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화
네미는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 마을 어른들이 인근을 모두가 나서 주변을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나 정오가 되갈 무렵 마을이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땡땡땡-!
마을에 위급함이 있을 때 울리는 종이 마을 구석구석을 일깨웠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회관으로 급히 발을 놀렸다.
어스도 가려 했지만 엘이나와 루시가 막았다.
저 의미를 어찌 모르랴.
“갔다 와.”
어스는 하다 만 운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근육도 만들고, 더불어 키는 반드시 키워야 한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엘이나와 루시가 잔뜩 굳은 표정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네미가 죽었다는구나.”
어머니의 말에 어스는 깜짝 놀랐다.
“네미가? 왜요?”
“촌장님 말씀으론 몬스터에게 당한 것 같다고 하네.”
마을이 들어선 초창기를 제외하고 지금껏 몬스터로 인한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하필이면 마을 장정의 절반 이상이 몬스터 토벌에 참가하러 간 상태다.
만약 하나 이 상황에서 몬스터가 무리를 짓고 쳐들어온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몬스터면 어떤 종류래?”
“고블린일 가능성이 높데.”
이 마을엔 사냥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흔적을 통해 대상을 유추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고로 범인은 고블린이 맞을 것이다.
‘고블린 정도면 괜찮지 않나?’
이미 놈들을 상대해 봤기에 고블린에 대한 두려움 따윈 어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고블린이면 안심해도 되겠네.”
“그래도 몬스터야. 조심해서 나쁠 게 없어. 당분간 너희 둘은 마을 밖으로 나갈 생각하지 마. 알았지?”
하긴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응.”
“심심한 데.”
“루시!”
“알았어, 알았다고. 안 나가.”
“그래선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 고블린이 습격할지도 모르니까 루시 넌 창고에서 무기 될 만한 건 싹 가져와. 엄마는 덧창을 살필 테니까.”
루시는 잰걸음으로 창고로 달려갔다.
“엄마, 나는?”
“우리 아들은…… 음, 여기 있어.”
그렇게 어스만 멀뚱히 거실 한 가운데 서서 두 사람이 사라진 곳을 번갈아 보았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생각할수록 섭섭함이 몰려오는 어스였다.
큰 집도 아니었기에 두 사람 모두 금방 돌았다.
“엄마, 난 활을 쓸게. 이 단검이랑.”
“그럼 그 도끼는 엄마 줘.”
“그러면 나는 뭘 들까?”
“우리 아들은…… 음.”
“오빤 그냥 방에서 나오지 마.”
상처에 소금으로 소독해 주는 따사로운 마음씨의 여동생이었다.
“하아, 진짜 내가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도저히 안 되겠다. 다들 내 말 듣고 놀라지 마. 실은 내…… 뭐야? 지금 말하고 있잖아! 루시 녀석은 그렇다 쳐도 엄마는 왜…….”
아무도 어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엄마, 고블린은 작고 날쌔지 않아? 도끼로 잡기 힘들 것 같은데.”
“그렇다고 식칼을 들 수는 없잖아. 단 하나뿐인 식칼인데. 그나저나 네 아빠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식칼을 사오라고 했더니 엉뚱한 단검은 왜 사온 건지.”
“식칼이나 단검이나 잘 썰리면 되는 거 아냐?”
“그래도 주방에선 식칼이지.”
모녀는 역시 모녀였다.
“그건 그래. 연장은 용도에 맞게 써야지.”
“그래, 바로 그런 거야. 역시, 엄마 딸.”
아버지가 말했다, 남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그땐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이 상황을 겪어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들이, 오빠가 마법사라고!”
그렇게 꼭꼭 숨겨 두었던 비밀을 밝히려 했는데.
“가출, 아니. 내 인생을 찾아 떠나야겠다.”
그게 옳은 일인 듯싶었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남자 대 남자로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기로 결심한 어스였다.
‘결심했어. 앞으로 무조건 아빠 편이다.’
* * *
갈색 자작나무란 이름으로 불리는 마을에 전례 없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주민들은 마을 촌장의 지시로 회관 앞에 집결했다.
어스 네 가족 역시.
놀랍게도 어스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에게 눈치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방어를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몇 백 마리의 고블린이 우리 마을로 오고 있다.”
사람들이 낯빛이 일제히 하얗게 변하였다.
“저, 정말 몇 백 마리나 되는 겁니까?”
갈색 자작나무 마을의 주 상품은 동물 가죽과 말린 약초다.
두 가지 모두 산과 숲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을 남자 대부분이 사냥꾼이란 직업을 갖고 있었다.
비율은 열에 여덟.
여자들이라고 약한 건 아니다.
약초를 캐기 위해 숲과 산에 들어가야 하다 보니 체력과 배포가 농산물이 주 수입원인 다른 마을의 여자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억세다.
그런 기질의 사람들이 지금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하필 마을 남자들이 토벌로 대거 빠진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지다니.”
“그런데 그 많은 고블린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잊었어? 금지를.”
“촌장님, 고블린이 몬스터 중에선 최약체라고 하지만 숫자가 그렇게 많다면 위험합니다. 지금이라도 영주성에 사람을 보내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보냈어. 하지만 오늘 중으로 오긴 힘들 거야. 영주님도 준비를 해야 할 테니까.”
“그, 그럼 피신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피신?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2시간 이내에 놈들이 들이닥칠 거야. 그리고 무작정 피난에 나섰다가 놈들이 우리 뒤를 치면?”
피난을 주장했던 여자는 촌장의 반박에 입을 다물었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지원군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해. 그 길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이후 촌장은 마을로 진입할 수 있는 곳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하도록 명령했다.
안타깝게도 마을로 진입할 수 있는 길목은 무려 네 곳이나 된다.
목책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몬스터 청정지역이라는 생각에 이를 무시한 게 마을 최대의 실수였다.
* * *
어스는 동쪽 진입로에 배치됐다.
어머니 엘이나와 루시와 함께였다.
어스는 두 사람과 떨어지지 않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진입로의 방어벽을 쌓는 사람들을 따라 어스도 힘을 보탰다.
크고 작은 나무, 물통, 널빤지, 식탁, 의자, 수납장, 수레 등등 닥치는 대로 조달해서 쌓고 또 쌓았다.
“별종 새끼야 넌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고 사냐? 꼴에 사내면서 일은 열 살짜리 계집애보다 못하네. 재수 없는 놈.”
나름 열심히 나르고 있었지만 그게 시원치 않게 보였는지 한소리 들었다.
노닥거리다 저런 소릴 들었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옮기는 물건에 찔리고, 베이면서까지.
하지만 남들과 다른 이유 때문에 어스에겐 그런 자잘한 상처 하나 없었다.
‘생명력 때문에 생채기도 없네.’
반면 어스를 타박한 남자의 경우 잔 상처가 많았다.
그 남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시비조로 비난하는 건 지나친 처사였다.
더욱이 이 자리엔 어머니와 여동생도 있었다.
“당신이나 잘해.”
“다, 당신? 이 어린놈의 새끼가 죽고 싶어…….”
“그만해,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냐! 당장 자리로 돌아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동쪽 구역 책임자를 맡은 겔슨이 버럭 소리치며 나섰다.
“겔슨, 그게 아니라 저 어린놈의 새끼가 나보고…….”
“그만하고 돌아가. 고블린 놈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판국에 애새끼랑 주먹다짐이라도 할 생각이야? 그리고 어스 너도 열심히 도와라. 별종이라고 해서 고블린이 사정 봐줄 거란 생각은 설마 아니겠지?”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던가? 지금이 바로 그 짝이다.
“어스, 이리와.”
그간 참았던 감정이 분출하려던 그때 엘이나가 어스를 불렀다.
그녀의 표정 역시 불쾌감으로 한껏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 옆에 있는 루시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스는 화를 억눌렀다.
겔슨이 비꼬아서 말하긴 했지만 확실히 지금은 사람들끼리 다툴 여유가 없었다.
어스는 겔슨을 차갑게 노려본 뒤 홱 돌아서서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로 갔다.
이를 노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겔슨도 곧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사람들을 재촉했다.
* * *
필사적인 노력 끝에 방벽이 완성됐다.
하지만 저걸 완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방벽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방벽을 앞에 두고 남자들은 제 손에 익은 활을 들었다.
여자들은 끝을 뾰족하게 만든 나무창, 도끼, 삽, 곡괭이를 잡았다.
루시는 활을 들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 운명의 갈림길이 저만치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고블린이다! 고블린이 나타났다!”
올 것이 왔다.
“어, 엄청 많잖아!”
“젠장!”
“어, 어떻게 저 많은 놈들을 막아! 무리야, 처음부터 달아났어야 했어.”
두려움이 빠르게 확산했다.
확실히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효과가 컸다.
몇 백이란 숫자, 더욱이 상대가 고블린이니 해볼 만하다고 큰소리쳤던 놈들도 지금은 합죽이가 되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겔슨이 소리쳤다.
아니, 악을 썼다.
“여기가 뚫리면 우리 다 죽는다! 모두 죽을힘을 다해 버텨!”
그에 사람들이 이를 악물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부실한 방벽 너머 서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 고블린 무리가 일제히 괴성을 내지르며 뛰어오기 시작했다.
마을 정찰대가 파악한 고블린이란 고블린 죄다 동쪽 구역으로 몰린 듯한 물량이었다.
“놈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쏴. 긴 무기를 가진 여자들은 고블린이 접근하면 방벽 틈새로 찔러.”
겔슨 역시 자신의 밥벌이인 활을 들었다.
이 순간은 모두가 공평한 위치에 섰다.
어스는 긴장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마나 : 105/105.
마나 애로우 열 발이면 그 뒤엔 마법사가 아닌 창병이 되어야 한다.
잘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조건 잘 해야 한다.
어스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머니와 여동생 모두 전방을 주시한 채 굳어 있었다.
‘축하 파티가 아니라 전장이라니.’
놈들의 모습이 확연하다.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간다.
뜨거운 숯을 삼킨 것 같았다.
후우, 후우.
‘폼 나게 사나 싶었는데.’
창창한 미래가 꿈이 아니었는데, 하필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인지.
“쏴!”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그 순간 시위를 떠난 화살이 포물선을 아래로 내리꽂혔다.
화살의 숫자는 고작 열다섯 발. 언 발에 오줌이다.
하지만 거기에 선두에서 달려오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관성에 의해 앞으로 뒹굴었다.
그 뒤를 바짝 따라오던 놈들이 동족의 몸에 부딪쳐 쓰러지면 한순간 그곳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 모습에 숨도 제대로 못 쉬며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함성이 터졌다.
“와아아-!”
“봐, 보라고! 멍청한 고블린일 뿐이야!”
“그래, 할 수 있어. 고블린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사람들의 함성은, 용기는 오래지 않아 차갑게 식었다.
죽음을 불사하고 짓쳐들어오는 놈들의 저돌적인 기세에 질려 버린 것이다.
활을 가진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화살을 날렸다.
어스의 여동생 루시 역시 그중 하나였다.
“방벽을 지켜! 놈들이 넘게 해선 안 돼!”
“창, 창을 내지르라고!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곳곳에서 비명과 같은 악다구니가 터졌다.
욕설이 난무했다.
거기엔 남녀의 구분 따윈 없다.
오직, 평등만이 있을 뿐이다.
푹푹!
“끼엑!”
조잡한 방벽이었다.
그럼에도 확실히 있는 게 도움이 되었다.
방백의 틈새로 창을 든 사람들이 이를 내지를 때마다 창끝엔 진득한 핏물이 새로 덧칠이 되어 빠져나왔다.
“죽어!”
“죽어, 이 괴물아!”
사람들이 모습에서 더는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이는 건 오직 하나, 그건 광기였다.
어스는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에 동화될 뻔했기 때문이었다.
‘신중해야 한다, 신중하게.’
최대한 확실하게 놈들을 끝장내야 한다.
활이 쓸모없어진 루시는 활 대신 단검을 쥐고 있었다.
아래턱이 덜덜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를 보자 애잔함이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한쪽엔 어머니가 이를 악물고서 방벽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끼 자루를 단단히 틀어쥐고서.
어느새 몬스터의 파도가 방벽 위까지 올라왔다.
‘매직 애로우, 매직 애로우!’
어스는 지체하지 않고 스킬을 날렸다.
두 발 모두 명중했다.
그런데.
-2코인을 습득합니다.
‘하나만 죽었구나!’
한 발, 한 발이 아깝고 소중한 상황에서 이는 숨이 탁 막히는 심정을 낳았다.
그러나 이에 연연해서 멍 때리고 있을 수 없다.
‘매직 애로우!’
-2코인을 습득합니다.
방벽 위에서 아래로 몸을 날리던 놈이 즉사한 채 떨어졌다.
사체가 떨어진 주변에서 기함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나 : 25/105.
남은 매직 애로우는 단 두 발, 역전 따윈 바랄 수 없는 숫자였다.
‘빌어먹을!’
봄을 기대했더니 봄은 오지 않고 흉악한 동장군이라니.
마법사로서 활짝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진짜 빌어먹을 인생이다.