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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6화 (6/250)

006화

토머스 마을의 촌장을 만난 자리에서 엘이나는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성실한 자세로 설명했다.

고향 마을과 같은 비극이 더는 없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다행히 촌장은 말귀를 잘 알아먹는 사람이었다.

엘이나는 마을 회관을 나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쉴 수 있을까?’

촌장이나 이 마을 유지들의 표정을 보니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촌장이랑 이야기는 잘 됐어?”

“엄마가 보기에 현명하신 분 같아 보여서. 그보다 얌전히 있었지?”

“그건 다행이네. 루시는 몰라도 난 조용히 쉬기만 했어. 그럼 영주님이 군대를 보내기 전까지 여기 있는 거야?”

“그건 촌장님이 결정하실 일이지. 우린 이방인이잖아.”

“이방인은 무슨, 엎어지면…… 음.”

갑자기 침음을 흘리는 아들의 모습에 엘이나는 자신의 피곤함도 잊고 걱정부터 드러냈다.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또래보다 유난히 약한 아인데다, 서너 살 땐 죽다 살아나기도 했다.

그 일은 부부만의 비밀이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에서 평판이 나쁜 아들이 그런 일까지 있었다고 알려질 경우 정말이지 종교재판장에 끌려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혹시, 그 모든 게 마법사가 되려는 징조였던 건 아닐까?’

일반인들에게 있어 마법사는 신비의 대명사였다.

때문에 아들의 모든 것들이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이 마을에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루시가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 고생을 하고 이제 조금 쉬려는데.”

대답 대신 여동생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앗! 왜 때려. 마법사라고 이제 막가자는 거야?”

“근육에 집착하지 말고 머리도 굴려 봐. 토머스와 우리 마을은 그리 멀지 않아. 우리가 숲으로 이동해서 이처럼 걸렸을 뿐이야.”

루시의 표정이 굳어진다.

엘이나 역시 별다르지 않았다.

“그럼 네 말은 놈들이 이 마을까지 노릴 수 있다는 거니?”

이 생각은 엘이나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두 마을의 거리는 성인 기준으로 1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 길을 저들 가족은 무려 4시간이나 걸었다.

“이미 최악의 상황은 겪었어. 그러니 그 기준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물론 내 생각대로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가족의 안전이잖아.”

조리 있고 당당한 말투와 가족을 사랑하는 아들의 모습에 엘이나는 가슴 뭉클했다.

“그래도 일단은 쉬는 게 좋겠어. 엄마 안색이 안 좋아.”

힘만 키운 건 아닌지 루시가 재빨리 물과 음식을 가져와서 내밀었다.

이를 받아든 엘이나는 행복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긴 어스는 마을에서 제공한 집에서 나왔다.

갈색 자작나무 마을 사건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라 마을 분위기는 무척이나 어수선했다.

눈에 보이는 그 분위기가 어스의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역시, 믿을 건 내 마법밖에 없어.’

호미 한 자루 들고 미쳐 날뛰었던 자신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 어스는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번 다시 그런 미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상태창 오픈.’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8).

생명력 : 100/100.

마나 : 130/130.

스탯 : 힘(1). 체력(1). 민첩(1). 지력(2). 정신(7).

직업 스킬(1/9) : 매직 애로우(+0/12).

업적 포인트 : 0.

코인 : 202.

상황에 쫓기어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상태창을 이제야 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목숨을 건 사투를 통해 꽤나 많은 것을 얻은 상태였다.

다시 그 짓을 하라면 무조건 안 한다.

업적 포인트는 얻자마자 지력 하나를 빼곤 모조리 정신에 분배했다.

그 결과 달랑 100이었던 마나는 지금 130이 되어 있었다.

경황없이 분배하긴 했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 그런 그가 홀라 나온 건 코인 때문이었다.

200코인은 2서클 코인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스킬을 일일이 확인하며 궁리하고 궁리한 끝에 어스는 파이어 애로우를 선택했다.

개중 가장 강력한 위력의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를 잡아야 성장할 수 있는 내 입장에선 무조건 힘이야.’

과정은 진지하게 그러나 결론 내린 일은 조금이 망설임도 없이 해치우는 어스였다.

직업 스킬(2/9) : 매직 애로우(+0/12). 파이어 애로우(+0/12).

레벨처럼 스킬도 한계가 없으면 좋을 텐데, 어째서 스킬엔 이런 제한이 붙어 있는 건지.

‘이것저것 구입하고 싶은 게 많은데.’

아쉽지만 주어진 이 힘만으로도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 이상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다.

‘도둑놈 소릴 들어도 좋은데.’

목숨을 걸고 싸운 결과물을 자랑스럽게 응시하던 그에게로 한 인영이 다가왔다.

마을 입구에서 만나고 지금 쉬고 있는 집을 내준 코틴이란 남자였다.

마을이 작긴 하지만 명색이 코틴은 마을 자경단의 수장이기도 하다.

“마음이 좋지 않나 보구나. 하긴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으니 그럴 하지.”

상태창을 보고 있었을 뿐 고향에 대한 생각 따윈 전혀 하지 않았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너그럽게 대해줬다면 애도를 하겠지만 그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어린 녀석들이나 늙은 영감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세요?”

“피난을 가기로 했다. 그 말을 전하려고 왔다. 그 고생을 하고 왔는데 하룻밤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됐구나. 가족들에겐 네가 전해 주렴.”

코틴은 어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곤 가버렸다.

그가 이야기를 전해주고 간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이 바리바리 짐을 챙겨서 각자의 집에서 나와 마을 회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과 달리 어스네는 달랑 입고 왔던 피와 흙이 뒤섞여 상거지 꼴의 옷이 전부였다.

수중엔 땡전 한 푼도 없었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라도 끼니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래도 위험할지 모를 이곳에 남을 수 없었기에 어스네 가족도 토머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농익어 가는 밤에.

* * *

“어서, 어서 움직여!”

음머머머머, 메에에. 꼬꼬꼬.

“응애, 응애.”

덜컹덜컹, 삐걱삐걱.

어스가 뒤로 처지자 걸음을 멈춘 엘이나가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루시라도 별다르지 않았다.

오직 어스만이 멀쩡했다.

고생한 티는 의복에서만 찾을 수 있을 뿐.

“내 걱정 말고 엄마나 신경 써. 나 쌩쌩해.”

“힘들면 말해. 이 속도면 옆으로 빠져서 조금 쉬었다가 합류해도 괜찮을 거야.”

“잊었어? 내가…….”

자기 자랑으로 분위기를 띄우려던 어스는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전방을 향한다.

피난 행렬의 선두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에 긴장했던 어스는 이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중간에 있던 사람들도 후미에 있던 사람들도 우르르 병사들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곳만 북새통이다.

“너희들은 어디서 온 자들이냐?”

병사들은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보병과 달리 기마병은 최소 하급 장교다.

그 때문인지 하대가 아주 자연스럽다.

“토, 토머스 마을 사람들입니다요. 기사 나리.”

토머스 마을 촌장 로토가 남자를 향해 하는 말을 들은 어스는 깜짝 놀랐다.

‘기사면 다들 번쩍번쩍 빛나는 갑옷을 입지 않나?’

듣던 것과 영 딴판이라 기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기사는 명칭을 부정하지 않았다.

촌장을 가까이 불러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가시가 갑자기 어스의 어머니를 찾았다.

기사의 부름에 엘이나는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온전한 귀족은 아니지만 평민들에겐 준귀족도 귀족이다.

귀족에 대한 내성이 없는 사람들에겐 그 이름만 들어도 심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엘이나도 저러한 반응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엄마, 쫄지 마. 내가 있잖아.”

기사? 분명 대단한 자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건 마법사다.

아들이 손을 잡아주자 엘이나의 표정이 한결 풀렸다.

“제가 엘이나입니다. 기사 나리.”

사람들이 길을 터 주었다.

어스와 루시는 어머니의 좌우에 서서 함께 움직였다.

기사를 바라보는 루시의 두 눈은 동경으로 가득했다.

‘마법사가 더 좋은 거라니까.’

하긴 마법사는 아무나 될 수 없지만, 기사는 노력으로 가능하다.

재능과 노력이 합쳐지면 더 대단하겠지만 마법사는 선천적인 재능이 우선시되기에 되고 싶다고 다 될 수 없다.

그러니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기사 쪽이 더 끌리는 게 아닐까 싶다.

‘꿈 깨. 마법사보단 못하지만 기사도 평범한 자들이 되긴 힘들어.’

어스가 아는 세상은 아버지 행크의 입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행크의 생각이 조미료처럼 진하게 첨가된 편파적인 내용이 많았다.

아버지를 믿었기에 어스는 이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기사의 모습을 보고 그리 실망했던 것이다.

“로트 촌장에게 들으니 너와 네 자식들이 갈색 자작나무 마을의 유일한 탈출자라고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냐?”

“예, 분명 사실입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높은 신분의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하대하는 건 당연하다.

나이 불문하고.

어스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그 대상이 자신의 어머니였기에 반감이 생겼다.

‘두고 봐. 내가 성공해서 아무도 우리 가족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 테니까.’

마법사로서의 성장, 돈, 그리고 신분이란 목적이 생겼다.

당장은 마법, 아니 달랑 스킬 두 가지뿐인데다 마나의 양도 많지 않아 펑펑 써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법사임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직업(레벨) : 마법사(8).

다른 사람들에겐 보일 수 없지만 여기 이렇게 똑 부러지는 글씨로 마법사라고 적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내 마법은 스킬이라고 하는 걸까?’

원래는 스킬이 맞는데 있어 보이라고 마법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하긴 스킬이란 단어보다 마법이란 단어가 좀 더 신비롭고 있어 보이긴 했다.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지 일반인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다.

기사는 원하는 정보를 입수하곤 피난 행렬을 지나갔다.

상황을 직접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버지 말만 들으면 기사 한 명이 백 명도 상대할 수 있다던데. 저 기사도 그럴까?’

그렇다면 확실히 자신보단 수준이 높은 자다.

아직 자신은 백 명은 무리니까.

물론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일 생각은 당연히 없다.

기사가 이끄는 기마병의 출현으로 인해 술렁이던 장내의 분위기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음머머머머, 메에에. 꼬꼬꼬.

“응애, 응애.”

덜컹덜컹, 삐걱삐걱.

* * *

피어스 남작은 자정이 훌쩍 넘어 도착한 토머스 마을 사람들을 위해 병영의 한 곳을 임시 거주지로 내주었다.

공터에 병사들이 쓰는 막사가 세워지면서 밤새 걸었던 사람들은 다들 나가떨어졌다.

어스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천막이라도 내준 게 어디야. 우리 영주님 나름 괜찮은 사람이네.’

일단은 피곤했기에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점심 무렵이 다 되어서 눈을 뜬 어스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에 깜짝 놀랐다.

급한 마음에 곧장 막사에서 뛰쳐나온 어스는 길게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엔 어머니와 여동생도 있었다.

“뭐 하는 줄이야?”

“영주님이 음식을 베풀었어.”

“진짜?”

잠자리에 이어 음식까지 나눠주다니, 아버지의 말대로 괜찮은 영주인 것 같았다.

‘나중에 잘 되면 우리 영주님 한번 밀어준다.’

그렇게 영주가 베푼 음식을 먹고 허기를 면한 어스네는 아버지를 찾기로 했다.

그때, 토머스 마을 사람이 안내를 받고 남자가 찾아왔다.

영주가 보낸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에 세 사람은 크게 놀랐다.

기사와 영주는 격이 완전 다른 존재였기에 저들이 놀라는 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엘이나, 당신만 따라오도록.”

어린아이들에겐 들을 게 없다는 듯 처음부터 남자는 엘이나를 지목했고, 엘이나는 어스와 루시에게 얌전히 있으라는 당부를 남기곤 그 뒤를 쫓아갔다.

“오빠, 엄마 괜찮겠지? 잠자리도 내주고 음식도 내준 착한 영주님이잖아.”

“당연히 괜찮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오빤?”

“나라고 다를 바 없잖아. 주도는 나도 처음인데 어디 가겠어. 더구나 수중엔 땡전 한 푼도 없어.”

“거지네, 우리.”

반론의 여지가 없다.

돈도 없고 옷은 또 사투를 벌이다 엉망이었으니까.

‘큰길에서 공연이라도 해야 하나?’

그러기엔 할 줄 아는 건 달랑 매직 애로우와 파이어 애로우뿐이다.

매직 애로우는 그래도 열세 번은 사용할 수 있지만, 파이어 애로우는 달랑 여섯 번이 한계다.

‘시작은 이래도 성공하고 만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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