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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9화 (9/250)

009화

어스는 아버지와 함께 고블린 토벌대에 참가했다.

반대는 없었다.

그러자 어스의 어머니도 앞서 한 약속을 지켰다.

잔소리는 많았지만 대부분 행크에게로 향했다.

요약하자면 아들 안 다치게 잘해.

누구보다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이럴 땐 아버지이기 이전에 행크도 남자다 보니 삐졌다.

그래 봐야 이내 풀린다.

엘이나가 손 한번 살짝 잡아주면 말이다.

갈색 자작나무 마을을 피바다로 만든 고블린 무리를 상대하기 위해 파견된 병력은 총 430명으로 이 중 36명은 갈색 자작나무 마을 출신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이 토벌전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어스가 관심을 갖고 있는 용병은 200명으로 토벌대의 전력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출발!”

토벌대의 수장 윌리엄 작슨 부단장의 힘찬 목소리에 도열하고 있던 자들이 걸음을 내디뎠다.

80명의 영지 정규군을 제외하면 행군은 엉망이었다.

새벽 일찍 주도에서 출발한 토벌군은 점심 무렵이 되어 토머스 마을 근처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배식과 정비를 마쳤다.

‘분위기가 달라졌어.’

행군 내내 어스는 용병들의 주의 깊게 살폈다.

행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서 어스는 행크에게만 자신이 용병이 되겠다는 말을 하였다.

역시, 반응은 신통치 않았지만 어스는 하고 싶은 일이라며 강하게 어필하여 끝내 행크의 마음을 돌렸다.

* * *

토벌대의 출현을 알아차린 고블린 무리는 겁을 상실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머리 숫자에 도취되었는지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많은 숫자였다.

그에 돈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토벌대에 지원한 영지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오직 그들만.

‘저럴 거면 왜 왔대?’

그 모습에 어스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내 관심을 끊었다.

당장은 눈앞에 펼쳐진 고블린 대군이다.

못해도 800은 되어 보였다.

‘독식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안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린 걸.

“아들.”

“응?”

“아빠 옆에 딱 붙어 있어라. 흥분해서 날뛰지 말고. 알았지?”

아버지의 진지한 충고에 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

“그냥 편하게 살지. 뭐 하러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고블린 무리가 정면대결을 선택하였기에 따로 작전을 짤 필요가 없었다.

양측은 서로 넓게 포진했다.

몇 개의 구릉을 제외하면 평지였기에 지형지물의 선점을 통한 이득은 딱히 없었다.

인간 대 인간의 전쟁이라면 몇 마디 말이라도 오갈 테지만 지금은 인간 대 몬스터의 전쟁이었기에 대화는 생략하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작은 고블린 무리가 끊었다.

괴성을 지르며 앞다투어 달려오는 녹색의 물결.

하나하나는 볼품없지만 저처럼 무리를 지어서 달려오니 고블린을 무시하던 용병들도 살짝 긴장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초짠가?’

그런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가죽 갑옷을 비롯한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 모두 상표를 갓 뗀 느낌의 장비라는 점이다.

반면 중고 느낌이 물씬한 갑옷과 무기를 가진 용병들에게선 조금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행군할 땐 엉망이더니 막상 판이 벌어지니까 정규군 못지않네.’

어스는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궁수 앞으로!”

아군엔 활이라는 원거리 무기가 있었다.

더구나 직업이 사냥꾼인 베테랑 활잡이들이다.

당장 어스의 옆에도 있다.

행크였다.

활을 쥔 행크는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사냥감을 대하는 맹수와 닮아 있었다.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선두 옆에 나선 행크와 궁수들, 어스는 아버지 뒤에 붙어 서서 고블린들을 응시했다.

그의 뒤통수에 여러 개의 시선이 꽂힌다.

호기심, 의아함 따위의 여러 감정이 실린 시선이었다.

어스는 그들이 시선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쏴!”

활의 사정권에 들어오자 지휘관이 소리쳤다.

기십 발의 화살이 허공을 날아올랐다가 힘차게 낙하했다.

화살의 비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놈들은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제 옆에서, 뒤에서, 앞에서 동족이 죽어가도 흉흉한 괴성만 지르며 달렸다.

“자유 사격! 근접병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열을 유지하라!”

침착하고 묵직한 지휘관 윌리엄 작슨 부단장.

보고만 있어도 믿음이 절로 생기는 사람이었다.

곡사에서 직사로 변경되면서 고블린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한순간의 방심과 실수가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시간이다.

“어스, 절대 경솔하게 나서지 마라.”

“약속했잖아. 믿어, 이 아들을.”

용병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발을 굴렸다.

이백 명의 용병들이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복장과 무기는 중구난방이라 볼품이 없었지만 전투에 임하는 자세는 확실히 멋있었다.

반면 영지의 정규군은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그 또한 보기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중 하나가 되는 건 사양이다.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지휘관이면 다를까?’

그땐 다른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가던 두 무리가 격돌했다.

복장도 제각각 무기 역시 그러한데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까지 고려하면 제 칼에, 제 창에 동료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나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고, 가끔 위험한 이들이 있으면 가차 없이 손을 써서 구해내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병 복장을 한 정규군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손발이 척척 맞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초짜는 어디 가도 티가 나네.’

전장의 흐름을 타도 너무 타버린 나머지 홀로 흐름 밖으로 뛰쳐나간 자들의 힘에서 비명이 터졌다.

적게는 둘, 많게는 세 마리의 고블린이 사방에서 달려들자 비명은 세상을 하직하는 자의 마지막 외침이 되고 말았다.

용병들의 선에서 처리하기엔 고블린의 숫자가 많았다.

이제 영지군과 민간 참여자들이 나설 차례였다.

상대를 찾지 못해 고개를 돌리는 고블린 두 마리를 발견한 어스는 매직 애로우를 날렸다.

맥없이 쓰러진 그놈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에.

“죽었는지 확인해야지. 무턱대고 눈을 돌리면 뒤치기를 당할 수 있다.”

행크가 한마디 했다.

엄한 표정으로.

확인사살? 사실 그딴 건 어스에겐 필요 없는 절차였다.

-2코인을 습득합니다.

-2코인을 습득합니다.

시스템이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목소리가 은근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적어도 자신의 공격으로 인해 적이 죽은 척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기능이 같은 인간에게도 통할지는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몬스터의 연기는 확실하게 간파할 수 있었다.

“내 걱정은 말고 아빠나 걱정해.”

행크는 아들을 지키느라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싸우다가도 혹여 아들에게 일이 생길까봐 멈칫거리곤 했다.

그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적을 코앞에 두고 한 눈이라니.

지금처럼.

“아빠!”

어스를 신경 쓰느라 고블린의 접근을 미처 보지 못한 행크는 아들의 부름에 그제야 이를 알아차렸다.

재빨리 돌아선 행크는 놈을 발로 걷어차 떨어뜨린 뒤 즉시 창으로 놈의 뱃가죽을 꿰뚫어 버렸다.

“민망하네.”

머쓱한 표정을 짓는 아버지를 일별한 행크는 이번엔 역으로 고블린의 배후를 쳤다.

당연히 매직 애로우다.

-2코인을 습득합니다.

그가 스킬로 고블린을 처리하는 모습이 잦아지자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저 꼬맹이가 마법사였어?”

“마법사씩이나 되는 아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마법사들이 괴팍하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이런 걸 즐기겠지.”

“팔자 좋네. 누군 마지못해 하는 짓을 즐기기 위해 참가하다니.”

“쉿, 말조심해. 마법사에게 저주를 받으면 대머리가 되니까.”

이 상황에서 입을 놀릴 수 있다는 건 실력이 이를 뒷받침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용병들의 관심에 어스는 내심 미소 짓고 있었다.

지금 어스가 대놓고 날뛰고 있는 건 바로 용병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기 위함이다.

용병도 동료가 없으면 벅찬 직업, 그러다 보니 용병대라는 이름으로 적게는 서넛에서 많으면 십수 명이 몰려다닌다.

참고로 용병단이란 것도 있는 데 이건 하나의 민간 군사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싸움에 익숙한 수백 명의 용병들이 모인 집단이니까.

그리고 용병단의 창설은 용병 길드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자만 가능하다.

어느새 마나가 뚝 떨어졌다.

이래서 매직 애로우만 사용했는데 이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사준 창을 잡았다.

그렇다고 창으로 고블린과 싸울 생각은 없었다.

생명력의 효능으로 근접전에서 유리한 점이 있긴 하지만 이곳은 전쟁터다.

영지와 영지, 나라와 나라 사이에 싸우는 그런 전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곳이 전쟁터가 아닌 건 아니다.

어스는 뒤로 슬쩍 빠졌다.

그런 아들을 행크가 붙어서 보호했다.

“고마워.”

“아빠가 아들 보호하는 게 뭐라고. 넌 이 아빠만 믿어라. 그런데 마법사도 신통치 않네.”

“그건 내가 초짜라서 그래. 몇 년, 아니 몇 달 뒤엔 말이 싹 바뀔 거야.”

좀 더 날뛰고 싶다, 보다 강력한 스킬을 펑펑 날리고 싶다.

그런 스킬이 스킬 상점엔 널리고 널렸는데 안타깝게도 코인이 부족하다.

더해 그런 고위 스킬은 마나도 많이 잡아먹어서 당장은 코인이 있어도 그림의 빵이다.

뒤로 물러섰지만 물러선 자리가 안전한 건 아니다.

고블린 하나가 어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놈은 행크가 휘두른 창대에 맞아 동시에 바닥에 처박혔다.

“이 새끼가 감히 누굴 노리고 덤비는 거야!”

놈의 명줄을 막 끊으려는 그때 어스가 냉큼 만류했다.

“정지!”

“왜?”

“말했잖아. 여유가 되면 무력하게만 만들어 달라고. 명줄은 내가 끊을 거야.”

“쯧, 안 그런 척해도 마을 사람들을 죽인 놈들이 미운 게지? 알았다, 알았어. 부끄러워하긴.”

아닌데, 어처구니가 없어 쳐다본 것뿐인데.

상관은 없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건 중요한 건.

‘막타 치기 딱 좋네.’

* * *

토벌대와 고블린의 전쟁은 단 한 번의 전투로 판가름 났다.

인간의 승리로 끝이 났다.

토벌대는 한 마리라도 더 죽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망치는 놈들까지 다 잡진 못했다.

2시간에 걸친 전투 후 사람들은 기진맥진했다.

괴물 같은 체력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아빠가 괴물이구나.’

행크도 쌩쌩했다.

사냥꾼이 아니라 용병, 그것도 베테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어스는 이번 전투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레벨업과 코인 그리고 용병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딴 건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짬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던 상태창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11).

생명력 : 100/100.

마나 : 130/130.

인벤토리 : 1.

스탯 : 힘(1). 체력(1). 민첩(1). 지력(2). 정신(7).

직업 스킬(1/9) : 매직 애로우(+0/12). 파이어 애로우(+0/12).

업적 포인트 : 4.

코인 : 268.

오늘 3개의 레벨을 올렸다.

고블린과 싸우기 전에 8레벨이었으니까.

그런데 레벨은 분명 3개가 올랐는데 무슨 영문인지 업적 포인트가 4개였다.

‘혹시, 11부터는…… 어라? 그런데 저건 못 보던 것인데 언제 생긴 거지?’

더 받은 업적 포인트를 신경 쓰다 놓쳤던 것이 그제야 어스의 눈에 들어왔다.

인벤토리였다.

‘뭐지?’

즉시 인벤토리에 대해 살피기 시작했다.

가상의 공간에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대 20킬로그램까지 수납이 가능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창고였다.

더 받은 업적 포인트에 놀라고, 인벤토리의 등장에 더 놀라는 어스였다.

‘인벤토리는 이 자체로 사기네, 사기야.’

더는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무게에 제한이 있다곤 하지만, 딱히 들고 다닐 짐은 없다지만 있어서 나쁠 게 없다.

더욱이 귀중품은 인벤토리에 보관하면 분실의 우려도 없었다.

‘개인 금고네, 개인 금고야. 부자나 귀족들이 갖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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