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화
어스 일행은 요새에서 출발한 지 3일 만에 델탕 마을에 도착했다.
몬스터 토벌이 이뤄지고 있는 장소는 이곳에서 한나절을 더 이동해야 나온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시간이라 일행은 마을 내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 날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방은 세 개를 빌렸다.
어스는 거너와 한방을 썼다.
여관 뒤뜰 우물에서 땀과 흙먼지를 씻은 일행은 1층 식당에 모여 저녁을 먹었다.
거너가 모두에게 맥주 한 잔씩 돌렸다.
어스도 한 잔 받았다.
‘엄마가 보면 기겁할 텐데.’
하지만 이곳에선 자신은 어른이다, 그리고 저들의 동료이자 전우다.
“거너 용병대의 비상을 위해!”
“위하여!”
다들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어스도 그들을 따라 마셨다.
하지만 난생처음 먹어 본 맥주는 실망스러웠다.
색깔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맛은 그보다 더 형편없었다.
최악이다.
대체 이런 걸 돈 주고 왜 사 먹을까? 한 모금밖에 안 마셨으니 어쩜 교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어스는 맥주잔을 들고서 바쁘게 움직이는 종업원의 꽁무니를 눈으로 좇았다.
그에 니크가 어스의 어깨를 툭 치며 음흉하게 웃었다.
“쟤 마음에 들어? 형이 다리 놔줄까?”
이 사람의 헛다리는 대체 어디 까지려나.
“그거 아니거든요.”
“그럼 왜 그렇게 눈이 빠지게 쳐다보는 건데?”
진실의 대가는 놀림일 텐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코는 분명 그럴 것이라는 데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대충 대답하려는 그때였다.
문짝과 원수라도 졌는지 식당 문을 거칠게 열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에 몇몇 손님들이 눈치를 살피며 엉거주춤했다.
반면 어스 일행은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고 그들을 빤히 응시했다.
힘의 유무에서 비롯된 자신감의 발로였다.
식당에 난입한 무리의 선두, 부리부리한 눈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남자가 식당 내부를 스윽 둘러보더니 이내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어스 일행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곧장 다가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 풀어져 있던 일행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마냥 물러터진 건 아니라는 거네.’
달라진 일행의 분위기에 어스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용병이지?”
시비조는 아니었다.
인상이 많이 거칠고, 목소리가 보통 사람보다 커 위압적으로 들릴 뿐.
어스는 차분한 표정으로 남자와 그 남자의 주변을 응시했다.
여차하면.
‘파이어 애로우는 그렇고, 역시 매직 애로운겠지. 고블린에겐 질리도록 실험했는데. 사람은 어떨까?’
가죽 재질의 갑옷이 단단하고 질겨 보인다.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인지, 아니면 호기심 때문인지 피가 빨리 도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당연히 일행의 대표인 거너가 남자의 말에 응수했다.
담담하지만 힘 있는 눈빛을 하고서.
“꽤나 민첩하고 조직력도 있어 보이네.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닌 것 같군. 그런데 저 꼬맹이는 왜 달고 다니는 거지? 돈 떨어지면 내다 팔려고 데리고 다니는 건가?”
성격이 급한 린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깔을 부리려고 하자 거너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앉힌 뒤 말하였다.
“초면에 말이 심하군. 저 친구는 동료야. 그리고 저 친구의 실상을 알게 되면 그 말을 후회할 거야.”
남자는 자신을 매섭게 쏘아보는 린다를 향해 픽 웃은 뒤 거너를 보았다.
“그럼 사과하지. 내가 여기 온 건 일거리가 있어서다. 우리가 혼자 먹기엔 파이가 너무 크거든. 아! 괜한 오해를 하지 마. 참고로 너희 용병대 말고 다른 쪽과도 함께하기로 했으니까.”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돈 냄새가 솔솔 나는 제안이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칼밥을 먹고 사는 용병들은 이에 당연히 민감할 수밖에.
동료인 어스를 무시하는 언사를 날린 남자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린다의 눈빛이 변하였고, 귀족가의 영애라고 해도 믿을 법한 고상한 외모의 아그네스 역시 이에 관심을 보였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찾아와서 무턱대고 이런 말을 하는 데 저런 표정이라니, 용병들의 세계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들의 표정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알아둬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사회 초년생인 어스에겐 모든 게 공부였다.
“좋아, 사업이야기라면 저쪽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러지.”
곧 두 사람은 식당 밖으로 나갔다.
“린다 누나.”
“응?”
“원래 이런 거예요. 용병들은?”
“놀랐냐?”
아그네스가 온실 속의 꽃이란 느낌이면, 린다는 야생의 잡초와 가까운 느낌이다.
그래도 동료인데 야생화에라도 비유할 것이지.
“놀라야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얼굴도 얼굴이지만 덩치는 좀 커요. 거기다 무기까지 갖고 있는데.”
“우리 막내 배울 게 많네. 하긴, 처음엔 다 그렇긴 하지. 그런데 넌 안 쪼네. 니코 녀석은 사지까지 부들부들 떨었었는데.”
“누, 누나! 거기서 왜 내 이야기가 나와요? 그리고 그땐 나도 어렸…….”
나이로 당시 자신의 행동에 면피로 삼으려다 지금의 어스가 그때의 자신보다 훨씬 어리다는 것을 떠올린 니코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에 린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이런 일이 자주 있냐는 거 묻고 싶은 거지?”
“예.”
“자주는 아니고 가끔 있어. 그리고 우리도 감당하기 힘든 일거리의 경우 따로 일손을 구하기도 해. 다만 야만 전사처럼 생긴 그 남자처럼은 하지 않지. 사소한 데 목숨 거는 용병들도 더러 있으니까.”
린다의 설명에 어스는 그제야 용병들의 세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혹시, 내가 더 알아야 할 내용 같은 거 없어요?”
“마법사라서 그런가? 호기심도 많네. 좋아, 이 누나가 이쪽 세계의 모든 걸 알려 줄게.”
* * *
거너가 돌아와서 일행에게 그 남자가 제안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한창 토벌이 진행 중인 지역 외곽에서 발견된 오크 부락을 함께 치자는 제안이었다.
토벌이 진행 중인 곳에 합류하면 갈색 자작나무 마을에서보단 수입이 나을 테지만, 큰 수익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곳에 모인 용병들의 숫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그 남자, 아니 프랭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고수익을 기대하라 수 있었다.
대신 그만큼 위험하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그러니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참고로 용병대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움직인다.
이는 거너 용병대뿐만이 아니라 모든 용병대에서 통용되는 이야기다.
다만, 용병단의 경우에는 단장의 권한이 크다.
“음, 오크면 고블린보단 확실히 세겠죠?”
어스를 제외하고 전원 프랭크의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의견을 내지 않은 인물은 방금 질문한 어스 하나뿐이었다.
당연한 질문을 받게 된 거너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오크에 대해서 모른 건가?
“세지. 성인 남성 둘은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는 놈들이니까. 물론 어떤 자들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거리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이면 둘, 아니 셋도 벅찰 거야.”
“그럼 오크 하나가 성인 남자 셋이 덤벼야 상대할 수 있다는 거네요?”
“이론상으론 그렇지. 어스 넌 이 일이 마음에 안 들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론은 이미 내려진 상태다.
그럼에도 거너는 어스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이 용병대로 낙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아뇨, 저도 괜찮습니다.”
“이것으로 만장일치네. 다들 잘 해보자고.”
거너가 입을 떼기 전 린다가 테이블을 탕탕 내려치며 선언했다.
급한 성격 아니랄까 봐.
다들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이에 뭐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새 어스도 적응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더 마실 생각은 없는지 다들 술잔을 옆으로 치웠다.
역시, 프로다.
‘오크라, 오크는 고블린보단 낫겠지.’
* * *
프랭크가 모집한 각 용병대의 대장들 모두 그를 따라 오크 부락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검증이 끝나자 그때부터 오크 부락의 등골을 빼먹을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각 용병대의 대장들이 모여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작전 회의가 아니었기에 근처에 앉아 있어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래서 어스는 그들의 말이 잘 들리는 곳을 찾아가 앉았다.
견문이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쌓아 두면 언젠가 도움이 된다.
하물며 공짜다.
“부락 규모를 보면 못해도 200마리는 될 거야.”
“나도 그쯤 된다고 생각해.”
“수컷의 분포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5, 60마리로 잡으면 되지 않을까 싶군.”
인간과 달리 오크는 암컷도 꽤나 강하다.
과거 뤼빅스 대륙의 절반이 오크가 장악했다는 학계의 발표도 있을 정도다.
그러한 강대한 종족이 오늘날에 와서는 어째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프랭크는 거너 용병대를 포함하여 네 개의 용병대를 섭외했다.
그래서 용병대는 총 다섯으로 전체 인원은 마흔두 명이었다.
“기습을 가하는 건 어때?”
“우리의 목적은 사냥이다. 그런 위험한 발언은 삼갔으면 좋겠군.”
경박한 목소리에 진중한 목소리로 받아치는 자는 할튼 용병대의 할튼이었다.
어째서 용병대의 이름이 다들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삼가? 듣기 별로네. 지금 나이로 날 억누르겠다는 건가? 할튼.”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허드슨.”
“와. 은퇴가 코앞인 노땅에게 이딴 소릴 들으니 어제 먹은 양고기가 올라오겠네.”
다섯 용병대 대장 중에서 할튼의 나이가 가장 많았다.
마흔.
용병으로선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였다.
당연히 할튼의 말에 기분이 상한 허드슨이 이를 말함이 아니다.
늙은 겁쟁이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여기 있는 모두 그 의미를 알아차렸기에 다들 할튼을 쳐다보았다.
어째서 도발을 먼저 한 허드슨이 아닌 할튼을 저리 보는 것인지 어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흔이 어때서? 한창 때고만.’
어스는 심정적으로 할튼의 편을 들고 있었다.
안면만 익혔을 뿐 대화 한번 해보지 않은 그를 심정적으로나마 편을 드는 이유는 할튼에게서 아버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나 그딴 건 아니다.
바로 마흔이란 그 나이 때문이었다.
‘울 아빠가 한 살 어리긴 하지만.’
몇 달 뒤면 아버지의 나이도 마흔이다.
“내가 참도록 하지.”
자신을 바라보는 용병대 대장들을 보며 할튼은 언제 움직였는지 무기에서 손을 뗐다.
그에 어스는 깜짝 놀랐다.
‘입보다 칼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나?’
점잖아 보였는데 의외로 위험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그제야 어스는 대장들이 할튼을 쳐다본 게 그냥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할튼을 자극한 허드슨의 경우는 어떤가 하면 그 역시 무기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용병들이 거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소문만큼 거친 용병을 만나지 못했던 어스에게 이번 일은 그에게 용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자자, 분위기 풀고 이야기나 합시다. 우리끼리 쌈박질이나 하려고 모인 거 아니잖수. 무려 200이 넘는 오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소. 그러니 두둑해질 우리들의 주머니부터 생각합니다.”
고든이란 남자가 주위를 환기시켰다.
저건 주체자인 프랭크가 해야 할 일이지 싶은데.
뒤늦게 자신이 주체자라는 걸 깨달은 걸까?
프랭크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부터 싸움할 생각 마라. 그 순간 내 도끼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그냥 가만있는 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에 욱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앞서 모두의 관심사인 수익이 거론된 때문이었다.
그렇게 불협화음으로 배가 산으로 가나 싶었더니 곧 바람과 물살을 타고 빠른 속도로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 또한 어스를 놀라게 만들었다.
‘진작 이러면 됐잖아?’
진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용병들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란 동물이 원래 저런 것인지 생각이 절로 깊어지는 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