는지 아그네스가 어스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고마워요.’
자신의 흥분을 바로잡아준 아그네스에게 입모양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때, 새소리를 연상케 하는 길고 날카로운 휘파람이 울러 펴졌다.
저 소리는 공격하라는 신호였다.
활과 석궁에 장전된 화살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일으키며 놈들을 향해 날아갔다.
아그네스가 쏜 화살은 놀랍게도 일격 필살의 위용을 보였다.
그에 질세라 어스도 파이어 애로우를 날렸다.
-5코인을 습득합니다.
그 한 방에 고블린 2.5마리에 해당하는 코인이 들어왔다.
어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파이어 애로우를 모두 날리고 남은 마나 10은 매직 애로우로 치환했다.
이로써 어스의 마나는 ‘0’이 되었다.
그때가 되자 근접조가 나섰다.
확실히 싸움은 원거리 전보단 근접전이 치열하고 긴박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원거리 공격조에 의해 피해와 혼란이 극대화된 상태였기에 근접조의 성과도 높았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오크의 비명, 족족 쓰러지는 오크들.
매복 작전은 그렇게 성공리에 끝이 나고 있었다.
* * *
서전을 압승으로 끝낸 용병들의 사기는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한 명의 사망자와 중상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용병들은 오크의 사체에서 가죽과 송곳니를 챙겼다.
저 두 가지가 돈이 되는 부산물이다.
짐이 많아졌지만 용병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희희낙락했다.
“꼬맹이. 아니, 마법사 친구.”
프랭크가 친근한 표정을 하고서 어스에게로 다가왔다.
꼬맹이란 말에서 기분이 언짢았던 어스는 이어진 말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풀렸다.
“그렇게 정색할 필요 없어. 오늘 멋졌다는 말을 해주려고 왔을 뿐이야. 내가 마법사들의 마법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내 기억으로 너처럼 마법을 쾌속하게 쓰는 친구는 처음이었어. 전에 널 무시한 거 사과할게. 그러니 화 풀어.”
“그 사과는 받아줄게요. 오늘 프랭크 씨도 수고 많았어요.”
“남자네. 쿨하게 받고. 기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선물.”
프랭크가 작은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어스는 얼떨결에 이를 받았다.
“이걸 왜?”
“선물. 아니, 뇌물이랄까? 암튼 나중에 거너 용병대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우리 용병대로 와라. 내가 확실하게 챙겨 줄 테니까. 하하.”
뒤에서 듣던 거너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성큼성큼 다가와선 어스의 어깨를 팔로 감싸며 프랭크를 노려보았다.
“어이, 프랭크 지금 나랑 한판 붙자는 거야? 어디서 수작질이지?”
“수작질은 무슨. 이건 엄연한 영업이야. 그리고 전에 있었던 사소한 말실수도 사과할 겸 작은 성의를 보인 것뿐이라고.”
두 사람의 신경전에 휘말린 어스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저렇게까지 노력한 타인은 이번이 처음이라 이 모든 게 그에겐 생경했기 때문이었다.
기분을 물어본다면…… 대단히 좋았다.
‘역시, 마법사가 된 보람이 있었어.’
쪼렙(?)인 지금도 인기가 이 정돈데 나중엔 어떨까? 상상만 해도 배가 불렀다.
다행히 두 사람의 신경전은 거기서 끝났다.
할튼, 허드슨, 고든이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업파트너끼리 왜 이래? 다들 진정하라고.”
“그래 둘 다 진정해.”
그제야 프랭크와 거너는 콧바람을 일으키며 등을 돌렸다.
어스는 곧장 거너에게 붙잡혀서 질질 끌려갔다.
“어스, 저런 자식이랑 말 섞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도 확실히 챙겨 줄 테니까 우리 끝까지 가자. 알았지?”
“저도 거너 용병대가 마음에 듭니다. 대장의 그 말도 무척 마음에 들고요. 하하. 후하게.”
“그래, 후하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