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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0화 (10/250)

010화

전사 37명, 부상 152명.

눈부신 승리에 가려진 서글픈 상흔이었다.

그러나 사지육신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입에선 저마다 우렁찬 함성이 터졌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웃음과 함성도 진정되었다.

마치 이런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윌리엄 부단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에 진지를 구축한다.”

승전의 보상이 고기와 술이 아닌 노동이라니.

윌리엄 작슨 부단장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이 투덜거리면서도 명령을 따랐다.

달아난 고블린의 숫자도 적지 않았기에 반격을 우려한 조치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에 윌리엄 부단장은 직접 그들 앞에 서서 호통을 내질렀다.

목숨으로 도박을 할 생각이냐며.

뚝딱, 뚝딱.

그륵, 그르르.

우지직.

2시간 남짓을 끝으로 시작된 노동.

6월 하순이라 일은 더욱더 힘들었다.

방벽 건설에 필요한 자원은 가옥을 뜯어서 이용했다.

장정 몇 이 달려들자 집 한 채가 해체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저 집 지을 때 한 달 반은 걸렸던 것 같은데.’

확실히 짓는 것보다 부수는 건 한순간이다.

군문에 종사하는 자들이어서 그런지 전날 마을 사람들이 고블린의 공격을 막고자 쌓았던 방벽과는 면모가 남달랐다.

어느새 뚝딱뚝딱하더니 망루가 하나둘 설치되었다.

2시간 만에 세워진 것이다.

단시간에 세운 것이라 하자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끄떡없었다.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어스는 이 모든 것들에 감탄했다.

본다고 저런 기술들을 습득할 수는 없겠지만 보는 눈을 기를 순 있었다.

잘못된 걸 모르는 것과 아는 것엔 큰 차이가 있으니, 그에겐 이 모든 게 공부였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달리 어스는 그늘에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마법사!

그 이름이 가진 무게였다.

‘좋네.’

올라가는 입꼬리를 지그시 누르고 있을 때 병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영지의 병사는 젊은 남자들에겐 선망의 직업군 1순위요, 딸을 가진 부모에겐 사윗감 1순위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작슨 경께서 마법사님을 보자고 하십니다.”

어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공손한 병사의 태도에.

우쭐함은 잠깐이었다.

“작슨 경이면 사령관님이요?”

남작령이긴 하나 윌리엄 작슨은 기사들이 모인 집단의 2인자, 그 자리는 결코 어중이떠중이가 앉는 자리가 아니다.

실력 있는 자가 앉는 것이다.

마나 소드!

마법사에겐 마법이 있다면, 기사에겐 바로 저 마나 소드가 있다.

바위도, 강철도 종이 자르듯 단숨에 잘라 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나 소드를 다루는 경지, 즉 익스퍼트에 발을 디딘 자들의 신체 능력은 범인을 초월한다.

‘왜? 설마 내가 마법사여서?’

그게 이유인 듯싶었다.

잘 못을 저지른 일이 없으니.

마침 행크가 수통에 물을 채우고 돌아왔다.

“아빠, 작슨 부단장님이 부르셔서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집엔 나중에 들르자.”

“부단장님이?”

“그렇게 놀라지 마. 내가 잘못해서 부른 건 아닐 거야.”

높은 사람이 부르면 그 이유를 막론하고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너…… 괜찮겠어?”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땀이나 식히고 있어. 앉아 있어 보니까 여기가 근처에서 제일 시원한 곳인 것 같아. 하하.”

“무슨 일 생기면 아빠라고 힘차게 불러라. 아빠가 곧장 달려갈 테니까. 아빠 믿지?”

“당연하지.”

“그리고 버릇없이 굴면 안 된다. 상대는 귀족이야, 알지?”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기다려준 병사에게 양해를 구한 어스는 그를 따라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토벌군 사령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 * *

“열다섯이라고?”

“예. 부단장님.”

“놀랍군. 오늘 그대의 활약은 참으로 인상 깊었네. 그런데 마법은 어디서 배운 것인가?”

어스를 부르기 전 윌리엄 작슨은 병사를 시켜 뒷조사를 시켰다.

갈색 자작나무 마을 출신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기에 어스에 대해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용병 마법사입니다. 그분을 위해 몇 가지 수고를 했는데 그게 고마웠던지 제게 마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거짓말이라곤 일절 하지 않을 것 같은 순수한 얼굴을 하고서 잘도 이리 말하는 어스였다.

때문인지 윌리엄 부단장은 이를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나의 재질을 갖고 있더라도 기회가 닿지 않아 무의미하게 인생을 낭비하는 자들이 많지. 그런 면에선 룬께서 자네를 많이 사랑하시는가 보군.”

내키지 않았지만 장단을 맞추었다.

높은 분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는데 어찌 어스가 이를 모르랴.

“룬님은 사랑이죠.”

“하하, 신실한 신자로군.”

저 양반 성기사 출신인가?

빈말이라도 신에 대해 안 좋은 소릴 했다간 차후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뇌리에 스치자 토벌전에 참가한 마을 남자들이 떠올랐다.

필시 자신을 안 좋게 말할 텐데.

그건 어스의 기우였다.

아무도 그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오늘 어스가 최선을 다해 고블린과 싸우는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면 뒤에서 편하게 있어도 누구 하나 나무랄 사람이 없음에도 굳이 창을 들고 고블린들을 찔러 죽이던 그 모습은 누가 봐도 복수에 불타는 사람의 행동이었으니까.

-우리가 죽일 놈이었어. 저런 녀석을 미워했다니.

-이게 다 멍크 할멈 때문이잖아. 뭐? 악마가 씐 게 틀림없다고? 내 진작 알았어야 했어. 그 할멈 노망인걸.

-맞아, 맞아. 믿음도 좋지. 좋은 데 그건 진짜 아니었어. 나는 벌써 알았지만 분위기가 그래서 입 닫고 있었을 뿐이야.

과거 자신들이 한 모든 행위를 멍크 할멈이란 광신자에게 돌리며 다들 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알지 못하니 어스 입장에선 성기사 출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룬에 신실한 부단장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잡초도 아니고 광신자 새끼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이 말을 입 밖에 냈다간 이야기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종교재판장에 서게 될 것이다.

종교재판장이란 곳은 들어갈 때 두 발로 들어가지만 나올 땐 뭔가가 빠진 모습으로 나오는 곳으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오우거 같은 무시무시한 몬스터도 종교재판장의 ‘종’자만 들어도 도망칠 거란 말이 나올까.

“맞는 말이지, 그분은 사랑이시지. 하하.”

어스에 대한 윌리엄 부단장의 호감도가 쭉쭉 올라갔다.

광신도의 사고방식은 싫지만 한편으론 좋은 점도 있었다.

립 서비스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불신자로 한 번이라도 낙인이 찍히면 이를 만회하기 힘들다.

어스의 어린 시절이 바로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 남자들이 마음을 바꾼 건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마법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설핏 보니 매직 애로우를 사용하던 것 같던데.”

서클을 우회적으로 묻는 것이다.

만약 그것만 안다고 말하면 이는 1서클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이에 어스는 잠시 고민했다.

2서클 마법중 하나인 파이어 애로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어스는 심장에 서클이 없다.

그러니 마법사들 앞에서 자신의 경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마법, 그의 입장에선 해당 경지의 스킬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다행한 건 서클은 본인이 이를 개방하여 드러내기 전까지 알아볼 수 없다는 게 그나마 안심이다.

‘악마에게 힘을 받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지.’

그러니 항상 입조심을 해야 한다.

이 힘의 출처에 대해선 가족에게도 함구해야 하고 말이다.

“다른 것도 익혔지만 아직 미숙합니다.”

“1서클 이상이란 소리군.”

어스를 바라보는 윌리엄이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1서클과 2서클은 노력만 하면 될 수 있으나, 저 나이에 2서클은 노력을 뛰어넘는 재능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 수재라는 소리다.

저런 아이를 영입하면 이 영지의 장래가 밝을 터.

윌리엄은 어스를 영주에게 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네 우리 영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나?”

“평민들에게도 잘 대해주시는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진심이다.

잠자리에 음식, 거기다 돈까지 주었으니 어스가 피어스 남작을 싫어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렇지, 그렇군. 하하.”

‘왜 저리 좋아하는 거야?’

혹시, 말로만 듣던 그 충신인가?

“내 그래서 말인데. 만약 영주님께서 자넬 등용하고 싶다면 어찌 할 텐가?”

이건 제안이다.

평 기사도 아닌 부단장씩이나 되는 사람의 무게는 다르다.

그러니 승낙만하면 영지의 마법사는 따 놓은 당상이리라.

물론 2서클로 영지의 마법사가 되는 경우는 없으니, 최소 조건인 3서클이 되기 전까진 예비 영지의 마법사 신분이리라.

준 귀족!

바로 기사와 동급의 계급이 될 있다.

모든 평민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그 자리가 손만 뻗으면 내 것이 될 수 있다니!

두근두근.

시시각각 변하는 어스의 표정에 흐뭇한 표정을 짓던 윌리엄 부단장의 표정이 점차 의문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처음엔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어스가 돌연 안색이 어두워졌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전 제 스승님처럼 용병 마법사가 되고 싶습니다. 어디에도 메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생각입니다.”

혹여 부단장이 자신의 말에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싶어 눈치를 살피던 어스는 그의 표정을 보곤 안심했다.

“하긴 그 나이엔 안주보단 세상의 동경이 더 큰 법이지. 알겠네. 하지만 그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날 찾아오게.”

이 정도면 못해도 최소 준 귀족은 따놓은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스는 윌리엄 부단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그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후 기다리는 아버지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부단장이 자신을 보자고 한 이유에 대해서 말해야만 했다.

“아, 아니. 대체 그 좋은 기회를 왜 걷어차? 내 아들이 바보였군, 헛똑똑이였어.”

분통을 터트리셨다.

본인의 일인 것처럼.

아니, 아들의 일이었기에 감정이입이 더 큰지도.

“아빠, 내가 고작 일개 남작 영지의 마법사로 인생을 끝낼 것 같아? 나란 사람을 담기엔 이 영지는 우물이라고. 고래가 우물에 살 수 없잖아.”

“네가?”

“뭐야? 그 눈빛은? 그 시선이 왜 거기에 있는 건데!”

어스는 냉큼 아랫도리를 가렸다.

당근처럼 얼굴을 붉히며.

“나, 나는 아직 성장기라고! 앞으로 키도 더 클 거고 거기도 당연히 더 클 거야.”

다행히 행크는 어스의 뜻을 존중해졌다.

그랬음에도 미련을 털어내지 못했는지.

“그놈의 고집은, 넌 대체 누굴 닮아서…….”

“엄마 아니면 아빠겠지.”

그의 대답에 행크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식이 부모를 닮았다는데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래, 한 번뿐인 인생. 아들 네 꼴리는 대로 살아라. 아빠가 팍팍 밀어주마.”

안 밀어줘도 잘 굴러갈 인생인데, 하지만 아버지를 위해 입안의 혀처럼 달콤한 말을 잔뜩 늘어놓으며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고블린의 손이 닿은 집은 외부도 내부도 모두 엉망이었다.

어머니가 소중하게 가꾸던 텃밭 역시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엄마가 봤으면 엄청 가슴 아팠겠네.’

이는 어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행크는 더했다.

이 집을 손수 지었고, 여기서 오랫동안 구애했던 여인과 알콩달콩 살며 자식까지 보며 살았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공간이었으니까.

“빌어먹을.”

행크는 눈시울을 붉히며 한동안 하늘만 쳐다보았고, 어스는 아버지를 안아주었다.

“아빠 곁엔 우리들이 있잖아. 그리고 아빠를 걸고 약속할게. 내가 엄청 좋은 집 사줄게.”

“뭐? 나를 걸어? 이 녀석이!”

행크의 우울한 기분도 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래, 중요한 건 집이 아니라 곁에 있는 가족인 것을.

“그만큼 내겐 중요하다는 뜻이잖아.”

“녀석 무리하지 말란 뜻이다. 쯧쯧. 네가 아빠의 큰마음을 어찌 알까. 너도 자식 놓기 전엔 절대 모를 거다.”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말을 그대로 아들에게 전해주는 행크였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 행크의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아버지 보고 있소? 저놈이 내 아들놈이라오. 아버지 손자 말이오.’

아버지에게 자랑하는 행크는 함빡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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