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단 한 번의 정면승부로 고블린을 패퇴시키고 급하게 방벽을 세웠다.
혹여 놈들이 흩어진 세력을 집결하여 쳐들어올 것을 대비한 조치였다.
그 조치가 무색하게 놈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그렇게 삼 일이 지나자 그제야 토벌대는 더는 놈들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했다.
그에 윌리엄 부단장은 용병들의 지속적인 요청을 받아들였다.
용병들이 부단장에게 요청한 것은 숲으로 들어가 고블린을 사냥하도록 허가를 내달라는 것이었다.
일반 고블린의 부산물은 돈이 안 되지만 지금은 몬스터 토벌령, 그것도 특급 토벌령이 내려진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용병들 입장에선 힘들이지 않고 단기간에 수익을 왕창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얼른얼른 짐 꾸려. 딴 놈들 채가기 전에.”
“저 친구 괜찮던데.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까?”
“지금 인원으로 충분해. 오크도 아니고 고작 고블린이라고. 그것도 일반.”
용병들이 경쟁하듯 숲으로 들어가자 어스도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용병들에겐 몬스터가 단순한 돈벌이에 그치지만 어스에겐 일석삼조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경험치, 코인, 그리고 현실의 재화였다.
“아버지 나도 숲에 들어갈게.”
“절대 안 된다. 우리가 죽인 놈들도 많지만 달아난 놈들도 적잖이 많다. 그놈들이 지금 제집 안방이나 다름없는 숲에 있어. 그것도 가을 독사처럼 독이 잔뜩 오른 상태다.”
“나 용병한다고 했잖아? 점원이 아니고. 그런데 그런 내게 그렇게 말하면 말의 앞뒤가 안 맞잖아.”
“누가 하지 말래? 다만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베테랑 사냥꾼의 감인가?
그래도 다른 용병들이 고블린을 죄다 잡아 죽이는 건 차마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어스는 고집을 부렸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생긴 건 고상한 놈이 고집은 산도적이네, 산도적이야. 허허. 좋다. 그럼 이틀 후에 들어가자.”
“용병이 몇이나 저 숲에 들어갔는지 몰라? 알잖아. 아빠가 말한 이틀이면 고블린 따윈 씨가 마를 텐데 그때 가서 나더러 뭘 하라는 거야?”
그래도 행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에 어스는 날짜를 줄이는 방법으로 나갔다.
“하루만이야. 이건 절대 양보할 수 없어.”
“그래라. 그런데 어스야.”
“응.”
“죽은 마을 사람들이 많이 안타깝니? 네게 그런 행동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 말에 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미워하던 마을 남자들이 언제부턴가 시선에서 행동에서 미안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는 그들과 접점이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다가 아버지의 말에 그들도 아버지와 같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윌리엄 부단장이 자신에게 호감을 내보인 것도 말이 되긴 했다.
‘그래서 룬에 신실한 부단장이 내게 그런 호의를 보인 것이었어. 내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이건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이 영지의 영지 마법사가 될 생각은 없지만.
고향이라고 평생 살란 법은 없으니까.
이 넓은 세상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겠는가.
“죽었잖아?”
사실은 1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들에게 인성 파탄자 소린 듣고 싶지 않았다.
더해 거짓말도 내키지 않았기에 두루뭉술하게 대답하였고, 그에 행크는 착한 녀석이라며 어스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럼 난 내일 숲에 들어간다.”
“오냐, 아빠랑 같이 가자. 아빠도 놈들에게 분풀이 좀 해야겠다.”
* * *
다음 날 어스는 아버지와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
단둘만 들어간 건 아니다.
거너 용병대와 함께했다.
어스와 행크가 그간 눈여겨 본 용병대였다.
다행히 그들도 부자의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행크는 이 지역 토박이 사냥꾼인데다, 어스는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마법사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용병대에도 마법사가 있으면 좋을 텐데.’
어스를 바라보는 거너의 눈빛이 불꽃처럼 뜨거웠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있었기에 자연 분위기도 좋았다.
그렇게 부자는 거너 용병대와 함께 3일간 고블린을 사냥하고 다녔다.
첫날은 성과가 나쁘지 않았지만 그다음부턴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3일째 되는 날은 고작 3마리가 전부였다.
제아무리 특급 토벌령 상태이긴 해도 이래선 기존에 토벌령이 내려진 지역에서보다 수익이 떨어졌다.
그에 전체 용병의 3분의 2가 이탈했다.
고블린에 의한 위협이 없을 것이라 판단한 윌리엄 부단장은 그들의 이탈을 허락하였다.
다른 곳도 아닌 기존에 토벌령이 내려진 지역으로 간다고 하였기에 그들 사이에 얼굴 붉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임시 요새가 눈에 띄게 한산해졌고, 어스는 심중에 두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거너 대장 만나고 왔는데 여긴 접는다더라.”
“그럼 그들은 델탕으로 가는 건가?”
“다들 그리로 갔잖아.”
“아빠가 보기에 거너 대장과 용병들은 어때 보였어? 내가 보기엔 나쁘지 않던데.”
실력과 인성 모두 합격점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너는 그들이 마음에 든 게냐?”
“아빤 아니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확실히 거너 용병대만 한 곳도 없긴 하더라.”
용병대와 함께 고블린 사냥에 나선 건 어스 부자만이 아니다.
고블린 떼의 공격으로 터전과 가족을 잃은 마을 남자들 모두 적극적으로 사냥에 가담했다.
행크는 그들을 통해 각 용병대의 장단점을 취합하였고, 그 결과 거너 용병대가 모든 면에서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아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고 용병을 하겠다면 행크 역시 거너 용병대를 추천할 생각이었다.
“그럼 바로 거너 대장을 만나서 이야기해야겠어.”
“잠깐, 정말 용병 할 생각이야? 지금이라도 마음 바꿀 생각은 아예 없는 거냐?”
“사내는 한 입 갖고 두말하면 안 된다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말한 사람은 아빠잖아.”
“누, 누가 뭐라고 했냐? 그냥 물어본 거야. 당연히 사내는 한 입 갖고 두말하면 안 되지. 당연하고말고.”
“참, 아빤 어떡할 거야? 주도로 갈 거야?”
고블린은 어스 네 가족이 살던 소중한 보금자리를 망쳤지만 엘이나가 알뜰하게 모아 두었던 돈은 손대지 않았다.
덕분에 집은 잃었지만 돈은 챙길 수 있었다.
뭐 집도 완전히 잃은 건 아니다.
마을 자리에 요새를 구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보상금이 나온다는 소리다.
“나도 너랑 델탕으로 갈 생각이다. 언제까지 너와 함께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영지 내에서만큼은 아빠가 네 곁을 지켜줘야지.”
필요 없는데.
물론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섭섭해하실지 모르기에.
“그러면 나도 든든하겠지만 아빠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엄마랑 루시는 어떻게 해? 아빠도 알다시피 나는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잖아. 하지만 두 사람은 타지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어. 그 생각을 하면…….”
심장 어림을 검지로 콕 찍으며 괴로운 표정으로 뒷말을 대신하는 어스였다.
행크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어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적어도 자기 한 몸은 충분히 건사할 수준이 되니까.
“오냐, 그러마.”
“잘 생각했어. 참, 이거 받아.”
“이건 뭐냐?”
“뭐긴 뭐야 이 아들이 생애 처음으로 일해서 번 돈이지.”
“그러니까 이걸 왜 아빠에게 주냔 말이다.”
“앞으로 돈 들어갈 곳 많잖아. 이주할 곳도 알아봐야 할 텐데 그게 돈 없인 안 되잖아. 걱정하진 마. 내가 쓸 건 따로 남겨 뒀으니까.”
안 받으려 하는 걸 억지로 품에 밀어 넣은 어스는 곧장 몸을 돌려세웠다.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 * *
어스는 거너 용병대에 일원이 되었다.
용병 등록이 안 된 상태라 수익이 발생할 경우 분배율은 임시로 정했다.
어스처럼 나이가 어린 경우 대부분 동패 3급에서 시작한다.
그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어스의 경우에는 마법사였기에 거너와 용병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분배율을 은패 3급에 해당하는 조건으로 계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요.”
참고로 용병의 등급은 말단인 동패에서 금패가 가장 높은 등급이다.
중간에 은패가 있다.
각각의 패엔 다시 3등급으로 분류된다.
1급에서 3급으로 이 중 3급이 가장 낮은 등급이다.
“어스 델탕에서 일 끝내면 피어스성에 들러서 정식으로 용병등록을 하도록 하자.”
“거너 대장 만약 시험에서 은패 3급보다 낮게 나오면 분배는 기존대로 하는 건가요?”
“에이, 그건 아니지.”
“어라? 마법사 영입하면 용병대의 위상이 높아진다면서요? 이런 식이면 저 배 갈아타는 수가 있는데. 흠흠.”
“분배는 무조건 용병패를 기준으로 하는 거야. 이건 어느 용병대나 동일해. 하지만 우리 거너 용병대 마스코트이자, 유일한 마법사임을 감안해서 네가 은패를 못 받으면 내 수익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마.”
거너의 말에 다른 대원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스는 좋겠다. 마법사라서.”
“그러게 말이야. 난 왜 마나에 재능이 없는 걸까?”
“그런데 어스, 너 매직 애로우밖에 못 쓰냐? 다른 건 못해? 물이나, 불같은 거 못 만들어? 아님, 얼음이나?”
7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유독 얼음 마법을 강조하는 니코였다.
니코는 거너 용병대 유일의 동패 용병이다.
등급이 가장 낮다 보니 용병대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참고로 거너 용병대는 이번에 어스가 합류하면서 여섯에서 일곱 명이 되었다.
이 중 두 명은 여자로 용병 등급은 거너를 제외하곤 가장 높았다.
“니코 형, 고블린 잡는 데 매직 애로우면 됐지 다른 스…… 아니, 마법은 사치죠.”
“오! 그럼 다른 마법도 있다는 거네. 보여 줘, 보여 줘라. 응, 어스.”
“마나 아까운데.”
“5테스 줄게.”
“10테스.”
“쳇, 좋다. 10테스. 하지만 매직 애로우보다 좋아야 할 거야. 아님, 널 마구마구 구박할 거야.”
“눼눼. 그럼 저기 저 바위 잘 보세요.”
불꽃의 화살이 잔상을 일으키며 힘차게 날아가선 바위에 명중했다.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이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어스, 너 2서클이었어?”
이를 묻는 이는 용병대에 단둘뿐인 여자 용병인 아그네스였다.
아그네스의 외모는 용병엔 어울리지 않았다.
귀족가의 영애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지적이고 우아한 느낌의 미녀였다.
처음 아그네스를 봤을 때 어스는 그녀의 외모에 상당히 놀랐었다.
용병이란 직업과 그녀의 외모가 상충했기 때문이었다.
“파이어 애로우를 알아요?”
“거너 용병대에 들어오기 전에 마법사를 호위한 적이 있었어. 그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2서클 맞아?”
일반적인 마법사와 달리 어스의 심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니 마나 고리만 놓고 보면 그는 순수한 일반인이다.
하나 저와 같은 이적을 행사하는 데 누가 이를 의심할 수 있으랴.
“파이어 애로우를 봤잖아요.”
“열다섯에 2서클이라…… 대단하네.”
아그네스의 감탄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스야, 혹시 그…… 뭐라고 하던데. 아! 맞다, 천재! 그래 네가 천재라는 사람이냐?”
도대체 저게 무슨 말인가 싶어 니코를 쳐다보던 어스는 곧 뒤죽박죽인 저 말의 의미를 풀어낼 수 있었다.
“천재라니, 그럴 리가.”
전생에 차원 하나를 구한 용사여서 그 보답을 받는 것이라면 모를까.
아무튼, 마법의 세계는 심오하여 하나를 익히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적성이란 요인도 작용한다.
그러니 적성에 맞지 않는 마법의 경우 시간 낭비가 되는 경우가 허다한 곳이 마법사의 세계였다.
그래서 좋은 스승이 필요한 것이다.
모래사막에서 모래를 아무리 파봐야 어찌 우물이 나올까.
하나 어스는 재능도 적성의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단점이라곤 딱 하나, 스킬 슬롯이 9개 고정이란 걸 빼면.
어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저 나이에 2서클이면 어엿한 마법사로 인정받는 3서클이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