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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7화 (7/250)

007화

영주와의 면담을 마치고 돌아온 엘이나는 넋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였다.

불안하게 말이다.

이러한 심정을 억누르며 어스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그 이유를 물었다.

만약 영주가 어머니에게 나쁜 짓을 했다면 언제고 그 값을 제대로 치르게 할 것이다.

영주는 물론 그 핏줄들에게까지.

“시, 실은 영주님이 엄마에게 돈을 주셨어. 거짓말 같지? 엄마도 아직 믿기지 않아서 얼떨떨해. 하, 하하.”

철렁했던 가슴이 그제야 진정 된 어스는 허탈감과 의외 그리고 기쁨이란 감정을 느꼈다.

지금 당장 큰 걱정은 금전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그 가장 큰 걱정거리를 영주님이 한 방에 해결해 주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어스는 자신의 오해를 반성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였다니.

은혜로 기억하리라.

“우리 영주님 좋은 영주님이구나! 귀족이라면 다 엄청 무서운 줄 알았는데 말이야.”

루시도 기분이 좋은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스는 여동생 역시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지는 끈끈한 그 무언가를 말이다.

“그래서? 영주님이 얼마나 주셨어?”

이왕이면 많았으면 좋겠다.

고블린의 공격으로 모든 걸 잃은 처지였기에 당분간 생활할 자금은 꼭 있어야 한다.

당장 용병이 되더라도 그 순간 돈이 뚝 떨어지지 않을 테니.

“천 테스.”

엘이나는 주변을 경계하듯 살피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처럼 말이다.

어스도 그리고 루시도 어머니의 그런 태도를 완전 이해할 수 있었다.

100테스라고 해도 놀라 제 살을 꼬집을 상황인데 그보다 10배나 많은 금전이 어머니의 수중에 있다고 하니 당연한 반응이다.

참고로 1,000테스의 가치는 지금은 고블린에 의해 초토화가 되었을 갈색 자작나무 마을 기준으로 4인 가정이 4, 5개월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 그 큰돈을 조건 없이 주신 거야? 혹시, 서류에 손도장 같은 거 찍진 않았어?”

어스의 가족은 모두 문맹이다.

아예 못 보던 글자의 경우 그게 글씨인지, 그림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고향 마을에선 그로 인한 불편함이 없었지만 이런 큰 도시에선 아마 아닐 것이다.

도시에서 함부로 손도장을 찍으면 패가망신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을까.

오크 아가리에 손은 집어넣어도 종이엔 절대 손도 대지 말라는 그런 주옥같은 명언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쭉 내려오는.

“당연히 없었지. 만약 그런 일을 시켰다면 차라리 손목을 잘라야지.”

“그, 그래도 손목까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영주님이 강압하면 어쩔 도리가 있겠어? 찍으라면 찍어야지.”

영주민에게 있어 영주는 왕이다, 그런 왕에게 밉보여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렇긴 하지.”

마법사가 되어 보니 할 수 있는, 아니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보였다.

돈, 명예 그리고 평민들이 바라고 바라는 작위까지.

평민들이 바라는 그 작위는 남작, 자작, 백작 같은 진성 귀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준귀족이라 일컬어지는 기사나 훈작사를 의미한다.

준귀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어스는 처음으로 귀족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법사니까.’

하려고 하면 충분히 준귀족도 될 수 있으리라.

아니,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남은 스킬 슬롯은 일곱 칸, 거기에 고서클의 스킬을 익힌다면 어디 가더라도 꿀리지 않을 테니까.

“엄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여관이나 일가친척들 집으로 간다고 해. 그들이 모두 가면 우리가 남게 되는 거잖아? 우리도 여관이란 곳에 가면 안 돼?”

루시의 말에 어스는 물론 엘이나 역시 찬성했다.

“그래, 그러자꾸나. 그리고 이 일은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된다? 알지?”

“당연하지.”

“물론이지.”

어스의 머리는 이 순간 주도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나열하고 있었다.

첫째 용병이 되는 방법.

둘째 마법사라면 응당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상식.

더해 아버지를 찾아서 가는 것보단 이곳에서 머무는 것이 길이 엇갈리지 않고 쉽게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했기에 이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었다.

“와. 나 여관은 처음인데 좋은 곳일까?”

여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여동생의 모습에 아는 척을 하려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본인도 여관은 처음이다.

아니, 고향 마을 밖이 처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 *

갈색 자작나무 마을에 닥친 재난은 이미 도시 전역에 쫙 퍼져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둘만 모여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선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스는 그들을 십분 이해했다.

높고 튼튼한 성벽에다 기사와 병사들이 지키고 있으며, 장정들까지 많지 않은가.

고향 마을이 여기의 10분의 1 수준만 되었어도 고블린 따위에게 그처럼 짓밟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긴 뭐든 다 비싸네.’

고향 마을에 닥친 거대한 불행은 어스를 조금도 흔들지 못했다.

불쌍하다거나 안 됐다거나 하는 따위의 감정은 일절 없었다.

도시에서의 일상은 매일이 새롭고, 매일이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거리의 풍경, 크고 작은 깨끗한 집들에다 사람들까지 눈을 감아도 눈길이 절로 간다.

웃기게도.

‘그래도 마차는 다 말이 끄는구나.’

자신이 본 꿈의 세계에 비하면 이곳은 오지마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긴 거긴 천국이니까 비교 자체가 천국에 대한 모욕이리라.

룬의 성서에 나오는 소똥 냄새 구수한 그딴 천국보단 그 천국에 더 가고 싶은 어스였다.

거기 가는 기준은 어떻게 될까? 룬의 성서에 나오는 것처럼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룬님이랑 관계없는 곳일 테니 분명 다를 거야.’

룬의 신도들이 지키는 계명대로 살다간 복장 터져 죽는다.

뭐, 모든 룬의 신도들이 그렇게 사는 건 아닐 테지만 기본적으로 그를 추구할 테니 그건 어스의 성격과 전혀 맞지 않았다.

각설하고.

어스의 가족은 도시에서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에 방을 잡았다.

처음부터 이곳으로 온 건 아니다.

한참 발품을 알아본 결과 가격에 맞춰 이곳에 온 것이다.

3류 여관이라곤 하지만 고향 마을에 있는 그 어느 집보다 좋았다.

식당 겸 주점을 함께 운영하다 보니 시끄러운 점만 감수하면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아직까진 그랬다.

오늘도 어스는 행정관청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다.

그가 여기 들린 건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토벌령이 거둬지지 않는 이상 토벌대에 속한 사람들은 영주의 지휘를 받게 된다.

그래서 자의로 그만둘 수 없다.

만약 그만두려면 이곳 행정관청에 와서 정식절차를 밟아야 한다.

참고로 용병들은 예외다.

그들은 길드에 통보만 하면 된다.

자율!

용병의 매력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다.

‘벌써 삼 일짼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생각보다 아버지의 소식이 늦자 걱정의 마음이 조금씩 커지는 어스였다.

별일이야 있을까마는.

관청에서 나온 어스의 발걸음은 묵고 있는 여관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그의 발이 한 상점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어스가 이 상점 앞에서 저와 같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지도 오늘로 이틀째였다.

돈이 없어서 그냥 눈으로 욕구를 해소하는 건지, 아니면 마음에 드는 소녀라도 있어 저러는 것인지.

그건 아니었다.

그가 기웃거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저 가게의 주인이 마법사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게도 평범한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는 아니다.

마법 물품을 파는 곳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이들에겐 높은 문턱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다.

가게 주인의 관심을 받았으면 좋을 텐데, 이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것에 오늘은 여느 날과 달리 직접 부딪치기로 결심했다.

‘나도 마법사야.’

당장은 저기 파는 물건 중 가장 싼 것도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지만.

손잡이를 잡은 어스는 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딸랑.

문에 달린 종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이에 어스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래서 사람은 주머니가 든든해야 한다니까.’

돈, 아주 많이 벌 거다.

그래서 어디든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들어갈 것이다.

음식점이든, 상점이든 그리고 고급 여관이든 구질구질하게 눈치 보며 기웃거리는 일 따위 없게.

“뭐냐?”

쓱 쳐다보는 주인.

어스의 행색을 요모조모 뜯어봐도 마법 물품을 살 수 있는 형편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인지 주인의 반응이 퉁명하다.

어스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향 마을에선 느끼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가난도 부끄러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믿는 구석이 탄탄했음에도 이는 어쩔 수 없었다.

“마법삽니다.”

“네가? 하하, 별별 녀석을 다 보았지만 너처럼 반응하는 녀석은 처음이네.”

“그런데 마법사님은 어디 있죠?”

“뭐?”

“듣기로 상점의 주인이 마법사라고 들었습니다.”

“내가 이 상점의 주인이고, 그리고 마법사이기도 하다. 왜, 내 모습이 마법사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냐?”

노인이 눈을 흘기며 기분 나쁜 기색을 지었다.

그에 어스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생각하는 마법사와 완전 딴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스가 믿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자 이에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노인이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중얼중얼.

‘노망인가?’

고향 마을에서도 그런 노인들을 두엇 보았다.

그래서 이상할 게 없다.

다만 그 장소가 여기라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 순간 노망난 노인처럼 굴던 노인의 전면으로 불덩어리 하나가 나타났다.

“파이어? 진짜였군요. 마법사라는 게.”

“방금 뭐라고 했냐? 이걸 보고?”

“파이어잖아요. 1서클 스…… 흠, 아니 마법인데 마법사인 제가 그걸 못 알아볼까. 그럼 저도. 파이어 애로우.”

순식간에 등장한 2서클 공격 마법 파이어 애로우!

노인의 안구가 튀어나올 정도로 삽시간에 커졌다.

경악감을 담은 그 눈을 감싼 눈덩이도 파르르 떨린다.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너 몇 서클이냐? 아니, 자네 몇 서클인가?”

어스도 서클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마법사가 아무나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특별한 심장을 그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클은 바로 그 심장에 안착하는 마나 고리를 말함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체질만으로 마법사로 대성하는 건 아니다.

평생을 수련해도 3서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는 이들이 많으니까.

이 이야기는 마법사에게 들은 건 아니다.

여관 1층은 식당 겸 주점으로 운영하다 보니 별의별 사람들이 다 오는 데 그중 마법사에 관해 알고 있는 자가 떠드는 이야기를 귀동냥 한 것이다.

별거 아닌 내용이었지만 당시 어스에게 있어 그 이야기는 적잖은 충격을 선사했다.

자신과 기존의 마법사가 다르다는 걸 그로 인해 인지한 것이다.

어스는 이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자의 말이 진짠지 그냥 관심을 받고 싶어서 마법사를 들먹인 것인지를.

그러던 차에 이곳을 알았으니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이게 몇 서클 마법이라고 생각하세요.”

“2서클……. 하지만 말도 안 돼. 2서클 마법사는 자네처럼 그런 식으로, 그런 미친 속도로 마법을 발현할 수 없다고! 적어도 두 단계 윗줄의 고위 마법사나 가능한 일인데.”

잘 찾아왔다.

가르쳐 주기 위해 하는 말도 아님에도 영양가 있는 소릴 하고 있지 않은가.

어스의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인다.

용병이란 직업에도 관심이 있지만 역시 마법사에 관한 이야기엔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마법사에게 마법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으니 흡사 길 가다 금덩이를 주운 기분이었다.

“지금은 파이어 애로우지만 조만간에 파이어 볼도 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서, 설마. 그 나이에 3서클의 벽을 깰 깨달음을 얻은 것인가?”

좀 전과 달리 노인은 어스를 존중하고 있었다.

파이어 볼? 그게 뭐 어렵다고 몬스터 쳐 죽이면 되는 것을, 물론 이를 밝힐 순 없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행동이든 뭐든 그 순간 경계의 대상이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어스였다.

“가는 길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죠.”

자신이 말하고도 자신의 말에 살짝 도취한 어스였다.

반면 노인은 그딴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예순을 넘긴 나이임에도 놀라운 열정을 드러냈다.

3서클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깨달음이라니.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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